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8일, 전국의 丹楓山(단풍산)으로 향하는 모든 길은 만원이다.
세상살이가 힘들어 많은 이 들이 산으로 향하고 있다.
절정의 단풍에 시름을 잊고 산의 정기(精氣)를 받고자 함일게다.
아주 오래걸려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선선한 바람이 맞아준다.
모 등산학교 주임강사로 일하는 K강사를 반갑게 만나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날 듯이 하루재에 올라선다.
날이 쾌청하여 인수의 허연 자태가 안길 듯이 달려든다.
8구역 동문캠프의 불빛이 환하다.
도희누이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경찰구조대 앞까지 메아리쳐 온다.
낮게 드리운 플라이 아래로 성찬(盛饌)이 펼쳐 있다.
늦게 도착한 나를 위해,
"밥은?"
"먹어야 돼!"
밥이 식었다고 삼겹살과 김치와 아주아주 특별한 소스를 넣어
고기두루치기를 뚝딱뚝딱 만들어 내어준다.
산에 오면 그저 라면 하나에 김치 한조각이면 족할 터인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동문캠프의
식단은 정성(精誠)이 녹아 있는 화려함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오늘의 요리는 한국최고의 한태석 주방장이 조리를 하고
동문의 따뜻한 정성이 녹아 있으니 그 맛을 새삼 언급할 필요 있을까?
최 종원님의 시래기 된장국은 일찍 동이 났다하니 그 맛을 볼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었지만
한 태석님이 밤새도록 꼬꼬닭 20마리를 푹 고아서 만들었다는
특제소스에 돼지고기두루치기와 지중해식 전채 셀러드 한 양푼
가득 펼쳐진다.
그 지중해식 특별 샐러드(올리브유와 치즈와 와인향이 감미롭고
아주아주 싱싱한 야채로 버무린 속칭 동문 겉절이 채)를 한 입
가득 물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특별 소스 두루치기가 끓는 동안 안심베이컨말이인 지
말이베이컨안심인 지를 알맞게 데워서 이쑤시게에 쿡 찍어 내어온다.
목이 마를라치면 박 해균님의 캔맥주가 코앞에 들이민다.
나와 전 석득님이 감동하여 정신없이 퍼 넣는데
최 용환님의 백화수복 따뜻한 온기가 반주(飯酒)로 나온다.
용환님의 특별조리소스로 맛을 낸 어묵탕은 수복향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성찬(盛饌)의 사이사이 최 종원님의 시인같은 멘트와
박 해균님의 들국화같은 추임새,
향긋한 이 규성님과 장 미자님의 내음새,
돌하루방같이 툭툭 던지는 최 성필님의 미소,
번득이는 재치의 문 채식님,
마님, 장작 다 팼는데요, 들어가도 되남유?---> 한 수봉님,
동문캠프와 교육캠프를 부지런히 오가시며 챙겨주시는
한 영길님, 전 석득님, 나 한석님도 분위기에 취해 녹아간다.
슬그머니 TV카메라가 우리 동문캠프에 나타났다.
내년 1월 개국예정인 M-TV(마운틴 테레비 방송국)의 PD 한 분과
카메라기자 한 분이 우리의 교육캠프와 동문 캠프를 취재 중이다.
동문회 총무 문 채식님의 재치있고 간명한 소개멘트도 떠 놓았다.
올바른 캠프문화와 등반문화를 취재하기위해 우리 등산학교를
택한 것은 바른 선택이리라.
내일은 11기 교육생의 5주차 노적봉 종합등반 교육이다.
12시경 일찍 자리를 편 동문을 뒤로 하고 주류파(酒流派)는
용환님의 백화수복 주위로 둘러 앉는다.
향기에 한창 취해 있는데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이부자리에서
흘러 나온다.
고향집에 내려와 하얀 솜이불 깔아놓고 형제자매끼리 도란도란
나누는 그런 분위기이다.
그 정다운 분위기에 심통이 나서 한마디,
'어허, 시끄러워서 술 맛 안나네!'
곱게 흘기는 도희 누이의 눈가에 미소가 흐른다.
나도 졸립다. 1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꿈속으로 빠진다.
6시에 모두 기상하여 취사 및 캠프지 정리를 하고 교육캠프로 이동한다.
오늘의 캠프 지킴이는 박 해균님과 최 용환님이다.
해균님은 17/18일 회사내 동료들을 이끌고 지방 산행 후
바로 동문캠프로 들어왔다.
19일은 가족을 위한 하루로 준비하였는데 그만 캠프 지킴이로
눌러 앉았다.19일 저녁 귀가 후 벌어질 일이 궁금하다.
동문들이 기다리건 말건 교육생은 아주 여유로운 아침취사를 마치고
8시 10분경 노적봉으로 출발한다.
5개 조로 나누어 각 조별로 2명의 강사님과 동문 2명씩 합세하여
노적봉 종합실전등반을 하기로 한다.
나는 한 태석님과 4조로 따라 붙었다.
4조는 자칭 불사조라 하는데 불상조인 지 불쌍조인 지...
유 과정장님의 출발 말씀이 인상적이다.
"출발입니다!"
인수 1/2/3구역 캠프지에서 백운산장->위문->노적봉으로 향하는
우리 대열이 장관이다.
트랑고사와 강사님들의 오랜 연구노력으로 탄생한 등산학교 배낭을
멘 대열이 산뜻하다.
모든 등산객의 시선을 받으며 보무도 당당히 위문을 통과한다.
노적봉으로 향하는 중간지점의 툭 터진 전망바위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한다.
앞으로는 의상봉에서 문수봉까지, 그 너머로 비봉, 족두리봉
오른쪽으로 원효봉, 염초봉,백운대까지 하얀바위와
노란,빨간 잎새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올해 잦은 비로 예년보다는 곱지 않으나 푸근함으로 아름답다.
노적봉 초입에서 조 별로 등반 루트를 정하여
4조는 설정(雪頂)길을 택했다.
테라스에서 올려다 본 설정길은 코발트빛 창공으로 계속 오른쪽으로
찢어진 크랙루트인데 고도감이 상당하다.
첫 피치는 주 영일강사님을 선등으로 기 정애님, 한 미나님,
김 근웅님, 사홉들이,
정 민영강사님을 선등으로 박 영오님, 한 태석님이 등반한다.
왼쪽으로 죽 찢어진 크랙루트(예를 들어 취나드B, 인수A 두 번째피치)에는 적응이 되었으나
오른쪽으로 찢어진 이 설정길은 첫피치부터 균형잡기가 애매하다.
아래쪽에서 올려치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여 자켓을 입고 등반하자니
여간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젯밤 곡차가 좀 과했나?
내 앞에서 척척 날렵하게 오른 교육생 한 미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오르자니 더 힘이든다.
첫 피치 확보점은 한 사람만이 겨우 발 딛고 설 수 있고 이미 확보점에 도착한 김 근웅님,한 미나님은 확보줄에 의지하여 버티고 있어야 하는
곳이다. 허리 꽤나 아팠을게다.
이미 2피치 확보점에 도착한 주 영일강사님, 김 정애님, 한 미나님의
계속등반을 돕고자 정 민영강사님의 지시로 김 근웅님을 앞서
내가 등반하였다.
2피치 확보점에서의 로프처리라든가, 후등자 확보 등등을 고려한
정 강사님의 판단에서이다.
2피치는 1피치보다 고도감이 더하고 발디딤이 애매하여 발동작과
손동작이 잘 균형을 잡아야 할 루트이다.
내 앞에 등반한 한 미나님은 꽤 숙달된 자세로 등반을 한다.
발란스가 애매한 볼트지점에서는 퀵도르를 이용하여 균형잡고 오르는
모습이 교육생답지 않다.
성격 또한 쾌활하여 함께 등반하는 이들을 즐겁게 하여준다.
기차 화통 꽤나 삶아 먹었는 지 목소리도 우렁차다.
나에 이어서 백두대간 산행으로 다져진 내공으로 김 근웅님은
척척 등반한다.
다음은 박 영오님 차례.
등반 중 로프의 위력, 발디딤의 중요성,고도감, 손쓰기,재밍등등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여
그야말로 종합등반을 하였다.
덕분에 사홉들이는 허리 끊어지는 수고를 맛보았다.
한 태석님은 그 맛난 지중해식 샐러드를 요리하듯이 상큼하게
가볍게 등반한다.
너무 날래게 오르다 비싼 모자를 노적봉 아래 계곡으로 날려 보냈다.
2피치 확보점에 도착하니 전면에서 오르는 여러 조가 모여든다.
3피치는 수월한 슬랩이다. 바위면이 살아있어 쩍쩍붙는 발 느낌이 좋다.
3개조가 동시에 오를 수있게 넓고 수월한 보상피치이다.
정상에 오르니 잔치가 벌어진다.
예의 젓가락 하나들고 돌아다닐 양이었는데 우리 4조의 간식거리가
워낙 풍부해서 이내 배가 찼다.
계란 한판을 쪄온 박 영오님도 등정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장 도희님은 무거웠을 보온병을 꺼내 상큼한 구기자 꿀차를 권한다.
각조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먹거리를 짊어지고 올라 펼쳐 놓은 모습이
대단하다.
다른 등산학교도 이런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교육생들은
먹거리에 아주 풍부하고 화려하다. 신기한 전통이다.
하늘은 여전히 시리게 파랗고 우리 동문들의 가슴도 파랗게
물들어 간다.
유 과정장님의 다리선이 예쁜 줄 오늘 처음 알았다.
M-TV의 PD와 기자분은 이 정다운 분위기를 취재하느라 눈빛이 반짝인다.
만찬과 기념촬영을 끝으로 캠프로 이동한다.
오후3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백운대로 향하는 등산로는 만원이다.
백운대에도 만경대에도 점점이 등산객으로 빼곡하다.
예전보다 가족산행이 눈에 많이 띈다.
예닐곱살 되는 딸아이와 사내아이, 부모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르는 모습이 보기좋다.
우두커니 지킴이 박 해균님과 최 용환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노적봉 정상에서 그렇게 먹고도 일부는 한 켠에서 지지고 볶는다.
사홉들이는 오늘의 산행이 힘들었다. 이 참에 도르레를 하나 장만하여야겠다.
후등자 끌어 올리는 것이 아주 힘들었다.
누군가 시에라 컵에 조금 담긴 곡차를 전해 준다. 다 마시기 뭣해서
나도 한 태석님에게 나누어 주었다.
무엇이든 나누어 주려는 우리 동문님들의 따뜻한 마음.
M-TV PD님, 이런 것을 카메라에 담으세요. 껍데기만 찍지 말고.
뒷정리를 하는 교육생에 앞서 동문들은 먼저 하산하였다.
콩비지와 곡차가 무르익는 가을 저녁에 등산학교 동문들의 우정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수료등반일 캠프에는 무슨 메뉴가 올라올까?
기대가 된다.
동문 여러분 10월 25/26일 캠프에 많이들 오십시오.
맥주 500cc씩 준비하시고.
첫댓글 1. 아침7시에 등반출반한다기에 6시부터 동문들 일어나 밥먹고 캠프챙겨 교육갬프로 가니 인제 아침준비하는 교육생들..조남모강사겸동문님 그냥 8시하면 늦을줄 알고 그랬다나....느즈막한 시간까지 침낭에서 즐길려던 바둑이들 다 깨워버리고...
2. 이정환교무강사님 노적봉등반의 교육 등반의미 전달 하고 안전하게 등반하라는 훈시말씀후 학과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라고 말하자 학과장님 말씀 " 자 출발" ㅋㅋㅋ
그나저나 사홉들이님의 산행기는 언제나 읽어봐도 음악 한자락 듣는 느낌입니다. 읽기만 해도 절로 어깨가 들썩들썩.....이번 주말은 집안일이 있어서 캠프는 못갈 것 같고...참 그날 집에가서 최후통첩 받았습니다. ㅠㅠ
흐흐흐, 내 그럴 줄 알았수! 집안일 天下之大本! 이번 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