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토선생전
[페이지] F01
극단 미추 제 회 공연
토선생전
안종관. 작
손진책. 연출
공연일시:1987. 5. 20-25
공연장소: 세종문화회관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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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제1장
[말뚝이] (장단과 함께 뛰어 나오며) 쉬 말뚝이 오랜만에 문안드리오. 이 말뚝이로 말하면, 일찌기
노론 소론에 조기 대갱이, 썩정 바지 구녁의 개대갱이 같던, 창병 걸리고 입코 비뚤어진 이생원네
양반들 이끌고 이리 저리 장터 찾아 전국을 돌아 다니면서 청계천 약장사 원숭이 곯리듯 창피 주고
얼르고 나무래고 모욕 주고 짓밟고 하여 어떻게나 인기가 좋았는지 한세월 잘 보냈는데, 새다가
바뀌어서 양반 상놈 없어 거들떠 보지도 않으니 이 내 신세 닥 밥 굶을 처지 됐는지라. 서울 올라
온후, 이 공사판, 이 공장 저 공장 떠돌아 다니다가 옛날 재미 생각나서 돈많은 양반 있다는 빌딩 찾아
탈마당 하나 차리자고 하렸더니, 수위실에 있던 쇠뚝이란 놈이 때려 쫑는 바람에 계단 한개 밟지
못하고 쫑겨 났더라. 그 요새 양반만 하나 잡으면 옛날 재미 비할게 아닌데 고약할 손 사람인심
세상인심이라. 할수 있나, 말뚝이 이놈이 천상 배운재주 그 짓밖에 없어 약장수나 할수 밖에. 돈주고
광대를 몇 사가지고 끌고 다니는데, 그것도 기름값 올라 불황에다 인건비 비싸 별 수지가 안 맞겄다.
그러나 저러너 여러 해포만에 만난 쇠뚝이란 놈 빌딩 수위도 출세랍시고 괄세하여 나를 내 쫑으니
홧김에, 한잔 먹어 두잔 먹어 일배 일배 부일배라. 혼자서 권커니 자커니 취흥이 도도하여 얼굴이
불콰하도다. 자, 그럼 슬슬 풀어 볼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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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장사 약 보고 사는게 아니라 구수한 얘기 맛에 약을 산댔으니 --- 기분도 기분이고 --- 보아하니
여기 모인 손님들 수준도 높고하니 에라, 내가 애끼고 애끼는 보따리를 하나 풀여야겠다. 자, 토선생전
시작할 테니 귀에 솔솔 말아 집어 넣어서는, 이웃에게 선전이나 많이 해 주시우. 옛날 옛적 어느 바다
어느 용왕이 중한 병을 얻어 천만가지 약으로도 도무지 효험이 없어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된지라.
음식물이 목구멍 넘어가면 그대로 통과하여 설익은 똥 되어 나와버리고, 발에 열나 펄펄 끓고, 두통,
편두통, 족통, 요통, 복통에 다 하루 수백번 하혈하고 온몸이 마비되어 가니 이는 음주가 원인이라.
노란 농 나오던 소변이 핏빛 줄기 되고, 오줌은 찔금 찔금 시원치 않아 아랫배는 무지끈, 눈에 눈곱
끼고, 온몸 종창 투성이로 고름 질질 흐르고, 머리카락 슬슬 빠져 반들반들해지고, 간, 폐, 심장,
비장, 큰창자, 작은창자 있는대로 절단났으니 그저 녹신녹신 흐물흐물, 이는 만성 급성, 임씨 온갖
성병의 짬뽕이라. 용왕이랍시고 온 바다 숫놈 해구 모조리 잡아다가 해구신만 발라 수태 조져 먹고는
밤 낮 여자만 밝히더니 그예 그 꼴 되고 말았구나(침상의 휘장 열리며 용왕이 비스듬히 일어나 앉는다)
[용왕] 오호라, 슬프도다. 과인이 한번 이 세상을 하직하고 적막 공산으로 돌아가면 어느때나 다시
와볼 것인고. 춘삼월의 꽃도, 사오월의 녹음방초도, 팔구월의 황국 단풍도, 동지 섣달 설중 매화며,
창고에 그득한 천일주도, 아리따운 삼천 궁녀를 버리고 내 어디로 간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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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귀영화 허망하고 허사로다.
[말뚝이] 대저 사람의 한 몸이 한 나라와 같은지라, 배와 가슴은 궁실이오, 팔과 다리는 고을과
지경이오, 골절은 일백신하, 혈기는 백성 같으니 일신을 다스릴 줄 알면 가히 일국을 다스릴 것이오,
백성을 사랑하면 곧 나라는 편케 함이라, 혈기 다하면 몸이 죽고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니
수신제가평천하라, 가련하다 용왕이여, 슬프도다 백성들이여, 푸레밍씨 일찍 나서 페니실린 있었던들
용왕 일신 구하고 일국 백성 구할 것을 하늘도 무심하다. 어쩌자구 페니실린 푸레밍씨 나중 내고
용왕을 먼저 냈누. (취발이 뛰어나오며 말뚝이를 탁 친다)
[취발이] 토끼전을 한다기에 만사 제쳐 놓고 구경 와보니, 네 이놈 정말로 너무하다. 지엄하신 우리
용왕 밤낮으로 정사 돌보다가 득병 하였기로 만고에 빛나는 치적을 칭송해야 마땅하거늘, 온통
주색잡기 방탕한 왕으로만 몰아대니 내 너를 용서 못하겠다.
[말뚝이] 남 한창 신이 오르는 판에 웬 시러배놈의 아들이여. 오라-그러고 보니 네 놈이 바로 일찌기
조실부모하여 어릴때부터 절간에서 불이나 때고 심부름이나 하던 취발이란 놈이 아니냐. 네 이놈, 너는
원래 계집질하던 중의 뒷바라지나 하다가 그 중 파계하는 바람에 집 잃고 절간 잃어 이리 저리 동가숙
서가식하는 놈으로 일자무식일텐데, 네 놈이 뭘 안다고 내 얘기를 이러쿵 저러쿵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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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발이] 이놈아, 내가 옛날 취발인 줄 아느냐? 나도 서울이 좋다는 말 듣고 곧장 올라오지
않았겄냐? 얼마전 할일없어 룸펜으로 이 다방 저 다방 빌빌대다가, 잘못하다가는 소매치기날치기
들치기 택시강도, 나쁜 길로 들어서기 십상이라, 맘 다져 먹고 동대문 책방에서 책을 받아다가
버스간에서 파는 문화사업을 했겄다. 게다가 고전만 취급했단 말여. 그래, 대한민국 사람치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토끼 잡은 충신 별주부가 하늘이 도우사 용왕의 병고친 얘기를 누가 모른단 말이냐.
[말뚝이] 그놈 하는 수작이 제법일세.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놈이로다. 네 어이,
별주부전, 토별가, 별토가, 토끼전, 토의간, 토공전, 불로초, 토처사전, 수궁가 --- 완판본 경판본
활자본 필사본 --- 들을 다 읽었겠으며, 또 아무리 견문이 넓다 해도 내가 하는 이 토끼 얘기는 듣지
못했을거다. 이 이야기로 말할 것 같으면 안종관이라고 하는 글쟁이가 이리 찢고 저리 찢어 이 장면 저
장면 입맛대로 찢어 발겨 이 양념 저 양념 온갖 구색 다맞춰서, 이런 장판에서 하기 알맞게 만든
안종관 연극본이라네. 얼씨구 지화자.
[취발이] 그 이름 모를 놈이 어느 시러배놈의 아들이여. <<조상이 남긴 우리 고전을 마음대로
가위질허게. 내 배알이 뒤틀려서 더 못 있겠다. 네 이놈들, 내 꼭 문공부에 고발하고 말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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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이] 이 무식한 놈아, 내가 하는 얘기가 조상 생각 올바로 해석한 진짜 고전이란 말여.
(나가려는 취발이를 만류하며) 어이, 이왕 나온김에 옛날 같이 탈 쓰고 놀던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내
이야기나 끝까지 듣고 가게.
[취발이] 어떤 미친놈이 그따위 엉터리 얘기를 듣고 있나?
[말뚝이] 같이 한바탕 놀아보자 이거렸다. 약 많이 팔리면 한잔 삼세.
[취발이] 술 혼자 처 먹고 길거리에 뻗어 죽어버려라.
[말뚝이] 예쁜 색시 수청 들어줌세.
[취발이] 혼자 실컷 수정받아 먹어라.
[말뚝이] 약 팔고 남은 이익을 반분허세.
[취발이] (솔깃해서) 이익을 반분헌다? 허어 --- 그 유혹은 못 이기겄다. 잘 놀고 돈 벌고 --- 좋지
좋아. 꿩 먹고 알 먹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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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이] 아무래도 좋지. 휴우 --- 마침 광대가 모자라던 판인데 잘 됐다. 요즘처럼 인건비 비싼
판에 이거 웬 떡이냐.
[취발이]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말뚝이] 요즘 같은 인재난에 자네 같은 광대를 어디서 모시겠느냐 했지, 자 --- 시작하기 전에 우리
한번 놀아보세.
[취발이] 좋구 말구. (손뼉을 쳐 장단을 청한다. 둘이 맞춤 춘다. 말뚝이의 이상한 춤사위를 보면서)
이놈아, 무슨 춤이 그러냐.
[말뚝이] 삽으로 흙 파던 때 추던, 흙파기 춤이라네.
[취발이] 그것도 춤이라고 추냐?
[말뚝이] 이놈아, 춤이 따로 있냐? 흥이 나서 우쭐거리면 춤이지. 자-어느날 용왕 앞에 한 도사가
나타나서, 그 병에는 토끼의 간이 특효라고 알려 주었겄다.
[취발이] 토끼의 생간이 최고라네.
[말뚝이] 토끼 조상이 달나라 선녀와 놀다가 약 그릇 깨친 죄로 봉래산에 하산하여 지금에
이르렀는데, 용왕은 물속 용신이요 토끼는 산 속의 영물이라, 토기 용왕 서로 음양이 화합하매 토끼
간만 얻으면 그런 병쯤이야 문제가 아닌즉.
[취발이] 토끼라는 놈, 멀고 먼 육지 산속에 사는 짐승이라 이 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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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잡아 들이느냐가 문제라네.
[말뚝이] 즉시 만조백관을 모아 놓고 하교 하였겠다.
(용왕은 상체를 일으키고, 취발이와 말뚝이는 양 옆으로 서서 만조백관을 대신 한다. 각 물고기를
상징할 만한 그림을 여럿 들고 그때 그때 물고기들의 대역을 한다. 별주부 끝에 등장한다. )
[취발이] 우두머리 거북, 비서장관 잉어, 학교 장관 오징어. 재판장관 준치, 에너지 장관 방어.
[말뚝이] 싸움 대장 고래, 기동대장 조개, 유격대장 메기, 돌격대장 꽃게, 골목대장 새우.
[취발이] 미끈닥 뱀장어, 배불뚝이 올챙이, 뱅어, 전복, 연어, 홍어, 상어, 곤쟁이, 멀치, 도루묵,
꽁치, 해삼, 멍게-입시오.
[말뚝이] 주부 자라, 갈치, 자가사리, 망동어, 송사리, 빠가사리, 미꾸라지, 쏘가리, 모래무지,
가재, 진게미, 피래미, 아구-입시오.
[용왕] (코를 싸쥐고) 웬 속 뒤집는 비린내가 이리 진동허냐? 어허, 과인이 필시 왕이 아니라
영락없는 어물전 주인이로다. 그러나 저러나 과인의 병에는 오직 토끼의 생간만이 특효라 하니 과인을
위해 뉘 능히 인간에 나가 토끼를 사로 잡아 올꼬?
[말뚝이] 우두머리 거북이 아뢰오. 폐하의 병만 나으신다면 신들이 생선구이가 될지라도 어찌
불사하리까. 이런 떠 무관들의 충성을 시험하시와, 고래에게 정병 삼천 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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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를 공격하도록 하소서.
[취발이] 싸움대장 고래 아뢰오. 수전에는 능하오나 육지 싸움 경험 없어 불가하오이다. <<조금
위태스런 일이다 하면 군인에게만 떠 맡기려 하니, 저 따위 좁은 소견으로 어떻게 저리 큰 벼슬 하여
먹는지 모르겠나이다.>> <<>>
[말뚝이] 비서장관 잉어 아뢰오. 돌격 대장 꽃게가 갑옷이 튼튼하와 열 발을 갖추어서 진퇴를 다
하옵고, 원래 고향 육지이오니 정병 삼천 주어 보내소서.
[취발이] (분이 나서 입이 거품 물고) 꽃게 아뢰오. 저런 버러지 같은 물고기 들이 높은 자리
차지하여 방안 장담 일삼으로 나라일이 잘 될리가 있읍니까? 이 나라 앞날이 캄캄한 절벽이고 물없는
사막이라. 우두머리 거북은 모양은 노숙하나 진흙에 꼬리끌어 지저분하고, 수염을 자랑하는 잉어는
신수 장하고 용력이 절륜하나 지식이 부족하고 성정이 부족하니 어찌 비서장관을 감당하고, 에너지
장관 방어는 살점 많고 뼈가 적어 괴로운 일 잠깐 보면 꼬리가 배배 꾀고 정신이 산란하니 졸장부라
가소롭고, 학교장관 오징어는 먹통가져 문필은 좋으나 흐물흐물 연골이라 큰 재목 못 되온즉 ---
문관들 전부가 이 지경으로 입에서 젖내가 풀풀 나니, 이런 떠 한번 저 약골들을 세상에 내보내
해외연수나 시켜 담력과 용력을 길러 국가 백년지대계를 튼튼히 하소서.
[말뚝이] 네 이놈, 네가 감히 온갖 머리 짜내어서 국가 시책 마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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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안민하고 태평치세하는 우리를 험담해?
[용왕] 오호라, 하루 빨리 토끼 간을 구하기 일각이 여삼추인데, 문관 무관 불화하여 쌈질만
일삼으니, 인복없는 왕이로다. 그만들 두어라. 어디 법무장관 준치가 천거하여 보오.
[말뚝이] 기동대장 조개가 가죽이 딱딱하니, 보내시면 좋을 줄 아옵니다.
[취발이] 가고 싶은 마음이야, 어이 다 이르겠읍니까마는, 육지 가면 도요새와 원수있어 둘이 서로
다투다가 어부지리 될까봐 못가옵니다.
[말뚝이] 주부 자라를 보내소서.
[별주부] 소신, 평생 멸시받던 말직의 주부 자라라 어찌 감히 기라성같은 고관대작 나리들을 제쳐
두고 소신이 가오리까. 이 나라 인물 없다 하여 천하의 웃음거리 될까 두렵사오니 다른 신하를
보내소서.
[말뚝이] 해병대 소위 해구를 보내소서.
[용왕] 해구? 물개? 물개라면 신물난다. (용왕퇴장)
[취발이] (앞으로 나오며) 야, 이놈 말뚝아, 이야기가 요상해지지 않느냐. 수중 백관이 모두
충신들이라, 저마다 육지 나가 토끼 잡겠다고 다툴 터인즉, 이건, 전부 안가려고 아귀다툼이니,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 나, 이런거 못하겠다.
[말뚝이] (뒤따라 나오며) 이놈이 또 한창 신나는 판에 지랄일세. 야, 이놈아 충신 좋아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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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주색잡기 용왕 밑에 무신 충신있겄느냐. 돈나고 충신났지, 충신나고
돈 날까.
[취발이] 어쨌든 난 싫다
[말뚝이] 아따 그놈, 성미급허긴 가랑잎 불붙기로구나. 조금 있으면 전부 충신되어 앞장선다네.
[취발이] 충신이 된다니?
[말뚝이] 그러니까 얘기는 끝까지 들어보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거여. 그럼 이쯤에서 어전회의는
끝내도록 하자.
(포장무대 닫히고, 별주부 등장)
[취발이] 어서 충신 돼야 후세 교휸되고 난세 지침 되지. 귀감이 되어야 한단 말여.
[말뚝이] 그날 저녁, 별주부는 겨우 모면하여 득의양양해서 집에 등장하였겄다.
[별주부] 큰일 날뻔했다. 내가 무거운 갑옷 지고 짧은 네발로 어찌 육지의 토끼를 사로잡으리오.
[말뚝이] 한편 집에서는 출세의 기회를 놓쳤다구 별주부의 마누라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 통곡이라.
[별부인] 아이고-못난 목숨 아까워서 하늘이 준 복을 마다고 했으니 모든것이 허사로구나. 예끼
천하의 졸장부 같으니라구 남은 쥐꼬리만한 공무원 봉급으로 이리 쪼개 저리 쪼개 궁핍한 살림살이
하여 가면서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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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 남편 출세하면 떵떵거리며 살기만을 천만 축수하였더니 망할놈의 남편 내 신세는 평생을 주부
마누라로 늙겠구나. 나가
[별주부] 네?
[별부인] 나가
[별주부] 당신도 너무하오. 부귀영화 탐을 내어 귀한 목숨 버리라니 그런 법이 어디 있오. 목숨 있고
부귀 있는것이지. 그리고 또 내가 객지나가 황천객 되며는 당신은 어찌한단 말이요.
[별부인] 꿈도 다 깨어졌으니 우리 이혼합시다. 날마다 적자 나는 가계부 적기도 신물나오. 남들은
돈 잘 벌어 다이아다 밍크 오바다, 자가용도 식구대로 몰고 다니고, 마누라 호강 시키려고
<<사우디아라비아도 가고 이란도 가고 월남도 가고 일본에 밀항까지 해서 비싼 달러 벌어서 보내는데>>
<<>>그 까짓 양계에 나가 토끼하나 잡는것도 몸을 사려 뒤로 빼니 아이고 내가 당신 만나 아까운 청춘
다 조졌지. 부디 다른 여자만나 만수무강하소.
[별주부] 아이고 이런 제길헐 이 지경이 될줄 누가 알았나 이 목숨 아끼자니 우선 내가 호랑이 되기
십상이라. 이나 저나 난처하다 진퇴유곡, 진퇴양난, 빼도 박도 못하겠으니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것이냐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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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수 없지 홀애비 신세는 면하고 볼수 밖에 좋소. 내 당신 맘대로 내 갔다 오리다.
[별부인] 아이고 잘 결정 하셨오. 과연 당당한 장부이시오. 원앙같은 부부 금슬 잠시 이별
어렵사오나, 대장부 품은 큰뜻 분골쇄신 되더라도 무슨 한이 되오리까.
[별주부] 여보 그런데 내가 갑자기 간다면 말이오 필시 못먹는 밥에 재뿌려 모함할 놈이 나올 터인즉
미리 몇군데 손좀 썼으면 좋겠는데
[별부인] 뇌물을 쓰겠다 그 말이요.
[별주부] 쉿
[별부인] 아따 뇌물 마다할 사람 어디 있오. 내 이럴때가 있을 줄 알고, 낙찰계 해 갖고 조금씩 모아
놓은게 있오. 실속있게 잘 뿌려서 훗날 천배 만배 늘어나도록 만드시오.
[별주부] 아니 이 여편네야. 언제 이렇게 낙찰계까지 해 가지고 많이 모아놨오? 수고했오. 아-그
우두머리 거북이 먼친척인데다가 용왕님의 신임 받는 재상이고 유격 대장 악어 역시 조정에서는 말빨이
꽤 서는 편이니 내 이들에게 뇌물을 뿌려 가지고 내일 한마디 거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말뚝이] 다음날 속개된 회의는 가관중에 가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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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마누라에게 긁혔는지마빡에 혹난놈, 콧뎅이 긁힌놈, 모가지에 반창고 붙인 놈, 저마다
자원하여 양계에 나가 토끼를 잡겠다고 서로 다투는데, 하룻사이 충신 열사 수두룩해졌으니, 그 아니
장관일쏘냐. 해구 썩 나서더니.
[취발이] 제가 나가 토끼를 사로잡아 종묘사직을 보존케 하오리다.
[말뚝이] 돌격 대장 꽃게 아뢰오. 해구란 놈 양기 좋아 숫토끼를 잡으면 모르나, 암토끼를 만나면
육지살림 차리고서 돌아오지 않을테니, 신을 보내주소서. 신의 고향 원래 육지오라 소신의 엄지발로
토끼놈의 가는 허리를 빠드드득 뺀치처럼 집어다가 대왕전에 바치리다.
[취발이] 꽃게라는 놈 원래 겁이 많아 옆걸음 뒷걸음질을 잘 허고, 시력이 없어 마파람만 불면 게눈
감추니 불가하옵니다. 소신 올챙이를 보내 주소서.
[말뚝이] 올챙이 배가 불러 경륜이 약간 있다 하나, 개구리되면 올챙이적 일을 잊어 배신하기
십상이니 아니되옵니다. 소신 도미가 나서 보겠나이다.
[취발이] 마침 서울이 사월 초파일이라, 쑥갓에다 풋고사리에 송기탕 도미찜감 별미이고 횟감 또한
기찬지라, 아까운 인재를 아끼시와 보내지 마시옵고 소신 쏘가리를 보내 주소서.
[별주부] 쏘가리는 불가하옵니다, 민물고기 매운탕이 정력에 좋다하여 서울 촌놈들이 앞 다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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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먹으니, 무교동에도 쏘가리탕집, 광화문에도 쏘가리탕, 종로 을지로 퇴계로 청계천에도 쏘가리 탕
집이고, 한강, 뚝섬, 광나루, 한탄강, 임진강, 북한강, 소양강, 강변마다 보이는게 쏘가리탕집이라.
하도 잡아 먹어 씨가 말라 희귀어종 되었으니, 몇 안되는 쏘가리를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자연보호에 앞장 서야 될 줄 아옵니다.
[취발이] 신이 비록 재조 없사오나 얼기설기 엮어서 이리 덥석 저리 덥석, 한번에 여덟을 묶을 수
있는 문어발이 있사옵고 먹물 먹총 있는지라 토끼 잡아오기 여반장이니, 소신 문어가 가보겠나이다.
[용왕] 경의 용맹은 내 일찌기 아는바라, 이제서야 과인은 안심을 하겠노라. 이봐라!문어를
문성장군에 봉하고 ---
[별주부] (급히 문어(취발이) 앞으로 나가) 네 이놈, 문어야!네 아무리 기골이 장대하고 위풍이 약간
있다하나, 언변없고 의사 부족하니, 어찌 감히 폐하를 속이고 나서려 하느냐. 인간 사람 너를 보면
요리 조리 오려 내어 국화송이 매화송이 형형색색 아로새겨 어물접시 웃기고 긴요하고, 끓는 물에
삶아내어 초장에 찍어 먹는 소주안주 네 고기가 포장집마다 허옇게 쌓였으니, 무섭고 두렵지 아니하냐.
[취발이] 네 이놈 별주부야. 강보에 싸인 아해 어른을 능멸하니,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로다. 솥뚜껑 같은 놈이 저대도록 날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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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놈으로 볼짝시면, 끓는 물에 솟구쳐 끓여내니 허약한 놈 보신으로 찾느니 자라탕이라, 그 아니
별미리오, 예편네 배 위에서 눈치 보는놈, 기생 오라비들이 양기부족하여 네 몸에 빨대 꼽고 쭉쭉 빠니
네 생피라, 너야말로 철면피로다.
[용왕] 아서라. 더 이상 술안주로 다투지 말라. 모두가 인간들의 대포 안주감이니 그 아니 원통하뇨.
과인은 박복한 왕이로다. 그래, 을지문덕, 이순신같은 용맹한 장수가 수하에 없단 말인고?
[별주부] 폐하, 거센 바람이 불어야 풀의 힘을 알수 있고 어지러운 세상을 당해야 충신을 아는
법이옵니다. 소신의 충성을 의심치 마소서. 등에 갑옷 입었으니 화살이 염려없고, 네발이 짧고 실하니
걷는 데도 끈기있고, 배에 임금 왕자 있으니 목숨이 장수하고, 목을 임의로 뺐다 박았다 하니 원근을
잘 살피고, 대가리 뾰죽하니 사리판단 예리하와 잡힐 염려 없사옵고, 바닷물이 마르도록 자나깨나
나라걱정, 충성이 가득하니 폐하병이 낫기만 한다면 무슨 일을 못하리까.
[용왕] 허나, 네 생긴 모양을 보아허니, 너무도 못생겼도다. 그 지경으로 생겨서 무슨 일을
하겄느냐,
[말뚝이] 거북이 아뢰오, 별주부야말로 적격이옵니다. 무릇 충성 지략이란 외모로는 알 수 없으니,
방통이도 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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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물이되 일세의 천재였고, 안종관이라는 글쟁이도 빗자루처럼 생겼다 하옵니다, 별주부의 생긴 모습
비록 저러하나, 의사 언변 고려 충신 서희가 못따르고, 충성 또한 신라 충신 박제상을 능가하며, 또
약방 제조 전의감 일을 보고 있는지라, 이 이상 어찌 더 좋은 조건이 있다 하오리까.
[용왕] (끄덕이며) 짐의 마음 솔깃하도다
[말뚝이] 거북 아뢰오. 폐하의 성은이 망극하와, 몸둘 바를 모르는 때에 하늘이 인재 내어 폐하를
도우려 하니, 이 어이 기쁜 일이 아니겠읍니까? 결단을 내리시와 별주부를 보내소서. 대대 충신 자라
가문, 인간들도 소문들어 요즈음에는 안주감하지 않고 어부들이 잡은 자라 돈으로 다시 사서 사월 되면
강물에다 풀어 줘서 만수무강을 빈다 하니 장구하기 반석이옵니다.
[용왕] 옳도다, 과인은 결정했다. 주부의 충성이여! 경과 같은 장한 충성 만고에 무쌍이다. 양계
토끼 구해와서 짐의 병을 낫게 하면 수궁 천하를 반분해서라도 대대 손손 보전하고, 그대의 아리따운
충절을 후세에 길에 전케 하리다.
(용왕은 휘장을 닫고, 별주부 퇴장)
[말뚝이] 후유!별주부 뽑아 올리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취발이] 뇌물을 받아 먹었다니 헐 수 없제.
[말뚝이] 예끼 이 놈아, 이 말뚝이는 땡전 한푼 받은 적 없다. 그러고 저러고 별주부가 마침내
육지로 나갔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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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공] 봅세. 별주부 세상 풍경 구경하는 부분이 기막힌 부분인데, 생략만 하지 말고 창으로
불러보소.
[말뚝이] 거 좋구말구, 권명창제로 할까, 송명창제로 할까.
[악공] 아무거로나 해 보소.
[취발이]
[말뚝이] 인간 풍경 좋다는것 알면 됐다. 원 알아야 면장을 해먹지, 무슨 소리길래, 그저 노다지로
파, 파 파 하느냐.
[취발이] 저놈은 꼭 남 신오를만하면 지랄이여.
[말뚝이] 그나저나 수궁은 잘 보았으니, 이제 토끼 사는 나라도 어떠한지 얼핏 봐야 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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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제2장
[말뚝이]별주부 뭍에 당도하야 토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을때, 한편 산중에서는 토끼, 돼지,
소, 노루, 사슴, 다람쥐 모여앉아 조촐한 생일잔치를 베풀고 있던 것이었다.
[취발이] 이때는 춘삼월 호시절이라, 이화 도화 만발하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벗을 불러 구십춘광을
희롱하고, 꽃사이 잠든 학은 자취소리에 자주 날고, 가지 위의 두견새는 불여귀를 화답하니 이야말로
별유천지 비인간이 아니냐.
[말뚝이] 허나 자연은 아름답되 산중 앞날이 순탄치 않겠도다. 이 잔치를 연 노루, 앞으로 나서며
가로되(토끼 등장하여 무대 가운데 선다)
[취발이] (노루) 우리들이야말로 이 산중에서 가장 순한 짐승들로, 남 해칠줄 모르고 묵묵히 땀흘려
일할 줄 밖에 모르니, 정말 법 없어도 살수 있는 착한 백성들이라, 오랜만에 내 생일을 기해
초대했으니 그동안 서로 적조했던 마음을 열고 회포를 풀어주시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소이다. 헌게,
그대 사슴은 어찌 안색이 좋지 않소?
[말뚝이] (사슴) 호랑이를 청하지 않은즉, 후일 이에 앙심 먹고 횡포를 부릴까 두렵소이다.
[토끼] 호랑이는 심술궂고 난폭하여 친구를 모르니, 호랑이가 끼면 손님들이 겁을 먹고 잘 놀지 못할
터이니 어쨌든 잘 됐소.
[취발이] (노루) 자, 모두들 좌정하여 술이나 한잔씩 들면서 얘기합시다. (돼지<말뚝이>가
꿀꿀거리며 포장무대 앞으로 가서, 휘장에 손을 대려 한다>
[토끼] (돼지를 막으며) 보소, 돼지양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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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어디를 가려 하오?
[말뚝이] (돼지) 돼지처럼 먹는다는 속담에도 있듯이, 내 원래 먹기를 많이 먹어 좌우 음식 다
먹을수 있는 가운데 자리로 가려는 거요.
[취발이] (소) 이 소가 그대에게 한 말슴 하리다, 돼지 같은 욕심 부릴때가 따로 있지, 어찌 이같은
경사스러운 날 남 다 제쳐놓고 상좌를 차지하려 하시오?
[말뚝이] (돼지) 상좌라니? 당치도 않은 말씀. 잘 먹으면 그만이지, 난 상좌 싫소.
[토끼] 이렇게 다툴것이 아니라, 예로써 자리를 정하여 차례로 앉읍시다.
[취발이] (노루) 그 말씀 정말 좋소. 인간 세상에서 보아 허니, 상하를 다툴적에 콩나물국을 몇그릇
먹었느냐, 냉면을 몇 그릇 먹었으냐로 따지던데 우리도 밥그릇 수로 정합시다. 그러니 밥 그릇 수 그중
많은 돼지를 상좌로 모시는게 어떠하오?
[말뚝이] (돼지) 밥 그릇으로 상좌를 정하다니, 나를 진짜 돼지 취급하는구료. 나는 싫소. 우리 덩치
큰 순서로 합시다. 우생원이 어떻소?
[취발이] (소) 이 소로 말하면 눈치 언변 없고 느리기는 굼벵이요. 성격 또한 남 위해 땀흘리면 족할
뿐이니 나는 자격 없소. 역시 그 자리는 기품있고 풍채 준수하고 향기로운 관을 가진 사슴이 적격인 것
같소.
[말뚝이] (사슴) 웬 말을 그리 섭하게 하시오? 나는 그저 한가롭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오.
위자리는 역시 지모 지략이 겸전해야 하니, 꾀많은 토끼가 마땅하리라 생각하오.
[토끼] 꾀많은 자 경박하여 제 꾀에 넘기 십상이라, 나는 안되오. 차라리 눈치 빠르고 재빠르고 착한
다람쥐가 적격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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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
[다람쥐] 다람쥐 체구 왜소하여 상좌에 앉으면 보이지도 않을 테니 웃기는 말씀 아예 마소.
(포장무대의 휘장이 활짝 열리며 무서운 탈을 쓴 호랑이<용왕>가 어-흥 하며 나타난다. 모두들 공포에
질려 벌벌 떤다)
[호랑이] 이놈들, 나에게는 연락 한마디 없이 잘들 놀고 있구나. 그대 이 호랑이 말고 또 누가
상좌에 앉을 놈 있겠느냐.
[토끼] 호랑이 양반 댁이 아무리 풍채 비범하고 용력이 절윤하나 예에 따라 상좌를 정하는 자리
이거늘 어찌 그리 방자하게 구시요?
[호랑이] 네 놈이 나이로 따져보자 이거렸다. 좋다. 나이로 한번 따져 보겠노라. 사슴-넌 언제
태어났는고?
[말뚝이] (사슴) 이조 연산군이 우리 사슴 모친을 사랑했을때 그때 태어났오.
[호랑이] 노루 너는?
[취발이] (노루) 나는 벌써 허리가 굽어 늙을노자 노루이니 세종대왕때 태어났오.
[호랑이] 우생원, 너는 언제 태어났는가?
[말뚝이] (소) 단군 왕검이 소를타고 다녔으니 나는 그때 태어났오.
[호랑이] 돼지 너는?
[취발이] (돼지) 어휴, 난 잘모르겠오만, 단군왕검이 타고다니던 우생원의 안장이 바로 내 고손자의
껍대기요.
[호랑이] (토끼에게) 네놈에게는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그래 네놈은 언제 태어났는가? 네놈은
달나라에서 떡방아를 찧었다고 석기시대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나로
말하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태어났다. 자-그러니 이제는 산군님이라 불러 예를 갖추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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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예에-
[토끼] 담배는 이조 광해군때 들어왔으니 그대는 이조 광해군 시절 태생이요. 여기서 그대가 가장
어리요.
[호랑이] 에끼 이놈들-첫째 노루너는 몸에 지닌 무기가 없어 표범, 곰, 늑대의 습격을 받을까
염려되니 저아래 출타리에서만 살되, 내 허락 없이는 한발짝도 나서지 않도록 해라.
[취발이] (노루) 우, 우리는 --- 저어기 ---
[호랑이] 둘째, 사슴 너는 녹용뿔 영약으로 소문이 나서 너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을 터인즉 저아래
참나무 숲에다 철망을 쳐줄터이니 그 안에서만 살도록 해라. 세째 우생원 너는 저아래 불모지를 갈아
엎고 땅을 일구되 소출은 3, 7제로 나누도록 해라. 돼지, 너는 저아래 굴속에 들어가 하루종일
처먹기만 하라. <<>> <<다람쥐 너는 내 머리맡의 조롱속에 들어가 쳇바퀴나 돌리도록 하라>>토끼,
네놈은 보아허니 두손으로 주둥이를 비비는 재주밖에 없는것 같으니 하루종일 내 발톱이나 깍도록
하라.
[토끼] 난 승복할 수 없오. 엉터리요. 엉터리-
[호랑이] 이놈을 그냥, 이놈을-<<>> <<(용좌로 올라간다) 어-흥. 그대를 한입에 물어 삼킬 것이로되
오늘 산군 취임하는 날에 살생을 삼가하는 것이다. 어서-(인형 깔고 앉는 폼) >>너희들은 나만 믿으면
되는 거야. 내 생명 다할때까지 나만 따르면 되는거야. <<>> <<(퇴장하며) >>
[악공] (토끼에게) 자네 신세 처량하구먼.
[토끼] 나오느니 한숨이오.
[악공] 어디로 가려나?
[토끼] 갈곳이 어디 있겠소? 깊은 산골 들어박혀 울분이나 달래야지.
(퇴장한다. 말뚝이 취발이 앞으로 나온다)
[취발이] 산중세상 살벌하기가 수궁세계와는 딴판이로구나.
[말뚝이] 이놈아 오해마라. 수궁세계도 용왕 한창 시절에는 여기보다 훨씬 더했다더라. 그러니
수궁이 지금 그 지경으로 썩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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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설치는<<>> <<000000000000000000>>허어, 그놈. <<0000>> <<>>에 앉아 쉴 모양이구나. 나도
쉬었으면 좋겠다만, 옳지 별주부에게 바톤을 넘기면 되겠구나. 이놈 별주부야!수궁으로 데려 가기 좋게
도끼를 잔뜩 주눅들게 해놓았으니 어서 데려 가거라. (퇴장할때 별주부 등장)
[별주부] 내 인간세상에 나온지 오래되, 쓰잘것 없는 짐승들만 만나고 토끼는 찾지 못하여 기한만
점점 늦어가니, 이거 큰일 중에 큰일이로다, 내 정성이 모자란 모양이니, 목욕재계하고 기도나 드려
보리라. --- 유세차 갑신 유월 경진삭 십오일 갑오 남해 수궁 별주부 감소 소우 삼천일월 명사신영전
지성발원 남해용왕 우연득병 ---
[말뚝이] 얘 토끼야 나와라, 이 자라 이거 불쌍하지도 않냐? 어서 나타나.
[말뚝이] 빨리나와.
[취발이] 어서-
[악공] 이크 -나왔다. 저기 나왔다. 두 귀는 쫑긋, 두 눈은 도리리. 꽁지는 몽땅, 앞다리는 짤막,
뒷다리는 길쭉하니 영락없는 토끼로구나.
(토끼 등장한다. 별주부 다가간다)
[별주부] 고봉 준령에 신수도 좋다. 육지에 좋은 벗을 얻고자 헤매더니 오늘에서 산중호걸 만났도다.
[토끼] (놀라서 뛰다가 다시 살피며) 세상에 태어나서 인물구경 많이 하였으되 그대 같은 박색은
처음이도다.
[별주부] 성은 별이요, 호는 주부인데, 수중의 영웅이요. 수족의 어른이라 --- 댁은 토선생이
아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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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내가 토끼이오만 대체 무슨 용건이시오?
[별주부] 아니 그거 듣자하니 형의 문필이 아주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어이 취직 한자기 못하고
이제껏 백수건달이요?
[토끼] 사나이 시운을 잘못 타서 공명을 마다하고 산속에 임자 되어 사시 풍경 즐기니, 이는 형산의
흰 옥이 진흙에 묻혔고 영웅 호걸이 초야에 묻혀 때를 만나지 못함이라. 그대는 어인 일로 이 심산을
찾아오셨소?
[별주부] 우리 대왕 하명받고 동해에 사신으로 갔다고 돌아오는 실에 토형의 높은 이름 들었길래,
형을 만나고자 고대하다가 천행으로 만나보니, 듣더대로 과연 문장도 문장이려나와 풍신이
선풍도골이요 귀골이라, 우리 수궁 같으면 저 부귀공명을 따라 갈 이 뉘 있을꼬? 어허 아깝구나.
[토끼] 그대 말씀도 잘도 하고 알기도 잘도 안다. 허지만 부귀공명 아니해도 아까울 거 하나 없소,
명당에 터를 닦고 초당 한간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원이라. 학은 울고 산은 높아 뒷산에
약을 캐고 앞내에 고기 낚아 입에 맞고 배부르니 이 아니 즐거운가. 몸이 구름과 같이 세상 시비 없고
내 종적을 그 뉘 알리, 자유로운 자유 세상 자유롭고 자유롭다. 강산을 마음대로 회롱하니 내 자유를
그 뉘가 시비하랴, 아마도 세상재미는 나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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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 하노라.
[별주부] <<00000000000000>>입이 거짓말하게 생겼고, 또 눈알이 붉어 화망 살기가 있으니 인간에
오래 머물다가는 죽을 고비를 수태 당하겠소.
[토끼] 허, 그분 초면에 웬 악담이오.
[별주부] 내 말 들어보오. 동지 섣달 엄동철에 백설을 휘날리고, 층암 절멱 빙판 되니 먹을 것 전혀
없어 콧구멍을 핥을 적에 냉한 땀이 질질 흐르니 그 어인 팔자요.
[토끼] 기름값 올라 얼어죽을 자유에다 일자리 없고 쌀값올라 굶어 죽을 자유요.
[별주부] 춘풍이 화창한데 풀잎이나 뜯자하고 산간에 들어가니 천근 같은 큰 호랑이 두 눈깔이 번개
같아 이빨을 딱딱이며 톱날같은 앞발톱을 엉버티고, 우뢰같은 울음소리 산악이 옴죽옴죽할제 정신이
아득하니 별유천지 좋아하네.
[토끼] 호랑이 더러워서 피하지 않고 잡혀 먹힐 자유요.
[별주부] 죽을 것을 면하고서 숨을 돌리고 보니 앞으로는 나무베는 목동이며 소먹이는 아이들이
창검과 망치를 들고 달려들고, 옆으로는 사냥개 한마리가 으르렁거리며 쫑아들고 뒤로는 일자총을
겨누고서 염통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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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총소리에 놀라 떽떼굴 구르다가) 제발 그 소리는 <<000>> <<>>오. 나 죽소.
[별주부] 공포 분위기에 놀래 죽을 수 있는 자유요?
[토끼] 제발 --- 간 떨어지겠소.
[별주부] 에고 --- 간이 떨어지면 안되지 --- 토형, 그 간이 떨어질 자유만은 제발 버리시오.
[토끼] 그런데 초면에 남의 아픈데를 너무 찌르는 것도 실례요. 화와 복이 하늘에 달렸고 궁하고
부한게 운수에 매였거늘, 그대 수궁에서 호강깨나 한다고 이다지도 나를 괄세허니 무슨 까닭인 지
알수가 없소.
[별주부] 몇말씀 더 들어보도, 산천 경개도 옛과 달리 인간들 제 살자고 자연초목 더럽히니,
온산만간 산간 들판 농약으로 오염되고, 공해산업 공장마다 뿌연 연기 뿜어내서 땅하늘 겉모양은
의구하되 흙, 공기, 물은 썩은지 오래고, 비료공장. 염색공장, 고무공장, 제약공장, 중화학공장 공장
공장 하수구마다 여기 콸콸 저기콸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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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에서 내리는 비 방사능 투성이니, 그대가
즐겨 먹는 도토리, 풀잎, 칡순 들도 수은, 카드뮴, 방사능 농약이요. 형이 마시는 이슬도 영락없는
독약이라. 그대 이제껏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할 만하오.
[토끼] (사색이 되어 어쩔줄 몰라하며) 내 요즘 신문을 못 보아서 그런 공해병의 자유가 있는지
몰랐소.
[별주부] (가까이 다가가서) 그대 혹시 털이 빠지거나 피부가 가렵거나 하지 않소? 혹은 흰털이
까매진 곳은 없소?
[토끼] (몸을 긁으며) 듣고보니 이도 없는데 가려울 때가 많소. 또 사타구니 근처가 털도 빠지고
검어지는 것 같으니 이거 어쩌면 좋소?
[별주부] 내 그대와 친구 되었으니 좋은 도리 권하리다. 옛글에 일렀으되, 위태한 지경에는
들어가지를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있지 말라 했는데. 그대는 어찌 이 같은 세상에 더 살기를
고집하리오? <<돈 많은 사람 재산 처분해서 해외로 이민하려 극성인데 그대는 어찌 이리 태평이란
말이오? >> <<>>
[토끼] 그대 말을 듣고 보니 눈앞이 캄캄하오. 이거 야단이오. 정말 들에도 살 수 없고 산에도 살 수
없고 마을에도 살 수 없는 처지이니 캄캄하고 답답하오. 송편으로 목을 따고 접시물에 빠져 죽고 싶은
심정, 어찌 다 말하리요마는 큰 아들놈 무고히 잡혀가서 토끼장 철창에 갇혀 구메밥을 얻어 먹은지
몇년이 됐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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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는 홧병으로 황천객 된지 오래이니 갈수록 이 세상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돈 없고 빽이
없어 오도가도 못한 채로 오늘에 이르렀으니 어허라 내 신세야.
[별주부] 내 그대에게 우리 수궁을 추천하리라. 천지간 광대한 곳 바다가 제일이요, 만물중에
신령하심 용왕이 으뜸이라. 궁전을 보면 호박 기둥산호 수정렴에 진주로 섬돌 놓고, 야광주 등불 켜서
팔선녀 시위하고, 덩덕궁 풍악소리에 맞춰 걸음마다 연꽃 피고, 침 뱉으면 구슬 되어 곳곳마다
금은보화 산같이 쌓여 있다. 연꽃 같은 용녀들이 쌍쌍이 춤을 추며, 천일주와 포도주며 금강초
불사약을 유리병과 호박잔에 신서하게 담고 담아 앞앞이 늘어놓고 잡수시오 권권할 제, 정신이
쇄락하고 심정이 황홀하고 헛장단이 절로 나니 무릉도원이 예 아니냐. 그리고 우리 용왕은 어진 인재를
광구하와 그대가 한번 들어가면 공명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오리니, 구중궁궐 높은 집에 선녀들은
옆에 끼고 봉황대에 술도 먹고 글고 짓고 태평건곤 마음대로 노닐적에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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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대학 졸업하고 미국
이민 간 사람 <<0000000000000000>> <<>>잡부하며 주유소 점원 쓰레기 인부 한다던데 그 꼴 나는 거
아니요?
[별주부] 별 말씀 다하시오. 우리 임금이 한가지 능과 한가지 재주가 있는 선비라면 벼슬 직책
맡기시고, 닭처럼 울고 개처럼 도적질하는 유라도 버리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대같이 고명한 인재 차관
자리 하나쯤은 때논 당상이라, 춘추에 빛난 이름 죽백에 드리우니 그대 틀림없이 토끼 가문에 중시조가
되오리다.
[토끼] 정말 끝내 주는 거요?
[별주부] 두말하면 잔소리지, 팔선녀와 놀 수도 있소.
[토끼] 원앙금침 비단요에 섬섬옥수 넌짓 잡고 밤낮으로 두몸이 한몸되어 춘흥을 못이길제 운우지정
좋을씨고 --- 꿈이로다, 꿈같은 꿈이로다.
[토끼] 허나 아무래도 위태하오. 육지에 살다가 무슨 외입으로 수궁에 들어갈 것이며, 사지가
멀쩡하여도 헤엄칠 줄 모르니 만경창파 깊은 물을 무슨 수로 건너가며, 여권 발부 받으랴, 비자
받으랴, 주민등록 이전하랴, 신원조회 받으랴, 일가 어른 허가 받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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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0000000000000000000>> <<>>자 주저하지 마시오. 대장부가 세상 나와 자기 일진 사업을
할진대 되면 좋고 안되면 마다하는 게지. 무엇이 무서워서 계집처럼 요리 빼깃 저리 빼깃 저물도록
시간만 허비하리요. 그대가 팔팔 뛰는 버릇에다 인중이 짧아 본토에 있다가는 재앙이 돌아올 것이니,
외지로 나가야만 만사여의 분명하오. 그대는 의심치 말고 결단을 내리라.
[토끼] 결심했소. 그대간은 군자 만나 밝은 세상 찾았으니 이는 하늘이 지시하시고 귀신이
도우심이라. 성인이라야 성인을 안다고, 형이 아니더면 산중에서 늙을 뻔하였고, 나 곧 아니더면 수국
백성들이 어진 관헌 하나 잃을 뻔하였으니, 이번 여행길은 내게도 영광이고 수중에도 경사라.
[별주부] (엎드리며) 자, 어서 등에 타소.
(말뚝이 등장한다)
[말뚝이] (여우) 여봐라 토끼야, 죽마지우 여우다. 너 어디 가느냐.
[토끼] 수궁에 벼슬하러 간다.
[말뚝이] 허허 자식, 실없는 놈, 불쌍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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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부] (머뭇거리는 토끼를 보며) <<000000000000000000000>> <<>>(등을 보이고 걸어가며 ) 맘대로
하오. 굴러든 복을 발로 차니 참으로 애닯구나.
[토끼] (망설이다 쫑아가며) 뭐가 그리 급하시오.
[별주부] 남의 친구 험담해서 안됐지만, 여우란 놈 심술 대단해서 언제나 죽을 때는 토서방을
앞세우고, 먹을 때는 지가 앞서니 고약한 친구 뒀소.
[토끼] 허긴 저놈 심술 대단하오.
[별주부] 몇달 전 육지 오자 처음 만난 게 여우인데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허으나, 내 그놈 심술
알고 못하겠다 떼어놓으니, 이 속을 어찌 알고 토형을 떼보내고 지가 가려고 하는 짓거리요.
[토끼] 형은 어찌 이다지도 경솔하시오. 나는 간다 하면 꼭 가는 성미요. 자 어서 출발합시다.
(자라등에 올라) 이거 딱딱하고 미끄러워 어찌 가겠소. 송곳이나 끌 있으면 주시오.
[별주부] 무엇하게?
[토끼] 등에다 말뚝 박아 손잡이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소.
[별주부] 오래타면 익숙해질 거요. 자, 출발합시다. (출발한다. 취발이 등장)
[취발이] 주부 등에 탄 토끼 처음 배탄 놈같이 멀미하느라 똥물 다 토한다. 오호라, 의뭉할손
별주부요, 미욱할 손 토끼로다. 자라의 허한 말을 꿀같이 달게 듣고 조국산천 괴롭다고 지옥으로
들어가며, 붉은 고기 한덩이로 용왕에게 진성가니 불쌍하고 불쌍하다. 자라, 의기양양하여 범이 날개
돋힌 듯, 용이 여의주 얻은 듯 기운이 절로나서 만경창파 헤쳐가니 이런 좋은 경치에
[페이지] 033
풍월 한수 안할쏘냐. -요량한 남은 소리 어적인가 여겼더니 곡종인불견에 수봉만 푸르렀다. 황학루를
당도하니 일모향관 하처시오. 연파강산 사인수는 최호의 유적인가.
[말뚝이] 마라 마라 쉬-자기도 무슨 소린지 모르면서 지랄 육갑을 떨고 있네.
[취발이] 저놈은 꼭 남 신오를 만하면 안갑이여.
[페이지] 034
[장] 제3장
[말뚝이] 별주부 듭시오.
[용왕] 오- 만리신세 무사히 다녀오며 토끼를 잡아 왔는가?
[별주부] 대왕의 성덕으로 토끼 한마리를 생포하여 왔나이다.
[취발이] (문어) 여봐라. 저 토끼의 배를 갈라 우선 간조각 한점을 참기름 소름에 푹 찍어 용왕
폐하께 진상하도록 하라.
[토끼] 아이고-난 토끼가 아니오.
[용왕] 아니, 그럼 무엇인고
[취발이] (문어) 폐하 소신이 직접 문초 해 보겠나이다. 네이놈, 내가 묻는말에 대답을 제대로
안할때에는 이 문어발 고문이 있을 것이로다. 네가 토끼가 아니라면 도대체 네놈이 무엇이란 말이냐?
[토끼] 도적 지키는 개요. 왕, 왕, 왕
[취발이] 오-개라니 더욱 좋다. 삼복에 네놈을 잡아 보신탕 하려니와 네 껍대기 홀랑 벳겨 개차리
만들소니 그 아니 좋을소냐. 여봐라. 이 개의 껍대기를 홀랑 벗기고 배를 갈라 푹 삼도록 해라.
[토끼] 아이고 나는 개도 아니오.
[취발이] 아니 그렇다면 네놈이 무엇이란 말이냐.
[토끼] 송아지요.
[취발이] 송아지? 송아지라니 더욱 좋다. 삼시세때 네놈을 재탕, 삼탕하여 곰탕, 설렁탕, 갈비탕,
우족탕, 만백성이 포식하니 그 아니 좋을소냐.
[페이지] 035
여봐라. 저 송아지의 멱을 따고 배를 갈라 푹 고우도록 하여라.
[토끼] 아이고 난 송아지도 아니오.
[취발이] 아니, 그렇다면 네놈이 무엇이란 말이냐?
[토끼] 내가 너희들 할애비다.
[취발이] 폐하, 소신이 엄중히 문초해본 결과 토끼의 자백을 얻어 냈읍니다.
[용왕] 수고했다, 우두머리 거북, 너무 심하게 다루며는 약효에 지장이 있을것 같으니 살살
다루어라.
[말뚝이] (거북) 네 -여봐라 토끼야, 우리 대왕이 우연히 득병하시어 수년간 고생하시더니, 네 간을
빌어서 환을 지었으면 약중에 그중좋다고 하니 네가 죄없는 줄이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나, 우리
대왕의 옥체가 너같은 천만과는 다르신지라 만일 네가 죽어서 우리 대왕의 병환이 낳으시면 우리
수국백성들의 다행히요, 수국의 일등공신이 너밖에 더 있겠니?
[용왕] 토끼는 들으라, 네가 죽으며는 백옥 호박으로 관 만들어 후히 장사 지낼것이며, 추석, 한식,
단오절에 너의 제사 받들터니, 이어찌 영화로운 죽음이 아니리요, 너는 혼이 되도라도 서러워 말고
과인을 위하여 잘 죽었다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토끼] 폐하의 하교 이렇듯 간절하시니 신이 비록 칡순을 먹고 키운 간일지라도 옥체만 회복하신다면
대장부 한번 죽는것이 어찌 원통하다 하오리까. 허지만 원통하고 원통하오이다.
[용왕] 뭣이 그리 원통한고?
[취발이] (문어) 보상문제 때문이냐?
[페이지] 036
인간세상 사람 몸값도 똥값이라던데 너는 토끼로서 토끼가죽 털값이고, 토끼고기 포장집
돼지고기보다 더 싸다 하니 무얼 그리 비싸게 놀려 하는고?
[퇸] 토끼 족속이라 하는 것이 본디 아침 이슬 저녁 안개 기화 요초 좋은 물을 장복하매 환웅씨부터
세상 약 중 제일인 줄 알았고, 단군 왕검도 수시로 토끼간을 청하여 그때마다 떼어 드렸으니, 내간
탐내는 놈 하도 많아 간 붙은 염통 줄기째 모두 다 떼어내 청산 유수 맑은 물에 설설이 흔들어서
고봉준령 깊은 곳에 깊이깊이 감추어 두었는데, 천하 몹쓸 이 방정이 깜빡 잊고 그냥 왔으니 절통하기
측량 없나이다.
[용왕] 허허허허 --- 그놈 참 노는 것이 귀엽도다. 뱃속에 붙은 간을 무슨 수로 집어 넣었다 뺐다
하느냐, 너의 배에는 작크가 달린 모양이로구나.
[취발이] 네 이놈!어디 가밑 거짓말을 아뢰느냐. 네 죄는 만번 죽어도 그냥 남으리라.
[토끼] 허허허허 --- 대왕 위엄 천하에 떨쳐 하늘에도 올라가고 바다에도 들어가서 구름도 일으키고
단비도 내리신다기에, 천지간 모든 이치 다 아실줄 알았더니, 허허허 모든 것이 헛말이었구나. 사나이
죽음이 두렵지는 않으니 만일에 배를 갈라 간이 없으면, 폐하 목숨 어찌하고 부질없는 이 내 목숨 누가
부상하리이까? 그때는 이미 엎지른 물이요, 활 떠난 살이요.
[페이지] 037
버스 떠난 뒤 손들기니, 내 책임질 바 아니라, 마음대로 하시와 소인의 배를 가르소서, 허허허
폐하의 무식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요. 허허허.
[용왕] 이놈, 말버릇 봐라? 과인이 무식하다니? 이놈 사해 용왕중에 과인이 가장 유식한 걸로
자부하고 있거늘. 이봐라 토끼야, 과인의 어디가 무식하단 말인고?
[토끼] 미련한 별주부가 대사를 감추고는 , 벼슬준다, 계집준다. 술 준다. 해구신 준다 하고
유혹했으니, 소인 수중의 일을 어찌 알고 간을 가져올수 있었겠읍니까?
[별주부] 폐하, 현혹되지 마소서. 토끼간 출입한단 말 백과사전에도 생물도감에도 없사오며,
이치에도 부당하니, 배를 갈라 보아 간이 없으면 소신이 다시 양계에 나가 이번에는 짝으로 잡아
오겠나이다.
[토끼] 이놈, 그래도 정리를 생각하야 가만 있었더니, 네놈의 하는 거동 갈수록 괘씸하구나. 폐하,
요즘 양계에선 신선한 간 오염될까 두려워 간 내놓고
[페이지] 038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그런데 네 이놈 네가 뭘
안다고 촐랑대느냐. 폐하, 소신목숨 하나 없어지는 것은 조금도 한이 아니되옵니다. 여 있다. 배
갈러라(사이) 배갈러, 내장밖에 들은것이 없을것이다.
[취발이] (문어) 폐하, 어서 토끼의 배를 갈라 간을 드시도록 하옵소서.
[말뚝이] (거북) 아니, 아니되옵니다. 폐하, 현명한자도 실수할때가 있고 우매한 자도 잘하는 때가
있다하여 미친사람의 말도 가려듣고 어린아이의 말도 듣는즉 토끼의 말을 한번 믿어보는게 좋을듯
하옵니다.
[취발이] 폐하, 미친사람과 어린아이의 말을 들어 정사가 바로 잡힌일이 고금동서 어느 역사에
있었드란 말입니까. 어서 주저치 마시고 저 토끼의 배를 갈라 간을 듭시도록 하옵소서.
[말뚝이] 아니 아니되옵니다. 폐하, 만일 저 토끼의 배를 갈랐다가 간이 없으면 큰 낭패이오니 저
토끼의 말을 믿어서 배를 가르지 않음이 옳을듯 하옵니다.
[취발이] 뱃속에 간이 들었는지 안들었는지는 배를 갈라 봐야만 확인되는 일이옵니다. 갈라보지도
않고 이렇쿵 저렇쿵, 저런 무모한 일이 어디에 있사옵니까. 만일 배를 갈라 간이 없사오면 그때는
소신이 직접 양계에 나가 토끼를 두룸으로 엮어 오리다.
[말뚝이]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폐하, 저 토끼가 유괴된줄은 산중이 다 알고 있는데 어떤 골빈
토끼가 또 다시 오게 되리오리까.
[취발이] 폐하 거북이의 말은 천부당 만부당이옵니다. 거북이!네 이놈 넌 폐하께서 돌아가시기만
기다리고 있는거냐
[페이지] 039
[용왕] 내가 죽다니,
[취발이] 폐하, 폐하께옵선 어서 토끼의 간을 드시어서 옥체를 보존해야 될터인데 요핑계 조핑계
방해만 하려드는 저 거북의 모양을 보아하니 이는 분명 배후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가 하옵니다.
[말뚝이] 아니옵니다. 폐하, 저 문어야 말로 문초만 일삼으니 저 문어야말로 만고의 역적이옵니다.
폐하
[취발이] 폐하, 저 거북이야말로 밤낮 ---
[말뚝이] 아니옵니다. 폐하 저 문어야 말로 살상과 문초만 ---
[용왕] 휘이 휭이 시끄럽다. 아서라 그만들 둬라. 네놈들 둘이 이렇게 다투는 것을 보니 두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들이야. 에구 이 쓸개빠진 놈들 문어-
[취발이] 네
[용왕] 너는 너무 과격해, 거북이
[말뚝이] 네
[용왕] 넌 너무 우유부단해. 그러나 우유부단한 거북이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는 걸 보니 거북이
말이 조금 맞는것 같도다.
[말뚝이] 황공하오이다.
[취발이] 폐하, 차라리 소신의 목을 치실지언정 토끼를 용납치 마소서. 대관절 저 거북이는 ---
[용왕] 시끄러워. 너는 이젠 물러가. 토선생 선생앞에서 이 수중의 치부를 보여드려서 죄송하오이다.
토선생이야말로 산중의 은사이시고 충효가 겸전한 자이니 어찌 허언으로 과인을 속이리오.
[취발이] 폐하-
[용왕] 물러가래두
[페이지] 040
[취발이] 폐하, 오늘 여기 이 토선생 앞에서 수중의 치부가 드러남은 백번 부끄러운 일이옵니다.
허나 이 모든것이 저 미련한 별주부, 자라라고 하는놈이 일을 그르친 탓으로 해서 생겨난 일인가
하옵니다. 애초에 이 자라가 토끼를 데려올 적에 그 자리에서 배를 탁 갈라보아 뱃속에 간이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확인한 연후에 들쳐보아야 했을것을 그냥 데리고 온 탓으로 해서 이런 소란이 야기된줄로
아옵니다.
[용왕] 그것두 일리가 있다.
[취발이] 폐하, 그리고 소신이 최근에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저 자라라는 놈이 음험하여 용왕폐하
모시는 팔선녀 후궁들을 심심하면 꼬셔내어 온갖 재미를 다 보아서 용왕 폐하와 동서지간이 되어도
슷하게 되었다고 떠들어 대는 바입니다.
[용왕] 아니, 언제 저놈이 과인의 후궁을 꼬셔서 과인과 동서지간이 되었더란 말이냐. 육시럴
놈이로다.
[취발이] 내미럴 자라라는 놈 토끼간의 유무를 확인치 아니하여 국가대사를 그르쳤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국고금만 유용하여 수궁의 경제질서를 교란시켰고 용왕폐하와 동서지간 운운하여 폐하의 성체를
모욕한죄 만번 죽어도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용왕] 찢어 죽일놈이로다, 아이고 저놈을 어떻게 해야 과인의 속이 풀릴고.
[토끼] 폐하 소신 양계에 있을때 의학에 관심이 있어 웬만한 처방쯤은 자신 있사옵니다.
[용왕] 그래서?
[페이지] 041
[토끼] 평소 침식을 잊고 연마 하였던바 화타편작도 따르지 못한 비술을 터득하기에 이르렀사옵니다.
[용왕] 어서 핵심을 말하라.
[토끼] 소신이 양계에 나가 간을 가져 올때까지 일시 구급약으로 <<>> <<완배>>탕을 드시오면 간의
효력 또한 배가 되옵니다. 그러니 <<>> <<완배>>탕을 드시옵소서.
[용왕] 완배란?
[토끼] 완배탕이란, 자라탕이라고도 하는데,
[용왕] 옳도다. 인간세상 사람들이 자라탕 자라탕 할때부터 내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느니라. 그대는
미몽에 사로잡힌 과인을 일깨워 밝은 해를 보게 하였도다.
[취발이] 자라탕을 끓이랍신다. 여봐라!
[말뚝이] 아니되옵니다. 폐하 길잃은 양 한마리<<>> <<라도 불쌍히 여기사>>밝은길로 인도해야
하거늘 하물며 토끼 잡느라고 그 숫한 고생을 한 신하는 <<>> <<끓여>>잡수시다니 신하 삶아 먹은
몸으로 어찌 나라를 다스려 하시옵니까.
[취발이] 폐하, 거북이의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마소서. 소신이 최근에 알아본 바에 의하며는 저
자라라고 하는놈이 애초에 특사로 선발될때부터 먼 친척되는 저 거북이 놈에게 뇌물을 갖다 받친
사실이 백일하에 들어났아옵니다. 뇌물과 맞바꾼 저 따위 인도주의는 모두가 허황던 것이옵니다.
[용왕] <<뇌물 얘기는 덮어 두도록해라, 과인이 좀 민망해지도다.>> <<>>그리고 자라탕건은
문어안대로 집행하라.
[취발이] 예-자라탕을 끓이랍신다. <<>> <<무엇으로 상을 줄꼬? >>
[용왕] 여봐라. 풍악을 울리고 술상을 차려 우리 토선생을 위로하도록 하여라.
[말뚝이] 예-
[페이지] 042
(용왕, 취발이, 토끼 퇴장하고 별주부, 별부인 등장한다)
[말뚝이] 아-이일을 어이할꺼나 날이 밝으면 끓는물로 들어가야될 운명되었으니 앉으나서나,
자나깨나, 그저 앞길이 깜깜이라 자손대대루 부귀영화 누리려고 있는 재산 다 털어서 뇌물바쳐
토끼잡는 하청받아 큰 건수하나 잡는가 했더니 일이 역전되어 자라탕 신세 되었구나. 별주부, 마누라
손을 잡고 우는데 어찌 슬피 우는지 듣는 사람 애간장 죄 녹는구나.
[별주부] 금옥같이 귀한몸이 죽다니 웬말이냐.
[별부인] 당신이 만리타국에 나가 공을 이루고 돌아오게 되면, 재상벼슬 출세하여 그 영화 첩에미처
치맛바람 펄펄 날리며 온갖부귀 누리렸더니 자라탕 된다는 말 그 어인 운명이오. 아이고
패가망신하였구나.
[별주부] 풍파 많은 인생살이 자라탕이 웬말인고.
[별부인] 운다고 해결되오? 이런때일수록 마음 독하게 먹고 궁리해 봅시다. 내 토끼란 놈 보아하니
상냥하게 생겼거늘 우리부부 정성으로 빌면 육지부터 같이온 정리로 생각하여 반드시 측은히
여길것이오.
[별주부] 아스시오. 그놈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날 놈이오.
[별부인] 꼼짝없이 죽었오?
[별주부] 그럼 죽었지 별수 있곗오?
[별부인] 하나 남은 금비녀 뇌물하면 어떻소?
[별주부] 아이고 금비녀 억개라도 소용없오. 내가 거북이에게 뇌물 바친 것을 문어란 놈이 죄다 알아
버렸다오.
[페이지] 043
<<>>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별주부, 별부인 속삭인다. ) (별주부 퇴장, 별부인 탈을
쓰고 포장무대를 열고 들어가 얌전히 앉는다, 토끼를 기다린다, 취한토끼가 등장한다)
[토끼] 이때는 어느 떠뇨, 놀기 놓은 춘삼월 호시절이로다. 술 있고 미녀있고 춤 있고 풍악 있으니
이야말로 별유천지 비인간이라, 내 간 내어주고 살 수 있다면 평생 호강하며 여기에서 살 것을 ---
아니지, 내가 미쳤나, 간을 빼주다니. 석양은 재를 넘고 말은 슬피 울제, 불쌍한 용왕이 간 나와라
술을 부니, 한잔먹고 두잔먹고 삼석잔 먹고 거듭 먹고 일배 일배 부일배라. 팔선녀 밍니들이 눈을 들어
쳐다보니, 내마음이 흔글흔글하여 춤이나 출 수 밖에. (춤춘다) 어허 절수, 에라 만수, (앉아 있는
별부인을 발견하고) 아까부터 괴상한 냄새가 코를 퀴퀴찌르길래 무엇인가 했더니 저기 뭔가 놓여
있었구나 이게 도대체 무신 향내냐, (다가가서) 네가 도대체 무엇이냐? (별부인 움직이자, 토끼 깜짝
놀라 물러서며) 허, 그거 고이하다. 저게 도대체 뭐람, 오오라, 이제야 내가 알겠다. 울긋불긋한 것도
보이고, 번득번득한 것도 보이고, 희득희뜩 번들번들하기도 하니, 바로 골빈 용왕이 산호, 호박, 진주,
구슬, 수중 보화를 선물로 보낸 것이로구나.
[페이지] 044
(가까이 간다, 별부인 고개를 든다) 이게 살아있는 귀신이냐, 머리가 길쭉한게 --- 도대체 네가
사람이냐 짐승이냐, 아니면 그 밖의 다른 거냐, 오라 이제야 알겠다. 자세히 보니까 네 몸에다 비단
저고리, 치마 걸쳐 입고 머리를 쪽을 져 금비녀 꼽고, 얼굴에는 연지 곤지 발랐으니 여자가
분명하구나, 그러고 보니까, 네가 바로 용왕 하명받아 수청 들러 온 수궁선녀 중의 하나로구나,
그렇냐? 그렇다면 어서 일어나 내 품에 안겨라. (여자, 꼼짝 않는다) 왜 싫어? 오라, 그러고 보니 네가
팁을 잔뜩 바라는 모양이로구나. 옛다, 돈 받아라. (돈을 준다) 그래도 싫어? 야아 그놈의 계집 지독두
하구나. 그럼 너는 거문고도 없고 글도 없고 구실도 없고 하니, 깨끼리 춤으로나 얼러보자,
-송구영신이 분명쿠나. (춤춘다, 여자도 일어나 어울려 춤춘다. 잠시후) 그런데, 어럽쇼 --- 네가
분명코 어느 여염집 유부녀가 아니냐? 이게 어이된 일이며 너는 어인 여자냐? 허, 말을 해봐라. 그럼
내가 이 집을 잘못 들어온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네 남편한테 맞아 죽기전에 어서 달아나야겠다.
(여자, 고개를 흔든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이냐? 저녀석 눈치도 없네, 그래가지고 오입질을 어떻게
하노.
[취발이] 부녀니까 부끄럽고 창피해서 말을 못하지.
[페이지] 045
[말뚝이] 아, 그거, 남편 자라탕 안되게 하려고 수청 들러온 별주부마누라다.
[토끼] 그러고보니 별주부 마누라구나. 내 그놈을 기어코 자라탕 만들어 분을 씻으려 했더니 객지
춘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구나.
[말뚝이] 재미나 실컷 보구 별주부 살려주면 되지.
[토끼] (여자를 보며) 그런데, 어렵쇼. 별 여자 다 봤네. 외간 남자 보고서도 얼굴이 사색이기는
커녕 뺨은 불그죽죽, 눈을 초롱초롱 희색이 만면하니, 이건 어인 일이냐.
[말뚝이] 저 여자 벌서 토끼한테 홀딱 반한 모양이야.
[토끼] 에라 모르겠다. 기왕 엎질러진 물, 별주부 하나 살린들 어쩌랴, 마누라 바친 그놈 정성
갸륵하기도 하고, 선심 써서 육지 갈때 안전하게 나를 태워다 주게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제. 수궁에
와서 밑천 본전 몽창 다 뽑는구나, 그러고 저러고 또 한번 본격적으로 놀아보세.
(별부인, 이번에는 황홀한 자태로 겉옷을 벗는다)
[별부인] 둥둥둥 내 사랑아, 어허둥둥 내 사랑아, 저리 가거라 뒤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빵긋 웃어라 입속을 보자. 나와 내가 만난 사랑, 어찌 아니
다정하리. 사랑사랑 사상이야. 남창 서창 노적같이 담불담불 쓰린 사랑. 너른 바다 물결처럼 굽이 굽이
깊으고 청평호수
[페이지] 046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2층 3층 쌓인 사랑, 가뭄 위의
빗발처럼 하늘위에 깨친 사랑 동방 화촉 오늘밤에 너와 나와 서로 만난 이 사랑이야. 호걸 낭군 내가
되고 절대 가인 네가 되니, 내 아니시면 내 아내 네가 나고 내 나고 너 나니, 어허둥둥 내
사랑아!여봐라 춘향아
[말뚝이] 야 이놈아 춘향이가 어디 있나 그거 암자라다.
[취발이] 그러고 저러고 날 밝았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토끼]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이거 먼 길 떠날 놈이 밤을 꼬박 새워 회포를 풀고 말았으니
피곤해서 큰일났다
[악공] 별부인도 나를 봅소, 이별할때가 되었으니 이별가나 해봅소.
[별부인] (탁을 벗으며) 첩은 이미 삼강오륜의 죄인이 된몸 어찌 얼굴을 들고 뻔뻔스레 노래를
하리까?
[말뚝이] 부인 심정 다 알고 있으니 어서 노래나 부르소.
[별부인] 나는 이제 토끼의 사람이 된 몸, 만나자 마자 이별이라니 이게 어인 말이요. 이별이야
이별이야, 임과 나와 이별이야. 인제가면 언제 올꼬, 오만 한을 일러주오, 배 띄워라. 배띄워라.
만경창파에 배 띄워라, 새벽서리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럭아 가지마오 가지마오, 이별일랑 두고
가지 마오. (별부인 토끼의 손을 잡고 운다)
[페이지] 047
[토끼] 울지마오, 울지마오 그대 설움 그러할때 내마음은 어떻겠소.
[별부인] 차라리 이번 길에 날 데려다 주소서. 이 캄캄하고 답답한 수중세상,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밝은해 밝은달 밝은 세상 서방님과 함께 나가 깊은 산골에 초가삼간 지어, 오손도손 아들낳고 딸도
낳고 영원히 살고지고.
[토끼] 너무 애통해 하면 예쁜 얼굴 상하나니 부디 몸 잘 살펴, 내 간 갖고 오는 날 기쁘게
만납시다.
[별부인] 첩의 팔자 기구하여 부모는 일찍 여의고 15세에 주부를 만나매 품성이 강악하기로 금술이
부족하여, 이 내 설움 붙일곳이 전혀 없어 남로르게 옥황께 빌었더니, 하나님이 보우하사, 천금같이
귀한몸, 풍채 좋은 토끼 낭군 내려주셔 하룻밤을 지냈으나, 국가대사 사정없어 이별하게 되었으니
혈기로 생긴 몸이 이리 슬프고 저리 슬프네. 이몸 죽어 일백번이라 고쳐 죽어도 서방님을 못 잊을사,
부디 어서 돌아오시와 불쌍한 첩의 신세 한시라도 빨리 건져 주심을 천만 바라옵니다.
(토끼, 별부인 퇴장)
[페이지] 048
[장] 제4장
(취발이 등장)
[취발이] 저 동쪽 하늘이 거무스름하게 흐려들어오는 것을 보니, 소나기라도 한줄기 할 것 같다.
광대짓도 힘든지라 목이 쉬고 어꺼도 뻑적지근하다. 그러나 보아허니, 그놈 토끼전 얘기가 아무래도
수상하렸다. 그저 간단히 별주부 충성, 하늘이 도와 영약을 주어 용왕살고 토끼 꾀 잘 써 살고 별주부
충신 되어 다 잘 먹고 잘살게, 누이 좋고 매부좋게 끝을 맺으면 되는 걸 가지고, 이건 유부녀 탈선을
조장하지 않나, 진짜 충절 충신들을 개새끼 취급허지 않나 --- 내 건전하고 양식있는 시민으로서 가만
있을수가 없다. 또 이놈 배배 꼬는 심성 보아허니 이익 반분하자는 얘기, 나중에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기 십상이라. 지금까지 일한 개런티를 달라 해서 받아가지고는 삼십육계를 놓는것이 상수중에
상수렸다, 암, 틀림없지, 말둑이 그놈 막판에 가서는 별주부를 자라탕 만들듯이 취발이를 취발이탕
만들어 좇으려고 할 게다. 이놈 말뚝아!
[말뚝이] (튀어나오며) 얼수 어어, 이놈들이 궁상스레 어느 시러배 아들놈 들처럼 말뚝인지
개뚝인지, 제 의붓애비 부르듯 부르는구나 어쨌든 말뚝이 문안드리오.
[취발이] 이놈아, 내가 불렀다.
[말뚝이] 난 또 누구라고, 옛날, 개잘량에 소다리 반 하는 그런 양반이 부르는 줄 알았네.
[취발이] 네놈도 근본은 못 속이는구나.
[페이지] 049
[말뚝이] 그래, 왜 불렀냐?
[취발이] 나 그만 둘란다. 어서 돈이나 다오.
[말뚝이] 돈이라니?
[취발이] 내 이제껏 광대 노릇한 거 개런티를 내놓으란 말이다.
[말뚝이] 어허, 그놈 --- 그렇담 일 다 끝나면 줄께.
[취발이] 지금 당장 내놔라.
[말뚝이] 그놈 제정신이 아닌 모양일세. 그렇다면 한번 혼나 봐라. 이건 쇠망치로 바위 깨는 일할때
익힌 솜씨다. 불덩이 같은 쇠망치로 바위덩이를 깨뜨리고(요란하게 춤추며 취발이 앞으로 가서 그의
이마를 탁 때린다)
[취발이] 아하, 이거 희한하구나, 역발산 기재세하는 취발이 삼십평생에 매라는 말만들었지 못
맞아봤는데, 이거 오늘에야 내가 임자를 만났구나. 이놈이 내 분통을 터뜨려 놨으니, 내 옛날 탈춤할
때 중놈 쫑아내던 솜씨나 한번 맛봐라. 금강산이 좋단 말을 풍편에 넌짓 듣고(타령에 곱사위 깨끼리,
말뚝이와 대무하다가, 그의 이마를 탁 친다)
[말뚝이] 이크, 이게 웬일이냐, 내가 약을 파느라고 상기가 되어서 얼굴이 지지벌거니까, 남산의
독수리란 놈이 꾸미자판인 줄 알고 넘나드는 모양이구나, 잘못했다간 얼굴 잃어버리겠다. 옳지,
이번에는 퇴직금 떼먹은 사장님 혼내주던 춤으로 이놈을 당장 쫑아내도록 하자. (요란하게 춤춘다)
[용왕] 야야 너희들 안할거야?
[페이지] 050
[말뚝이] 아차, 이거 내가 흥분했던 모양이로구나. 아, 취발아.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우리
개인감정은 누르고 어서 끝이나 맺자.
[취발이] 니 사정이지 내 사정이냐? 혼자 해봐라.
[말뚝이] 지금이 그럴 때가 아니래두. (문어 가면을 건네주며)
[악공] 손님들도 지루해하셔, 빨리 해.
(어물쩡거리는 취발이를 끌어다 용왕앞에 앉히며) 문어 노릇하면서 계속 충신 하는거여, 절개를
굽히면 안된다.
(토끼, 별주부 등장한다)
[토끼] 폐하, 아뢰올 말씀은 다름이 아니오라 어제 사뢰온 자라탕 건에 관한 것이옵니다. 밤을
지새우며 곰곰 생각하본즉
[용왕] 어서 말하라, 과인에겐 경밖에 없도다.
[취발이] 폐하 어서 별주부를 죽여 자라탕을 드시옵소서
[토끼] 별주부로 말하면 만리타향에 정성을 다하여 공을 이루고 돌아왔거늘 표창을 아니하시고
도리어 죽이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으며
[취발이] 폐하 막대한 국고금만 유용하고 돌아온 저 자라놈에게 무슨 표창이 가하오리까 오서 죽여
자라탕을 드시옵소서
[토끼] 공신 별주부를 죽여 탕으로 드시오면 백성들이 여론 나빠진건 물론이고 사세 몹시 절박하게
되어 민심을 잃을것이 뻔하오니
[취발이] 폐하 여론에는 개념치 마시고 어서 자라탕을 드시옵소서
[용왕] 안먹어, 토선생 과인도 밤새도록 자라탕을 먹을까 말까 고민을 했었노라 토선생이 다시한번
과인의 우매함을 깨우쳐 주었도다. 그럼 대신 무얼 먹으면 좋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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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토끼의 간을 보다 잘 소화 흡수하시려면 양질의 단백질을 따를 께 없아온대 단백질로는
연골동물이 최고 이옵니다.
[용왕] 연골이라. 내 성골 진골을 들어봤어도 연골이란 말은 금시초문 이로다.
[토끼] 연골동물을 열거해 볼작히면, 오징어, 낙지, 꼴뚜기, 죽게미
[용왕] 가만, 그렇다며는 이 문어두 뼈가 없는 흐물흐물이 아니냐?
[토끼] 연골중에서도 최상급이옵니다.
[용왕] 옳도다, 내 요놈, 평소 시끄럽게 굴어서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했었노라.
[말뚝이] 여봐라, 초고추장을 마련하고 저문어도 푹 삶으랍신다.
[취발이] 폐하 종묘사직과 억조 창생을 어찌하시렵니까.
[용왕] 그런거는 걱정안해두 돼, 뭘하고 있는게냐.
[말뚝이] 네에 여봐라, 이 문어도 푹 삶으랍신다. (끌고나간다)
[취발이] 이놈 토끼야, 내 혼령되되어 너의 뒤를 악착같이 따라 다니리라. 아니 날 진짜 죽일랴는
거냐, 이거 왜 이래, 이거놔, 네 배역은 다 끝났으니까 해고다.
[말뚝이] 넌 임마 처음부터 충신 충신 하는거 배알 꼴렸더니라 야, 임마 진짜 나라 진짜 사직
잘되라구 충성하는 충신 몇돼냐
[취발이] 혹세 무민하는 사기꾼아. 내 돈 내놔라.
[용왕] 뭐 하고 있어 데치지 않구.
[말뚝이] 예, 예, 알겠읍니다. 네 이놈, 냉큼 나가지 않으면 진짜로 끓는 물에 데칠란다.
[용왕] 주부는 들으라, 네 오늘 아침 자라탕이 되었으되 여기토선생이 간곡히 당부하여 살려주는
것이니 이번에 다시한번 양계에 나가 실수없니 간을 가져와야 하느니라
[별주부] 성은이 망극 하여이다.
[용왕] 과인은 토선생만 밑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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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별주부가 앞으로 나올때 용왕 휘장을 닫는다. 토끼는 자라의 등에 탄다)
[말뚝이] 이리하여 마침내 토끼는 죽을 목숨 살아나서 이 세상 산천을 다시 구경하였던 것이었다,
토끼, 진실로 그물 벗어난 참새이고, 함정에서 뛰쳐나온 범이로다, 고향산천 내버리고 헛된 영화
탐하다가 붉은 고기 한덩이로 용왕 진상 될 뻔했으니, 그 어이 감개무량치 않으랴. 토끼, 주부의 등에
올라앉아 물 위에 떠 육지가 가까와 오니 고국강산이 반갑고 좋을씨고, 즐겁고 기쁜 마음 참을 수가
없구나.
[토끼] 와하하하하, 와하하하하 ---
[별주부] 어찌 그리 심하게 웃소이까?
[토끼] 내 본개 풍증이 있었더니, 해풍에 오래 상한 바 되어 숙환이 재발한 모양일세.
[별주부] 금번 우리 둘이 공을 이루고 돌아가면 선생은 높은 벼슬을 차지할 것이니, 풍랑 여러번
동행한 정리와 부인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잘 보아 주시오. 또 간을 찾게 되면 내게도 오래 살도록 간을
한조각 주시오.
[토끼] 옳거니, 높은 자리 계실 떠 잘 봐달라 이거렸다, 염려말라. 자 다왔으니 내리도록 하자.
(내려서 주위를 돌아보며) 얼마나 그리던 고향산천이냐, 작작한 두견화는 향기를 띠었고, 얽숭얽숭
호랑나비 춘흥을 못이기어 이리저리 날아들고.
[별주부] 어디를 자꾸 가십니까?
[토끼] 간 가지러 간다. 이놈아, 보채지 말거라, 조패나무에 피죽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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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요. 방울새 쩔렁, 물태세 찌걱, 접동새 접동, 뻐국새 뻐꾹, 까마귀 꼴각,
비둘기 꾹꾹 슬피 우니 근들 아니 경일소냐.
[별주부] 심산 골짜기로 자꾸 들어가기만 하면 어떡하오?
[토끼] 이놈아 아직도 멀었다. 더 멀리 가야 내 뒷다리 네놈에게 물려바다로 끌려 들어갈 염려가
없제, 기괴한 바윗돌은 좌우에 층층한데, 절벽 사이 폭푸소는 이 골 물 저 골 물 합수하여 와탕탕퉁탕
흘러가니 경개 무진 좋을시고.
[별주부] 좀 쉬었다 갑시다, 다리 아파 더는 못가겠소.
[토끼] 쉴 필요 없다. 뭘 자꾸 귀찮게 따라오느냐. 이제 됐으니 가보도록 하여라.
[별주부]거 무슨 말씀이오?
[토끼] 그놈 생긴 대로 눈치 코치 없구나. 이놈아, 나보고 간까지 빼주고 썩을 대로 썩은 너의 나라
탐관오리 되란 말이냐? 네 이놈, 너에게 속은 걸 생각하면 네 뼈를 오드득오드득 씹어도 시원치 않을
것이로되, 수로 팔천리를 네 등에 타고 왕래한 정리를 생각하여 살려주니, 썩 꺼지거라
[별주부] 토선생, 토선생, 언제 그리 돌아버렸소? 제발 아스시오. 용왕죽고 나 죽고 삼족 죽어 쑥밭
될 소리 아예 그만두고, 정신 차려 계약대로 간 주소.
[토끼] 자구 귀찮게 간, 간, 하겄느냐, 간 소리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별주부] 간 쪼깨만 주소.
[토끼] 칵 죽어삐리고 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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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부] 어허, 이거 야단이로구나. 그럼 토선생 똥이라도 한 숟갈 주소. 신재효 본에는 똥으로
용왕병 고쳤소.
[토끼] 예끼, 이 지저분한 놈아, 내 똥은 더러워서 똥개도 안 먹는다. 똥이 그리 좋거들랑 네 똥
싸서 용왕 먹여 똥왕 만들거라.
[별주부] 자라똥 먹여 용왕 병 고쳤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오, 제발 살려주소.
[토끼] 이놈아, 잘 듣거라, 너는 수궁에 못 들어가고 물에서 방황하다가 객사할 상이니, 일찍
속차려서 벼슬 팽개치고 산속에 묻혀 명경지수처럼 살도록 해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얼씨구나
좋을씨고, 절씨구나, 좋을씨고, 반가워, 이 내 고향이 반가워, 노루 아저씨 평안하오, 소, 돼지, 사슴,
다람쥐, 잘 있었나. 벼슬하기 원치 말고 이민 갈 생각 부디 마소, 우리 마을 우리 손으로 살기 좋게
가꾸고 합심하여 싸우세, 용왕 속여 이긴 내 꾀 호랑이쯤 자신있네, 여보소들, 토끼 이제 철들어
왔다네. (퇴장)
[별주부] (망연히 있다가) 에고, 에고, 주부신세 슬프도다, 출세 충효 부귀 영화 쌍무지개 잡으려다
절벽에서 떨어지니, 파란많은 자라생에 여기서 끝났구나. 무슨 면목 여분 있어 용왕 보고 부인 볼까.
미련한 놈 별주부여, 우둔할손 용왕이여, 그나저나 나나 너나 안타깝고 부끄럽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혼백조차 없어져야, 세상에 욕된 이름 지울 수가 있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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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잔소리 말고 이왕 나왔으니 토끼 온 후의 산중 세상 장면이나 다시 꾸며보세. 꼭둑각시 무대등장
이시미 (소위 가면을 들고 소가 되어 ) 음매-
[토끼] 음매-웬일로 그리 슬피 우오?
[말뚝이] (소) 내 새끼 송아지가 아들로 태어나서 기병으로 등록되고 군적에도 올라가서 세금으로
몇백냥 실히 물어야겠기에 그놈 생식기를 내 손으로 잘랐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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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공]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
[말뚝이] 살아생전 쟁기 매고 독한 채찍 모진 발길 수도 없이 매를 맞어 이제는 늙을대로 늙어
죽을날만 기다린다오.
[악공] 마음 굳게 잡숫고 남은 여생 보람있게 지내야지. 도덕 교과서마다 주인 위해 몸바친 충의
귀감으로 당신을 기리니 그 아니 좋은 일이리요.
[말뚝이] 끼니마다 젖을 짜서 몸을 바싹 말려놓았으니, 죽지 못해 사는 목숨이라, 참 좋은 일이외다.
(포장무대 쪽으로 비틀비틀 갈때, 휘장 열리며 호랑이 얼굴을 내민다. 오른손에는 이시미 인형이
입을 딱딱 벌리며 요동친다)
[취발이] (돼지) 꿀꿀꿀 ---
[악공] 댁은 왜 그리 힘이 없소?
[취발이] 돼지 사료값이 올라 며칠째 피죽 한그릇 못 얻어먹어 힘이 없소.
[악공] 떨기는 왜 떠오?
[취발이] 보이는 족족 도살하니 무섭제. (포장 앞으로 비칠거리며 갈때, 휘장 열리며 호랑이
나타나고, 이시미 인형 , 돼지를 물어 포장 안으로 사라진다. 휘장 닫힌다)
(말뚝이<사슴>등장한다)
[페이지] 057
[악공] 댁은 선녀들과 놀던 사슴 아니오?
[말뚝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오.
[악공] 슬픈 일이 있소?
[말뚝이] 기화요초 산중간에 구슬 같은 이슬 마시며 한가롭게 살았더니, 힘없는 우리 족속
맹수로부터 보호해 준답시고 울타리에 가두고는 가보로 물려받은 귀중한 우리 녹용 수시로 잘라 가니,
이 어이 슬픈 일이 아니겠소?
[악공] 듣고 보니 슬프구료.
[말뚝이] 그래 내가 대표로 우리 족속 억울함을 하소연하러 산군께 가는 길이라오. (포장 앞으로
간다, 휘장 열리고 호랑이 나타난다 이시미 인형, 사슴을 잡아 포장안으로 끌어들인다)
[호랑이] 다른 족속 땀흘려 고생하는 데도 너희들은 특별히 편케 해주었더니, 욕심이 한이 없구나.
(휘장 닫힌다) (취발이<다람쥐>등장한다)
[악공] 그렇게 달방거리며 어디로 가오?
[취발이] 다람쥐 인생 달방거리는 게 당연하지.
[악공] 주위를 살피는 걸 보니 무슨 사연 있나본데 말해 보소.
[취발이] <<우리 이웃 다람쥐들이 철창 속에 들어가서 쳇바퀴를 돌리면서 자기 세상인것처럼, 온통
먹고 마시면서 자유세상이라고 날뛰며 살아가니 이 아니 한심하오? 내 그들을 만나 그 쳇바퀴가
노예사슬이라는 것을 똑똑히 깨닫게 하여 세상을 바르게 보도록 하겠소.
[악공] 쳇바퀴를 부수고 참자유를 찾아라-거 좋지.>> <<>>
(토끼 포장 앞으로 갈때, 휘장 열리고 호랑이 나타난다)
[호랑이] 너 같은 약골이 말많은 산중 선비라니 우습고나. 아나, 어디 내 목을 졸라보렴. (이시미
다람쥐를 물고 들어간다)
[페이지] 058
[말뚝이] (쫑기듯 들어오며) 노루 살려주세요.
[악공] 노루양반, 여기는 괜찮으니 한숨 돌리시오. (토끼 등장한다)
[토끼] 부자들은 한평생 풍악이나 즐기면서 흙 하나 물 한방울 안 묻히니, 다같은 백성인데 우리만
쫑기는고. 아전들이 덮쳐간 마을마다 들판마다 병들고 굶주려서 죽은 시체뿐, 채찍질 호령소리 끊이지
않아, 애끓는 통곡소리 하늘로 치솟는다. (눈물 철철 흘린다)
[악공] 거 토끼 아닌가?
[토끼] 어떻게 나를 아오?
[악공] 수궁 가서 개판 치고 용왕 속여 무사히 살아온 꾀많은 토끼 얘기, 짜하게 소문나서 세살 먹은
어린애도 다 알지.
<<[토끼] 우리 이웃들이 다 잡혀먹혔는데, 철없이 수궁 따라간 내가 부끄럽소.
[악공]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웃들을 구해야제.
[토끼] 마음 독하게 먹고
[악공] 발길로 차고
[토끼] 발길로 차고
[악공] 주먹으로 내지르고
[토끼] 주먹으로 내지르고
[악공] 대갈빼기로 들이받고
[토끼] 대갈빼기로 들이받고
[악공] 돌진-!
[토끼] 돌진(포장 앞으로 돌진할때, 말뚝이 만류한다. 휘장 열리고, 이시미만 입을 딱딱 벌리며
요동친다)
[악공] 혼자 돌진하면 잡아먹힐 건 뻔한데, 뭐하러 가나?
[페이지] 059
[토끼] 그럼 어떻게 하나?
[말뚝이] 꾀를 써야지.
[토끼] 용왕 속였던 꾀는 있지.
[말뚝이] 산중 동물 합심하여 한꺼번에 달려들어야 호랑이가 꼼짝 못하제.
[토끼] 옳지 그거로구나. 고맙소. (퇴장한다)
(휘장 닫히며 이시미 사라진다)
[말뚝이] 이제 수궁으로 시선을 돌려보렸다. 불쌍한 별주부 마누라, 토끼와 이별한후 달콤했던
하룻밤을 잊을수가 없어. (별부인 등장)
[별부인]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열흘 가고 한달 가고, 날 가고 달 가고 해가 지날수록 임생각 뼛속에
사무친다. 임과 함께 있을 때는 밤이 짧아 한이더니, 임이 떠난 후는 밤도 길어 원수로다. 늠름한
풍채에다 속삭이던 사랑, 말씀 무심코 앉았다가 귀에 들려 놀래키니, 꽃이 피어도 임생각, 저 쑥국새
쑥국쑥국 울어도 임생각, 앉어 생각 누워 생각, 이 생각 저 생각 그칠 날이 없어, 모진 간장 불에 타니
어느물로 이 불 끌까, 가련하다 이내 신세, 육지 가신토끼 서방 출세하여 높은 벼슬, 결혼하여
부귀행락 하실때에 보는 것이 미인이요, 듣는 것이 풍악이다. 천리 수궁 소첩 생각 손톱만큼 하여
줄까, 얄미운 토서방아, 수이 감은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여자 죽어 오뉴월에
서릿발이 되기 전에 불쌍한 나의 한을 시원하게 풀어주소(퇴장) <말뚝이가 문을 닫아준다>
[말뚝이] 날이 갈수록 피골이 상접하여 마른 장작 타들어가듯 바작바작 여위고 불안 초조에다
싱숭생숭, 자나깨나 우울하여 눈앞 몽롱하고 밥맛 없고 생리불순에다 기운 쇠잔하야 움직일 기력
없으니 이른
[페이지] 060
(신하1) 부인은 일찌기 벌써 가문에 출가한 후에도 시어머니를 모시되 예절이 있고 더 공경하며,
남편의 집안을 화목하게 하되 더 후하게 하더니,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날이면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 물가에 나가 앉아 노래로써 남편을 기다렸다 하옵니다:(용상 등장한다) 그 노래의 애통함을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애처로와,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오니 폐하께서는 들어보소서,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내공하, 당신은 물을 건너지 말아요, 당신이 물을 건너다가 빠져
죽으면 당신은 어이하십니까?
[호랑이] 토끼 그놈이 수궁가서 잔꾀로 용왕 속여 살아왔다는 소문이 정말이냐? 내 일찌기 용왕의
위엄이 사해에 떨쳐, 그 위명듣고부터 존경하는 마음 그득했던 터라, 토끼의 죄 만번 죽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로다.
[별주부] (신하2) 부인은 지아비가 실종되자 목을 매어 자살하고자 했으나 연로하신 시모를 모실
사람이 없어, 종신 소복을 입고 시모를 모시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채 식음을 전폐하였읍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며칠 수 마침내 죽었는데, 그 날이 바로 남편 별주부가 육지로 나간
날이었읍니다.
[호랑이] 어서 토끼놈을 잡아 그 간을 용왕께 보내드려 과인의 충정을 보이도록 하라.
[페이지] 061
아내가 지아비를 따르되 평생을 바꾸지 말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되 죽는 일이 있어도 둘을 섬길 수
없는 것이 옛부터의 도리요 대륜이나. 오늘날에 이르러 그 절개를 잃는 자가 종종 있게 되었습니다.
이럴때 습속을 일신하여 절의를 무겁게 받들어, 부도를 바로 잡으소서.
[호랑이] 토끼 그놈이 얕은 꾀로 수궁을 빠져 나온후, 산간의 영웅이 되어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와 작당해서 과인에 대항할 힘을 기로고 있다니, 그것이 정말이냐? 그놈이 진정 간덩이가
부었도다.
[별주부] (신하) 그 여자의 기특한 행실을 표창하여 마을에 정문을 세우소서.
[호랑이] 사냥꾼의 협조를 얻어서 그놈을 어서 잡아들이도록 하라.
(호랑이 탈을 벗는다. 다 죽어가는 용왕의 모습이 된다) (말뚝이, 취발이 용왕 쪽으로 몸을 돌린다)
[토끼] (신하) 자손 대대로 벼슬을 내리소서.
[용왕] 오호, 갸륵한 열녀로다, 무릇 여자란 삼종의 의가 있으니, 집에 있으면 아비를 따르고, 남의
아내가 되어서는 지아비를 따르고,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함이로되, 별부인 아들이 없으매
수절하여 죽었거늘 이 어찌 후세의 해와 달이 아니리요. 즉시 마을 어귀에 정문을 세워 후세에 길이
빛나도록 하라. 또한 충신 별주부의 충렬비를 세우되, 북해용궁 제일 충신 수궁좌랑 별주부공후라
각판하고, 그 자손을 대대로 수궁벼슬을 시키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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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시작]
서러워라 우리 인생
어디가서 살겄는가
이 내 한숨 산을 넘고
네 울음은 물로 온다
어화 넘자 바다를 넘자
어화 넘자 저 산을 넘자
산군놈 보내고 에헤 에헤
용왕놈 보내고 에헤 에헤
산통일 하여라 어화 넘자
물통일 하여라 어화 넘자
[노래끝]
(상여 사라지면, 엎드려 있던 악공들 일어난다)
[악공1] (머리를 긁으며) 제기럴, 분위기가 엄숙해서 엎드렸더니, 이거 아무래도 속은 거 같은걸.
(자리에 가 앉는다)
[악공2] 별부인이 열녀라니, 세상 참 웃기는구나(자리에 앉는다)
[취발이] 그러고 보니 내가 속아도 보통 속은게 아니로구나. 야, 이놈 말뚝아!(말뚝이를 차며) 너,
마지막까지 나를 우롱할 셈이여? 별부인이 갈보지 어떻게 열녀냐?
[말뚝이] 허, 그놈 참 모르면 좀 배워라. 바람난 과부 딸 애비가 우물에 암매장시켜 소문 없애고
열녀 만들기, 호적 지워 몰래 시집 보내고 죽었다고 장사 지내 열녀 만들기, 눈앞에서 어린 자식들
작두에 목이 잘려도 정조 지켜 미쳐버린 아녀자 열녀 만들어 표창
[페이지] 064
하지. 그거뿐이냐? 양갈보, 왜갈보, 청갈보, 똥갈보, 그것들 다 열녀이니라. 출세도 그런거고 훈장도
다 그런거여.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는 법이라니까.
[취발이] 호랑이는 죽은거냐 산거냐?
[말뚝이] 야 이놈아!그런 건 좀 알아서 기어라!그거까지 말해줘야 하니?
[취발이] 네 놈 얘기 더 듣다간 내 머리까지 이상해지겠다, 잡담 제하고 이놈아 돈 내놔라!(잡아
끌며) 어서 매표구에 가서 표가 얼마나 팔렸는지 계산하자.
[말뚝이] 그놈, 설사가 나오나, 급허긴 --- 이놈아, 우선 인사나 올올려야 할거 아니냐? 너도 어서
인사나 올릴 준비해라.
(차례로 나와 인사 채비 차린다. 제일 끝으로 토끼 등장한다) 토서방 이리 오시우. 그래 어떻게
했길래 우리 호랑이 산군님이 그 지경이 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