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참가하는 전라도 대회! 새벽 3시 40분 출발!..이라는 압박감에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수많은 마라톤 투어에 참가했지만 전날 출발하거나 오전 5시 이후 출발은 많이 해보았지만 이렇게 일찍 출발하기는 처음이다. 저녁 8시부터 잠을 청했지만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마침 잠비아와 축구 중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축구 시청에 들어갔다. 에라! 축구 보다가 경기 끝나면 바로 출발이다. 그런데 이런! 축구 시작 10분이 경과되기 전에 벌써 2:0이다 갑자기 설설 끓기 시작하는 성질에 잠은 완전히 달아났고 그야말로 뜬눈으로 날샜다.
새벽 3시 30분 버스에 올라서자마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맨 앞줄에 송고문님을 위시해서 정원대, 김형광, 박인환님등 에이스급들이 포진하고 있다, 출발 전부터 대회에 참가하는 자세가 다르다. 조금 뒤편에 준에이스급 권영운, 김재문, 박만호, 김길영님(이분 왜 뒤로 빠졌을까?), 그 뒤를 이어 보스톤이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최정권님, 동수팀장 이태재님, 차세대 에이스 엄재영님, 후미는 변명인지 신조인지 모르겠지만 “ 마라톤은 기록이 아니고 즐기는 거야! ”를 항상 외치는 낙엽줄을 대표하는 신병삼, 모두들 마라톤 투어의 단골들이다.
잠시 눈을 붙이고 했는데 버스가 휴게소에서 멈추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앞으로 갔지만 식당 앞의 긴 행렬에 아침도 포기하고 재문 형님 도시락에 빈대 붙었다. 다시 출발, 거의 4시간이 지나 8시경에 소호 공원 아래 대회장에 도착, 긴 언덕을 올라 거창한 디오션 리조트에서 락커 키를 수령하고 경기복으로 갈아입고 출전 준비를 한다. 제법 쌀쌀하지만 지난 주의 혹한에 비하면 한결 포근한 것 같다. 컨디션 좋고, 날씨 좋고.. 만사 Gooooooood!
지난 연말 심한 감기에 설사를 만나 2주간 단 하루도 뛰지 못했다. 특히 꼭 뛰었어야만 했던 1월 1일의 신광일원 30Km를 놓쳐서 왠지 불안하고 걱정이 앞선다. 또한 작년 경주 동아대회에서 40Km지점에서 나를 추월했던 최정권님에게 농담 삼아 이번 대회에서 일합을 겨루자며 큰소리 쳤지만 이제 완전히 꼬리를 내려버렸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대회 1,2주 전에 본의 아니게 연습이 부실했던 대회에서 이상하게 기록이 좋았다. 그렇다 마라톤은 경험이다. 오늘 감 조....타!, 국내 최대의 난코스에서 4시간? or 4시간 30분? 에라 되는대로 달리자. 일단 초반은 4시간 페이스로 최정권, 엄재영님과 최종 합의했다(사실 마라톤에서 합의는 아무의미가 없다) 그 이후의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드디어 출발!
4시간 페이스를 따라 행렬 뒤에서 달리기 시작하는데 앞서가는 선수들이 6~7백은 되어 보인다. 2킬로쯤 지나 앞을 터-억 가로막는 급경사! 가뜩이나 언덕에 약한 사람 기죽이기에 충분하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 다 올랐나 하는데 다시 구불어져 이어지는 언덕......고난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사실 그것 보다 심한 경사의 언덕을 6-8차례 더 올라야 했다. ( 몇 번 올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나의 언덕을 올라서면 긴 내리막, 내려서자마자 또다시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역시 국내 최대의 난코스라는 명칭이 빈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르막을 숨을 헐떡이며 치고 올라서기를 몇 번하고 나니 이제 서서히 적응되기 시작한다. 이제 약한 경사의 코스는 오르막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 특히 내리막에서 호흡 조절하면서 가속을 붙이면 스피드에서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Km당 거의 5분 속도를 계속 유지했다. 이제 호흡도 안정이 되면서 주변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주 참가했던 호미곶 대회의 풍광도 일품이지만 여수 대회의 코스도 이에 못지않다. 까마득한 언덕을 올라 기분 좋게 내려서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응원해 주시는 마을 어르신네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마을에 무슨 신나는 일이 있을까 마는.....
이 차가운 날씨에도 동네마다 모두들 나와서 생수, 막걸리, 심지어 어묵까지 준비해서 마치 오랜만에 찾아오는 자식들 마냥 반겨주신다. 남도의 정이 이런 것인가?
9Km 지점에서 벌써 하프 선두 주자가 반환점을 돌아 질주한다. 요즈음 대회마다 우승을 놓치지 않는 울진군청의 장성연씨다. 뒤를 이어 5위권에 우리의 호프 송준칠 고문이 역주하고 있다. 환갑을 앞둔 사람이 30대의 선수출신 젊은이와 어깨를 겨루며 뛴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사실이다. 그 뒤를 이어 박인환 훈련부장님 이 “파이팅”하며 격려해주며 앞서 간다.
첫 출발은 4시간 페이스를 따라갔지만 10Km 지점에서 3시간 45분 페이스를 만났고 반환점까지 거의 Km당 5분 이내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반환하기 전 마지막 긴 내리막을(거의 2Km) 내려오면서 반대로 올라 올 때를 상상하니 아찔했다. 정원대 훈련부장이 가장 먼저 맞은 편 오르막을 힘차게 치고 올라간다. 이어서 권영운님이 편안한 표정으로 마주치고 지나가고, 뒤를 이어 힘 좋은 김재문님이 보인다. 오늘은 약간은 지쳐보였다(도시락 찰밥 빈대쳐서 아침식사가 부실했나?). 반환점을 거의 돌아서기 직전 3시간 30분 페이스와 맞추쳤다. 약간은 오버 페이스라는 생각에 반환점 부근에서 잠시 휴식? ( 제공되는 어묵 맛이 너무나 기가 막혀 2그릇을 그 자리에 뚝닥하고, 초코파이, 바나나까지 포식하면서 간단한 스트레칭까지 하고나니 5분 경과)
이제 남은 반을 달릴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하고 긴긴 오르막을 치고 올라간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오르막을 치는 요령이 이제 완전히 숙달이 되었다. 힘을 아끼면서 오르막을 서서히 치다가 오르막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보폭을 약간씩 크게 하면서 힘차게 올라가서 그 여세를 몰아 내리막을 치고 내려가면 평지를 뛰는 것보다 스피드의 감소가 거의 없거나 아니면 오히려 올라갔다. 특히 이러한 주법으로 오르막 끝나는 지점에서 지쳐서 호흡을 가다듬는 수많은 주자들을 제쳤다.
하지만 30Km 지점에 이르자 서서히 처지기 시작한다. 아마 훈련 부족 때문이리라. 이를 악물고 고개를 넘어서고 내려서기를 몇 번하고 나니 37Km 지점, 이제 5Km만 가면되는데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고갯마루에서 3시간 45분 페이스가 내려오고 있다. 조금 전에 받은 파워젤을 먹고 잠시 걸었다. 이제부터 오르막은 걷고 내리막은 달리는 양상이 계속되었다.
마지막 언덕을 올라서자 갑자기 출발 전에 한 최정권님과의 약속이 생각났다. 이번 대회에서 일합을 겨루자고 큰소리 친 것이 마음에 걸려 계속 뒤를 보았다. 저 멀리서 4시간 페이스와 함께 최정권님이 씩씩하게 달려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걸어서 내려오다 다시 뛰었다. 무릎에 통증이 왔지만 큰소리 쳤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황이 급해졌다. 마지막 1Km는 힘들어도 걸을 수가 없었다. 결승 아치를 바로 앞에 두고 사회자가 “3시간 50분이 지나갑니다” 라는 멘트가 나왔다. 아깝다. 3시간 50분 24초. 이번 대회에서도 역시 우리의 천사 박선생님은 사진 촬영을 위해 하프코스만 뛰고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 라이벌 최정권님은 아슬아슬하게 sub-4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힘좋은 엄재영님은 페이스 메이커로부터 후반 탈진 현상을 깰 비책을 전수 받았다고 좋아한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최대의 난코스에서 최근의 훈련량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기록은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임을 자부한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박인님의 재치 있는 사회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울산 출신의 전국구 여성 마라토너 김영희 (이번 대회 4위 입상), 박나래(온천마라톤 대회3연패)님을 알게 되어 영광이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여 뛰는 도중에 하도 힘들어서 다시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대회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다시 삼삼하게 떠오른다. 마라톤 대회 참가 자체가 고난을 자초하는 일인데 대회 코스가 좋은 코스인지 난코스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난코스 일수록 더욱 진한 맛이 우러나는 것 같다.
영원한 라이벌 정권씨 다시 한판 더...........콜?
첫댓글 후~~아.대단히 수고많으셨습니다..생생한 현장 보도..열기가 아직까지..후!!끈 달아오름을 느낌니다..저하고도 한판!!!콜~~~..ㅎㅎㅎㅎ피고회복 잘 하시고 주로에서 뵙겠습니다.씸~~~~~~~~~~~
용원씨 ....콜. 여름 영덕에서 한 번 더 풍......덩
저 멀리 남도까지 원정 가서,가는길,오는길 힘들었을텐데, 완벽한 정신무장으로 완주함을 축하 드립니다^^^
더군다나 섭4까지 , 몸 회복 잘하셔서 북구쪽에서 함 도킹해서 이슬이 한잔 걸칩시다 , 큰박수소리를 보냅니다,ㅉㅉㅉㅉㅉ !!!!
태헌님 고성 대회에서 좋은 결과 기대합니다.
대회후기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윤이사님

난코스에서 3시간 5분이면 올해 sub-3 10회는 문제 없겠습니다.
윤동철 선생님의 조언 덕분에 여수대회 무사히 완주할수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재영님 이제 단점 극복하시고 남은 것은 sub-3밖에 없습니다.
윤선생님, 후기를 보니 내가 달리는듯 삼삼하네. 나에게는 마라톤이라는게 이제 아득한 꿈처럼 여겨지는게 언제한번 풀 달려볼까... 하는 생각만, 회복 잘 하시고, ...힘
선배님 마라톤 투어 버스에서 그 구수한 입담을 언제 또 들어볼 수 있을까요?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즐거움을 남겨주는 여행후기 였습니다. 피로회복 잘 하세요.
전산 부장님 별고 없지요?.. 올해는 풀 한번 하셔야지요
윤선생님 생생한후기를 실감나게 중개방송하듯 잘보도 해주셔서 내가 달리는듯 싶었읍니다 멀리 남도까지 가셔서 힘차게 난코스를 무난히 완주한 모든회원님께 축하를 드립니다 수고하셨읍니다 피로회복 잘하세요...!!!!!!
감사합니다. 형님에 비하면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항상 배우겠습니다.
기획이사님 늦게나마 먼길 항구도시 전남 여수마라톤 투어기 정말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역시 당신도 이제는 기록을 떠나 이제는 진정한 마라톤 메니아 입니다 저도 글 솜씨는 없지만 언젠가는 참가기 한번 써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