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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모습 | 다양한 기억 |
| 내가 다섯살때까지 할머니네에서 같이 살다가 우리 가족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뒤로도 나는 우리집보다는 할머니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었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가 아파트로 이사하신 뒤에도 할머니와 종종 옛날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옛날 할머니네는 바로 앞이 바다였다. 그래서 썰물때가 되면 나타나는 길을 통해서 오강섬이라는 섬에 놀러가 할머니와 게를 잡기도했었고, 종종 갯벌 고인 물에 담겨있던 해파리들을 파리채로 들어다가 물에 담궈 독을 뺀 후 얇게 썰어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냉채를 할머니랑 바다 앞에 앉아서 먹기도 하고, 여름이 되면 아빠랑 바닷물에 들어가 놀다가 나오면 소금이 껴 하얗게 변한 팔을 엄마한테 자랑하다가 감기걸린다며 혼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할머니네 앞에 작은아빠들이 심어놓으신 꽃과 나무들 사이로 할머니가 횟집을 하시는 2층 건물이 있었고 그 옆으로 대문을 지나 들어가면 정원이 있었는데 가운데 흐는 꽤 큰 연못이 있었고 그곳에는 잉어 3마리가 항상 있었다. 그리고 연못 주위로 꽃과 나무가 굉장히 많았다. 그렇게 길을 따라가면 집 현관문 앞에 있는 포도덩쿨사이에서 가끔씩 몰래몰래 포도를 따먹으려고 시도도 했었고 뒷마당에 있던 무화과를 따먹으려다가 모기에 왕창 물리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네는 나에게 두 번 다시 해볼 수 없는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준 곳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살고 싶은 집도 내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할머니네처럼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찰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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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들의 집 -공선옥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돌확에 곱게 간 보리쌀을 솥에 안쳐 한소끔 끓여 내놓고서 쌀 한줌과 끓여낸 보리쌀을 섞으려고 허리를 구부리는 순간 산기가 느껴졌다. 아낙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쌀과 보리를 섞은 다음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텃밭으로 갔다.
장에 간 남편은 어디서 술을 한잔 하는지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이제 곧 세상으로 나오려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뱃속의 아기 위로 셋이나 되는 아이들은 저녁의 골목에서 제 어머니가 저녁밥을 먹으라고 부르기를 기대하며 왁자하게 놀고 있다. 아낙은 저녁 찬거리로 텃밭의 가지와 오이와 호박을 따다가 잠시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뱃속의 아기가 이번에는 좀 더 강한 신호를 보내왔다. 아낙은 진통이 가시기를 기다려 찬거리를 안아 들고 텃밭을 나왔다. 아궁이에서 밥이 끓기 시작하자 텃밭에서 따온 가지를 끍고 있는 밥물 위에 올려놓고 호박과 호박잎을 뚝뚝 썰어 톱톱하게 받아놓은 뜨물에 된장국을 끓이고 오이채를 썰어 매콤한 오잇국을 만들어서 저녁상을 차렸다. 그리고 나서 아이 낳을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물을 데워놓고 끓는 물에 아기 탯줄 자를 가위를 소독하고 미역도 담가놓고 안방 바닥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드러누웠다. 장에 가서 술한잔 걸치고 뱃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낙의 남편이 막 사립문을 들어섰을 때 안방 쪽에서 갓 태어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순산이었다. 남편은 늘 그래왔듯이 , 첫째 때도 둘째 때도 셋째 때도 그러했듯이 술 취한 기분에도 부엌으로 들어가 아내가 미리 물에 담가둔 미역을 씻어 첫국밥을 끓였다. 첫국밥을 끓여서 아내에게 들여놓아주고 나서 남편은 사립문 양쪽에 대나무를 세우고 새끼줄에 검은 숯과 붉은 고추를 끼워 대나무에 매달았다.
그의 넷째아들이 태어나던 날 밤.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팔남매를 낳았다. 집은 토담집이었다. 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신접살림을 나면서 손수 지은 집이었다. 판판한 주춧돌 위에 튼튼한 소나무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었다. 마을에서는 그렇게 새집 짓는 일을 ‘성주 모신다’고 했다. 마을 남정네들은 집 짓는 일을 돕고 아낙들은 음식을 만들었다. 황토에 논흙을 섞고 짚을 썰어 지붕흙을 만들고 몇 사람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고 몇사람은 마당에 길게 서서 다 이겨진 흙을 지붕 위로 올렸다. 대나무나 뽕나무로 미리 살을 만들어놓은 위에 찰진 흙을 발라졌다. 흙이 마르면 노란 짚을 엮어 지붕을 이었다. 이제 그 지붕은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끄덕없을 것이었다. 지붕이 다 만들어지자 벾을 만들었다. 지붕에서처럼 대나무로 살을 만들고 흑을 바르고 그리고 구들장을 놓았다. 노란 송판을 반들반들하게 켜서 마루도 만들었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바로 그 집에서 나고 그 집에서 컸다. 노란 흙벽 , 노란 초가지붕 노란 마루 , 노란 마당, 정겨운 노란 집 그 집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이 그 집 아이들의 성장에 함께 있었다. 그는 그 집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어느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을 먼 훗날까지 그의 영혼 깊은 곳에 간직해두고서는 몹시 힘들고 고달픈 도시에서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어느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에 마음속의 보석처럼 소중한 그 추억들을 끄집어내 보고는 했다.
그 집은 그 집 아이들에게 작은 우주였다. 그곳에는 많은 비밀이 있었다. 자연 속에는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한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 그는 그의 집에서 크면서 자연 속에 감춰진 비밀을 깨달아갔다.
석양의 북새 , 혹은 낮게 깔리는 굴뚝 연기를 보고 그는 비설거지를 했다. 그런 다음날은 틀림없이 비가 올 것이므로. 비가 온 날 저녁에는 또 지렁이가 밤새 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똑또르 똑또르하는 지렁이 울음소리 , 냄새와 소리와 맛과 색깔과 형태 들이 그 집에서는 선명했다. 모든 것들이 말이다. 왜냐하면 보모가 여름과 가을과 겨울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이 그 집에서 뚜렸했으므로 자연이 것처럼 사람들의 삶이 명료했다. 이제 그 집을 떠난 그에게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아침과 저녁이 불분명하고 사계절이 불분명하고 오감이 불분명하다. 병원에서 태어나 수십 군데 이사를 다니고 나서 겨우 장만한 아파트. 그 사각 진 콘크리트 벽 속에 살고 있는 그의 아이는 여름에 긴팔 옷을 입고 겨울에 반팔 옷을 입느다. 돈은 은행에서 나고 먹을 것은 슈퍼에서 나는 것으로 아는 아이는 , 수박이 어느 계절의 과일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아이는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알지 못한다. 아침 저녁의 냄새와 소리와 맛과 형태와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한다.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그는 그가 나고 성장한 그 노란 집으로 갔다. 팔남매를 낳고 기르느라 조그마해질 대로 조그마해진 어머니는 바로 자신의 아이들을 낳았던 그 자리에 자신의 몸을 부려놓고 있었다.
그 집 , 노란 그 집에 탄생과 죽음이 있었다. 그 집 안주인의 죽음 이후 그 집은 적막해졌다. 아무도 그 집에 들어와 살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아이를 그 집에서 낳지 않을 것이며 그러므로 죽음 또한 그 집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집의 역사는 그렇게 끝날 것이다.
우리들의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조왕신과 성주신이 살지 않는 우리들의 집은 이제 적막하다. 더 이상의 탄생과 죽음이 없는 우리들의 집은 쓸쓸하다.
우리는 오늘밤도 쓸쓸한 집으로 돌아들 간다.
[출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 공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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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문제]
2. 공선옥 ‘그 시절 우리들의 집’의 ‘토담집’이 담고 있는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세요. ‘토담집’이 현대인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 오피스텔, 공동연립주택, 고층빌딩’에 비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고 답안을 작성해 보세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언급하기 어렵다면 윗글을 참고하여 “‘건강한 집’ 내지는 ‘좋은 집’은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해 보세요.)
토담집은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아파트, 고층빌딜, 오피스텔 등에 비해 턱없이 보잘 것 없고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집이다. 하지만 그 집 아이들은 그 집에서 태어나고 커갔다. 그리고 계절마다 다른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이 아이들의 성장에 함께 시간을 보냈고 또한 그 집은 아이들에게 작은 세상이자 우주였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으며 자연 속에 감춰진 비밀들을 깨달아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현대인들 즉, 글에서 이야기하는 사각 진 콘크리트 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은 토담집의 아이들에 비해 계절마다 다른 아침, 낮, 저녁, 밤이 아닌 아무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많은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갈 순 있겠지만 토담집 아이들이 아는 계절마다 다른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의 풍경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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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작, 제3의 시나리오에는 우리나라에서 국가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재개발, 재건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사실, 재건축이나 재개발과 같은 사업은 지역의 균형발전 및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주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의지가 담긴 것이나, 현실은 부의 축적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너도 나도 땅값(부동산 가격)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몇 십 년 뒤, 우리의 아이들은 집에 대한 일상적 추억보다는 그들의 부모가 어떻게 집값을 올리고 부를 축적하였으며 상속된 재산이 얼마인지를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준과 미래는 미군의 군사정책을 도청하기 위해 주군기지인 캠프데이비드로 향한다. 그 과정 속에서 잠시 뉴욕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두 주인공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은 두 사람은 시내를 걸었다. 칠십 층이 넘는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선 뉴욕의 시내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상을 찌푸렸다. 시내 한복판인데도 유리창이 다 깨지고 지린내가 진동하는 폐건물들이 버젓이 선 채로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음, 이상하네. 왜 이런 건물들을 그냥 둘까? 서울 같으면 즉각 재개발감인데.”
미래가 무심코 하는 얘기를 듣던 준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 차라리 여기가 낫다.”
“무슨 소리야?”
“그냥 버려두는 것이 낫다는 얘기야. 물론 서울 같으면 당장 재개발해서 비싼 임대료를 받겠지만 말이야. 도시는 이런 면도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
“…….”
“서울처럼, 아니 우리나라처럼 부동산이나 토지가 무조건 돈과 연결되는 건 넌덜머리가 나. 사람들은 끝없이 투기 광풍에 빠져 있고…… 죽어나는 건 돈 없는 사람들뿐이잖아. 차라리 괴물같은 모습이지만 여기가 낫다.”
준은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는 광적인 거부감을 내보였다.
“부동산 투자를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어. 자본주의의 3대 요소가 토지, 노동, 자본인데 토지를 그렇게나 가라앉히면 되겠어? 다른 부분도 영향을 받잖아.”
미래는 강남의 주상 복합 상가에 투자하여 번 돈으로 자신의 연수비용을 댔던 엄마가 떠올랐지만 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동산으로 재산 증식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논리야 있겠지만 어쨌든 난 그런게 싫어.”
준이 단호하게 얘기를 마무리지었다.
물론 깨진 유리창 법칙에서 증명해 주고 있듯이 깨진 유리창이나 악취가 나는 것들을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즉각적인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더욱 더 주변 환경과 도시, 자연을 병들게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나도 준의 말에 동감한다. [출처] http://buddyjhs.blog.me/5002781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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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문제]
3. 김진명의 소설 「제3의 시나리오」에서는 ‘주거의 관습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나타나 있습니다. 만약 김억중 작가가 이 소설을 읽는다면, 어떠한 ‘건축물(건축방식)’이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띨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어떠한 ‘집’이 진정으로 ‘건강한 집’이라고 생각했을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세요. (김억중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싫다면, 도시 재개발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방식으로 ‘근거’를 갖추어 자유롭게 말해봐도 됩니다.)
모든 걸 돈으로 생각하고 바라보고 그 것에만 목매여 휘둘리는 사람들, 그에 반해 죽어가는 가난한 서민들 그 모습을 작가는 괴물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 작가는 돈만 바라보는 사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작가가 생각하는 건강한 집이란 나의 재신을 늘릴 수 있는 수단이 아닌 그 자체,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도시 재개발 문제에 대해 딱히 옹호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분명 도시가 재개발이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몰려들테고 그로 인해 그 지역의 상권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재개발을 앞둔 지역의 사람들이나 재건축을 해야 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재개발, 재건축을 기다리는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도시가 재개발이 되거나 아파트가 재건축이 되면 그 곳에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간 공간에서 내쫓기게 된다면 더 이상 그 곳에서 살아가게 될 수 없다면 그 상실감은 얼마나 크질 모르겠다.
4. 김억중 작가는 ‘왜, 문학과 건축을 같은 길을 가는 도반(道伴)’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리고 마지막 구절인 “문학과 건축의 동상이몽! 그 둘을 곱게 접어, ‘그 자리, 그런 집’이 뚜렷이 찍힌 데칼코마니를 완성하고 싶다.”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문학과 건축을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문학과 건축 모두 사람들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문학과 건축은 길동무가 되어주고 깊이를 더해 가며 교제할 만한 맞상대라는 말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문학과 건축의 동상이몽! 그 둘을 곱게 접어, '그 자리, 그런 집'이 뚜렷이 찍힌 데칼코마니를 완성하고 싶다"는 건축과 문학에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 것처럼 결국 문학과 건축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작가가 원하는 집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1) 문학과 건축, 그 동상이몽
① 핵심정리
갈래 | 수필 | 성격 | 성찰적, 고백적 |
주제 |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문학과 건축 | ||
특징 | ·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과 건축의 관계를 설명함 · 비유법를 통해 대상 간의 관계를 표현함. |
② 문학과 건축의 관계
문학 | · 사람들의 삶을 전달하는 이야기(상상적, 추상적) · 삶의 가치와 의미의 근본을 성찰하게끔 하는 이야기 | = | · 문학과 건축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는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음.
· 문학을 통해 얻은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건축을 해야 함. |
건축 | · 사람들이 살아가는 물리적인 공간 · 삶의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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