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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운 제2장1. 여흥 민씨가 어느날 하늘로부터 불빛이 자기에게 비치더니 그 후 잉태하여 한 아기를 낳으니라. 이 아기가 장차 상제의 공사를 뒤 이을 도주이시니 때는 을미년 12월 초나흘이고 성은 조씨이요, 존휘는 철제이요, 자함은 정보이시고 존호는 증산이시며 탄강한 곳은 경남 함안군 칠서면 회문리이다. 이곳은 대구에서 영산 창령 남지에 이르러 천계산 안국산 여항산 삼족산 부봉산으로 연맥되고 도덕골을 옆에 끼고 있는 문동산. 저고산의 아래로 구미산을 안대하고 있는 마을이로다. 2. 도주의 부친은 성함이 조 용모이고 자함은 순필이고 호는 복우이며 조부는 홍문관정자로 잇다가 을사년의 국운이 기울려감에 통탄한 나머지 피를 토하고 분사하였다. 3. 아기가 자라니 그 음성이 웅장하고 안광이 부시어 범의 눈초리와 같고 목은 학의 목과 같고 등은 거북이 등과 같고 이마가 해나 달과 같이 빛이 나서 관상을 남달리 하셨다. 4. 도주께서 기유년 4월 28일에 부친과 함께 고국을 떠나 이국 땅인 만주에 가셨다. 5. 도주께서는 경술년에 어린 몸으로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에서 일본 군병과 말다툼을 하셨으며 이듬해 청조 말기에 조직된 봉황당원이란 혐의를 받고 북경에 압송되었다가 무혐의로 풀려난 엄친의 파란 곡절의 생애에 가슴을 태우고 고국만이 아니라 동양 천지가 소용돌이치는 속에서 구세 제민의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입산 공부에 진력하셨다. 6. 도주께서 9월의 공부 끝인 정사년에 상제의 삼계 대순의 진리를 감오하시다. 7. 도주께서 어느날 공부실에서 공부에 진력을 다하시던 중 한 신인이 나타나 글이 쓰인 종이를 보이며 『이것을 외우면 구세 제민 하리라』고 말씀하시기에 도주께서 예를 갖추려 하시니 그 신인이 보이지 않았으되 그 글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이었다. 8. 그후에 도주께서 공부실을 정결히 하고 정화수 한 그릇을 받들고 밤낮으로 그 주문을 송독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왜 조성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는 명을 받으시니 이때 도주께서 이국땅 만주 봉천에 계셨다. 9. 그리하여 도주께서 정사년 4월에 친계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를 떠나 뱃길로 태인으로 향하셨던 바 도중에 폭풍을 만나 배는 서산 태안에 닿으니라. 이곳을 두루 다니면서 살폈으되 상제께서 가르치신 곳이 아닌 듯하여 안면도에 옮기셨다. 도주님을 반가이 맞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이곳 창기리의 이 정률 이었다. 도주께서 이 섬의 정당리 느락골에 우일재를 마련하고 이곳에서 공부를 하셨다. 섬사람 삼십여명이 도주를 좇으니 그 중에서 이 정률이 지극히 따랐다. 10. 도주께서 무오년 가을에 재실에서 공부하실 때 상제께 치성을 올리신 다음에 이 정률외 두 사람을 앞세우고 원평을 거쳐 구릿골 약방에 이르셨다. 이 길은 상제께서 9년 동안 이룩하신 공사를 밟으신 것이고 『김제 원평에 가라』는 명에 좇는 것이라 하시다. 11. 이 해 10월에 도주께서 권 태로외 몇 사람을 이끄시고 모악산의 대원사에 이르시니라. 이때에 도주께서 『개벽후 후천 5만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그 아니 좋을 시고』 라 하시고 이 정률에게 원평 황새마을에 집을 구하여 가족들을 그곳에 이사 거주하게 하고 자신은 대원사에 몇 달 동안 머무셨다. 12. 이 정률이 집을 구하려고 황새마을에 이르러 마을 사람 권씨를 만나니 그가 『간 밤에 꿈을 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자기집에 이사 거주하기를 간청하면서 정률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안면도에 건너가 가족들을 모셔오니 권씨는 모든 것에 불편 없게 지성껏 보살폈다. 13. 도주께서 다음에 정월 보름에 이 치복을 앞세우고 정읍 마동 김 기부의 집에 이르러 대사모님과 상제님 누이동생 선돌부인과 따님 순임을 만나셨다. 선돌부인은 특히 반겨 맞아들이면서 『상제께서 재세시에 늘 을미생이 정월 보름에 찾을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음을 아뢰이니라. 부인은 봉서(封書)를 도주께 내어드리면서 『이제 내가 맡은 바를 다 하였다.』하며 안심하는도다. 도주께서 그것을 받으시고 이곳에 보름동안 머무시다가 황새마을에 오셨다. 14. 선돌부인은 하루는 『구릿골 약방에 비치하셨던 둔궤가 천지도수의 조화 둔궤라 하루 바삐 그것을 찾도록 함이 어떠하겠나이까』라고 도주께 아뢰니라. 이때에 도주께서는 도수에 따라 이 준세의 재실에서 도수를 보고 계셨다. 이곳은 황새마을에 가까운 통사동이니라. 15. 도주께서 7월 보름에 이 우형을 앞세우고 금산사에 다녀오시니라. 권 태로. 이 상우. 박 붕래와 여러 무리들의 앞에서 『오늘 백종일이니 인간 백종의 허물을 청산하는 날이니라. 인숙무죄(人孰無罪)요. 개과(改過)하면 족하리라』고 분부하시니 그들이 모두 자기의 허물을 개과하기에 힘쓰니라. ◐ 어찌 사람이 죄가 없으리요. 허물을 고치면 족하니라. 16. 도주께서 기미년 9월에 들어서서 정읍 대흥리 차 경석의 보천교 본부에 둔궤를 가져다 둔 것을 확인하시고 그것을 재실로 옮기고자 하셨다. 17. 조 용의와 권 태로. 권 영문. 이 정무. 김 사일. 박 붕래외 두 명이 대흥리로 가니라. 이들이 보천교 본부에 당도하니 9월 4일 새벽 한시경이 되니라. 본부의 사람들이 모두 깊이 잠이 든 때인지라. 그들이 한방에 들어가 병풍으로 가리어 놓은 둔궤와 약장을 찾아 가지고 나왔으나 약장만은 도중에 놓고 왔기에 옮겨지지 못하였다. 18. 도주께서 통사동 재실에서 어느날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吳道者 今不聞 古不聞之道也)라 믿고 닦기가 어려우니라』 하시고 다시 추종하는 여러 사람들을 앞에 모으고 무극대운의 해원 상생 대도의 진리를 설법하시어 도를 밝혀주셨다. 19. 도주께서 이 상우를 데리고 부안 변산 굴 바위에 이르러 이곳에서 공부하시면서 상제의 대순하신 진리를 사람들에게 설법하셨다. 이에 따르고자 하는 무리 200이 넘었다. 20. 도주에서 경신년에 재실에서 밤낮으로 불면 불식하면서 공부하시던 중 이월 열 이레에 둔궤가 봉안된 곳에서 벼락소리가 나더니 둔궤가 저절로 열려져 있었다. 그 속에 호피 한장과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그려있고 양피 스무넉점이 궤에 찍혀있고 오강록 팔문둔갑 설문이란 글자가 궤에 쓰여 있었다. 그후 둔궤는 도주께서 함안 반구정에서 공부하실 때 그곳에 옮겨졌다. 그러나 당시 심복자이던 창원 사람 조 주일이 둔궤를 훔쳐 갔는데 훗날에 종도들이 이를 알고 매우 안타까워하니 도주께서 『그 시기의 도수에 쓰였으면 족하리라. 둔궤의 둔자는 도망 둔자이다.』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1. 종도들에게 칠성경을 외우게 하시고 도주께서 대원사에 들어가셔서 백일 도수를 마치셨다. 마치신 날이 마로 신유년 칠월 칠석날이라, 그때에야 종도들이 칠성경을 외운 뜻을 깨달으니라. 그들은 보시고 도주께서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니라. 아직 응기하여 있는 것을 내가 풀었노라.』고 말씀하셨다. 22. 신유년 9월 5일에 권 태로와 그 외 네 사람이 도주의 분부를 받고 구릿골에서 통사동 재실로 상제의 성골을 모시고 돌아오니라. 이때 갑자기 뇌성이 일고 번개가 번쩍였다. 23. 성골이 옮겨진 후 십 오일이 되니 상제께서 구세 제민 하시고자 강세하신 날이 되니라. 이날 재실에 모여 치성을 올린 후에 도주께서 『시시묵송 공산리 야야한청 잠실중 분명조화 성공일 요순우왕 일체동(時時默誦 空山裡 夜夜閑聽 潛室中 分明造化 成功日 堯舜禹王 一切同)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느니라. 그들 속에 권 태로. 아 상우. 이 우형이 끼여있었다. 이들은 재실에서 매일 밤낮으로 치성을 올리고 공부하시는 도주의 시종을 들었다. ◐ 때때로 텅 빈 산 속에서 묵송한다. 밤마다 깊은 방 가운데서 조용히 듣는다. 24. 도주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 나니라. 이 좇는 무리에게 도주께서 말씀하시길 『임술년 섯달에 이르면 납월도수에 북현무도수가 닥쳐서 금전이 아니면 일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 하시고 소액의 금품을 남겨 놓으셨다. 좇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문 공신과 합세하여 야밤에 재실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린 끝에 상제의 성골과 약간의 금품을 훔쳐가니 섣달 그믐 새벽 두시었다. 25. 도주께서 계해년 정월에 함안 회문리에 순회하고 그곳에 잠시 머무시다가 밀양 종남산 세천동 김 병문의 집에 가셨다. 이때 배 문걸이 도주를 따르니라. 그곳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종이에 글을 둔도수라 하시고 석달동안 행하셨는데 그 종이가 심한 바람에도 날리지 않았다. 26. 도주께서 그후 주선원과 주선원보란 두 직책을 마련하고 전교의 임무를 담당하게 하셨다. 이해 6월 치성일 전날에 밀양의 이 우형 김 용국 최 창근 안 변문. 그리고 부산의 박 민곤과 안동의 권 태로와 의성의 조 원규와 예천의 이 종찬. 신 용흠 그리고 봉화의 박 붕래. 김천의 김 규옥과 풍기의 조 진명과 청도의 장 득원 외 여러 사람들이 회문리에 모인 자리에서 도주께서 『근년이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년이라』고 말씀을 마치고 전교(傳敎)를 내리시니라. 七閏十九歲爲章 二十七章是會當 칠윤십구세위장 이십칠장시회당 按 間一年置閏則有餘日 間二年置閏則日不足 及至十九年 置七閏則無餘不足故以十九年爲一章 안 간일년치윤칙유여일 간이년치윤칙일부족 급지십구년 치칠윤칙무여부족고이십구년위일장 二十七章爲一會 一會凡五百十三年也 孟子所謂五百年必有王者興者此也 이십칠장위일회 일회범오백십삼년야 맹자소위오백년필유왕자흥자차야 三會爲統 三統爲元 循環往復互無疆 삼회위통 삼통위원 순환왕복호무강 按 一會各五百十三年則 三會合一千五百三十九年也 一統各一千五百三十九年則 안 일회각오백십삼년칙 삼회합일천오백삼십구년야 일통각일천오백삼십구년칙 三統合四千六百十七年是爲一元 四千六百十七年前丁巳軒轅立極肇斯元 삼통합사천육백십칠년시위일원 사천육백십칠년전정사헌원입극조사원 按 黃帝距今四千六百十七年前丁巳(上元甲前計算) 萬像萬事皆有是 製法諸書總此源 안 황제거금사천육백십칠년전정사(상원갑전계산) 만상만사개유시 제법제서총차원 按 天文地理人事 皆皇帝之所始敎而 史記紀年亦自皇帝始也 傳효頊곡勛華禹 初統初會世世聖 안 천문지리인사 개황제지소시교이 사기기년역자황제시야 전효욱곡훈화우초통초회세세성 按 自黃帝至於舜禹略五百年矣 初統初會者以皇帝爲始則 以皇帝元年計以至於舜禹五百十三年子也 안 자황제지어순우약오백년의 초통초회자이황제위시칙 이황제원년계이지어순우오백십삼년자야 日出萬暈同發明 春回品物共華盛 初統之中降中季 聖不承承但一時 일출만운동발명 춘회품물공화성 초통지중강중계 성불승승단일시 按 初統者皇帝以後 凡一千五百三十九年之謂而 五百十三年以後則 初統之中會也 안 초롱자황제이후 범일천오백삼십구년지위이 오백십삼년이후즉 초통지중회야 一千二十六年以後卽爲初統之季會也 일천이십육년이후즉위초통지계회야 禹後有湯後文 一會一聖應會期 中統由來世漸降 聖不道行但敎傳 우후유탕후문 일회일성응회기 중통유래세점강 성불도행단교전 按 中統者皇帝卽位後 千五百三十九年以後爲中統也 안 중통자황제즉위후 천오백삼십구년이후위중통야 釋後有孔孔後耶 一會一敎各門筵 석후유공공후야 일회일교각문연 按 釋迦如來 距今二千九百五十年癸亥年計 癸丑生 孔子距今 二千四百七十四年 庚戌生 안 석가여래 거금이천구백오십년계해년계 계축생 공자거금 이천사백칠십사년 경술생 耶蘇距今 一千九百二十三年 辛酉生 季統交易無肇聖 惟有述聖斷啓來 야소거금 일천구백이십삼년 신유생 계통교역무조성 유유술성단계래 按 季統者皇帝卽位 後三千七十八年以後之季統也 距今一千五百年前六朝及新羅之時 佛道中興 안 계통자황제즉위 후삼천칠십팔년이후지계통야 거금일천오백년전육조급신라지시 불도중흥 其後五百年距今略一千年前大宋之時 염洛諸賢一時傳道 기후오백년거금약일천년전대송지시 염락제현일시전도 其後五百年以後 羅馬法王以 耶蘇敎爲西洋之盟主 기후오백년이후 라마법왕이 야소교위서양지맹주 佛梁儒宋耶羅馬 一敎一昌應會回 불양유송야라마 일교일창응회회 ◐ 이로움이 새로운 원년에 있다. 윤년이 7번 있는 19년은 1장이다. 27장이 1회이다. 按(알아보건데) 일년마다 사이에 윤년을 두면 날짜가 남고. 이년마다 사이에 윤년을 두면 날짜가 부족하다. 19년에 윤년을 7번 두면 날짜가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按 1회는 513년이며, 3회는 1539년이다. 그래서 1통은 1539년이다. 따라서 3통은 4617년이고, 1원이다. 按 황제거금 4517년전 정사년이다. (상원갑 전의 계산) 按 천문, 지리, 인사 모두가 황제 때부터 가르침이 시작되었고, 또 사기에서 역시 기록하기를 황제부터 시작한다. 按 황제부터 순우까지 500년 정도되는데 초통초회는 황제로부터 시작되며, 황제원년에서 계산해서 순우 까지는 513년이다. 按 초통황제이후 1539년 까지이다. 다시 말해, 513년 이후면 초통중회이고, 1026년이후 초통계회이다. 按 중통은 황제 즉위 후, 1539년이후를 중통이라 한다. 按 석가여래는 거금 2950년 (계해년 계산) 계축생이다. 공자는 거금 2474년 경술생이다. 야소는 거금 1923년 신유생이다. 按 계통은 황제 즉위 후 3078년 이후 계통이다. 27. 도주께서 청도 유천의 박 동락의 집에서 단도수를 행하시니 이것이 곧 진인 보두법(眞人步斗法)이니라. 이 때 배 문걸이 시종을 들었다. ◐ 진인이 걷는 법. 28. 계해년 9월에 이를 마치시고 도주께서는 10월부터 다음에 2월 중순까지 청도의 적 천사 도솔암에 있는 칠성각 뒤에 돌단을 높이 쌓고 24방위를 정하고 천지신명을 응기케 하고 공부시간은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로 정하여 일분 일초도 어김없이 넉달 동안 계속하셨는데 낮에는 공부 행하실 때 쓰실 글을 많이 쓰셨다. 이때에 공부는 단도수라 하셨으며 시종한 사람은 배 문걸. 이 우형. 박 민곤이니라. 29. 날로 도주를 흠모하는 수가 늘어나므로 태인에 갑자년 4월에 도장이 마련되었다. 도주께서 밀양 종남산 세천에서 보시던 둔도수를 미치고 도장에 돌아와 치성을 올리시니라. 치성을 끝내고 칼을 자루에서 뽑아들고 6정신을 외우시면서 보두법을 행하고 종남산 세천에서 공부할 때 써놓았던 여러 글종이를 불사르셨다. 30. 갑자년 여름에 도주께서 배 문걸을 데리고 밀양 종남사 영선정에 이르러 폐백도수를 밤 열시부터 다음날 아침 여섯시까지 다섯달 계속하시고 다시 함안 반구정으로 옮겨 마치셨다. 31. 갑자년 11월 태인 도장에 가셔서 『庚은 변경지이시(變更之伊始)하고 申은 신명지의당(神明之宜當)이라 천어사어경신(天於斯於庚申)하고, 지어사어경신(地於斯於庚申)이라. 만물종어경신(萬物終於庚申)하고, 아역여시경신(我亦如是庚申)이라.』고 밀양의 이 우형. 김 용국. 박 민곤 안동의 권 태로. 청송의 조 호규. 의성의 김 장희. 봉화의 박 붕래. 김천의 김 규석등에 말씀하셨다. ◐ 경은 그 시작이 변경하는 것이다. 신은 신명이 의당 옳은 것이다. 註 경(庚)은 초벌수확기. 새로운 방향모색도 가능한 때. 32. 을축년에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이 이룩되니 이 때 도주께서 무극도를 창도하시고 상제를 구천 응원 뇌성 보화 천존 상제로 봉안하고 종지및 신조와 목적을 정하셨다. 宗旨(종지) 信條(신조) 目的(목적) 33. 覺道文(각도문) 夫聖人之經典 不求文章之色彩 而求其眞理 眞人之心 求其實而 不求外飾 求其物之事理 부성인지경전 불구문장지색채 이구기진리 진인지심 구기실이 불구외식 구기물지사리 則求其天然而 不求造作也 故 聖人明心達道而 不求聞達 書不求文章之色彩 衣不求綾羅也 칙구기천연이 불구조작야 고 성인명심달도이 불구문달 서불구문장지색채 의불구능라야 求於文章者 聖人之心法難得 求好外飾者 聖人之眞實難得 구어문장자 성인지심법난득 구호외식자 성인지진실난득 大哉聖人之道德 元亨利貞大經大法 道正天地 數定千法而 理定心法 正大光明 대재성인지도덕 원형이정대경대법 도정천지 수정천법이 이정심법 정대광명 仙佛儒大道正通 是以天命代語先後天道 理氣生大矣 至矣 聖矣 선불유대도정통 시이천명대어선후천도 리기생대의 지의 성의 惟我奉敎後學 以光大道 以承大德 以弘大業 淸華五萬年龍華仙境 一一同제之地千萬幸甚焉 유아봉교후학 이광대도 이승대덕 이홍대업 청화오만년용화선경 일일동제지지천만행심언 ◐ 무릇 성인의 경전은 문장의 색채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며, 대순 회보 41호4 참조 34. 봄 어느날 도주께서 부안 변산에 가셔서 육정 신장을 불러 응기하시니 뇌성벽력이 크게 일고 산천이 진동하는 듯 하였다. 35. 이때부터 도주께서는 토지를 해원하고 제민하고자 안면도와 원산도 두 섬에 간사지를 개척하기 시작하셨다. 신도들로 구성된 진업단과 헌금 2만원과 구태인 일대의 개간지에서 얻어진 곡물 삼백석이 동원 투입되었다. 그러나 두 섬의 네 곳에서 뜻을 이룩하고자 하셨으되 심한 풍랑으로 두 곳은 뜻을 이룩하지 못하고 그후 일본 마상 회사가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안면도의 이십만평의 농지와 원산도의 염전은 두 곳의 여러 마을 사람을 구제할 수 있었다. 도주께서 제민 사업을 돕는 한편 안면도 창기리에 있는 홍일우에서 공부를 하셨다. 이때에 서산읍의 사람 이 동만 이 도주를 가까이 모셨다. 36. 개척의 제민 사업으로 안면도에 와 계신 도주를 이 정률이 돌보고 그의 아들이 심부름을 하였다. 어느날 밤에 도주께서 그 아들에게 가지고 계시던 큰 칼을 숨겨두라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 아들은 칼이 무거워서 옮기지 못하여 그 사연을 도주께 아뢰니 『네 마음으로 숨겨보라』고 다시 이르시니 아들이 마음속으로 뒤뜰 대밭에 숨길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칼이 없어져다. 이튿날 창기리 촌장이 경관을 데리고 도주가 머물고 있는 방을 샅샅이 뒤지다가 경관이 큰 칼의 행방을 도주께 물으니라. 이것이 그들은 도주를 요술쟁이로 안 까닭이나 증거를 잡지 못하고 돌아가니라. 도중에서 경관이 그 아들을 보고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 아이가 『몸을 위해 해변에 수양하러 왔노라』고 대답하니라. 아들이 돌아간 후에 그 아이는 도주께 『저도 모르게 그런 대답이 나왔나이다.』고 아뢰었다. 이에 도주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으며 큰 칼은 대밭에 있었다. 37. 얼마 후 촌장이 급히 도주를 찾아와서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들이 죽게 되어 살려주기를 애원하는지라. 도주는 시종하는 아이와 함께 그 집으로 가셔서 병자실의 아이를 들어보내니 아이는 그 방에 들어서자 병자의 머리맡에 갑옷을 입은 무장이 칼을 뽑아들고 서있는 것을 보고 나와서 그 사정을 아뢰니 이 말을 들으시고 아무 말씀 없이 병자실에 들렀다 나오셔서 거처에 돌아오셨다. 다음날에 촌장이 황급하게 도주를 찾더니 『아들이 죽었으니 어찌 하오리까』고 물으니 도주는 그를 앞세우고 시체실에 드시어 자신의 손가락을 죽은 자의 가슴에 대이니 죽었던 자가 깨어 가족들을 돌아보고 『나는 한명(限命)이 되어가니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말하니라. 이 때 도주께서 손가락을 몸에서 떼시니 병자는 그제야 숨을 거두었다. 38. 도주께서 병인년 봄 어느날 공부를 마치고 담뱃대의 단배통과 물부리에 크고 작은 태극을 그려 여러 개를 만들어 여러 종도들에게 등급별로 나눠 주시고 일반 신도들에게는 제각기 설대에 태극을 그려 넣게 하셨다. 39. 여름에 도주께서 태인과 서울 도염동에 오르내리시다가 겨울에 태인에 머무셨다. 서울에서의 공부는 그 내용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40. 도주께서 태인에 계시다가 정묘년 9월부터 배 문걸을 데리고 통사동의 재실에 가셔서 주를 놓는 공부를 석 달 동안 보시고 그후에도 계속하셨다. 주판을 오동목으로 숫가지를 대나무 조각으로 하셨다. 숫가기 놓는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고 숫가지가 이리 저리로 옮겨질 때마다 불빛이 번쩍이었다. 무진년에 포유문이 선포되었느니라. 41. 무진년에 布喩文(포유문)이 선포되었다. 曰人生處世惟何所欲 惟名惟榮 曰名曰榮 人所共欲而 求之難得 是何故也 왈인생처세유하소욕 유명유영 왈명왈영 인소공욕이 구지난득 시하고야 都是無他未知捷徑 捷徑非他求也 吾之所求有無量至寶 至寶卽吾之心靈也 도시무타미지첩경 첩경비타구야 오지소구유무량지보 지보즉오지심령야 心靈通則鬼神可與酬酌 萬物可與俱序 惟吾至寶之心靈無路可通 汨沒無形之中 一世虛過 심령통즉귀신가여수작 만물가여구서 유오지보지심령무로가통 골몰무형지중 일세허과 幸於此世有無量之大道 正吾之心氣 立吾之義理 求吾之心靈 任上帝之任意 행어차세유무량지대도 정 오지심기입 오지의리구 오지심령임상재지임의 洋洋上帝在上 浩浩道主奉命 明明度數無私至公引導乎 無量極樂五萬年淸華之世 양양상제재상 호호도주봉명 명명도수무사지공인도호 무량극락오만년청화지세 肅我道友嚴我道友 極誠極敬至信至德 難求之欲 虛過一世至寃至于 숙아도우엄아도우 극성극경지신지덕 난구지욕 허과일세지원지우 斯而豈不解寃哉 喜吾道友 勖哉 勉哉 사이기불해원재 희오도우 욱재 면재 ◐ 가라사대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생각건대 갈망하는 바가 무엇인가? 42.. 또 당시에 奉祝呪, 眞法呪, 二十八宿呪, 二十四節呪, 心經道通呪, 七星呪, 願戴呪, 觀音呪, 解魔呪, 解魔呪, 陰陽經, 運合猊, 開閼呪, 玉樞統, 太極呪, 明耳呪, 五方呪 . 五臟呪 九靈三精呪, 曳鼓呪 등이 주문으로 쓰였으나 대부분이 전하지 않고 몇 주문만이 전하여 오니라. 二十八宿呪星宿下鄧禹馬成吳漢王梁賈復陳俊耿엄杜茂寇恂傳俊岑彭堅심馮異王覇 성수하등우마성오한왕양가복진준경감두무구순부준잠팽견담풍이왕패 朱佑任光祭遵李忠景丹萬修蓋延비융요期劉植耿純藏宮馬武劉隆급급如律令 주우임광제준이충경단만수합연비융요기유식경순장궁마무유융급급여율영 二十四節呪候下長孫無忌孝恭杜如晦魏徵房玄齡高士廉蔚遲敬德李靖蕭瑀段志賢劉弘基屈突通 후하장손무기효공두여회위징방현령고사렴울지경덕이정소우단지현유홍기굴돌통 殷開山柴紹長孫順德張亮候君集張公謹程知節虞世南劉政會唐儉李世勣秦叔寶급급如律令 은개산시소장손순덕장양후군집장공근정지절우세남유정회당검이세적진숙보급급여율영 陰陽經乾定坤順乾陽坤陰 日行月行日陽月陰 有神有人神陰人陽 有雄有雌雌陰雄陽 有內有外內陰外陽 건정곤순건양곤음 일행월행일양월음 유신유인신음인양 유웅유자자음웅양 유내유외내음외양 有右有左左陰右陽 有隱有顯隱陰顯陽 有前有後前陽後陰 皆是陰陽中有成萬物之理 유우유좌좌음우양 유은유현은음현양 유전유후전양후음 개시음양중유성만물지리 皆是陰陽中有逐天地 而陰陽成變化 神人以陰陽成造化 天無地化無布於其下 地無天功無成於其上 개시음양중유축천지 이음양성변화 신인이음양성조화 천무지화무포어기하 지무천공무성어기상 天地和而萬物暢 天地安而萬象具 神無人後無托而所依 人無神前無導而所依 神人和而萬事成 천지화이만물창 천지안이만상구 신무인후무탁이소의 인무신전무도이소의 신인화이만사성 神人合而百工成 神明竣人人竣神明 神明陰陽相合神人相通 然後天道成而地道成 神事成而人事成 신인합이백공성 신명준인인준신명 신명음양상합신인상통 연후천도성이지도성 신사성이인사성 人事成而神事成 神明神明天地諸神明 下鑑垂察奉命 身太一聖哲所願成就 인사성이신사성 신명신명천지제신명 하감수찰봉명 신태일성철소원성취 ◐ 하늘이 정하면 땅이 따르니, 하늘이 양이고 땅은 음이다. 註 하감(下鑑) : 아래를 통제(統制) 관령(觀領)하시며 관감(管鑑)함. 깊이 꿰뚫어보고 거울과 같이 살피시는 것 대순 회보 17호3 참조 運合呪(운합주)元亨利貞天地之道 仁義禮智人神之道 乾坎艮巽坤離兌震八位之精 東西南北四位之精 원형이정천지지도 인의예지인신지도 건감간손곤이태진팔위지정 동서남북사위지정 周天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轉換之度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天十之精 주천삼백육십오도사분도지일전환지도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천십지정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地十二之精 金木水火土五行之精 靑紅黃白黑五色之精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지십이지정 금목수화토오행지정 청홍황백흑오색지정 宮商角徵羽五音之精 黃鐘大呂太簇夾鐘姑洗仲呂 賓林鐘夷則南呂無射應鐘律呂之精 궁상각치우오음지정 황종대려태주협종고선중려유빈임종이칙남려무역응종율려지정 酸苦甘辛鹹五味之精 春夏秋冬四時之精 日月星辰風雲霹靂造化之精 雨陽 寒調和之精 산고감신함오미지정 춘하추동사시지정 일월성신풍운벽력조화지정 우양욱한조화지정 六洲山岳鍾陸之精 江湖河海鍾水之精 原濕井野率土之精 走飛草木品物之精 正直剛柔淸濁之精 육주산악종육지정 강호하해종수지정 원습정야솔토지정 주비초목품물지정 정직강유청탁지정 萬國國都京邑之精 萬國州郡人民之精 儒佛仙一合之精 文武之兼用之精 만국국도경읍지정 만국주군인민지정 유불선일합지정 문무지겸용지정 壽富貴攸好德多男子五福之精 喜怒哀樂中和之精 貌言視聽思五事之精 수부귀유호덕다남자오복지정 희노애락중화지정 모언시청사오사지정 食貨祀司空司徒司寇賓師八政之精 世界人民觀測之精 王公侯伯子男六爵封秩之精 식화사사공사도사구빈사팔정지정 세계인민관측지정 왕공후백자남육작봉질지정 萬國各都一合之精 天下壯士使用之精 四海蒼生赤子之精 四海疆土一統之精 만국각도일합지정 천하장사사용지정 사해창생적자지정 사해강토일통지정 海印造化如意做作之精 仙佛儒諸修道者修道一合之精 해인조화여의주작지정 선불유제수도자수도일합지정 諸道度 諸精氣 茁茁歸合 太一聖哲 茁茁歸合 太一聖哲 茁茁歸 茁茁歸合 太一聖哲 제도도 제정기 줄줄귀합 태일성철 줄줄귀합 태일성철 줄줄귀 줄줄귀합 태일성철 聖哲崩騰績宇周隨利隨 唵哈 玆散利周利遵則 裟婆아 성철붕등적우주수이수 음합음 자산이주이준칙 사바아 ◐ 원형이정은 하늘과 땅의 도이다. 인의예지는 사람과 신의 도이다. 註 주비(走飛) : 비주(飛走 : 비금주수(飛禽走獸)의 준말). 날짐승과 들짐승. 개벽주(開闢呪)天上玉京天尊神將 天上玉京太乙神將 玉京玉樞守門將軍 上下變局雷聲霹력將軍 白馬元師大將軍 천상옥경천존신장 천상옥경태을신장 옥경옥추수문장군 상하변국뢰성벽력장군 백마원수대장군 雷聲霹惡將軍 惡鬼雜鬼禁亂將軍 三首三界都元師 地神霹력大將軍 天動地動陰陽霹靂大將軍 뇌성벽악장군 악귀잡귀금란장군 삼수삼계도원수 지신벽력대장군 천동지동음양벽력대장군 左部關元師 右部馬元師 天地造化風雲神將 陰陽五行奇門神將 六丁六甲遁甲神將 좌부관원사 우부마원수 천지조화풍운신장 음양오행기문신장 육정육갑둔갑신장 太極斗破八門神將 山上吹嘯猛虎將軍 多率神軍百騎將軍 龍盤虎踞鬼哭神將 千萬惡鬼打節神將 태극두파팔문신장 산상취소맹호장군 다율신군백기장군 용반호거귀곡신장 천만악귀타절신장 이魅망량揮致神將 法律邪魔盡滅神將 風濤殺首呼天神將 五百年間一亨神將 三台七星諸大神將 이매망량휘치신장 법률사마진멸신장 풍도살수호천신장 오백년간일형신장 삼태칠성제대신장 二十八宿諸位神將 啓明長庚二府神將 九辰太白禁令神將 二十四節諸位神將 十二辰諸部神將 이십팔숙제위신장 계명장경이부신장 구진태백금영신장 이십사절제위신장 십이진제부신장 천地五方呼令神將 上下八位巡察神將 萬里風雨轉化神將 六丁六甲所率神將 九靈三精應元神將 천지오방호영신장 상하팔위순찰신장 만리풍우전화신장 육정륙갑소율신장 구영삼정응원신장 萬古歷代英雄豪傑諸大神將 統合天四將四十八大將軍四萬神將 八萬四天諸大神將 만고역대영웅호걸제대신장 통합천사장사십팔대장군사만신장 팔만사천제대신將 感我微誠助我宇一 大運大事改改降臨 降臨侍衛我奉命身 大運大命太一聖哲 감아미성조아우일 대운대사개개강림 강림시위아봉명신 대운대명태일성哲 常隨不離大道通大位定 與天地合與陰陽合與五行合 通天地通萬古通五方通四海 상수불이대도통대위정 여천지합여음양합여오행합 통천지통만고통오방통사해 四海應身力拔山岳威振乾坤 天地道通天地造化無窮不息 進退有法吾奉九天上世君 사해응신역발산악위진건곤 천지도통천지조화무궁불식 진퇴유법오봉구천상세군 勅速勅速唵唵급급如律令 칙속칙속암암급급여율령 ◐ 저의 조그마한 정성에 감응하시어 저를 도와서 대운대사인 세계가 하나되게 하소서. 옥추통玉樞統天門地戶玉樞大判 上帝出座萬神擧令 左右劒戟前後旗幟 風雨大作日月晦冥 霹靂聲震山水崩潰 천문지호옥추대판 상제출좌만신거령 좌우검극전후기치 풍우대작일월회명 벽력성진산수붕궤 天轉地轉陰陽變化 海印造化無窮無極 無山退海移野崩陵 殺氣消滅惡物自死 神急人忙不分晝夜 천전지전음양변화 해인조화무궁무극 무산퇴해이야붕릉 살기소멸악물자사 신급인망불분주야 北斗樞西斗樞南斗樞東斗樞中斗樞轉環 東岳柱西岳柱南岳柱北岳柱中岳柱改立 북두추서두추남두추동두추중두추전환 동악주서악주남악주북악주중악주개입 東海門西海門南海門北海門開闢 金元氣水元氣木元氣火元氣土元氣改定 동해문서해문남해문북해문개벽 금원기수원기목원기화원기토원기개정 急如雷火疾如直矢 億兆蒼生手下生活 天地人大判決大事定位 陰陽五行順平定位 급여뇌화질여직시 억조창생수하생활 천지인대판결대사정위 음양오행순평정위 萬物群生各各定位 天地復定日月更明 山通水遠淸明世界 和順世界萬里新 만물군생각각정위 천지복정일월갱명 산통수원청명세계 화순세계만리신 制建哲極于中五廣 濟化四極大定永定 五萬年淸化之世 唵唵급급如律令 제건철극우중오광 제화사극대정영정 오만년청화지세 음음급급여율령 ◐ 하늘의 문과 땅의 문을 열고 옥추의 대 판결을 한다. 註 제화(濟化) : 가르치고 인도하여 선(善)으로 나아가게 함 43. 도주께서 기유에서 신사에 이르기까지 도수에 의한 공부와 포교에 힘을 다하시니 신도의 무리가 이곳 저곳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일본이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종교단체 해산령을 내리니 도주는 전국 각지의 종도들을 모으고 인복도수와 잠복도수를 말씀하시며 『그대들은 포덕하여 제민하였다. 각자는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 처자를 공양하되 찾을 날을 기다리라.』 이 선포 후에 도장은 일본 총독부에 기증되니 도주께서는 고향인 회문리로 돌아가셨다. 44. 도주께서는 고향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도수에 의한 공부를 계속하셨고 종도 몇 사람이 왜경의 눈을 피하면서 도주를 도우니라. 도주께서는 회문리에 마련된 정사 회룡재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두루 다니면서 수행하셨다. 45. 경상도 이 용직이 한 다리가 불구인 몸으로 회룡재에 와서 도주를 돌보았으니 그는 문경에서 회룡재에 왕래할 때 거지노릇을 하면서 밤길을 이용하여 출입하였다. 도주는 하루는 그를 보고 『그대의 불구가 나의 공사를 돕는다』고 말씀하고 웃으셨다. 46. 이 용직이 을유년 7월 이튿날 회룡재를 찾고 초나흗날에 다시 떠나려 하니 도주께서 『오늘 무슨 큰 일이 일어나고 도수가 바꿔지리라』고 말씀을 하시니 이 용직은 그 까닭을 의심하니라. 다시 도주께서 『이제 두려워 말라. 다시 오도록 하라』고 이르시고 그를 떠나 보내니 일본이 망하고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47. 도주께서 기축년 겨울에 동래 마하사의 방 한간에서 정화수 스물 네 그릇을 받들고 사십 구일을 한 도수로 정하시고 공부를 하셨다. 이 광석이 대웅전에서 도주를 위해 발원 염불을 올리니라. 사십 구일이 거의 될 무렵에 도주께서 승녀와 시종자에게 『법당의 불상을 자세히 보았느냐』고 물으시므로 그들이 달려가 보니 불상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도다. 도주께서 사십 구일을 다 채우고 새벽에 공부실 위에 학이 울며 날아가고 시종자에게 그 동안 모아놓은 글씨 종이를 태우고 그 재를 시냇물에 띄우라고 이르시므로 시종자가 그대로 하니 시냇물에 무지개가 서는 다 48. 도주께서 마하사에서 도수를 마치고 도장에 돌아오시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느니라 도주께서 그 자리에서 상제님의 글귀를 외우시고 『상제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나가노라』고 말씀하셨다. 少年才氣拔天摩 手把龍泉幾歲磨 世界有而此山出 소년재기발천마 수파용천기세마 세계유이차산출 紀運金天藏物華 應須祖宗太昊伏 道人何事多佛歌 기운금천장물화 응수조종태호복 도인하사다불가 ◐ 소년의 재주와 기운은 하늘에까지 솟은 것도 뽑을 만하고, 49. 박 한경이 도주의 부르심을 받고 청주의 근방에 있는 청천면 화양동의 만동묘를 찾으니 건물은 왜정 때에 없어지고 빈터만 남아있는 사정을 도주께 아뢰었다. 또 그는 도주의 분부를 좇아 류 한규를 데리고 화양동에 가서 도주께서 거처하실 곳을 마련하고 기다렸으되 다음 기회에 미루신 소식을 듣고 되돌아왔다. 신묘년 삼월에 있었던 일이니라. 註 송 우암이 세운 만동묘는 이 땅에 民族精氣를 북돋을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根本精神을 밝게 밝혀 인륜의 근간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즉 만동묘를 세운 뜻은 春秋精神을 세우는 것이며 쇄락한 인간애와 和平意識, 文明意識을 고취시켜 도와 덕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그럼으로 만동묘 공사는 일 국가의 공사가 아니라 온 우주의 근본 정신을 새롭게 하여 바르는 의미가 있다. 공사 3장 22절 참고, 예시 67절, 대순 회보 16,25,27호 참조 50. 갑오년 삼월에 도주께서 안 상익 외 네 명을 대동하고 충북 괴산의 청천면의 화양리에 가셔서 황극신이 봉안되어 있는 만동묘 유지를 두루 살펴보고 돌아오셨는데 돌아서실 때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중에 폭풍과 뇌성 벽력이 크게 일어 산악이 무너지는 듯 하니라. 다음날에 숭정 황제 어필(崇禎皇帝御筆)의 비례 부동(非禮不動)이 새겨 있는 첨성대 아래쪽 암벽의 좌편에 닫혀있던 석문이 두쪽으로 갈라져 내리는 그 안의 옥조빙호 (玉藻氷壺)의 네자와 만력어필(萬曆御筆)의 네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전하였느니라. ◐ 숭정황제(의종)의 필적인 '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註 조(藻) : 조류 조(수초). 무늬 조, 꾸밈 조, 문채 조(미사여구). 꾸밀 조, 장식할 조. 그릴 조. 깔개 조, 옥받침 조(옥 밑을 받쳐 까는 물건). 숭정(崇禎) 황제 :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을 말함.(영화 '마지막 황제'는 청나라) 첨성대 : 화양9곡 중 제5곡 첨성대. 도명산 기슭에 위치한 첨성대는 큰 바위가 첩첩이 겹치어 대를 이루고 있어 경치도 좋을 뿐더러 우뚝 치솟은 높이가 수십미터나 된다. 송우암은 명 의종(숭정황제)의 어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 문구를 제5곡 첨성대 절벽에 새겨 숭앙의 뜻을 표했다. 51. 부산 대신동의 산비탈 판자촌에 큰불이 갑오년 삼월에 일어 나니라 그 불길이 강한 동남풍을 타고 보수동 도장을 향해 번져오므로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하니라. 이때 오 치국. 박 봉상이 이를 도주께 아뢰니 듣고 계시다가 문을 열고 대신동 쪽을 바라보셨다. 거세던 동남풍이 누그러지고 서풍이 일더니 불이 꺼지는도다. 52. 이해 봄 어느날 도주께서 보수동 산정에서의 공부를 멈추고 대청에 나오셔서 『앞으로 신도들의 동이 두 번 있으리라』 고 말씀하시고 그 주변에 사는 신도들의 사정을 물으셨다. 이 때 박 한경. 오 치국. 임 규오. 박 중하. 박 봉상. 이 인호 등이 시좌하였다. 53. 도주께서 갑오년 가을에 박 한경에게 사략 상하권과 사서 삼경의 구판을 구하게 하시므로 이때에 통간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시전. 서전. 중용. 주역의 구판을 구하여 올렸더니 이 책들은 그후에 도장에 비치되었다. 54. 도주께서 다음 달에 박 한경과 김 용화. 김 해구. 오 치국. 류 철국. 이 윤섭. 류 한규. 김 영하. 오 영식등을 데리시고 해인사 경내에 있는 관음전이자 신검당 뒤편의 다로경권에서 사흘 동안 공부를 하셨다. 그러나 공부에 관한 말씀은 없으시고 『사명당의 입적실에 가서 불공이나 드리고 가리라』고 말씀하시고 근처에 있는 백련암과 그 외 여러 암자를 돌아보시고 길에 오르셨다. 55. 도주께서 해인사에서 돌아오신 다음 날에 여러 종도들을 모아놓고 『상제께서 해인을 인패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여 어떤 물체로 생각함은 그릇된 생각이니라. 해인은 먼저 있지 않고 자기 장중에 있느니라.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위치의 근원이 바다에 있으므로 해인이요. 해도 진인이란 말이 있느니라. 바닷물을 보라. 전부 전기이니라. 물은 흘러 내려가나 오르는 성품을 갖고 있느니라. 삼라만상의 근원이 수기를 흡수하여 생장하느니라. 하늘은 삼신 육천이 있어 상제께서 통솔하시며 전기를 맡으셔서 천지 만물을 지배 자양하시니 뇌성 보화 천존 상제이시니라. 천상의 정기가 바닷물에 있었으니 바닷물의 전기로써 만물을 포장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56. 바다의 조석 이치는 음이다. 1매부터 5매까지는 동몽이요 6매는 성년이요 6매가 한 사리이요 50일은 6메 한 사리이고 60일 2사리이고 70일은 삼사리이고 80일음 사사리이고 90일은 오사리이며 20일은 윳사리이며 곧 육격기이니라. 21일은 소격기이고 22일은 호이며 23일은 조금이고 24일은 무시이니라. 25일은 1매이고 26일은 2매이며 27일은 3매이고 28일은 4매이고 29일은 5매이며 30일은 6매 한 사리이니라』고 알려주시고 또 『29일의 작은 달에서는 금믐난의 아침에 조와 저녁에 석을 계산하느니라. 말하자면 아침의 조를 5매로 저녁의 석을 6매로 계산하여 그믐날 하루를 두 사리로 계산한다.』고 일러주셨다. 57. 병신년 3월에 박 한경은 도주의 분부를 좇아 류 철규. 박 종순과 함께 정하신 바에 따라 공주 동학사에 이르렀다. 이 절의 경내에 동계사 삼은각과 단종왕의 숙모전이 있고 생육신과 사육신을 추배한 동묘 서묘가 있으니 신라 고려 조선의 삼대 충의 지사를 초혼한 곳이로다. 이곳의 관리자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 팽년의 후손이고 정기적으로 내왕하면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문이 닫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데 이날 따라 그 후손이 도주께서 불러 나온 듯이 미리 와서 문을 여니 도주께서는 배종자들을 데리시고 이곳을 두루 살피셨다. 그리고 동학사 염화실에서 이렛동안의 공부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길 『이번 공부는 신명 해원을 위주한 것이라』고 이르셨다. 58. 도주께서 종도들에게 『다섯 화공이 각기 맡은 대로 용 한 마리를 그렸느니라. 그림이 잘 되고 못 된 것은 그들이 모두 그린 뒤에야 알게 되니라』고 일러주셨다. 59. 또 도주께서 하루는 『있는 말 없는 말을 꾸며서 남을 유혹하지 말고 올바르게 진리를 전하라. 혹세무민하는 행동은 천지안에서 용납할 길이 없다.』 고 종도들을 깨우치셨다. 60. 박 한경이 이해 8월에 충청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교화에 힘을 다하고 있던 중에 급히 도장으로 귀환하라는 도주의 분부를 받고 류 철규와 함께 돌아오니 도주께서 지리산 쌍계사에 갈 터인데 배종할 것을 분부하셨다. 다음날에 박 한경. 류 철규. 한 상덕. 김 재복이. 도주를 모시고 절에 이르러 정하신 바에 따라 청학류의 뒷계단 위에 있는 영주각의 정결한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도주께서 이렛동안의 공부를 마치시고 생각하였던 바와는 달리 쉽게 마쳤다고 하시고』이라고 말씀하셨다. 趙鼎山來智異應 一布衣來白日寒 조정산래지리응 일포의래백일한 ◐ 조정산이 오니 지리산이 응하고, 베옷 한 벌 입고 오니 한낮인데도 차구나! 61. 도주께서 청명한 정유년 가을 어느날에 감천에서 박 한경에게 『누구의 소유지냐』고 한곳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물으시기에 그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고 아뢰이니라. 그곳이 훗날에 도주의 묘소로 정하여지다. 62. 도주께서 이해 11월에 도인들의 수도공부의 설석을 명령하고 공부는 시학 시법으로 구분케 하고 각 공부반은 36명으로 하며 시학을 5일 마다 초 초강식을 올리고 15일 마다 합강식을 올리며45일이 되면 봉강식을 행하게 하고, 시법은 시학 공부를 마친 사람으로서 하되 강식을 거행하지 않고 각 공부인원은 시학원 정급 진급의 각 임원과 평신도들로서 구성하고, 시학원은 담당한 공부반을 지도 감독하고 정급은 시간을 알리는 종을 울리고 진급은 내빈의 안내와 수도처의 질서 유지를 감시하여 수도의 안정을 기하게 하고, 시학관을 두어 당일 각급 수도의 전반을 감독하도록 하셨다. 63. 박 한경은 이해 섣달에 『도전(시봉) 오 치국을 교체하려하니 적임자를 말하라는 도주의 분부를 받고 몇 사람을 아뢰오니 마땅치 않다.』 하시므로 다시 류 철규를 아뢰니 아무 말씀이 없으시므로 응낙하신 줄 생각하고 류 철규에게 지방에 내려가서 모든 일을 정리케 하니라. 다음 달에 박 한경이 류 철규가 올라온 것을 도주께 아뢰니 『그만 두라』고 분부하셨다. 64. 도주께서 다음에 2월 하순경에 최고 간부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박 한경을 도전으로 임명하니 그는 총도전이니라. 종전의 시봉 도전과는 다르니라』고 분부를 내리셨다. 65. 박 한경은 도전이 된 후에 지방의 일로 며칠 다녀오기를 도주께 청하였으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66. 도주께서 정유년 11월 21일 자시부터 무술년 3월 3일까지 도장에서 불면 불휴하고 백일도수를 마시느니라. 도주께서 이튿날 미시에 간부 의사를 불러왔으되 『때가 늦었다.』고 이르시니라. 도주께서 이튿날 미시에 간부 전원을 문 밖에 시립케한 후 도전 박 한경을 가까이 하고 도전의 머리에 손을 얹고 도의 운명 전반을 맡도록 분부를 내리고 『50십년 공부 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 이며 지기 금지 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가 금년이다. 나는 간다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문밖을 향하여 『도적놈』 을 세번 부르시더니 화천하셨다 무술년 3월 6일 미시요 양력으로 1958년 4월 24일이요. 수는 64세로다. 67. 화천을 고하 듯 뇌성이 일고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듯 빗방울이 뿌리더니 무지개가 도장을 덮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