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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정치부 이재기 기자] ‘ever glades’는 단어 뜻 그대로 영원한 습지다. ‘늪’이라 하면 고여있는 물을 연상하기 쉽지만 에버글레이즈는 아주 느리지만 한쪽 방향으로 ‘흐르는 늪’이다. 플로리다 반도 중앙에 있는 거대한 민물호수 오키초비에서 흘러 나온 물이 넓은 늪지대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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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글레이즈는 올랜도 남쪽 키시미에서 플로리다만까지 남북 160㎞, 동서로 97㎞에 걸친 엄청난 규모다. 늪지대는 전체적으로 북에서 남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지형이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이다. 표고가 가장 높은 곳이 해발 8피트, 3미터가 되지 않는다. 늪지대의 물은 북쪽으로부터 에버글레이즈의 갈대와 억새밭을 가로질러 멕시코만의 강어귀 맹그로브 숲 쪽으로 하루 100여 피트 속도로 흘러 간다. 물길이 수 십㎞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면 수심은 늪지대의 중심부가 30센티~1미터, 주변부는 15센티 정도 된다.
플로리다에서는 에버글레이즈를 ‘River of grass’ 즉, 초원 위를 흐르는 강이라고 부르고 있다. 본래 이 말은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활동했던 미국의 언론인이자 환경보호주의자인 더글라스 여사가 대표작 'The Everglades: River of Grass (1947)' 거대한 늪지대를 단순히 쓸모없는 늪에서 보물이 가득한 강으로 개념 정리하면서 사용했던 데서 유래된 것이다.
19세기 플로리다 남부 원주민 세미뇰 부족과(Seminoles) 미군 사이에 벌어진 세미뇰 전쟁으로 인디언 부족들은 에버글레이즈 깊숙한 곳으로 밀려 들어갔고,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서구식 개발논리가 원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남부 플로리다 지방에 미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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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대 개발의 핵심은 늪지의 수원이 되고 있는 오키초비 호수의 물을 바다로 빼는 작업이었다. 이 논의는 1848년에 시작됐다. 세미뇰 인디언어로 ‘큰 물’을 의미하는 오키초비는 넓이 1100㎢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2배나 되는 거대한 민물 호수이다. 오키초비의 물이 남쪽으로 흘러 내려 늪지대가 유지되니까 아예 물을 차단해 늪지대를 개발하겠다는 시도였다. 이에따라 1950년까지 레이크 오키초비에서 대서양 연안의 마이애미 메트로폴리탄 지역과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운하 5군데를 파고 총연장 2000여㎞의 제방을 쌓기에 이른다.
플로리다 동부해안의 도시화가 가속화돼 물 소비량이 늘어나고 늪지를 개간한 사탕수수 밭으로 많은 양의 물이 빠져 나가는 바람에 에버글레이즈 늪은 서서히 죽어갔다고 한다.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나눠져 있는 플로리다의 늪지대 생물들은 오랜 세월 동안 기후 조건에 적응해왔지만 갑자기 물 공급의 패턴과 주기가 달라지자 생태계가 교란되기 시작했다. 가령 아메리칸 악어는(엘리게이트) 물이 풍부한 우기에 둥지를 짓고 번식하는 데 물이 줄어 번식기를 놓치거나 부영양화로 늪지식물이 웃자라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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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초비 호수에서 남쪽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지 못하게 수천 ㎞의 제방을 쌓고 운하를 파서 물을 빼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난개발은 생태계 뿐아니라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간에게도 재앙이 됐다. 카리브해나 멕시코만에서 발달한 허리케인이 엄청난 양의 비를 뿌리고 지나갈 때 불어난 호수물이 제방이나 운하를 타고 도시지역으로 흘러들어 홍수피해도 빈발했다.
이 무렵에 출판돼 미국인들에게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개발이란 화두를 던져준 책이 바로 더글라스의 저서였다. 그녀의 저서는 플로리다 남부지방의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돼 가던 에버글레이즈 살리기의 단초가 됐다.
1947년 미국 정부는 플로리다 반도 최남단과 근해를 포괄하는 지역을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습지 보호에 나섰다. 미국 역사상 생태계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국립공원을 지정한 것은 에버글레이즈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전체 에버글레이즈의 1/5에 불과했으니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지만 이후 난개발로 인한 피해는 점차 줄어든 것으로 보고됐다.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 이슈로 떠오른 1970년대 유네스코와 습지에 대한 람사협약(the Ramsar Convention)은 에버글레이즈를 전 지구적 중요성을 가진 3개 습지(wetland of international importance) 가운데 하나로 지정했고 ‘국제 생물권 보호’, ‘세계 유산 지역(site)’으로도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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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생태계의 복구작업은 1980년 오키초비와 그 북쪽의 키시미 호수 사이를 잇는 키시미강의 유역을 곧게 펴기 위해 건설된 운하를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미국의회는 국립공원 북쪽의 샤크리버(shark river) 늪지대 보호를 위해 1989년 공원의 동쪽 지역을 확장했고, 2000년에는 에버글레이즈를 복구하기 위한 종합적인 계획이 승인됐다. 30년에 걸쳐 보다 자연적인 패턴으로 물의 양과 분배 타이밍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세워 생태계를 살리겠다는 것이 계획의 뼈대이다.
국립공원 구역의 에버글레이즈 늪지대는 식생이 매우 다양하다. 플로리다만과 접한 바닷가에는 큰 나무와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바닷가 초원’(prairie)이 있고 육지로 조금 들어가면 뿌리가 지상으로 뻗어 오른 ‘맹그로브 숲’이 형성돼 있으며 맹그로브 숲 뒤로 국립공원 구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물습지’(freshwater slough)가 자리잡고 있다.
민물습지 중간 중간에는 ‘삼나무 숲’(cypress)과 ‘hardwood hammock’, ‘소나무 지대’가 크고 작은 점처럼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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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을 관통하는 공원 내 도로는 이 모든 식생지대를 살펴볼 수 있는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다. 국립공원의 가장 남쪽 플라밍고에서 시작해 공원 관통도로와 연결된 트레일(trail) 여러 곳을 걸으며 늪지대 속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늪지대 탐사를 시작했다. 플라밍고에서 ‘나인 마일 폰드’까지 약 15킬로미터 거리에는 소금기에 강해 바닷물에서도 잘 견디고 주로 바다 부근 강어귀에서 자생하는 맹그로브 숲 지대가 자리잡고 있다.
큰 나무가 많지 않아 시야가 넓은 민물습지의 들머리에 위치한 마호가니 해먹(mahogany hammock)에서는 1킬로미터쯤 되는 트레일 데크를 한 바퀴 돌아봤다. 마호가니가 울창하게 우거진 곳은 늪지대 보다는 조금 높은 섬으로 주위는 해자 같은 수로로 둘러쳐져 있다. 탁트인 시야로는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중간에 마호가니 숲이 우뚝 솟아 경치가 독특하다는 느낌이 든다.
역시 데크 위를 걸으며 주위 경치를 보게 돼 있는 파 헤이 오키(pa-hay-okee)트레일에는 중간지점에 높이 솟은 전망대가 있어 야생 그대로의 에버글레이즈를 멀리까지 감상할 수 있다. 캘루사(calusa), 미코수키(miccosukee)인디언과 초기 백인 정착자들이 집을 짓고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파 헤이 오키란 말은 인디언어로 '풀이 있는 물'을 뜻한다. 이 곳의 또 다른 구경거리는 겨울철 잎이 져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Bald Cypress, 이 나무는 늪지대나 강 속에서 자라는 데 겨울이 되면 잎이 브라운색으로 변하지만 이 곳의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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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헤이 오키 트레일 다음에는 파인랜드로 이름 지어진 소나무 자생지대가 나온다. 에버글레이즈에 사는 소나무는 특히 화재에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로 번개에 의한 자연 화재는 소나무를 비롯한 에버글레이즈 식물들의 생존에 치명적이지만 웃자란 갈대 숲을 태워주기 때문에 강물이 흐르는 통로를 개선해주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에버글레이즈에서는 번개에 의해 화재가 주기적으로 발생하지만 slash pines과 saw palmetto, cabbage palms 등 화재 저항력이 강한 종들은 화재로 주위의 경쟁 식물이 사라지면 오히려 더 잘 번성하게 된다. 화재로 인해 거대한 군락을 이루면서 살아 남은 소나무 숲이 바로 파인랜드(pineland)이다.
공원 비지터센터를 지나 3,4킬로미터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안힌가(Anhinga)와 검보림보(gumbo limbo) 트레일이 있다. 검보림보는 열대나무 숲을 따라 도는 1/2마일 길이의 밀림 트레일이고 안힌가는 웅덩이와 키 큰 갈대밭으로 이뤄진 늪지대로 악어나 물고기, 브라운 펠리칸 등 다양한 동식물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 가운데 하나다.
안힌가 트레일을 돌다 보면 곳곳에서 먹이감을 사냥하기 위해 물 속으로 잠수했던 브라운 펠리칸이 날개를 펴서 말리는 보기 드문 광경을 볼 수 있고 웅덩이에서는 야생 악어들이 자주 목격된다. 악어들은 간혹 트레일 가장자리 까지 나와서 햇볕을 쬐는데 워낙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기 때문인 지 사람들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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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놓여 있는 41번 고속도로 변에는 자동차를 세워 놓고 늪지대의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같은 에버글레이즈 지역이지만 국립공원 바깥이라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에버글레이즈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저수지들을 지나가면 국립 빅 사이프러스 보호구역이(Big cypress national preserve)나온다. 41번 도로에서 내려와 보호구역 안으로 방향을 잡으면 ‘Loop road’란 길이 나온다. 삼나무 숲 속을 달리면서 역시 주위의 늪지대를 관광할 수 있고 낚시도 마음껏 할 수 있다. 간혹 악어들이 도로위로 까지 올라와 일광욕을 즐기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한다.
이 길은 에버글레이즈에서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시닉 드라이브'인데 길 양쪽 옆을 병풍 처럼 가린 삼나무 숲과 그 사이로 쭉 곧은 길, 파란 하늘이 아름답다. 다만 첫 13㎞를 지나면 나머지 25㎞가 비포장이고 길 곳곳이 빗물에 패여 길을 통과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승용차로 비 포장길을 통과하는 데 약 2시간이 걸렸다.
도롯가 늪지대에는 물반 고기반이라고 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고 물도 워낙 맑아 낚시하기에 좋고 수면위로 눈만 드러낸 야생 악어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에버글레이즈는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늪이란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늪의 개념을 완전히 깨는 곳 가운데 하나다. 또, 곳곳에 에어보트 선착장과 악어농장이 흩어져 있어 즐길거리도 적지 않다. 에버글레이즈는 한 번은 가볼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