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좋기로 유멩(유명)한 상동(향동)
봉호산(첨찰산) 지슭(기슭) 따땃한(따뜻한) 양지짝이로(양지쪽에) 자리잡은 존(좋은)동네 존핵교였는데
1938년 일제강점기에 향동공립국민핵교로 시작했다가
근래들어가꼬는(근래들어) 오산초등핵교 향동분교로 게우(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그남둥(그나마) 2009년 9월에 폐교를 맞은 상동핵교(향동초등학교)다.
우리 잔아배(작은 아버지)가 총각때 첨이로(처음) 부임해가꼬(부임해서) 선상님을 하시다가
그 동네 큰애기(처녀) 한테로(에게) 장개(장가)를 가솄고(가셨고) 거가(거기가) 첫 교장 근무지였고,
또 진도교육장을 마치신 대미는(뒤로) 자원해가꼬(자원해서) 거그(거기) 교장이로 정성을 디리다가(들이다)
정년퇴임을 하신 핵교여가꼬(학교라) 애정이 남 달른(다른) 핵굔데(학교인데)
구순 낫살(나이)에 몸도 불펜하싱께(불편하시니) 자꼬(자꾸) 거그(거기) 생각만 더 나싱거 같어가꼬(같아서)
지난 봄에 휠체어까장(까지) 차에 실꼬(싣고) 잔아배 잔엄매 뫼시고 댕개(다녀)왔는데 너머(너무) 짠하드구만이라.
암찌께나(아무래도) 물이 푼한(풍족한) 동네답게
지끔도(지금도) 핵교 젙에(곁에, 옆에) 수로로 물은 이전 맨치로(처럼) 변함읎이(없이) 철철 흘르고(흐르고)
낭구덜(나무들)도 흘러간 시월(세월) 고대로(그대로) 간직한 채 꿋꿋이 서 있는데
핵교 딸각다리(층층대, 계단)하고 운동장에 지심덜(잡초들)하고 희낏희낏 베께지는(벗겨지는) 건물 페인트덜이
흘러간 시월(세월)의 무상함을 말하능 거 같으구만이라.
지가 보기도 맴이 짠한데
울 잔아배 맴은 더 하시꺼 같어가꼬 대충대충 큰 지심은 뽑아뿔고 잔 지심은 볿아뿔고 해가꼬
이남둥 째깐 깨깟해 졌구만이라.
운동장 한피짝의 류관순 열사도 흐칸 몸지만 허끔 뒤집어씬 백발로 멋이라 부르짖고 기신데
그 말씸도 한나도 안 디키고...
(우덜 클쩍에 유관순 뉨이라고 불렀제만 하기사 그 어런 낫살이 음만데 백발이 안 댰겄소만?)
최신식이로 맨든다고 큰돈 딜에가꼬 해논 급수대도 쥔을 잃어뿔고 요케 몸지만 택택 슬었구만이라.
핵교 뒤핀짝이로 녹음 휴게소랑 째깐한 호수랑 자연관찰 교육장이 있는데
여그도 대충 큰 지심은 뽑았제만 케케 앉인 몬지는...걍!
창포꼿(꽃)잉가가 핀 호수도 자빨쌔진 낭구 가장구로 반은 요케 멩에져뿌렀습디다.
욕불로 이전에 재미졌던 야그만 함시로 짠한 맴을 달래 디릴라고 했제만
액싹시렁건 으찌께 못 하겄고 고날 찍엤든 사진도 뽑아 디렜싱께
울 잔아배 또 고 사진덜 보심시로 음마나 썩썩한 맴이 드시까? 꺽정 되능구만이라.
<진도 송현 조병현>
첫댓글 젊은사람이 시골서 안 산께 애기덜이 없어각고 학교가 폐교 댜 부렀네요.옛날같으면 머이마 가이나들이 저 학교 마당에 한나썩 차 갖고 꽁 차고 고무줄 놀이하고 시끌벅쩍 했 던 곳인데...아무도 안지키고 풀 성한것 본께 또깨비 나긋오.
참말로 어찌께하먼 우리 진도에 폐교뒤야분 학교덜을 다시 살릴 수 있으까 꺽정이어람쨔....
저케도 이삐게 가꿔놨는데 시방은 잡초가 까득항께 맘을 걍 어디다 둬사쓸랑가 모르겄씁니다.
향동도 패교가 되었군요.
지나 댕긴서도 몰랐습니다.
제가 약 5개월 정도 다니고 졸업장 받은 모교인데 이렇게 폐교가 되고보니 맘이 여간 짠합니다. 주인없는 교정에 나무들만 쓸쓸히 우거졌네요.
저두 향동국민학교 시절이 생각 납니다 무척이나 크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정말 작게만 느껴지더군요.. 모교가 없어지는 마음 마냥 슬퍼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