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반에 부산 개금애서 군대생활한 어느 군 선배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인터넷에서 수집한 옛사진과 연계해서 그 시절의 모습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날씨가 쌀쌀 하여 지는 겨울 철 이면 붕어 빵. 잉어빵 등 밀가루 로
그속 에 단팟을 넣어 구어 내는 빵들이 거리 이곳 저곳 에 볼수 있읍니다.
그 빵의 단팟 맛 도 맛 이지만 신문지 봉투 냄새와 그 뜨거운 열기 는
싸늘한 겨울 에 손 화로 같은 따스함을 전달 하는 빵이기도 합니다
잘못 먹다가는 입에 가벼운 화상을 입을수 도 잇는 빵이기도.....
1960 년 부산 개금 가야산 밑에 군 부대가 있있읍니다
서울 에서 부산 을 통하는 옛 1번국도 가의 산 아래
구포를 지나 면 산위에 원통 <원유통>으로 된 것이 수없이 보이고...
1950년대 초중반, 주례 사상저유소 모습
이 글쓴 분이 말씀한 원통 <원유통>
주례 럭키아파트 자리에 있던 옛 사상저유소 저유탱크를 말합니다.
6.25 전쟁 발발후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유류 소비를 감당 할 수 없어
미군 공병대에서 1951년도에 사상저유소를 신설하여
부산항으로 수입한 정제 유류를 저장 보관하는 초량저유소에서 경부선을 따라 설치된
송유관을 통해 사상저유소로 보내 저장해 두었다가 가야역에서 주례 사상저유소로
연결된 철도를 통하여 전국 각지로 유류를 보급하게 됨니다.
'64년도에 대한석유공사 울산공장이 완공되면서 우리나라도 원유를 정제하여 석유를
직접 생산하게 되므로 부산 3부두를 통해서 정제된 석유를 해외에서 수입하여
초량저유소와 경부선을 따라 설치된 송유관을 통해 주례 사상저유소에 저장했다가
가야역으로 연결된 철도를 통해 전국 각지로 보급하던 기능이 불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60년대 중반쯤에 초량저유소,사상저유소 저유탱크(송유관 탱크)와
송유관시설을 해체 철거하게 됩니다. 이 분리 해체된 송유관파이프와 카플링 등
송유관 부품 수만점과 저유탱크 해체셑 몇기 분을
가야 공병기지창에 전시 대비 전술자재로 보관하개 됩니다.
'75년12월에 공병,통신,화학,병참,의무 등 5개 병과 보급 저장기능을 통합하여
1종합보급창이 가야 공병기지창 자리(지금 KTX 정비단)에 창설하게 됩니다.
이와 연계하여 위 5개병과와 기계창, 차량을 제외한 병기병과 창정비 업무를
담당하는 1종합정비창도 거제리(지금 법원,경찰청 자리)에 창설하게 됩니다.
차량 창정비는 2정비창(차량재생창, 지금의 문현동 금융센터)에서 담당하고요
1종합보급창(좀 뒤 1보급창으로 변경) 시절에 분리 해체하여 세트별로 저장중인
저유탱크와 야적지에 저장중 이던 송유관파이프의 보급창 저장중 정비 계획을
군수사령부와 협조하여 수립하고 작업 명령서를 작성하던 업무를 내가 담당했었지요.
6.25 당시 포로 수용소 부지에
육군 화학 학교 와 화학기지창 부대가 있었읍니다
이등병 에 솜 바지저고리를 입고 이 화학학교 교육생으로
교육후 그 부대 에서 3 년간 기간 병으로 근무하던곳 입니다.
6.25 전쟁중이던 1951년도 이 글쓴 분이 예기한 옛 개금 포로수용소 모습입니다.
왼편 상단쪽 공터(연병장)에 붙어서 나무숲이 보이고 그 뒤에 약간 낮고 높은 건물들
옛 화학기지창과 화학학교 모습입니다.
오른편 백양산 산기슭에는 1203건설공병단도 보이네요.
개금 대도빌딩와 개금역 사이에 있던 화학학교와 화학기지창 담장 모습이 왼쪽에 보인다.1968
'60~'70년대 초반 그 당시 지금의 개금 대도빌딩에서
개금시장을 지나 개금사거리(개금역, 백병원 입구)까지
가야대로 왼쪽편은 다 군부대 자리 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반으로 보이는 위 사진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국도 옆 에 철조망 이 엉성 하게 쳐져 있는 경계선이
군 과 일반 인 의 경계 일 뿐 마음 만 먹으면 언제나 개구멍으로
밖을 나갈수 있는 곳 이었습니다
경비병 은 그저 허울 좋은 이름 일뿐 ...
그런데 그 철조망 을 벽 삼아 이 풀빵집이 <현재 붕어빵> 있었는데
훈련병 들의 유일한 주점부리요 ,
사회 의 낭만을 철조망 안에서 맛볼수 잇고
또 편지 나 부대 PX 에서 구할수 없는것 을 구 하여다 주는
풀빵 아저씨 가 있었읍니다
지금 붕어 빵 맛에 비교도 않되던
그 맛 이래야 오죽 하였겠읍니까 만은 ....
취침 나팔 소리 에 누워 잠을 자다 출출 하면 이 풀 빵을
속 내의 바람으로
몰래 나가서 사먹고 배을 채우던 아련한 옜 추억 이...
춘 삼월 눈이 오는 쌀쌀한 날씨가 그때의
아련한 추억 을 되씹게 합니다
이 붕어빵을 겨울 이면 즐겨 사먹는 이유 이며
낭만도 함게먹을수 있고
신문지 봉투 의 그 따스한 풀빵 의온기 와 신문지내음이
이제는 햐얀 봉투 에 1000원에 세마리로 오른 가격 과
더 맛이 잇는 팟 고물...
그러나 천원에 6 마리 를 먹을수 잇엇더고 3월의부산 바람과
뒤범벅이 된 추억 의 먹거리를 사 먹으며
아련한 50 여년전 의 군대 생활 의 낭만을 되새김질 합니다
부산의 군생활, 잊을수 없는 풀빵.
부산 의 일미 돗 고기. 오뎅 은 일품 이었지요...
육군 화학학교 (화생방학교) 역사
화학교육대 창설 1953년 06월 26일 경기도 양주
1954년 06월 20일 서울시 용산 으로 이동
1954년 06월 30일 경기도 김포 로 이동
1955년 02월 20일 전라남도 광주시 상무대로 이동
육군화학학교 창설 1958년 09월 30일
1961년 07월 25일 부산시 개금동 으로 이동
1974년 06월 25일 전라남도 광주시 상무대 로 이동
★ 이 시기에 화학기지창 보급창고는 가야 1종합보급창으로 통합되고
정비기능은 거제리 1종합정비창으로 통합됨
육군화학학교 해체 1983년 02월 01일 전투병과학교 화학학부로 편성
육군화학학교 재창설 1990년 01월 01일
1994년 12월 23일 전라남도 장성 으로 이동
2011년 화학병과가 화생방병과로 개칭되면서 육군화학학교에서 육군화생방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음.
첫댓글 지난 세월의 상세한 정보 잘 읽었습니다. 고마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