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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의 대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로 가는 길에 디오게네스를 만났다.
한겨울의 아침나절 이었다.
바람이 찼다.
디오게네스는 강둑의 모래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영혼은 세속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알렉산더는 그의 모습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경외스런 어투로 말을 건넸다.
“선생...”
알렉산더는 난생 처음으로 "선생"이란 말을 쓴 것이었다.
“선생, 난 당신한테 단번에 감동하였소이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뭔가 해드려야겠소이다.
뭘 해드리면 좋겠소?“
디오게네스가 말하기를,
“아 조금만 옆으로 비켜 서주셨으면 합니다.
햇빛을 가리고 계시니. 그뿐입니다.”
알렉산더가 말하기를,
“내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신에게 청할 것이요.
이번엔 알렉산더가 아니라 디오게네스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디오게네스가 웃으며 말하기를,
“누가 감히 대왕의 길을 막겠습니까?
대왕께선 지금 어디로 가시지요?
여러 달 동안 군대가 이동하는 걸 보았습니다...
대왕께선 어디로 가십니까?
무슨 일로 가십니까?“
알렉산더가 말하기를,
“세계를 정복하러 인도로 가는 길이오.”
디오게네스가 묻기를,
“그런 다음에 뭘 하시렵니까?”
알렉산더가 말하기를,
“그야 편히 쉬어야지요.”
디오게네스가 웃으며 말하기를,
“대왕께선 참 어리석소이다!
난 지금 쉬고 있질 않습니까.
난 세계를 정복하지도 않았고, 또 그럴 필요성조차 못 느끼지만 지금 아주 편안히 쉬고 있소이다.
대왕께서 정말 편히 쉬고 싶다면 지금 당장 왜 그리 못하십니까?
편히 쉬기 전에 먼저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누가 그럽디까?
대왕께 말해 두지만 지금 당장 편히 쉬지 못하신다면 끝내 그럴 수 없을 것이오.
대왕께선 결코 세계를 정복하지 못하실 겁니다...
대왕께선 여행 중에 죽게 될 것이오.
그리고 딴 많은 사람들도.”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에게 그 충고를 마음 깊이 간직해 두겠다고 말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길을 멈출 순 없었다.
그는 정말 여행 중에 목숨을 잃었다. 길에서 죽은 것이다.
그 후 이상한 얘기가 전해 내려 왔는데, 디오게네스도 알렉산더가 죽던 그날 똑같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신에게로 가는 길에 강을 건너다가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등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몇 발짝 뒤에 디오게네스가 보였다.
아 아름다운 사람.
알렉산더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창피를 무릎쓰고 외쳤다.
“이거 또 만나게 되었구려.
황제와 거지가 말요”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그렇군요.
한데 당신은 뭔가 오해하고 있소.
누가 거지고 누가 황제인지 모르는 것 같소.
나는 삶을 완전히 살고 누렸으므로 신을 만나게 될 것이오.
그러나 당신은 신을 만나지 못할 것이오.
당신은 나조차도 볼 줄 모르지 않소. 당
신은 내 눈조차 들여다 볼 줄 모르오.
당신의 삶은 완전히 헛된 것이었소.“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에 왔다.
물론 승리하기 위해서이다.
그대에게 승리할 필요가 없다면 그대는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왜 고민을 자초하는가?
아테네는 무척 아름다웠다.
그렇게 먼 원정으로 고민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오는 도중 그는 강둑 위에 디오게네스(Diogenes)라는 신비주의자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알렉산더는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당시에 아테네에서는 특히 두 사람의 이름이 입에 오르내렸다.
하나는 알렉산더이고 다른 하나는 디오게네스였다.
그들은 두 개의 극단, 양극이었다.
알렉산더는 황제로, 지구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뻗어 나간 왕국을 건설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전 세계를 소유하고 싶어했다.
그는 정복자였으며 승리를 구하는 자였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그는 벌거벗고 살았으며 단 한 가지도 소유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구걸하기 위해서 그릇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개 한 마리가 강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는 즉시로 그의 그릇을 내던져버렸다.
그는 말했다.
"만일 개가 그릇 없이 산다면 나라고 왜 못하겠는가? 개들은 매우 영리하다.
그래서 개들은 그릇 없이도 살 수 있다.
나는 이 그릇을 갖고 다닐 만큼 어리석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짐이다."
그는 그 개를 스승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개를 함께 살도록 초대했다.
그 개는 영리했기 때문이었다.
그 개는 그에게 그의 그릇이 불필요한 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 개는 그와 함께 남아 있었다.
그들은 함께 잠자고, 함께 음식을 먹었다.
그 개는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어떤 사람이 디오게네스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개와 함께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그 개가 소위 인간들보다 더 지적이다.
내가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그렇게 지적이지 못했다.
그를 보는 것, 그를 지켜보는 것은 나를 깨어있게 만든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살며, 어떤 것에 의해 고통받지 않고,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아주 행복하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그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나는 아직 그렇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불편함이 아직도 내 속에 남아 있다.
내가 그처럼 되었을 때 나는 목표에 이를 것이다."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에 대해서 들었다.
그의 무아경의 환희와 그의 침묵,
그의 거울 같은 눈에 대하여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까운 강둑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알렉산더는 그가 보고 싶어져서 그곳으로 갔다.
때는 아침, 어느 겨울 아침이었다.
디오게네스는 아침을 즐기면서 벌것벗은 채 모래 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햇빛은 그에게로 쏟아지고 있었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조용했으며,
강물이 그 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다.
알렉산더 같은 사람은 사물과 소유에 대한 것 이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디오게네스를 보고 말했다.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
나는 그대를 도와줄 수가 있으며, 또 그대를 돕고 싶다."
디오게네스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약간 옆으로 비켜 서 달라.
당신은 지금 나의 태양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기억하라.
어느 누구의 태양도 막지 말라.
그것이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내 길을 방해하지만 말라.
당신은 그 밖의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다.
알렉산더는 이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사람 앞에서 자신을 거지처럼 느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온 세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족하지 못한다.'
이 세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알렉산더는 말했다.
"그대를 보니 나는 행복해진다.
나는 그토록 만족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그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다.
자, 당신이 나처럼 만족하기를 원한다면 이리로 와서, 내 곁에 누워, 일광용을 하라.
미래를 잊고 과거를 떨쳐버려라.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웃었다.
물론 표면적인 웃음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 말이 옳다.
그러나 아직 그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그대처럼 편안해지고 싶다."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그러면 그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안해지기 위해 당신은 또 무엇이 필요한가?
내가, 한 걸인이 편안할 수 있는데,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 싸움, 이 노력, 이 전쟁들, 이 정복은 왜 필요한가?
왜 이겨야 할 필요가 있는가?"
알렉산더가 말했다.
"내가 승리자가 되었을 때, 내가 온 세계를 정복했을 때 그때 내가 다시 와서 그대에게 배우겠다.
그리고 이 강둑에, 당신 곁에 앉을 것이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그러나 여기 누워 즉시로 편안해질 수 있다면 왜 미래를 기다리는가?
그리고 왜 당신 자신과 다른 이들의 불행을 만들어내면서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가?
왜 삶을 다 보낸 다음 내게로 와서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하는가?"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의 전생애 동안 그에게 유령처럼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가 어디를 가든 디오게네스는 그림자처럼 그와 함께 있었다.
밤에도, 꿈속에서도 디오게네스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들이 같은 날에 죽었다고 한다.
그들은 같은 날에 죽었다.
디오게네스는 그가 알렉산더를 따라갈 수 있도록 조금 기다렸다가 죽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같은 날에 죽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되는 강을 건너는 동안 알렉산더는 다시 디오게네스를 보았다.
그리고 이 두 번째 만남은 전보다 훨씬 더 위험스러웠다.
알렉산더는 앞에 있었다.
그가 몇 분 더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는 그를 뒤따르기 위해 조금 기다렸다가 죽었던 것이다.
알렉산더는 강에서 뒤에 있는 사람의 인기척을 듣고 뒤돌아보고는
거기 디오게네스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놀라 말문이 막혔음에 틀림없다.
이때의 일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 역시 디오게네스처럼 벌거벗고 있었다.
저 세상으로 갈 때는 옷을 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전적으로 아무도 아니었고 황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똑같았다.
죽음이 앗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는 이미 포기했다.
그래서 죽음은 그에게서 아무것도 가져갈 수가 없었다.
그는 강둑에 있을 때와 똑같았다.
여기 이 강에서 그는 전에 있던 모습과 똑같이 있었다.
태연하게, 자신에게 용기와 확신을 불어넣으면서 알렉산더 또한 웃으면서 말했다.
"훌륭하다, 멋있는 일이다. 위대한 황제와 위대한 거지가 다시 만났으니 말이다."
디오게네스는 대답했다.
"당신 말이 전적으로 옳다. 다만 당신은 황제인 사람과 거지인 사람을 조금 혼동하고 있다.
이것은 위대한 황제와 위대한 거지의 만남이다. 그러나 황제는 뒤에 있고, 거지는 앞에 있다.
그리고 이제 당신에게 말하건대, 알렉산더, 그것은 우리의 첫
번째 만남에서도 같았다. 당신은 거지였다. 다만 당신은 내가 거지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당신 자신을 보라. 온 세계를 얻음으로 해서 당신은 무엇을 얻었는가?"
디오게네스는 다른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대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을 수가 없다.
그는 빌어 온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참된 자아를 갖고 있으며, 그대는 오직 에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아와 에고의 차이이다.
에고는 빌어온 자아일 뿐이다.
에고는 다른 이들에, 공공의 의견에 의존한다.
자아는 그대의 확실한 존재이다.
그것은 빌어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의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가져갈 수가 없다.
-출처불명-
디오게네스를 향한 변명
구미정
디오게네스는 사람 하나 겨우 들어앉을만한 나무통을 집 삼아, 그것을 굴리고 다녔던 이른바
‘거지 철학자’입니다. 이름이 좋아 견유학파(犬儒學派)이지, 풀이하자면 ‘개 같은 삶’을 산 철학자라는
뜻인데, 거리를 떠돌며 방랑하던 디오게네스에게 딱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견유철학자를 ‘퀴니코스(Cynicos)’라고 하고, 이것이 우리가 냉소주의라 부르는
‘시니시즘(Cynicism)’의 어원이고 보면, 디오게네스는 한마디로 냉소주의의 아버지쯤 되겠네요.
널리 알려진 일화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루는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를 찾아오지요.
알렉산더로 말하자면, 마케도니아의 군사력을 힘입어 그리스 본토 도시국가들의 총사령관이 될 만큼,
권력을 휘어잡은 인물입니다.
그런 전쟁영웅이 일개 철학자를 몸소 찾아간 이유야 알 길이 없습니다.
아무튼 디오게네스의 나무통 앞에 선 알렉산더는 거지 철학자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짐짓 거만을 떨며
묻습니다. 뭐 도와줄 게 없느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디오게네스가 마침내 입을 엽니다.
당신이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까 좀 비켜달라고.
알렉산더를 수행하고 온 사람들은 이 거지 철학자의 무례함과 퉁명스러움에 차라리 비웃음밖에 안
나왔지만, 알렉산더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그랬답니다.
내가 만일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철저한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며 살았던 디오게네스는 그야말로 철저한 주변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거지 철학자의 눈에 귀족 출신의 플라톤이 곱게 보였을 리 없지요.
상대적으로 호사스런 플라톤의 살림살이가 눈엣가시였던 디오게네스는 비오는 날 일부러 진흙탕에
몸을 굴렸다가 플라톤네 집을 찾아가서는 고급 카펫 위에서 한 번 더 몸을 굴렸다고 합니다.
놀란 플라톤이 이게 무슨 짓인가 물은 것은 당연지사.
디오게네스 왈, 당신의 오만방자함을 이렇게 짓밟아주고 싶었소, 라고 했다니
과연 냉소주의자답습니다.
허나, 플라톤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
오만방자함을 짓밟기 위해 똑같이 오만방자하게 굴어서야 되겠소, 하고 점잖게 꾸짖었다나요?
디오게네스가 충돌한 사람은 또 있습니다.
플라톤과 같이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플라톤과 달리 이른바 쾌락주의를 지지해
키레네학파를 연 아리스티포스가 그 사람입니다.
하루는 디오게네스가 시냇가에서 늘상 먹는 푸성귀를 씻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길에 그 모양을 보던 아리스티포스가 중얼거립니다.
고개 숙이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푸성귀만 먹는 신세는 면할 수 있을 것을.
귀 밝은 디오게네스가 못 들었을 리 없지요. 가난하게 먹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고개 숙이며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불꽃 튀는 맞수 대결. 서로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 같습니다.
1라운드는 아무래도 디오게네스의 승리로 보이지요?
그럼, 2라운드는 어떤가요?
어느 날 아리스티포스는 공중목욕탕에서 또다시 디오게네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기의 고급 옷을 버려둔 채 디오게네스의 누더기 옷을 걸치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뒤늦게 목욕을 끝내고 나온 디오게네스, 마땅히 자기 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웬 고급 옷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저 같으면 황당하기보다는, 횡재다, 하면서 잽싸게 명품 옷을 챙겼겠지만) 한동안 고민에 빠져 있던
그는 결국 벌거벗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십대의 저라면, 아마도 디오게네스에 열광했을 겁니다.
그 치열함과 선명함에 박수를 보내며, 그래, 사람은 모름지기 저렇게 살아야해, 목청을 높였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고급 옷을 입느니 차라리 알몸으로 가겠다고 길을 나서는 디오게네스의 뒷모습에서 호방함보다는
처연함이, 자유보다는 구속이 느껴집니다.
누더기가 아니면 아예 아무 옷도 입을 수 없는 사람과 고급 옷도 입지만 누더기 옷도 아무렇지 않게
걸칠 수 있는 사람 중에 과연 누가 더 나은가 묻는다면, 후자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 심정입니다.
단호하다는 것, 빈틈없이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왜 더 불안해 보일까요?
아리스티포스는 심지어 플라톤과 함께 시라쿠스 왕을 방문했을 때도, 여장(女裝)을 해보자는 왕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한 플라톤과는 정반대 반응입니다.
아리스티포스는 플라톤에게 이렇게 훈수했다고 합니다.
못 입을 거 없잖아?
정신만 올바르다면 술독에 빠진들 타락하지 않는 법이니까.
남의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뭔가 자기 이야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말 꺼내기가 어려울 때 나오는 버릇입니다.
사실은 제가 얼마 전에 글자 그대로 ‘홀연히’ 서울로 거처를 옮긴 데 대해 변명 비슷한 말을 늘어놓을
참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사는 동안 저를 많이 아껴주시던 어느 분이 염려 반 협박 반 섞어,
구박사 서울 가면 중앙지향적인 인물로 찍힌데이, 하시던 말씀이 영 마음에 걸려서 말이죠.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대구로 내려갈 때도, 못 갈 거 없잖아,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소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지(他地)에서 어떻게 살아,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저를 붙잡지는 못했습니다.
어차피 태어나서부터 타지만 전전했으니까요.
모든 지역이 타지인 사람에게는 동시에 그 모든 지역이 고향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대구와 경산에서 삼년 하고도 반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책이며 살림이며 늘어난 짐만큼 인연도 정도
담뿍 쌓여서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창 밖 풍경이 낯설고, 잿빛 빌딩들에 가려진 좁은 시야가 답답해서 자꾸만 경산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곳에 나를 보듬어주었던 사람들이 있고 자연이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푸근해 집니다.
새로 시작된 서울살이,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왜 대구로 가느냐고 물었을 때,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저 사람이, 사랑이, 아니 하나님이 불러서 가노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적당한 것 같습니다.
아리스티포스처럼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 디오게네스여, 부디 심판이나 정죄보다는 자비와 우정의 눈으로 지켜봐 주시길.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眼視)도 중요한 보시라지 않습니까?
바울의 고백에서 아리스티포스의 음성이 겹쳐 들리는 이유,
그대가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12-13)
디오게네스에 반한 열살 꼬마의 이야기
내 인생의 멘토, 철학과 글쓰기
정진영 기자
요즘은 논술 과외가 흔한 편이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82년에는 논술이라는 단어는커녕
초등학생 과외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7살에 학교에 간 첫아이가 영 미덥지 못했는지
여름방학이 되자 엄마는 국문과 학생에게 글쓰기 과외를 시켰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에 60여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만들었고, 겨울에도 덜컥 60권짜리
전집을 들여놓으셨다. 그렇게 몇 번의 방학이 지나면서, 교내외 글쓰기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나는 글쓰기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3학년이 되어 있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한 '국문해독 엄마'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은
출판사 외판원이 권하는 전집류를 통째로 사주는 것 정도였으리라.
책을 사들이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고 빨간 원고지에 또박또박 독후감을 쓰는 어린 딸이 내심
자랑스러웠던지 교내외에서 받아온 상장들을 액자에 꼬박꼬박 꽂아 주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엄마의 희망으로서의 나'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똑똑한 교수님이나 일필휘지로 세상을 그려내는 멋진 기자가 되길 바라셨는데, 3학년 꼬마의 꿈은
철학과를 졸업하고 농부가 되겠다는 것. 도덕 시간에 발표한 '나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철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발견한 것은 학교에서 숙제로 내 준 '알렉산더 대왕' 독후감을 쓸 때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통 속에 사는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나는 장면!
알렉산더가 스승이 되어줄 것을 청하며,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제시하지만 디오게네스는 그저
햇빛을 가리니 춥다고 말하며 비켜설 것을 요구한다.
디오게네스의 짧은 한 마디는 어린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대제국을 건설한 말 위의
알렉산더보다는 통 속에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것 같은 디오게네스의 삶이 더 멋있어 보였다.
게다가 옆집에 살던 성균관대 철학과에 다니는 오빠의 방은 3면이 다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방은 책을 좋아하는 꼬마에게 최고로 멋진 공간으로 비쳐졌던 것 같다.
알에서 깨어난 거위가 가장 먼저 만난 존재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그때까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지적인 철학과 학생과 통 속의 철학자에게 빠져 철학이 무슨 공부인지도 모르면서 철학과에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후로 10년. '나의 꿈'은 변하지 않았다. 2년제 대학의 중국어과를 졸업한 후에 다시 수능을 치렀고
결국 철학과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 입에 철학과를 달고 다녀서인지 처음 1, 2년은 마냥 즐거웠다.
수업 내용이 어려워도 지치지 않았고, 해마다 무섭게 인상되는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감당하는 것도
2, 3개씩 하는 아르바이트와 약간의 장학금으로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부족한 공부 앞에서 멈칫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년실업이라는 단어만으로 나는 무서웠다.
공부를 잘 하지도 못하는 늦깎이 철학과 여학생에게 대학원 진학은 어쩌면 점점 헤어나기 어려운
늪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두려웠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나갔다가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학교로
돌아와 박사과정을 밟는 몇몇 선배들을 보면서 더 더욱 불안했다.
갈등 끝에 진학한 대학원에서의 나는 '덤 앤 더머'의 더머 같은 존재였다. 설상가상으로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엄마가 투석을 하기 시작해 고혈압과 통풍으로 약을 달고 사신 아버지와 나는
경제적 압박에 짓눌렸다.
2, 3개의 과외는 물론, 홈쇼핑 텔레마케터로 야간에 일하며 다녔던 첫 학기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원서로 읽어 내려가는 수업을 쫓아가기도 벅찼고, 토론에는 한 마디도 끼어들 틈이 없어 벙어리 아닌
벙어리로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듣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심정으로 4학기를 마쳤고, 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준비한 끝에 종합시험을 통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논문. 하지만 그렇게 학점 채우기에 급급했던 나에게는 연구할 대상도, 궁금한
철학자도, 정리해 보고 싶은 이론도 없었다.
그저 한가롭게 앉아 노장철학을 읽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을 뿐이었다.
처음 철학이란 단어에 매료됐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들만 골라 읽으며
사설 기관에서 기자교육을 받았고,
그곳에서 소개해 준 작은 잡지사의 병아리 기자로 1년 반 정도 일했다.
많고 많은 직업들 가운데 하필 기자교육을 받게 된 것은 평소 아껴, 아껴 읽던 몇몇 기자들의 글 솜씨
때문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세상과 사람 이야기에 혼을 불어넣고 싶다는 욕심이 컸고, 그들이 빚어낸
결정체들에 반해 나도 그들처럼 '나와 같은 애독자를 가진 기자'가 되고 싶어졌다.
주로 법조계 인사를 인터뷰하는 잡지사에서의 일은 딱히 어려울 것이 없었다.
초년병에게 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믿고 따를만한 좋은 선배를 만나지 못한 것,
특종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 그저 그런 수준의 잡지를 만들어내는 것 등 자극이 없는 생활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어렵고 난해해서 가끔 비참해지기까지 했던, 두고 온 공부가 그리워졌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 안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즐겁고 편안해 마치
나의 천직인 것 같았다.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수다스러운 즐거움은 놓치고 싶지 않지만,
아직 마음 한 켠에서는 덜 읽은 책들이 수런수런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서른의 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 위에서 갈팡질팡, 마음의 병이 될 만큼
크게 고민했다. 회사를 그만두어 놓고도, 막상 복학을 하지 못한 채 한 학기를 보내면서 우울증에 걸려
가족과 이웃을 괴롭혔고 교통사고까지 겹쳐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상태가 악화됐다.
내가 만일 디오게네스가 아닌 알렉산더의 진취적인 기상에 매료됐다면, 옆집에 철학과 학생이 이사
오지 않았더라면, '무소유' 책날개에 법정스님이 철학과 출신이라는 친절한(?)
안내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생물학과와 신학대학을 두고 철학과에
다시 가시지 않았더라면, 민형원 선생님, 김혜숙 선생님, 차지영 선생님의 단단하고도 따스한 미소에서
평화를 느끼지 못했더라면 삼십대의 초입에서 이렇게 혹독하게 앓느라 2005년의 봄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디오게네스와 노자, 장자에 반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경쟁과 다툼에서 승리하는 욕심과 물질에
현혹되어 과욕을 부리며 사는 헛배 부른 사람이 되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오마이뉴스>의 '멘토' 기사를 쓰기로 작정하자, 참으로 많은 선생님들과 선배들과 책들이 떠올랐다.
서른의 나를 만들어준 그 많은 순간들, 기억들, 흥분들 가운데 나를 신나게 하고, 고민하게 했던 두
개의 단어를 추리고 또 추려보니 '철학'과 '글쓰기'가 남는다. 천천히, 느리게, 낮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 길 위에서 밝고, 맑고, 명랑한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만나는 것!
<오마이뉴스>에 올릴 나의 첫 기사를 멘토 기사로 쓰면서, 차츰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진다.
봄내 움츠렸던 심장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멘토 기사 이벤트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길고 지루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길 빈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