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조계사 도량 전경. 퇴근하며 들어가는 길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조계사야말로 살아있는 도심 속 나무그늘이며 도심 속 불교의 모습이 아닐까싶다. |
지하철, 편의점, 택배, 스마트폰, 별다방의 커피.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편. 리. 함. 그리고 친. 근. 함. 이다. 삶에 치여 피곤하고 머리가 아픈 사람들은 더 이상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고 편리하고 편안한 것에 열광한다. 그렇다면 우리네 불교는 어떨까? 친근한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가? 골목마다 있어서 편하게 갈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불교는 어렵고, 멀고, 불편하고, 다가가기 거북하고 힘들다. 이것이 불자가 아닌 사람들이 생각하는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느낌일 것이다. 불법승 삼보와 이를 따르는 불자들이 우리만의 리그 속에서 살아가길 원한다면 ‘혁신’이니 ‘변화’니 하는 말은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불교는 목 놓아 변화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불교는 더 이상 불자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의 근간이며 우리의 정서를 담고 있는 정신이며 지금의 트렌드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템플스테이를 국가 문화 산업으로 양성하고, 스님들의 책이 연신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고, 사람들은 힐링과 내 마음 알기에 열광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만큼 우리에게 쉼터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발로 직접 만드는 도심 속 나만의 쉼터 자, 지하철을 타고 유심히 살펴보자. 지하철에는 역에 인접한 공원, 유적지,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등등 다양한 문화에 대한 안내가 아주 친절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흔히 보는 지하철 노선도에는 사찰이나 문화재에 대한 안내는 나와 있지 않다.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으로 서울시에서, 혹은 지하철 공사에서 못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홈페이지에는 종교 유적으로 나와 있기는 하나 잘 살펴야만 찾을 수 있다). 자비가 근간인 불교에서 굳이 이를 문제 삼아 종교 분쟁을 만들 필요는 없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지혜, 그것이 불교가 추구하는 삶이 아니던가.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분노하기보다 내 손으로 내 발로 직접 나만의 쉼터 노선도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동네에는 어떠한 문화재가 있고 어떠한 이야기가 있는지 관심을 가져보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때론 너무 길게 느껴진다면 멀리가지 말고 나만의 쉼터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리자. 언제든지 나무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곳을 찾아 내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충전을 하며 쉼을 줄 수 있는 곳, 그곳에 바로 불교가 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불교가 아닐까 싶다.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놓고 온·오프라인으로 사찰 리스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1호선부터 시작된 리스트는 꽤나 한참이 걸려서 정리가 되었고 그 안에는 다양한 문화재와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 볼까 하는 고민 끝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희동구 축구감독의 오렌지 군단의 노선도부터 가기로 했다. 한국 불교의 심장이 있는 그곳으로. 한국 불교의 심장, 조계사 그곳에서 만난 변화와 불변의 절묘한 조화 길을 지나가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지?’ 라며 한번쯤 고개를 돌리게 되는 외형, 그곳이 바로 조계사이다. 쓰윽 스치듯 지나갈 수 있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그 느낌이 확 달라진다.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작년 11월에 봉안한 강철 사천왕이다. 강렬하게 우리를 쏘아보는 사천왕이 지키는 대문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서면 관음전 외벽의 양류관세음보살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이 두 개의 압도적인 예술작품을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호사를 누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사시사철 아름답게 장식된 각종 등과 때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마당은 다양한 축제가 끊이지 않는 공원 같은 느낌을 준다. 전통 사찰은 일반적으로 일주문, 천왕문을 따라 쭈욱 들어가면서 양쪽으로 무성한 나무와 대웅전, 관음전, 나한전 등 가람배치에 맞춘 각종 전각들이 즐비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도심 속에서 그 자리를 100년 넘게 지켜온 조계사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전형적인 전통 사찰 양식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감각까지 겸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진정으로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TPO(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군자의 성품을 닮았다고 해서 군자목으로도 불리는 500년 된 회화나무 옆에 있는 대웅전을 들어가는 순간, 거대한 세분의 부처님이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대불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당해 입을 벌리고 쳐다보다 그 옆에 소중한 듯 유리로 봉안된 한 분의 부처님을 볼 수가 있다. 대불과는 달리 작고 유약해보이며 여성스러운 선을 가지고 있는 부처님. 바로 목조석가불좌상이다. 이름 그대로 나무로 만들어진 앉아있는 석가모니불이다. 그렇다면 불상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게 된 것 일까?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석가모니가 기원전 544년 열반하고 약 5백 년간은 불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불상 시대였다. 그 당시에는 금강좌, 보리수, 불족적佛足跡 등이 예배대상이었다. 그러다 불상이 인간의 형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인도 서북부 간다라 지방에 서방의 고전문화가 유입되면서 그리스 신상이 들어왔고, 이러한 신상의 영향으로 불상도 서구적인 모습을 지닌 것이 많이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불상이 전해진 것은 서기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 전진의 순도가 불경과 불상을 들여오면서 불교가 처음 전래되었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는 불상 중에는 6세기 이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6세기 불상이나 현재 조성되는 불상이나, 우리 동네 불상이나 옆 동네 불상이나 오묘하게 비슷하며 마치 진시황이 그토록 원하는 불로초를 구한듯히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계신다. 이러한 것은 바로 불상의 불변하지 않는 조성 원칙, 32상 80종호이다. 불상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서 인간과는 다름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한다.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인간의 친근한 형상을 하면서도 차별성을 갖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초월한 존재로서의 특징은 석가모니가 500번 생을 거듭하는 동안 쌓은 공덕으로 얻어진 것이다. 석가모니의 제자 마하가섭은 이 중 일곱 가지를 갖추었다고 전해지며, 오늘날에도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를 뽑을 때 32상을 참고한다.
2014년 02월 05일 (수) [조회수 :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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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얼굴, 가늘고 긴 팔, 잘록한 허리 마치 모델 비율 같은 조계사 목조석가불좌상 불상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면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내 마음을 다스려 부처가 되는 것”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찌 보면 부처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생각하고 많이 웃는 것이 제 동안의 비결이에요.”라고 말하는 여배우들의 가식적인 멘트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황금비율의 몸매 -불상의 몸에 숨겨진 비밀 불상의 얼굴에 담긴 비밀을 살펴봤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몸을 살펴볼 차례이다. 불상의 몸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조계사 대웅전의 대불과는 다른 여성스러운 선을 가지고 있는 숨겨진 보물, 목조석가불좌상을 유심히 살펴보자. 유약하고 여성스럽고 가늘지만 당당한 체구에 갸름한 얼굴은 조선 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바로 비율이다. 조그마한 얼굴에 무릎까지 닿은 긴 팔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런 비율이 가당키나 한 것인 싶다.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얼굴, 긴 다리, 긴 팔을 지닌 훌륭한 모델의 몸매와 닮아 있다. 게다가 방금 네일 케어를 마친 것처럼 길고 단정한 손가락을 보고 있노라면 ‘예쁘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유약하고 여성스럽던 이미지에 반전을 주는 것은 두툼하고 풍만한 어깨이다. 곧게 펴진 어깨에서는 당당한 기품이 느껴진다. 김수현처럼 작은 얼굴에 강동원의 슬림한 팔과 다리, 조인성의 손가락에 이정재의 어깨를 지닌, 이런 형태의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외계인이거나 완벽한 모델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형태는 모두 부처만이 가질 수 있다는 32상 80종호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인간의 외형을 갖고 있지만 인간이 지닐 수 없는 점을 갖고 있는 것, 이것이 인간과 다른 존재인 신의 형상이며 다른 사찰의 불상들을 보아도 이러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의 머리카락 - 풀리지 않는 신비 우리가 이성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마음’보다는 보이는 ‘외모’에 먼저 눈이 가기 마련이다. 스타일을 중요시 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패션의 완성은 옷이나 신발이 아닌 얼굴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그 얼굴을 돋보이게 해주는 가장 완벽한 소품은 무엇일까? 바로 헤어스타일이다. 풍성한 머리숱을 기본으로 탄력과 윤기가 넘치는 머릿결은 어떤 얼굴이라도 훨씬 아름답고 어려 보이게 만들어준다. 심지어 어떤 헤어스타일을 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풍기는 이미지까지 달라질 수 있다. 그 어떤 조각 같은 외모의 남자연예인도 입대를 앞두고 카메라 앞에서 절대 모자를 벗지 않는다. 그만큼 머리스타일은 사람의 외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머리스타일은 어떠한가? 자세히 보면 소라 모양에 상투를 틀고 있다. 레게 머리나 퍼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손질을 요하는 스타일이다. 부처님은 왜 이토록 독특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을까? 사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번뇌의 상징으로 여긴다. 불교에서 머리카락은 무명초라고 하여 출가할 때 욕망을 끊는 의미로 삭발을 하는데 싯다르타 역시 출가 당시 가장 먼저 머리카락부터 잘랐다. 번뇌가 많아 스트레스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들에게 탈모가 진행되리라는 것을 부처님은 그때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석굴암 부처님도 조계사 부처님도 소라모양의 머리를 갖고 계실까. 이것 역시 앞서 말한 32상 80종호에 따른 것이다. 32상 80종호 중 머리카락에 대한 부분은 ‘정수리에 육계(상투)가 있어 둥글고 가지런하며 머리카락은 소라처럼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고 그 빛은 검푸르다’라고 나와 있다. 부처님 당시 인도문화권 남자들은 높은 신분일수록 상투와 터번이 높았는데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부처님을 조성할 때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경전에 ‘육계상은 수많은 선행善行의 결과로 나타난 상서로운 것’ 이라고 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이 육계상은 부처님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불상의 옷 - 아슬아슬하고도 과감한 어깨 노출 출가 당시 싯타르타는 칠보묘의(일곱 가지 보배로 치장한 아름다운 옷)를 입고 있었는데 사냥꾼이 입은 짐승가죽으로 된 허름한 옷과 바꿔 입었다. 훗날 부처님은 버려진 천을 모아 만든 분소의로 의복을 해결하고자 했고 조각보를 만들 듯 조각조각을 이어 가사를 만들어 입었다. 그러나 불상들은 조각 옷이 아닌 왼쪽 어깨에만 걸쳐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우견편단右肩偏袒이나 두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通肩의 형태를 하고 있다. 보시로 들어온 천은 이어 맞춰 옷을 만드는 것이 맞지만, 새 천일 경우 멀쩡한 것을 조각내서 다시 기우는 것은 멍청한 일일 뿐만 아니라 조각난 옷을 표현하는 것 역시 어려웠을 것이다. 조계사의 목조불좌상은 우견편단이지만 조계사 대불의 삼불 중 가운데를 제외한 좌우의 불상은 통견을 하고 있다. 특히 왼쪽 팔굽 위에 표현된 Ω형 주름과 가슴 부분에서 접혀진 속옷은 독특한 모습이다. 불상의 손 - 작은 동작 속에 담긴 커다란 의미
결가부좌 한 조계사 부처님은 오른쪽 손을 풀어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 끝은 가볍게 땅에 대며 왼손은 손바닥 위로 배꼽 앞에 놓여있다. 5대 수인 중 하나인 항마촉지인이다. 항마촉지인은 마군의 항복을 받는 손 모양으로 싯타르타가 깨달음을 얻으려 하자, 마왕 파순이 욕망·혐오·기갈·집착 등 색욕을 의미하는 세 딸, 권력욕인 전륜성왕을 내세워 거래를 시도하였다. 그때 파순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온갖 욕심이 부처님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싯타르타는 자신을 이기고 부처가 되었고 이때 항마촉지의 손 모양을 하였다. 따라서 항마촉지인을 한 부처님은 대개 석가모니불이다. 부처님은 작은 손동작만으로 내 마음속 애착과 번뇌를 끊는 것이 진정한 평온을 찾는 것임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조계사 목조부처님은 전반적으로 조선시대 불상양식을 보여주면서도 허리를 세워 자세가 반듯하고 신체비례에서 균형미가 있으며 가슴 위로 주름진 내의가 표현되는 등 근대 작품의 성격도 나타난다. 조선 전기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재질·기법·세부 형태 등은 조선 후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부처님은 몇 분일까? 부처님은 과연 여러 분일까? 절에 가면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미륵불, 비로자나불 등 여러 부처님이 계신다. 그리고 우리들 마음속에도 분명 부처님이 계신다. 어떤 수인을 하든, 어떤 옷을 입고 있든,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바로 내 마음의 부처를 알아차리기 위해 부처님을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 조계사 대웅전 목조석가불좌상 유형문화재 제 127호로 대웅전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불의 얼굴 형태와 이목구비, 신체비례를 비교하며 감상하자. 조계사는 1395년에 지어졌으며 1910년에 승려들의 모금으로 설립된 각황사가 모태이다. 그 중심에 있는 대웅전 목조석가불좌상은 1938년 전남 영암군 월출산의 도갑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당초 나무로 만들어졌고 현재 도금돼 있으며 조선시대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 | 글: 윤효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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