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51회 최고령 합격한 양재규씨
“인생은 오십부터... 결코 늦었다고 생각 안해”
대학 졸업 10년후 사시 도전... “후반부 인생 목표 이뤄”
"최고령으로 합격하자는 생각으로 공부했는데, 정말 최고령으로 합격하게 되었어요."
얼마 전 합격자 발표가 난 제51회 사법시험에 최고령으로 합격한 양재규(48)씨는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합격이 늦었다는 아쉬움 같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가 2년간의 사법연수원 연수를 거쳐 변호사 자격을 거머쥐게 되는 것은 2년 후인 2012년 초. 그는 그러나 "이미 10년, 20년 후의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며, 누구보다도 의욕에 찬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생의 후반부는 변호사가 돼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과목별 수험서 쓰며 사시공부 병행, 초고 읽으며 총정리할 수 있어 도움”
2년 후인 50세에 법조인으로 새출발하는 그는 약 30년 전인 1980년 3월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법학도 출신이다. 하지만 87년 졸업과 함께 법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한다. 군대는 대학 재학 중 갔다 왔다.
서울대 법대 졸업
그 대신 다양하게 인생을 경험했다. 해외에서 근무하고 싶어 대기업에 취직해 영업부서 근무를 희망했으나, 법무실로 배치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국가안전기획부 공채에 합격했으나 면접에 불참하는 등 자유분방하게 젊은 날을 보냈다.
비록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한동안 대하소설 창작에 매달린 적도 있고, 컴퓨터에 빠져 컴퓨터 활용법에 관한 교재를 집필하기도 했다. 영문법 교재도 만들었고, 소규모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10년 전 사시 공부 시작
사법시험을 보겠다며, 다시 법학 공부를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10년 전인 1998년. 그는 "1997년 말 IMF 위기가 닥치면서 개인적으로도 경제적 토대가 무너지고 말았다"며, "기존질서로의 편입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사시에 뛰어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종전에는 태종의 네 아들 중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양녕과 같은 삶의 태도를 가지기도 했지만, 나중에 세종대왕이 된 충녕의 삶의 자세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시민단체를 도와 불공정약관을 조사하는 일에 나서고, 2007년 여름엔 대통령선거예비후보자의 선거를 지원하는 등 그의 수험생활은 평범하지 않았다. 이미 늦은 김에 최고령으로 합격하자며 2003년부터 3년간은 아예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계획한 일을 계속했다.
과목별 수험서 저술
시험공부 방법도 특별했다. 과목별로 수험서를 저술하며, 수험 및 법학공부를 병행했다. 많은 수험생이 과목별로 교과서를 정해 단권화하는 방법으로 공부하는 것을 보고, 아예 과목별로 책을 쓰자고 덤벼든 것이다.
그는 "책을 읽으면 나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는 습관과 완벽주의 때문에 시작한 일이나, 공부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 "책을 쓰며 깊이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음은 물론 직접 출판한 저서나 컴퓨터 파일의 형태로 보관하고 있는 초고를 읽어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총정리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그가 출판한 책은 민법 상, 하권과 헌법, 형법총론 등 사시 고득점 시리즈 4권. 또 형법각론,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도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파일의 형태로 저술을 완성해 카페 회원 등에게 제공했다. 그는 초안을 만들어 놓은 행정법과 상법책을 마저 완성해 '사시 7법'의 수험서 집필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사시에 합격했다고 하니 고교 동창 중에 부럽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그는 "뒤늦게 출발하는 사람에 대한 위로의 의미가 강하겠지만, 후반부 인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지 않느냐"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또 "인생은 오십부터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20대 중후반부터 직장생활을 계속한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누가 돈을 더 많이 벌었느냐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여전한 의욕을 나타냈다. 물론 공부하는 동안 사회경험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늦어도 결코 늦지 않다'
한 수험매체에 기고한 그의 사시 합격기 제목은 '늦어도 결코 늦지 않다'. 그는 "공부방법 보다도 내가 살아온 과정을 가급적 많이 넣으려 했다"며, "사시 준비에 열중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참고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년 3월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는 그는 최연장자가 맡아 온 관례상 41기 연수생 1000명을 대표하는 자치회장을 맡게 된다. 그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41기 동기들 중에서 훌륭한 법조인이 많이 배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따뜻한 인간애와 함께 정의감이 있는 법조인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공익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41기 연수생 자치회장 후보
그가 연수원을 수료하는 2012년엔 2009년 처음 신입생을 뽑은 로스쿨 출신도 변호사로 배출되게 돼 사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의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그런 시기에 41기 연수생들의 자치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다양한 경험으로 젊은 날을 보낸 후 다시 법조계로 돌아 온 그가 후반부 인생에서 펼칠 본격적인 법조이야기가 기대된다.
Legal Times
Vol. 23 January/February 2010
발행일 2009년 12월 25일(매월 발행)
http://legaltimes.co.kr/view.htm?kind=menu_code&keys=4&UID=11933
첫댓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人生 선배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나의 꿈은 또다른 타인의 꿈이된다... 2년뒤의 내모습을 기대하며, 다시금 용기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