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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이 은근히 회유했다.
“장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진정 좋은 거 아니겠소? 우리가 이들을 데리고 가서 말로 잘 타이르고 교화하리다. 원래 심성이 몹시도 착한 아이들이었으니, 조금만 가르치면 죄업을 씻고 새사람이 될 거요.”
“범죄자를 내어 달라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무후군의 장수가 언성을 높였다.
“장군, 흥분하지 마시고,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장군의 녹봉이 얼마요?”
“그런 건 왜 묻소?”
“이들을 넘겨주는 대가로 내가 장군과 이 병사들의 일 년치 녹봉에 상당한 금을 즉석에서 드리겠소. 어떻소?”
그가 이렇게 말한 후 뒤를 돌아다보면서 손을 흔들자,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자루를 하나 쳐들더니 그 안에서 누런 금화 한 꾸러미를 꺼내 들어보였다.
“나를 뇌물로 회유하는 거요?”
“뇌물이라니, 당치도 않소. 박봉에 시달리는 장군과 병졸들을 돕고 싶은 갸륵한 나의 마음은, 하늘이 알 것이오.”
그 때 무후군 장수의 목전에 상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들을 잡아 오지 못할 경우 목을 내놓아야 한다는 으름장과 신신당부를 듣고 나온 터다.
두목과 장수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흑룡방의 무리들은 이미 앞뒤 길을 봉쇄하고 있었다. 무후군 장수가 한숨을 내쉬며 난감해하고 있을 때 흑룡방 두목이 그 곁에 다가와 말했다.
“장군, 은밀히 할 얘기가 있소. 귀 좀 빌립시다.”
장수가 망설이자 두목은 자기 말을 무후군 장수의 말곁에 나란히 붙여 장수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말을 듣던 장수가 큰 소리로 물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이오!?”
“쉿! 귀청 떨어지겠소. 왜 그리 소리를 지르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오.”
무후군 장수는 하늘을 잠시 쳐다보다가 갑자기 빽 소리를 질렀다.
“허튼 수작 마라!”
장수는 군졸들에게 명했다.
“뭣들 하느냐! 속히 이곳을 떠나자. 막는 자는 가차 없이 처단하라.”
무후군이 일제히 병장기를 꺼내들자, 자칭 흑룡방의 무리들도 병기를 손에 잡았다.
“흐흐! 장군, 병기에는 눈이 없소이다.”
흑룡방 두목의 이 말을 신호로, 좁은 길에서 양측은 즉시 혼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자칭 흑룡방의 무리들은 하나같이 무술 솜씨가 탁월했다.
무후군의 병졸들은 그들의 적수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수적으로 절대 열세인지라 이내 병졸들은 한쪽 구석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 때 무후군의 장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모두,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라!”
그의 외침과 동시에 무후군의 병사들은 각기 몸에서 무언가를 꺼내 자칭 흑룡방의 무리들에게 던졌다. 그들이 던진 물건은 흑룡방의 괴한들 무기에 맞거나 아니면 그들의 몸에 적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는 흑룡방 사람들의 몸을 피해 멀리 땅으로 날아간다.
갑자기 “펑! 펑! 펑!” 소리가 연달아 나며 주변은 연기로 자욱해졌다.
“으하하하하!”
호쾌한 웃음소리는 무후군 장수의 그것이 아니라, 흑룡방의 두목에게서 나온 반응이었다.
“당신들이 무슨 재간으로, 우리 흑룡방에서 무예가 가장 뛰어난 네 명의 단원을 체포했나 했더니, 강호의 무뢰배들이나 쓰는 그런 비열한 마취제를 사용하셨군! 으하하하하!”
그는 마취제가 겁이 나지 않는지 계속 통쾌하게 웃었다.
“이럴 줄 알고 방금 전 우린 모두 만능해독제를 복용했소.”
최후의 암기가 무용지물이 되자 무후군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흑룡방은 일방적으로 무후군을 몰아붙여 모조리 제압해 무기를 빼앗아버렸다.
“그대들이 무후군이니, 목숨만은 살려주지!”
흑룡방 두목이 넉살좋은 말을 내뱉었다. 이는 그들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부하들에게 주는 그의 암시였다. 흑룡방 두목은 무후군을 부하들에게 맡기고 조영과 세 여인의 얼굴을 등불 빛으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흐흠! 참······.”
그가 입맛을 다시다가, 태평공주 이영월이 타고 있는 말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자기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여보게들, 떠나가세!”
두목의 말에 흑룡방 일행은 이내 자리를 뜬다. 두목이 무후군에게 경고했다.
“지금 즉시 황천으로 가고 싶은 자는, 우리를 따라오라!”
두목은 이어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이쪽을 우두커니 응시하고 있는 무후군 장수에게 말했다.
“장군! 우리가 다 데려가면 얼마나 심심하겠소? 하나는 남겨둘 터이니 마음껏 재미를 보시오.”
그는 듣기에 몹시 민망하고 흉측한 말을 거리낌 없이 뱉으며, 태평공주의 말에 채찍을 가해 그녀를 무후군 쪽으로 보냈다.
자칭 흑룡방과 싸워 참패한 무후군은, 무기까지 빼앗겼는지라 감히 덤벼들 생각을 못하고 장수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무후군의 장수도 역시, 속수무책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때 흑룡방의 한 졸개가 묵직한 자루를 땅에 떨어뜨렸다. 두목이 말했다.
“이건 세 사람의 몸값이오.”
그 말을 끝으로 두목은 일행에게 손짓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 사람과 부하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갔다. 그들의 자취가 저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무후군은 제자리에 얼마동안 엉거주춤 서 있다가 태평공주를 데리고 낙양성을 향해 급히 말을 몰았다.
자칭 흑룡방의 무리는 조영과 이루하, 여미아의 눈을 수건으로 가렸다. 조영이 그들의 가는 방향을 짐작해보니, 낙양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참 후 그들은 어느 험한 산길, 아마도 소아령으로 접어드는 것 같았다.
“여기가 인적도 드물고 적당한 것 같군.”
두목이 이렇게 말하더니 부하들에게 명했다.
“내가 일을 마치고 올 동안, 그대들은 여기서 이 젊은 놈을 지키고 있으라.”
두목은 군침을 흘리며, 두 여인 중 어느 하나라도 남겨두기에 아까운 듯 둘을 이끌고 산중으로 깊이 들어갔다.
여미아는 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나의 주, 나의 임금이시여, 저희가 죽더라도 이들에게 욕은 보지 않게 하소서.”
두 눈을 가린 조영은 두 여인이 두목에게 끌려가는 것을 느끼면서 속으로 애간장이 녹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두 여인을 지켜주지 못하는 아픔과 참담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조영은 이때에 어디서 그런 신심이 우러났는지, 진정을 다해 속으로 하나님을 불렀다.
‘아, 하나님, 하나님, 어찌 이리도 무심하십니까? 저 두 여인이 깊은 밤중 이 산속에서 색한에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오, 삼신일체 상제 하나님이여, 저들을 구하소서! 저들의 안전을 지켜주신다면, 제가 목숨을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오, 어지신 주 예수 우리의 임금님, 제발 그녀들의 정조와 목숨을 지켜주소서!’
난생 처음으로 조영은 신께 가장 애절한 기원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마음은 점점 참혹해졌다. 속에서 불이 나고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의 애절함과 간절함이 더해 가면서, 절체절명의 위기감이 가중됨에 따라, 전 신체가 폭발해 버릴 것 같고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에, 조영은 연신 호랑이 신음소리 같은 괴음을 터뜨리다가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있는 힘을 모두 끌어 모아, 산천이 떠나가도록 크게 소리를 질렀다.
“으아!!!”
야밤에 그의 대갈일성은 멀리멀리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놈아! 입 닥치지 못할까!”
진즉부터 조영의 신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곁의 한 녀석이 조영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네놈이 빨리 저승에 가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여미아와 이루하는 괴한에게 끌려가며 속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데, 밑에서 조영의 외침이 크게 들려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들이 혹시 조영공자를 죽이려 하는 게 아닐까? 아니야. 두목이 여기 있는데 저들 멋대로 죽이진 않을 거야.’
이렇게 자위하고 있는 동안, 두 여인은 산 위쪽을 향해 꽤 먼 거리까지 끌려왔다. 괴한은 그들을 바닥에 앉혔다. 그는 등불을 감쌌던 검은 천의 한쪽을 조심스레 들추고, 두 여인의 눈을 가렸던 수건을 벗긴 다음, 등불을 들어 두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더듬어 보았다.
“햐아, 다시 봐도 천하의 미녀들이군. 세상에 이런 절세국향絶世國香들이 내게로 통째 들어오다니. 난 역시 복이 많은 놈이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괴한이 두 여인에게 물었다.
“이봐! 그대들 몰골을 보아하니, 보통의 여염집 아낙네는 아닌 것 같고, 고관대작이나 귀족의 딸들 같은데, 신분을 밝혀줄 순 없는가?”
“신분은 알아서 뭐하게? 밝히면, 뭘 어쩔 건데?”
이루하가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당차게 물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그대는 아마 중국인이 아니고 동이나 북적의 여인 같은데?”
“그래서 어쨌다는 거예요?”
“혹시 그대가 저 송막도독 이진충의 금지옥엽인 이루하가 아닌가?”
이루하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 이 자가 자신의 정체를 훤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 우리의 손끝 하나라도 다치게 한다면, 당신의 목숨은 열 개 있어도 모자란다는 걸 잘 아실 걸?”
“하하하! 그게 무서웠다면, 이 대왕께서 너를 잡아오지도 않았을 터다. 어떠냐? 네가 이 대왕의 마누라가 된다면 장차 연연세세 호강을 누리며 살 터인데.”
“난 지금도 충분한 호강을 누리고 있으니 호강 따윈 필요 없어요.”
“하지만 그대들은 내가 이미 거금을 들여 샀으니 둘 다 내 몸종이라는 걸 명심하렷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괴한은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죽이든 살리든, 요리하든 상관없다는 뜻이다.”
고대나 당시나 남의 몸종이 된 여인들은 주인의 소유물이었다.
두 여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에게는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사는 길이고 하나는 죽는 길이다. 둘 중 어느 길을 선택하겠느냐?”
여인들이 역시 묵묵부답이자, 괴한은 고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사는 길은, 나를 따라가 내 마누라가 되는 것이다. 이래 뵈도 난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이란 말이다. 으흠!”
그는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죽는 길은, 물론 여기서 나와 미리 황홀한 극락을 맛본 후에 지금 바로 내세의 극락으로 가는 거다.”
그는 캄캄한 사위를 둘러보다가 계속해서 소곤거렸다.
“여긴 깊은 산중이다. 너희들을 죽여서 산속에 매장해버리면 쥐도 새도 모른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기에는 너희 미모와 청춘이 너무 아깝지 않느냐 말이다.”
괴한은 이루하와 여미아의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속삭였다.
두 여인은 마치 송충이가 달라붙은 듯 흠칫 놀라며 얼굴을 회피했다. 뜻밖에도 괴한의 손은 솥뚜껑 같은 거친 손이 아니라, 백면서생白面書生의 그것처럼 몹시 부드러웠다.
“나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재물은 얼마든지 있다.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많이 모았다. 둘 다 내 마누라가 된다면,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해주마. 수락하기만 한다면, 그대들을 데리고 이곳을 멀리 떠나 조용한 곳에 가서 평생 호강을 누리며 살 것이다.”
괴한의 두 눈이 복면 속에서 날카롭게 번득였다.
이루하와 여미아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괴한은 계속해서 두 손으로 이루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달랬다.
“어차피, 타고난 운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선친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대가 내 요청만 수락한다면, 깨끗이 손을 털고 강호에서 물러나 모든 은원관계를 청산하고, 한적한 곳에서 여생을 즐길 것이다. 난 아직 젊다. 그대가 내 얼굴을 본다면 깜짝 놀랄 만큼 젊다. 그리고 그리 못생긴 추남도 아니다.”
괴한은 계속해서 두 여인 앞에 주절거렸다.
“흥! 우리 집의 무수히 많은 하녀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자 내게 추파를 흘리고, 나를 가까이 하려고 시도했지만 내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단 말이다. 이래 뵈도 난 포부가 대단히 크고 가슴이 무척 넓은 남자다.”
괴한은 음조를 더욱 간절하게 바꾸며 여인들에게 호소했다.
“난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천하의 미남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단 말이다. 저 밑에 있는 젊은 친구 못지않게 미남이지.”
아마도 조영을 가리키는 말인 듯했다.
“게다가, 부친으로부터 가전절학을 배워 무공武功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남과 겨루어 져본 적이 없단 말일세. 어디 그 뿐인가? 경학에도 밝아, 공자와 맹자로부터 노자와 장자, 또 석씨釋氏의 가르침까지 꿰뚫었을 뿐만 아니라, 서역에서 들어온 파사교와 배화교拜火敎 등의 경전까지 읽어보았다네.”
괴한은 허풍을 떠는지 어느 정도의 진실이 섞인 얘긴지 모르나, 잇달아 자신의 학문과 무공, 출신, 대장부다운 기개 등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그 때 이루하가 입을 열었다.
“흥! 제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성현의 가르침을 받았다 한들, 하는 짓이 강도요 파렴치한인데, 당신은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가요?”
“이봐! 그래서 내가 오늘부로 옛 생활을 청산하고, 그대들과 더불어 꿈결 같은 보금자리를 마련하려 하는 게 아닌가? 그대들의 낯을 보고 내가 오늘 대오각성했단 말이네.”
이어서 괴한은 거의 애원하다시피 했다.
“나 좀 도와줘. 그대들이 나의 청혼을 받아들여주기만 한다면, 난 모든 악업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개과천선해서 새사람이 될 거라네.”
이때까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여미아가 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물었다.
“당신은 파사교의 경전을 읽어보았다고 했는데, 그 경전에 무슨 말이 쓰여 있던가요?”
여미아의 조용한 음성에는 어떤 항거할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괴한은 여미아를 한참 훑어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대는 그토록 고귀한 기품과 선녀 같은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으니 도무지 모를 일이야. 그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사악한 잡생각이 사라지고, 뭔가가 몹시 그립고도 그리운 이상한 상념에 사로잡힌단 말이지.”
괴한이 돌연 소리를 버럭 높였다.
“이봐 아가씨, 그대는 무슨 술법을 익혔는가?”
여미아에게 묻는 말이다.
“당신은 아직 저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여미아가 옥을 굴리는 듯한, 또 사람의 심금을 울려 혼백을 빨아들일 듯한 기이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나이는 여미아의 음성에 가슴이 떨리는 듯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한참이나 다시 여미아의 낯을 쳐다보았다.
“모를 일이야, 모를 일이야. 보면 볼수록, 내가 마법에 홀리는 것 같아.”
괴한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방금 내게 뭐라고 물었는가?”
“파사교의 경전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어흠! 아, 그야. 뭐, 좋은 말들이 많이 쓰여 있었지. 예순가 뭔가 하는 이가 메시아이고 하늘 상제의 아들이다. 또 뭐라 했더라?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라? 제기랄! 그게 무슨 뜻이야?”
괴한은 형형한 눈빛으로 여미아를 노려보며 물었다.
“근데, 그런 건 왜 묻나? 그대는 혹시 경교 신도인가?”
“난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 메시아를 나의 임금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여미아가 또렷하게 대답했다.
“어허! 경교 신도 처자들은 순결을 가장 중요시한다던데, 그러면 그대는 숫처녀인가?”
괴한의 노골적인 질문에 여미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루하가 돌연 빽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그럼 숫총각인가요? 그따위 해괴망측한 질문이 어딨어요?”
“이봐! 쉿! 조용히 말하라구. 난 귀먹지 않았네. 어흠!”
괴한이 헛기침을 하며 아래쪽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나, 이 어르신은 아직 숫총각이란 말일세. 어때, 내 말을 믿을 수 있나?”
“당신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말은, 진심인가요?”
이루하가 물었다.
“이봐!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내가 어찌 일구이언하겠는가? 그대들이 내 아내가 되어주기로 맹세한다면, 난 깨끗이 손을 씻을 거네.”
“싫다면요?”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강제로 첫날밤 예식을 치를 수밖에 없지. 이봐, 나의 진심을 믿어달라고. 내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애원해보기는 난생 처음이야. 믿든지 말든지.”
괴한은 한 차례 한숨을 내쉰 후 덧붙였다.
“지금 시간이 없어. 속히 결정하라고. 내 요청을 받아들이고 나와 정식으로 혼인할 것인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초야初夜를 치를 것인가.”
괴한은 하늘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어느 쪽인가?”
둘 다 대답이 없었다.
“일각이 여삼추야. 더는 기다리지 못하네.”
괴한은 돌연 이루하를 붙잡아 일으킨 다음, 품속에서 포승을 꺼내었다.
“아가씨는 여기 얌전히 서 있는 게 좋겠어. 내가 먼저 이 미묘한 아가씨하고 초야를 보낼 동안.”
괴한은 이루하를 이끌고 간 다음 옆의 큰 나무에 포승으로 상체와 양손을 칭칭 감아 묶었다.
여미아는 속으로 몹시도 당황해 연신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만은 아직 변하지 않고 있었다.
괴한은 앉아있는 여미아에게 다가가 손으로 여미아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그대는 가히 천하절색이라. 내 첫째 마누라가 될 만해. 하지만 그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모든 의욕이 싹 사라진단 말일세.”
이렇게 말하며 괴한은 수건으로 여미아의 얼굴을 감쌌다. 괴한이 여미아를 뒤로 넘어뜨렸다. 여미아의 팔은 등 뒤에 묶여 있었으므로 힘없이 넘어졌다. 괴한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여미아는 눈이 가려져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녀가 몸을 옆으로 돌리자 괴한은 강제로 그녀를 붙잡은 다음, 옷을 벗기려하였다.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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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12. 8. 봄날같은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