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8도의 감사가 된 8형제
200년인가 300년 전쯤 안산 동막골에 아들 8형제와 딸 하나를 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딸을 제외한 아들 8형제를 불러놓고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무도 몰래 동막골 뒷산에 묻어 다오. 그러면 너희들 모두 감사가 될 것이다.”
그때 이 말을 엿들은 딸은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감사가 될 수 없어 오빠들한테만 얘기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소원대로 그를 동막골 뒷산에 장사지냈는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나라의 명부를 훑어보던 왕은 8도의 감사가 모두 한 사람의 자식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왕은 ‘만약 반란이 일어나 저들 8명이 다 합세하는 경우 왕실이 바뀔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여 그들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기로 작정했다. 왕은 산소의 위치를 알려고 8명의 아들들을 잡아들여 인두로 지지고 몸을 찌르는 등 온갖 고문을 다했으나 그들은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왕은 8명의 아들들을 못이 박힌 널빤지 위를 걷게 하였으나 그들은 그 위를 걸어 발이 피범벅이 되었어도 끝내 산소의 위치를 말하지 않았다. 고심하던 왕은 그들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마저 데려다 고문을 하였다. 그러나 여동생 또한 오빠들은 알지 모르지만 자기는 모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왕은 그녀에게 못이 박힌 널빤지 위를 걸으라고 하였다. 오빠들의 발을 본 여동생은 결코 자기는 그 위를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여동생은 왕에게 무덤의 위치를 말해 버렸다.
“안산 동막골 뒷산에 묻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산소를 찾아내 파 보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무덤은 그 아래의 연못과 통해 있어 물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였다. 왕은 시체가 연못에 있다고 생각하고 연못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물을 거의 퍼내었다 싶으면 별안간 비가 와서 연못에 물이 가득차고, 다시 퍼내면 또 비가 와 가득하고, 이러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왕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지나가던 스님이 이를 보고 말했다.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사실을 들은 스님은 고개를 저었어.
“이렇게 해서는 이 물을 다 퍼내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저 꼭대기에 가서 이곳만큼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입담배를 가득 채운 후 물을 퍼내면 될 것이오.”
왕의 부하들이 그대로 하니 과연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물을 다 퍼낸 후 그 안을 보니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 그 후 8명의 감사는 역적으로 몰려 귀양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조운학(70세, 남, 수암동, 1989년 6월 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