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炳憲의 생애와 종교체험
-조선혜 전도사의 논문 요약-
舊韓末 개화기에 그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
科擧에 다섯 번 낙방하고 極貧한 절망의 늪에서
생존의 길을 찾아 헤매던 한 儒敎학자에게
예수님은 참 眞理로 가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편집자 주> 최병헌 목사 님 ! 주일 마다 정동교회 교인들이 본당 정원에서 만나는 분(동상)이다. 그러면서도 늘 무 괸심하게 지나쳐 버린다. 아펜젤러 홀에서 11월11일(주일) 오후 2시 예배시간에 「 濯斯(탁사) 최병헌 목사의 생애와 사상」제하에 고인의 외손자되시는 김상모 목사(미국 연합감리교회 은퇴)의 강연에 이어 학술토론회가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어른이셨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고, 교회 도서관에서 자료를 섭렵하였다. 오늘의 정동교회가 존재하는 바탕에 또 한 분의 훌륭한 목회자가 게셨다는 것 : 그 분이 유교학자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고통스런 삶의 과정과 목회자로서의 헌신적 활동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여기에 조선혜 정동교화 전도사의 논문인 「최병헌의 생애와 종교체험 」(2003년5월 /최병헌 목사 추모기도회 및 강연회에서 주제발표)을 요약 소개한다. 특기 할 일은 2008년이 아펜젤러 와 최병헌 두 분의 탄생 150주년으로 동갑이라는 점이 우연만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느끼게 한다.
♣ 최병헌은 한국 최초의 신학자이며 비교종교학자이며, 정동감리교회에서 목회하고 인천지방의 초대감리사와 서울지방의 감리사로도 활동하며 특별히 감리교회의 확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으로 존경받고 있다.
♧ 개종 이전의 생애 : 충청북도 제천군의 양반후예였던 그는 유,소년 시절 가정형편은 궁핍하였지만 영민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한학에 몰두하였는데, 과거급제가 가문을 세우고 가난을 극복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18세에 처음으로 과거에 응시하여 이후 17년간 5차례 응시하였지만 모두 낙방했다.
23세에 친척의 집안에 양자로 되어 서울의 남대문 안 회현방 상동에 살았다. 1년도 못되어 양부가 병이 들자 생계를 위해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려 했으나 가게를 얻지 못했다. 낙담하여 책읽기에 몰두하던 중 27세에 결혼을 하였으나 부인이 잠농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이시기에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 개종의 계기 : 친구 집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기독교의 빛이 비추이기 시작했다. 이웃에 사는 윤호 라는 배재학당 학생의 소개로 1888년 10월 선교사 존스(G.H.Jones/ 조원시)의 한국어 선생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와 선교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고수하였다. 『내가 당분간은 월급에 팔려서 할 수없이 저 사람에게 다니거니와 어찌 영구히 친할 지랴』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교회문제로 번민의 밤을 지내고 있었다.
출세의 길도 막히고 그저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며 폐인과 다름없이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괴 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차라리 세상 사람들이 핍박하는 기독교에 입문하여 비난받는 인생을 살아 볼까 하는 자기학대와 자포자기에 침몰되어 있었다. 1892년 다시 과거에 응시하였는데, 경비하는 포졸과 시비가 붙어 원서를 훼손하여 관계진출의 미련을 버렸다. 입신양명의 꿈이 거듭 좌절되는 경험을 하며 방황하다가,
기독교를 종교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탐구해 보려는 이성적인 결단에 의해 기독교에 입교했다고 하겠다.
♧ 기독교 입문: 그는 한편 아펜젤러를 만나 그의 권유로 1889년 배재학당의 한학부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이 시기 성서 뿐만 아니라 청국에서 들어 온 만국통감 등 세계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기독교에 관련된 많은 책들을 읽게 되었다. 마침내 1893년 2월 8일 조원시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기독교신자가 된 것이다.
개종한 뒤 그는 전도에 힘쓰는데, 부모와 자녀, 삼대의 가족을 모두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이러한 일에 접한 선교사들은 매우 경이롭게 여기고 자부심을 가지고 신문에 게재하여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 종교체험 : 1899년1월 정동교회에서 열린 만국기도회에서 아펜젤러가 『산 제사를 드리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후 회중들을 강단 앞으로 불러내어 엎드려 기도와 찬송을 부르도록 하였다.
이때 그는 종교체험을 하게 된다: 「이때에 성신의 인도하심을 입어 천성낙원에 들어가 세상의 명예와 유익을 구하는 마음은 전혀 없이 거룩한 몸이 한량없는 기쁨으로 주를 찬양하였다.
선생은 이때부터 신으로 거듭나는 증거를 얻어 神心體를 다 바쳐 천국에 헌신하였다. 」(최병헌 선생 약전 중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한 후 그의 교회활동은 점차 확대되었다. 이전부터 하던 성경번역에 적극 참여하여,일본에 가서 한글 활자를 만들기도하여 1900년 신약 전체 번역을 끝낼 수 있었다. 또 한국 최초의 신학잡지 『신학월보』의 편집을 맡아 보았다. 세례받은 직후부터 시작한 신학회 공부도 꾸준히 참여하여 마침내 '집사묵사'의 안수를 받게 되었다.
그는 목사안수를 받기 직전인 1902년 5월 서울지방연회에서 다시 신비체험을 하게 됐다.
그는 목회활동과 병행하여 傳道인으로서 토착종교인들을 어떻게 접해야하는지 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과 씨름하였다. 이러한 고민을 반영시켜 『聖山明月』을 저술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신비한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 정동교회 목회 : 그는 세례를 받은 1893년 배재학당에서 열린 제9회 조선감리회 선교연례회에서
권사의 직책을 받았고, 이때부터 아펜젤러를 도와 정동교회를 무대로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종로에 大東書市라는 책방을 내고, 서점이자 일반인의 계몽을 위한 도서관으로 운영하였다.
아펜젤러와의 신뢰와 친분은 각별하였으며. 아펜젤러는 안식년 휴가 중(1900.11.7) 편지를 보내 오기도 했다. 최병헌은 1902년 5월 '집사목사' 안수를 받고, 스크랜튼의 안식년으로 공석이던 성동교회에 집사목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6월에 아펜젤러가 선박조난사고로 순직하자, 이듬해 정동교회 부목사로 파송되었다. 선교사 서원보(W.C.Swearer)가 담임이었지만 실질적인 목회는 최병헌이 담당하여 정동교회의 지도력은 한인목회로 전환되었다. 정동교회는 1907년 대부흥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당시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 「정동교회는 교회 역사상 최고의 해를 보냈다. 최병헌목사의 유능한 목회활동으로 서울전역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강력한 교회로 성장하였다. 정동교회에는 관료층이 대거 출석하고 있다. 2,300엔의 재정을 확보하여 자립적인 교회운영은 물론이고 서울 근교 두 곳에 개척교회를 운영하고있으며, 그 밖의 다른 몇몇 곳에도 교회를 개척할 준비를 하고있다...」
그는 1909년 '장로목사'가 되면서 정식 주임목사가 되었다. 당시의 지 교회는 아현교회, 창내교회, 서강교회, 이태원교회, 종로교회, 만리재교회 들이었다.
♣ 기타 활동: 그는 1914년 인천지방의 초대 감리사로 임명되었고, 1917년부터 서울지방감리사로 일하게 되었다. 1922년 목회직에서 은퇴하고 1923-1927년에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 비교종교와 한국문화를 강의하다가 1927년5월13일 소천되었다. 그는 많은 글과 저서를 남겼다. 그 중에 대표적인 책이 '萬宗一臠(만종일련)' 으로 알려졌다.
책 제목 : 萬 宗 一 臠 (만종일련)
지은 이: 崔 炳 憲 (최병헌)/1922년 간행
옮긴 이 : 박혜선 ( 현 정동교회 권사) / 1984년
한글 판 출판사 : 성광 출판사 (서울소재)
♠번역 본 추천사 (송길섭 감신대 교수) : 최병헌은 원래 한학자였다. 1893년에 5년간의 성경연구를 끝내고 기독교에 입문한 후에는 기독교의 빛에 비추어서 동양의 여러 종교사상을 다시 연구하고 평가하였다. 그는 근 70평생의 전반은 동양사상 연구에 몰두하였고 그 후반기는 목회와 신학운동에 헌신하였다.
그의 신학운동의 평생의 과제는 기독교와 동양사상의 만남이었다. 이렇게 나온 작품이 『聖山明鏡』과 『萬宗一臠』(5년간 『신학세계』에 연재된 『종교변동론』을 단행본으로 출판함/ 한국최초의 비교종교론)이었다. 이번에 박혜선 선생께서 최봉수선생님의 교열을 받아 훌륭한 번역서를 만들어 낸데 대하여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만종일련』의 내용: 제 1장에서 7장까지 각 종교별로 「道理의 要素」가 기술되어 있다. 유교, 불교, 仙敎, 回敎, 婆敎, 기타 각 도리, 제7장 기독교도리의 요소에는 천주교, 희랍교, 예수교 분열사. 修道要訣이 수록됐다.
♠ 옮긴이의 말 : 필자는 본 교회 90주년 행사 때 연대 유동식 교수와 감신대 송길섭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濯斯의 고고한 인간상을 알게 되었다. 좀더 일찍 태어나 뵙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마음 간절 한 때에 『만종일련』한 권을 입수하게 되었다. ... 한 줄 씩 공부하면서 글자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때로는 좌절할 때도 많았으나 신앙으로 이끌어 주시고 지도해주신 이재은 목사님...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새 생명,새 소명' 편집실 요약 -
*「만종일련」의 뜻: 24개의 동서고금의 종교를 한점의 고기맛으로 여민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