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비행기가 결항을 할 것 같다는 여행사 여직원의 전화가
왔다. 미리 서울에 가면 좋겠다고 해서 우리는 서둘러 짐을 쌌다.
괜히 여행을 계획했나 싶을 정도로 날씨는 눈보라가 치고 있다. 죽
으러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함까지 동반하여 두렵기까지 했다.
날씨처럼 안 좋은 일이 기다릴 것 같았다. 남편은 짐을 싸고 나는
아이들이 그 동안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우리나라보다 유럽이 더 춥
다고 해서 내의도 두 벌이나 넣고 따뜻한 스웨터들로 짐을 싸니 가
방이 빵빵했다. 그런데 눈이 그쳤다면서 예정대로 다음날 떠나도 된
다는 연락이 여행사에서 다시 왔다.
이 날씨처럼 그 동안 내 생활은 불안에 떨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엄청난 불행이 내 주위를 휘감았다. 낙천적인 내 성격으로도 감당하
기 힘들 정도로 뒤죽박죽이었고 불길하기만 했다. 동생네 가정불화
가 우리 가정을 송두리째 박살을 내려해서 많은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말만 되풀이할 뿐, 다른 말을 할 수도 없이 기가 막혔다. 아
직도 끝이 나지 않을 그들의 위협이 공포스러울 뿐이다. 또 갑작스
런 퇴근길 교통사고로 언니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고 뒤이어 나와
남편의 교통사고로 많은 경제적 손실을 입어야 했다. 금방 죽을 것
같았다. 죽을 것 같아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과 아이들의 숨
소리를 귀 기울려 들어보곤 할 정도였다. 그런 심한 정신적 불안감
은 내 건강까지도 망가뜨렸다. 나쁜 일만 일어났던 3년 세월이었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 때문에 위안을 가져 보자는 뜻으로 이
번 여행을 과감히 추진했는데 이것마저 도움이 안 되려나 싶으니 점
점 마음이 굳어져만 갔다.
다음날 새벽 떠나려는 길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혔다.
‘이런 길로 가다가 눈길 위에서 차가 뒹굴면 어쩌나.’
재수 없는 생각으로 머리 속은 어수선했고 남편의 표정은 굳어만
갔다. 그러는 찰라 택시 한 대가 우리가 서있는 아파트 앞에 멈춰섰
다. 그분 덕분에 예정된 시간에 맞춰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 부부는 자판기에서 모닝 커피를 꺼내 마셨다. 마침 커피를
마시는 맞은 편에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었다. 그 거울에는 안도의
표정을 지은 사십 대의 부부가 다정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보, 저 거울 좀 보세요. 그토록 어려운 일들이 우리를 괴롭혀
서 혼줄이 났다 해도 우리는 분명 축복 받은 부부지요?”
남편은 묵묵부답이었다. 여전히 표정은 굳어있었다.
“어머나, 저기 달이 떠 있네. 저기 좀 보세요.”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마지못해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은 약간 풀
리는 듯했다.
그 때부터 우리에겐 햇빛이 비추이기 시작했다. 서울은 비 갠 맑
은 아침이었다. 파리를 향한 비행기가 이륙할 때도 온통 목욕한 듯
한 서울의 거리가 훤하게 보였고 태백산맥의 산골짜기와 오막살이
작은 집까지 보였다. 동해안의 굵직하고 반듯한 윤곽이 선명했으며
밀려드는 파도까지 보였다. 김포에서 11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동해
안을 지나 일본 오사까로 해서 시베리아 상공으로 항로를 잡았다.
중공으로 가면 훨씬 빠르고 편하겠지만 공산국가라 아직 그곳으로
통과하지 못한다고 했다.
32,000피트 상공에서 해 넘어가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노을 빛을
받은 구름은 주홍빛 비단결 같아 귀부인 드레스를 보는 것처럼 황
홀했고, 또 넘실거릴 때마다 추수를 앞둔 황금 물결 같았고 노을 때
문에 밝은 하늘은 더욱 선명한 실비단 하늘이었다.
그 반짝이는 햇살이 마지막 기염을 토하며 지려는 순간은 3시간
이상이나 계속되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해를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
다. 결혼 17주년 기념으로 유럽여행을 계획한 것이 큰 행운인 것 같
았다. 밑은 시베리아의 광활한 대륙이 한 눈에 다 보였다. 얼음 빙
산이 끝없이 펼쳐졌다.
TV 화면에는 고도 106,400, 시속 525Km, 밖의 날씨는 영하 65℃,
완전히 운 좋게도 비행기의 창 옆에 앉게 되었다. 밖의 풍경을 눈
아래 모두 보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황홀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멋
진 장면을 놓칠세라 모두 보려고 애를 썼더니 목이 다 뻣뻣해 졌다.
비행기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나오자마자 얼어버려 하얀빛을 띠더니
낙조에 반사되어 불그스름해졌다. 이제나저제나 해가 질 것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보다 손목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었다. 4시간이나
석양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태양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해
를 쫓아가는 비행기 덕택에 저녁이 되려다가 훤해진 것이다. 훤한
대낮이 계속된 이유는 서쪽으로만 달렸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이
광경이야말로 황홀 그 자체였다.
‘아 나에게 해를 좇아가는 여자가 되라는 뜻인가?’
내 삶의 지표가 되라는 뜻으로 이런 현상을 눈으로 확인시키는
듯해서 마음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해가 가지는 상징처럼 항상 긍정
적인 사고방식으로 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해를 쫓아가다 보면 이
렇게 어둠은 오려다 말 거라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는 유럽의 푸른 평원을 투명하게 보여줬다. 안개가 많아서
못 볼거라는 말과는 달리 넓다란 평원은 몸뚱이들을 유감없이 내
보였다. 유럽의 날씨는 습도가 많고 흐린 날이 많다는데 해를 쫓아
가는 여자가 되자고 다짐한 내가 도착해서인지 계속 맑았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로마의 건축과 탑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바티
칸 박물관의 웅장하고 엄청난 조각품들도 선명하게 보였다. 남편의
얼굴에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천정화도
잘 보여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유적지 폼페이의 모습도 환하게 보
였다. 지상 최대의 환락과 유락의 도시인 폼페이,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로 지하에 묻혔던 도시, 그 중에서도 베띠가라는 데는 적나라한
춘화들이 지금도 선명한 색채를 띠고 있는데 맑은 날씨여서 실감나
게 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곳은 ‘미성년자 입장불가’였다.
‘나폴리 만큼은 보고 죽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나폴
리와 기암절벽이 일품이었고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형형색색의 바
다 빛을 세계에 널리 알린 쏘렌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의 감동을 주었다. 스위스 제네바도 비 갠 후의 맑
은 아침이어서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레만호에 각종 새들까지도 날
개를 폈다. 아니 알프스 산맥의 몽블랑까지도 햇빛에 눈이 부셨다.
어떤 여행객은 몽블랑에 가서 안개만 보고 왔다던데, 다양한 스키복
을 입은 스키어들이 신나게 내려오는 모습은 움직이는 산꽃처럼 일
색을 이루었다. 영국의 런던은 3개월간 장마가 계속되다가 그날이 1
개월만의 햇빛이라며 바바리 깃을 세운 안내자의 목소리가 들떠 있
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일정들이 성공적이었고 계획에 없었던 곳
까지 더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꿈인지 생신지 모를 엄청난 감동으로 흥분된 내 모습을 보며 남
편이 밝게 웃었다. 꼭 해바라기꽃 같았다. 이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내 마음에 해를 담아 해만을 쫓아가는 여자가 되어야겠다고 더욱더
다짐을 했다. 어떤 불행한 일이 생겨도 마음의 해를 찾자고 말이다.
남편에게도 해가 되고 아이들에게도 밝은 해가 되리라 다짐했다.
첫댓글 이 두 부부는 불행하게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떳떳하게 살고 있다.
나도 우리집에 큰 위험이 닦쳐도 떳떳하게 살 것이다.
나도 이 부부처럼 위험이 와도
주늑들지않고 , 떳떳하게 살 것 이다.
이 부부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자기도 곧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살고 있다.
나도 이 부부처럼 노력하고.우리가족들이 불행한 일을 당해도 서로를 위하고 살랑하며 당당하게 살아야겠다.
이 부부에게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 왔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당당, 떳떳하게 살아 가고 있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겠다.
나도 이 두 부부처럼 불행에 져도 떳떳하게 살 것 이다.
떳떳하게 살면 좋은일이 생길것이다.
이부부는 퇴근길 언니의 사고로 죽음을 맞아야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절망감에 빠지는것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생각으로 다시 밝아진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그원인은 아마도 이 부부가 낙천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그런것이 아닐까요?
이런부부가 다시 행복을 되찾고 밝아지니, 저도 커서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받아들일것입니다.
(배끼면 신고)
남편의 교통사고가 아니고 초등학교 교사인 언니의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형제를 잃은 아픔과 가정에 쏟아진 불행들을 말 할 수 없도록 어려움들이 쏟아졌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네요;
다시수정했습니다.
부부는 불행한 일을 겪었다. 그런대도 잘 살아 나갔다. 그러니까 나도 이 부부처럼 안 좋은일이 있어도 떳떳하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이 부부처럼 아무리 불행한 일이 생겨도 마음의 해를 찾자고 하는 말이 난 너무 감동적이였다
아이들에게도 밝은 해가 되리라 다짐했다.고 생각하는 부부는 정말 떳떳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 부부처럼 불행한 일이 생겨도 항상 웃고 당당하게 살아야겠다.(쪼금식 떼어가기 없기)
이 부부는 어려운 일이 생겼어도 떳떳하게 살았다.
나도 어렵거나 불행한 일이 있으면 떳떳하게 살아야겠다.
이부부는 좋지않은 일을 겪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리 나쁜일이 생겨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해볼것 입니다
이 부부는 불행한 일을 겪어도 떳떳하게 살았다.
나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겠다.
언니의 죽음 얼마나 슬펏을까?또 유럽의 날씨는 습도가 맣고 흐린 날씨가 많구나..
난 오늘 처음 알았다..유럽의 날씨가 어떠한지..이 부부 정말 본받고 싶다.어려운 일과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는데 그러면서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다니 정말 나는 본을 받고 싶다..역시 이세상에는 포기란 없군..음~><
이 부부는 큰 불행을 겪게 되었는데도 떳떳하게 살았다. 나도 이 부부처럼 어렵고 힘든일이 생기더라도 굽히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야 겠다. 그리고 이제까지 읽었던 글중에서 '포기란 없다'라는 내용의 글들을 많이 읽은것 같다. 그러므로 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떳떳하게 살아야 겠다.
이 두 부부는 불행하게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떳떳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불행하지만 불행을 이기고 살아가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부는 불행한 날도 많았지만 긍정적인 생각과 떳떳함을 잃지 않았다.
나도 떳떳함을 잃지 않고,긍정적인 생각만 하며 내 인생에서 불행한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견디며
살아갈 것이다.
이 부부는 불행한 일이 있어도 떳떳하게 살아갔다.
나도 불행한 일을 잃고 떳떳하게 살아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