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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해야 할 일은
스가랴 8장 1~7절
○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힘을 내어라! 만군의 주의 집, 곧 성전을 지으려고 기초를 놓던 그 때에 일어난 그 예언자들이 전한 바로 그 말을, 오늘 너희는 듣는다. ○ 그 이전에는 사람이 품삯을 받을 수 없었고, 짐승도 제 몫을 얻을 수 없었다. 해치는 사람들 때문에, 문 밖 출입도 불안하였다. 내가 이웃끼리 서로 대적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제 살아남은 이 백성에게는, 내가 이전같이 대하지 않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 뿌린 씨는 잘 자라며,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고, 땅은 곡식을 내고, 하늘은 이슬을 내릴 것이다. 살아남은 백성에게, 내가, 이 모든 것을 주어서 누리게 하겠다. ○ 유다 집과 이스라엘 집은 들어라. 이전에는 너희가 모든 민족에게서 저주받는 사람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니, 너희는 복 받는 사람의 표본이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힘을 내어라! ○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조상들이 나를 노하게 하였을 때에, 나는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고, 또 그 뜻을 돌이키지도 않았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 그러나 이제는,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기로 작정하였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하다. 서로 진실을 말하여라. 너희의 성문 법정에서는 참되고 공의롭게 재판하여, 평화를 이루어라. ○ 이웃을 해칠 생각을 서로 마음에 품지 말고, 거짓으로 맹세하기를 좋아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 나 주가 말한다."
거짓말
1997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사람은 하루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해 조사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였고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으로는 점원, 정치인, 언론인, 변호사, 세일즈맨, 심리학자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잠자며 보내는 시간을 뺀 16시간 동안 200번, 대략 한 시간에 12회를 상회하는 횟수로 거짓말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10분 안에 적어도 두 번의 거짓말을 하면서 매일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에 대한 가치
헤밍웨이의 잃어버린 원고에 대한 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영화 <더 스토리: 세상에 숨겨진 사랑>(원제-The Words)은 무명작가로서의 삶을 이어가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로리’가 어느 날 우연찮게 2차 대전 이후 파리를 배경으로 한 짧고 강렬한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는 소설 원고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로리’는 극중에서 원고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잊은 채 소설 속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로리’의 모습은 이 시대의 야망에 찬, 그러나 선한 양심을 가진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로리’는 무의식적으로 원고를 자신의 원고에 옮기게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조명을 받게 되지만 곧 그 앞에 소설의 주인이라는 한 ‘노인’이 나타나게 됩니다. 영화는 곧이어 ‘클레이’라는 호평 받고 있는 작가에게로 시선을 옮기게 되고 그가 낭독회를 통해 발표하는 책의 내용은 다름 아닌 ‘로리’와 ‘노인’에 대한 이야기임을 보여주며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소설 속 ‘로리’는 가난한 무명작가로 어렵게 살아갔기에 그의 선택은 최선의 선택일 수도, 가장 어려운 선택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거짓말의 홍수 속에서 진정으로 잊지 말아야 할 진실에 대한 가치를 소설이라는 장르를 영화 속에 차용함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짓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가장 큰 표절이라는 틀 속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인간관계를 망치게 하는 사랑의 진실에 대한 문제를 여섯 명의 연인들의 인생사를 통해 담아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부득이한 거짓말
때로는 부득이하게 거짓을 말해야 할 때도 있고, 선의로 사실을 숨겨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 기분이 엉망일 때도 우리는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이웃이나 동료들과 하루를 시작합니다. 나는 정말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아요!”라고 답하며 살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거짓말이 갖는 공익적 성격이나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하거나 도외시하기도 어렵습니다.
짐 캐리가 거짓말쟁이 변호사로 등장하는 영화 ‘라이어 라이어’는 그가 아들의 소원에 따라 하루 동안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될 때, 그의 생활이 어떻게 엉망진창이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삼손이 드릴라의 유혹에도 자신의 단점을 이야기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비밀을 드러냄으로 삼손의 머리는 잘려지고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날려버리게 됩니다.
11월 항쟁
현재 한국사회를 통해 보고 있듯이, 하루만 지나도 금방 드러날 일을 놓고 나라의 최고 권력에 있는 사람들이 거짓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며 참 한심하고 가슴이 뻥 뚫린 듯 자괴감을 갖게 됩니다.
찬 겨울로 가는 길목의 2016년 11월은 참으로 뜨겁습니다. 역대 미문의 국정 농단, 국기문란의 사태를 접한 국민들의 표현 방법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국민들의 모습, 물리적 충돌로 일관되어 오던 표현의 방법이 평화와 자유로운 모습의 새로운 표현 방식, 새로운 시위 모습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고, 생각만 하면 울화통이 터지고, 숨겨진 진실이 되어 청산하지 못한 역사로 남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국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였고 이 땅에 민주주의와 정의를 국민들의 힘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마 11월 항쟁으로 역사에 기록 될 것입니다. 돌을 들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계심을 고백합니다.
사실과 진실
저는 일명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면서 시종일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진실”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예배 하는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이곳이 빈들교회 본당이고 제가 설교를 하고 있고 우리는 모두 예배하고 있는 그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두 진실한 삶을 살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심령의 상태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좋은 상태라는 것이 진실이라고 말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실과 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실은 실제로 일어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말합니다. 흔히 우리가 눈이나 귀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진실은 오감으로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은 드러나야 진실이 됩니다. 그래서 숨겨진 진실은 우리가 진실로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진실은 왜곡될 수 있습니다. 미화된 진실은 사람들에게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왜곡된 진실은 사람들의 생각을 병들게 하여 현실 판단을 올바르게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마약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이 곳에서는 사람들이 아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나의 아내를 빼앗으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씀드리면, 나의 아내가 나의 누이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내는 나와는 어머니는 다르지만, 아버지는 같은 이복누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버지 집에서 떠나서 여러 나라로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부탁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으로 가든지, 사람들이 나를 두고서 묻거든, 그대는 나를 오라버니라고 하시오. 이것이 그대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은혜요' 하고 말한 바 있습니다."(창 20:11~13)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데려간 일로, 주께서는 전에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여자의 태를 닫으셨었다.(창20:18)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진실을 버리고 거짓의 유혹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 아브라함 일행이 이집트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아브라함이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소개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자기 아내 사래를 취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였습니다. 사래가 그의 이복누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 말은 명백히 사래가 그의 아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의도에서 행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거짓말은 자신의 신앙뿐 아니라 상대의 인생에도 해(害)를 끼치게 됩니다.
메타노이아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 사 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셨던 첫 마디는 이렇습니다.
15 “때가 찾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막1:15)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시작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회개와 복음 실천을 외치신 이유는 그 시대의 왜곡되어 있는 사회체계, 형식적인 예배와 신앙, 거짓으로 점철된 관계와 의지에 대한 일갈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참 진실한 곳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믿음을 갖기 위한 첫 관문으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하나님 나라도, 다가올 하나님 나라도 모두 회개를 통해 우리가 일신 우 일신(日新 又 日新) 할 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회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입니다. ‘메타’는 ‘변화’를, ‘노이아’는 ‘머리’를 의미합니다.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지나간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속사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삶의 방향과 목적이 바르게 뒤바뀌는 변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곳으로 그 곳에서 살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나의 삶과 생각과 존재의 중심이 되어야하기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는 내 삶에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이고 사는 이유가 바뀌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한 근본적인 변화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삶의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 일회성 '메타노이아'이고, 다른 하나는 바뀐 삶의 방향 안에서 날마다 반복되는 '메타노이아'입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면, 후자는 매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의미합니다.
이 두 종류의 '메타노이아'는 모두가 우리들 스스로의 깨우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이며, 성령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삶은 회개에서 시작되는데 그것은 곧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노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3:5)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거듭'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노텐'은 '다시'라는 뜻과 함께 '위로부터'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을 통해 다시 태어남,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행 2: 36~38)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베드로는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행 2:38)라고 전했습니다. 회개가 죄 사함을 가져오고, 죄 사함은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 나라의 주권을 가진 참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은 매순간 말씀 속에서 성령을 통한 '메타노이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낡아지는 겉 사람을 소유하고 있는 우리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려는, 거짓의 삶을 살려는 잘못된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교정하고 제 자리로 되돌리는 방법은 참다운 회개 곧 '메타노이아'입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자신을 늘 돌아보며 회개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비결입니다.
토마토 효과(tomato effect)
토마토 효과(tomato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토마토는 처음 페루나 에콰도르의 고산 지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던 줄기 식물입니다.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유럽 정복자들의 중남미 정복 이후 이 채소도 유럽에 전파됐습니다. 유럽에 첫 뿌리를 내리던 16세기 선입견과 고정관념, 미신이 결합해 악마의 열매로 둔갑해버렸습니다. 토마토 줄기는 감자 싹처럼 솔라닌이라는 독소를 품고 있습니다. 이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한 동물들은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장면을 본 사람들이 이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면서 토마토를 멀리 했습니다. 다른 과일이나 채소와 달리 겉과 속이 모두 빨간색이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빨간 색은 뭔가 불손하고 불경스러운 색으로 여겨졌습니다.
오늘날 토마토는 ‘황금의 사과’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맛있고 건강에 이로운 식품이라는 뜻입니다. 토마토가 좋은 식재료가 되기까지는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아야 했던 유럽 빈민층의 역할이 컸습니다. 귀족들이 토마토를 악마의 열매라며 멀리 한 대신 빈민층은 어쩔 수 없이 토마토를 먹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토마토는 식용 금지 식물이었습니다.
토마토가 19세기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이 식물에 대해 의문을 가진 로버트 존슨이라는 사람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먹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많은 토마토를 먹어 치웁니다. 그가 쓰러질 것이라고 믿었던 대중은 아무 일이 없자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들이 알았던 것은 지식이 아니라 단지 미신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토마토를 모두 안심하고 먹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00여년이었습니다. 그마저도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 덕분이었습니다.
빛의 열매
6 여러분은 헛된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과 짝하지 마십시오.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입니다. 10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11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12 그들이 은밀히 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13 빛으로 말미암아 폭로되는 모든 것은, 드러나게 됩니다. 14 드러나는 것은 다 빛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조심하여,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처럼 하십시오.(엡 5: 6~15)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만큼만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주로 우리의 오감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때만이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욕심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마음을 딱딱하게 만들기에 뻔한 사기에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헛된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어둠의 삶에서 빛의 삶으로의 전환은 바로 올바른 메타노이아, 즉 회개에서 가능합니다. 빛은 모든 선과 의와 진실로써 어둠의 일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폭로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의 삶은 어둠을 드러내어 밝히는 삶이어야 합니다. 빛의 열매를 맺는, 선과 의와 진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자세와 태도
16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하다. 서로 진실을 말하여라.(슥8:16a)
빛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는, 어둠을 폭로하고 진실을 밝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개인적인 결단에서 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회복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아마 당시 이스라엘은 그 때까지 해 왔던 대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변화도 새로움도 기대도 희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성전 건축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웠고 주변 민족들과의 관계가 안 좋아 위협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성전건축을 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들을 멈추고 회복케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회복의 선언과 함께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서로 진실을 말하라’는 말씀입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 가져야 할 자세와 중심은 ‘진실’이고 진실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회복의 때는 지금이 아닐 수 있지만 진실한 우리의 자세와 태도는 지금과 항상 이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시작기도
지난 계절의 수고와 열심의 결실을 맺는 가을, 우리는 어느 때든지 추수의 때, 부르심의 때를 준비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날, 우리를 이곳에 부르시고 예배하게 하신 하나님 우리의 겉 사람은 죽고 속사람이 살게 하여 주옵소서.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인식하며 호흡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만물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끼고 보며 만지고 듣게 하옵소서.
사랑과 은혜의 주님! 저희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찼습니다. 위기는 기회고, 고난은 변장하고 찾아오신 하나님이며 실패는 성공의 시작이라는 말처럼 이 나라의 어려움을 통해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옵소서.
빈들공동체가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다윗의 손에 들렸던 물매가 되게 하시고 조약돌이 되게 하옵소서. 먼저 나로부터 회개와 변화가 일어나게 하시고 나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사회로, 시냇물이 바다로 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진실한 믿음의 내용들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함께 나누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가슴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시길 간구하오며 죄와 사망의 거짓에서 의와 진리와 생명의 진실의 빛으로 나가게 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축도
한 순간도 빠짐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빈틈없이 사랑의 계획과 섭리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며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삶을 살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좌고우면 할 수밖에 없고 유리방황 할 수밖에 없는 저희들의 부족을 고백하오며 하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허락 하실 회복의 때를 기다리며 지금 그리고 항상 진실한 태도와 자세를 갖게 하옵소서.
이제는 참 진리 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천하 만물을을 지으시고 심히 좋았다고 기뻐하셨으며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의 일 거수 일 투족에 임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 교통 역사 충만하심이 예배 한 모든 성도들과 빈들공동체 위에 함께 하시옵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