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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정으로 장기간 중단되었던 '續-까미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 까페지기 ->
까미노는 청개구리?
어제 더 강행할 수 있었으나 알랭(Alain/알라인) 팀과의 재회의 기회를 갖기 위해 일찍 마쳤다.
한 곳에서 온종일 기다리는 지루함 보다 그 지루함을 분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어서.
오늘도 그럴 예정인데 소극적인 듯 한 그들의 반응(아침에 facebook에서확인)에 머쓱한 기분
이기는 했지만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의 거리가 두 자릿수(100km미만)로 줄어들 날의 아침.
전화위복으로, 근래에 드물게 편한 밤을 보냈기에 가벼운 몸으로 일어섰다.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받기에는 약한 안개비를 맞으며 알베르게를 나온 시각은 노르떼 길에서
최초라고 생각되는 8시가 넘은 때였다.
화젯거리 없는 평범한 하루 되기를 바랐던 어제 더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정 반대 현상이다.
청개구리라면 오늘은 아예 많은 일이 발생하기 바랄까.
간밤의 식사거리가 입 안으로 가지 않고 배낭 속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더 무겁게 느껴지는
백팩을 메고 산 호안 광장(Plaza San Xoan)으로 나갔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우기(雨期)가 길고 강우량이 많은 지방이라는 갈리씨아에 진입할 때 이미
각오를 단단히 했다.
전 번(2011년/1차)에도 많은 비에 시달렸으며, 이 루트(Norte) 외에도 앞으로 최소 3번(Plata,
Ingles, Primitivo 등)은 더 그래야 하는 지방이기 때문이다.
빌랄바의 노르떼 길은 순, 역 방향 모두 알베르게에 인접하며, 산따 마리아 교회가 있는 광장
(Plaza Santa Maria)을 시점으로 하는 것이 좋다.
순방향은 역방향과 달리 까미노 마커(가리비)가 안내를 잘 하고 있으므로 따르면 되지만 광장
에서 남서로 난 솔 길(Rua do Sol)로 들어서는 것이 정도(正道)다.
이후, 도축장 길(Travesi Matadero)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길을 따라 남서로 전진을 계속한다.
산 호안 광장(Plaza San Xoan) 북서에서 시작하는 꼰데 빠야레스 길(C./Conde Pallares)과
남쪽의 뜨라베시아 도스 빠소스 길(C./Travesia dos Pasos)도 괜찮은 루트다.
중간에 만나는 교차점에서 까미뇨 빠소스(Camiño Pasos)를 택하면 도축장 길과 하나 되어
마달레나 강(Rio Madalena)을 건너게 되니까.
(까미노에서 2개 이상의 이름을 가진 지명이 적지 않다.
이 기초지자체가 빌랄바와 비얄바(Villalba), 2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음은 이미 언급했거니와
강 이름 '마달레나'는 뻬레그리노스 사이에서 3개로 불리고 있다.
'Madalena' 외에도 'Madanela(마다넬라), 'Magdalena'(막달레나) 등으로.
혼란스러워서 안내판과 이정표를 유심히 살폈으며 빌랄바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했다.
첫 번 이름(마달레나) 외에는 모두 틀린 이름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인터넷과 책자들에 당당하게(?) 출현하고 있음은 아마도 유사한 발음이기 때문에
오기(誤記)했으며 외국 지명이라 틀린 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옛 물레방아(molino Rañego)와 강변 산책로(paseo fluvial)가 잘 조성되어 있는 마달레나 강
이후에는 농장과 목장인 평원의 포장길 또는 비포장길을 가리비 기둥의 안내에 따랐다.
이어서 A-8(E-70) 고속도로를 밑으로 횡단한 후 중세다리 로드리게스(Puente Rodriguez)를
통해 뜨리마스 강(Rio de Trimaz)을 건넜다.
거쳐온 오 꼬또(O Coto), 오 꼬보(O Covo), 뽄떼 로드리게스(Ponte Rodrigues), 아 세아라
(A Seara), 가빈(Gabin) 등 보이산(Boizan) 교구의 마을들은 가빈 외에는 죽은 듯 고요했다.
가빈은 주민이 60여명으로 산간에서는 큰 마을이지만 다른 마을들은 이르지 않은 아침인데도
사람이 사는지 여부를 알 수 없도록 적막강산이었다.
다음 경유지인 산 호안 데 알바(San Xoan de Alba) 길은 지저분한가 하면 이 구간에서 유일
하게 올라가는 길이고 아름답게 우거진 신선한 숲길이고 조금은 혼란스런 길이다
게다가 고속도로에서 짧은 직선 길을 두고 멀리 우회하여 다시 돌아오는 심술궂은(?) 길이다.
알바(San Xoan) 교구의 마을인 주민 39명(2010년 현재)의 뚜르벨라스(As Turbelas)를 지난
후 A-8고속도로를 다시 건넌다.
고속도로 위로 난 도로 다리(puente de carretera)인 육교(viaducto)로.
이 일대의 노르떼 길도 A-8고속도로의 신설로 인해 변화(피해)가 많은 것으로 보이는 길이다.
고속도로나 국도가 까미노를 배려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래서 바아몬데 한하고 고속도로를 횡단하는데 왕도가 없다.
고속도로 밑과 위, 몇개의 길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해도 N-634국도를 만나고 산 호안 데 알바에
진입할 수 있는 지역이니까.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마을, 페레이라
어제 고이리스를 자나오면서 오지랖 넓은 생각을 했는데 여기 알바의 현실은 더 심각하다.
인구 동향을 보면 1991년에 주민 478명이 30개 마을에 분산 거주하였는데 2011년에는 419명
으로 감소했고 4년 후인 2015년에는 336명으로 급감했다.
마을당 11명꼴 밖에 되지 않는다.
장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교회와 묘지(Iglesia de San Xoan de Alba y Cementerio)다.
신고딕 양식의 뾰쪽탑이 고이리스 이상으로 장관이지만.
알바 다음은 또레 교구교회(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ia da Torre)가 있는 아 또레(A
Torre) 교구마을(Parroquia)이다.
노르떼 길은 알바 교회와 바르(Bar/Cascudo) 사이, 0국도(N-634)의 우측을 따르다가 국도와
위치를 바꾸고 다시 국도와 고속도로를 건넌다.
이러기를 바아몬데 한하고 몇번이나 반복한다.
신설 도로들이 노르떼 길을 여러 개로 토막냄으로서 까미노의 맥(정기)이 끊기고 찢겨서 죽은
길이 되어버렸다 할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노르떼 길은 알바의 까랄마요르(Carralmaior)와 아 또레 교구마을
뻬드로우소스(Pedrouzos/빌랄바에서 8.4km)를 거쳐 고이리스를 지난다.
이 고이리스는 교구마을 고이리스(Santiago)와 다른 교구, 또레의 루가르(lugar/작은마을)다.
교구(parroquia) 또레는 더욱 찌부러지고 있다.
22개 마을인데 주민수는 184명(2011년 현재) 밖에 되지 않으니까.
내가 이 지역(특히 마을들) 사정에 이처럼, 전에 없이 민감하고 구체적인 관심을 갖는 이유는
까미노(노르떼 길)에 분포되어 있는 마을들이기 때문이다.
까미노 루트의 이동이 지금까지는 도로의 신설로 불가피한 경우에 이루어졌다.
메리트(merit)를 탐한 지역간의 줄다리기에서 승자 쪽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그러나 마을의 도태로 옮겨야 할 운명이 불가피하다면 까미노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특히 모든 까미노가 사도 야고보의 선교 여정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뻬레그리노스에게는 크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으리라.
다음 루가르 꼬스띠안(Costian)에서 국도(N-634)를 건넜다.
이어서 교구마을 인수아(Insua)의 루가르인 사아(Saa)를 지났다.
국도를 되건너 뽄떼 데 사아(Ponte de Saa)로 간 후 국도와 고속도로를 또 건넜다.
싱글 아치 브리지(single arch bridge)인 아름다운 중세다리(Ponte de Saa)로 라브라다 강
(Rio Labrada)도 건넜으며 고속도로와 국도를 다시 건넜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곧, 기초지자체가 빌랄바에서 기띠리스((Guitiriz)로 바뀌고 교구마을은 삐가라(Pigara)다.
빌랄바에서 13.8km(뻬드로우소스에서 5.4km) 되는 마을이며 루가르인 아 라멜라(A Lamela),
아스 뻬나스(As Penas), 꼰따리스(Contariz), 아스 까사스 노바스(Casas Novas)를 지난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또다시 건너 페레이라(Ferreira/Pigara의 lugar)를 지나고.
미니 마을 페레이라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마을이라고 할까.
2000년에 거주 주민이 21명이었는데 7년 후인 2007년에는 22명으로, 단 1명일망정 증가했다.
공단 지역 외의 마을들은 예외 없이 감소 일로인 것이 정상인데.
신생아는 없고, 고령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농자(타 지역으로의 이주자)가 없더라도 사망
으로 인한 감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현 거주자가 남10명, 여12명이라니까 자연감소를 감안하면 최소 2~4세대는 전입했을 것이다.
귀농 여건이 각각으로 열악을 더해 가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카오스 상태의 까미노
기초지자체 기띠리스와 베곤떼(Begonte)의 경계선인 뻬께노 도 까르멘개울(Rego Pequeno
do Carmen)을 건너 다시 N-634 국도에 올라섰다.
이른 아침부터 오전 내내 15km 남짓 거리를 걷는데 하나의 국도와 하나의 고속도로, 이것들을
셀 수 없을 만큼(umpteenth) 건너고 또 건넜다.
국도는 교통법규를 잠시 접으면 건널 기회가 많지만 고속도로(motorway)는 100% 안된다.
선조들의 길이었던 10대로를 비롯해 국내의 무수한 길을 걸었고 까미노 역시 긴 루트의 4번째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이런 황당한 구간은 최초다.
지구 둘레의 2.5배 넘게 걸었지만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길 역시 처음이다.
급격한 오르내림이 없기 망정이지 된비알이라도 끼어 있다면 원성에 몹시 시달릴 길이다.
까미노와 국도와 고속도로가 최악의 험악한 관계를 피할 지혜는 과연 없는가.
이미, 누차 언급했듯이 까미노라 해서 절대 불변의 길이 아니다.
뻬레그리노스가 도로 횡단놀이를 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지구촌 원근 각처에서 예(이베리아반도)까지 온 것은 애오라지 까미노를 걷기 위함일 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없거늘 이까짓 잦은 횡단이 문제가 되랴
만 체력(physical)의 소모보다 정신적(mental) 스트레스를 받게 방치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더 큰 문제는 4년 전에 비해 신설도로 공사현장이 부쩍 늘고 있다는 점이다.
까미노의 토막내기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니까.
모든 까미노가 사도 야고보의 선교 루트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뻬레그리노스에게는 심장을
도려내는 충격에 다름아닐 텐데 안타깝다.
역사적 유적(historico ruinas)이 많은 지역이거나 관광(turismo) 요지라면 지자체들의 유치
경쟁이 활발하겠지만 그런 기대를 가질 만한 지역도 아니고.
한마디로 요약하면 카오스(chaos)다.
다시 국도에 들어선 노르떼 길의 행정구역은 기초지자체 베곤떼의 교구마을 바아몬데다.
다운타운은 빌랄바에서 20km 안팎으로 오늘의 마감 마을의 외곽이다.
다운타운의 알베르게까지는 2km쯤 남은.
안개비가 그치기는 커녕 큰 비로 바뀔 것 같은 데다 이상 저온현상의 날씨라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는데 내 까미노 장정에서 가장 늦게 시작해 가장 빨리(일찍) 마치는 날이 될 것 같았다.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무난한 고원지대라 무거워진 짐을 지고도 속도감이 났을 것이다.
남하하는 노르떼 길은 1km쯤 국도의 갓길이 되어 있다.
국도가 신설될 때 노르떼 길을 흡수했기 때문에 직선화 된 길이며 그 과정에서 곳곳에 남겨진
토막들(자투리 길)이 노르떼 길의 흔적이며 오리지널(original)이다.
국도라 하나 인가가 드문 지역이기 때문인지 차량 왕래가 빈번하지 않아서 걸을만 한 길이고.
N-634국도와 A-6고속도로(Autovia del Noroeste/A Coruña주의 Arteixo ~ Madrid)의 교차
로터리를 지호지간(약500m)에 두고 국도의 왼쪽 노견(shoulder)에 서있는 까미노 마커들.
그들의 지시대로 왼쪽 소로(농로?)를 따라 아 레가(A Rega/바아몬데의 루가르)를 지나 피턴
(P-turn)하듯 A-6고속도로를 건넌다.
다시 국도에 진입해도 되나 노르떼 길은 장례식장(Funeraia Luis Iglesias Baamonde)에서
호세 마리아 페르난데스 삐녜이로 길(C./ Jose Maria Fernandez Piñeiro)을 고집한다.
바아몬데, 작은 마을의 초대형 알베르게와 거대 알베르게에 열악한 공급원
학교(Colegio Público de Baamonde)를 거쳐 떼라 차 대로(Av.Terra Cha) 를 따라 국도변에
자리한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Baamonde)에 당도했다.
한낮에, 어제보다 더 빨리 도착한 내가 오늘(2015년 6월 6일)도 첫 입실자가 되었다.
좀 전의 까미노 마커(국도를 떠나라는)를 무시하고 국도를 따라서 A-6 양쪽의 로터리와 고속
도로 밑으로 횡단하는 국도를 따랐다면 상당히 더 일찍, 아마 오전중에 당도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뻬레그리노스가 국도를 계속해서 따르는 이 단축로를 택하는 듯)
국내라면, 가무를 자제하고 엄숙하게 보내야 하는 현충일이지만 이 날과 걷는 일은 무관하며
외국땅인데도 일찍 마감한 것 역시 어제와 같은 이유다.
알베르게는 94명(1층의 3개 소형룸, 2층의 52인용 대형룸 외에 별동건물의 18인용 등)을 수용
하며 노르떼 길에서는 구에메스의 알베르게와 함께 초대형 뻬레그리노스 숙소다.
훈따(Xunta/갈리씨아 자치정부)가 직영하므로 입실료가 6€(통일)인 공립(municipal)이다.
('까미노의 오리진'(Origin)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갈리씨아지방은 공립숙소(albergue)
의 경우 이용료를 통일했다. 2011년에는 4€였는데 5€ 시대를 거쳐 2015년 현재는 6€로.)
구에메스의 '뻬우또 할아버지의 오두막집'(La Cabaña del Abuelo Peuto)은 뻬레그리노스를
위한 정규 침대(2단)는 68개라 하나 수용능력이 100명을 훨씬 넘는 사립(privado)이다.
도나띠보(donativo/기부제)를 표방하나 높은 정액을 강제 징수하거나 기부를 거의 강요하는
사이비 도나띠보들과 달리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철저히 도나띠보로 운영하는.
숙박은 물론, 내로라하는 유료 식당의 식사보다 더 훌륭한 디너와 아침을 포함하여 모두 무료
(free)로 제공하는데 이것이 양자(municipal과 privado) 간의 다른 점이다.
구에메스에서는 늦게 도착해 뻬레그리노스 베드가 없기 때문에 직원 4인용 방을 독점했다면
바아몬데에서는 첫 입실자의 권리로 4개의 벙크가 있는(8인용) 소형 룸에 들게 되었다.
2시간쯤 후,샤워를 비롯해 정리가 끝났을 때 남은 베드들이 젊은 여인들로 채워지기는 했으나
편안한 밤이 될 듯 싶은 분위기 였다.
그러나 잠시 후, 어제 오후에 빌랄바의 첫 알베르게에서 내가 봉변(?)을 당하고 있을 때 천방
지축으로 참견하던 영감이 이 젊은 여인들을 만나러 들락거리며 내 비위를 또 건드렸다.
대화 분위기로 보아 친분이 쌓여있는 관계가 아닌 듯 하며 60대를 넘은 듯한 나잇값을 하지 못
하는 영감이라면 탓하거나 시비를 가릴 상대가 아니잖은가.
까미노에도, 속어를 빌어 말하면, 이런 또라이가 종종 있다.
불쾌했던 어제 오후의 장면들 까지 지우려 하는 듯, 오히려 평화로운 바아몬데의 석양을 감상
하고 있을 때 알레만인 볼프강이 당도했다.
그는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2층 넓은 방으로 갔다.
15년의 나이 차에도 연 3일을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게 되는 그.
우리는 여려 면에서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무리가 형성되면 수일간은 함께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폭과 체력, 기타 이유로 팀은 절로 형성된 것 처럼 절로 해체된다.
나도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3~4일 목전으로 다가올 때까지 그 과정을 여러 차레 겪었다.
알레만에서 에스빠뇰, 프랑꼬까나디엔세(Francocanadiense), 다시 알레만(볼프강)으로.
볼프강과 내일 일정을 논의 중일 때 나이 지긋한 오스삐딸레라가 듣고 조언을 했다.
알베르게에 맞추려면 미라스(Miraz)에서 끊어야 하는데 너무 가까운 15km 전방이다.
다음 알베르게 소브라도 도스 몽헤스(Sobrado dos Monxes)는 다시 25km 전방이기 때문에
너무 멀리 있다.
내게는 천막집이 있으므로 문젯거리 될 것이 없지만.
그러나, 1인용이라 볼프강에게는 전혀 도움이 돠지 못하기 때문에 고심중일 때 오스삐딸레라
(hospitalera)가 새로운 알베르게 정보를 알려주었으니 그녀가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더구나 그 알베르게에 직접 전화해서 예약까지 해준 고마움을 가볍게 볼 수 있는가.
예약문화를 자랑하는 일본의 1.200km 시코쿠헨로(遍路)에 있는 숙소들은 철저하게 예약 위주
지만 까미노의 알베르게들은 뻬레그리노스의 개별적인 예약 신청을 단호히 거부한다.
내가 헨로보다 까미노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예약기피)에 있음에도 그녀(이 오스삐
딸레라)의 호의만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알베르게들 만의 묵시적 카르텔(kartell?)이 있는가.
제대로 형성된, 마을다운 마을이 없기도 하지만 주말이라 더욱 난감할 뻔 했다.
하마터면, 어제 해프닝이 없었다면 오늘은 도중에 굶을 뻔 했으니까.
도중에도, 알베르게에서도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를 거듭 음미하며 공복을 채웠다.
걸음품을 팔아서 구입한 먹거리들을 고스란히 배낭안에 넣고 걸어야 한 화(禍)가 공복을 해결
하는 복덩이로 반전되었으니까.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초대형 알베르게도 괴이쩍지만, 주말 휴업이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거대 알베르게의 수요에 맞는 공급 대책이 없는 것이야 말로 불만이 아닐 수 없다.
노르떼 길을 5월 7일에 시작했으니까 만 1개월(31일)이 경과했는데도 아직 3~4일분의 거리가
남았다면 꽤 태만했거나 내 노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자라면 기회가 남아있지만 후자일 경우에는 대책이 없다.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왔다"고 700여년 전에 탄로가(嘆老歌)를 읊은 선인(禹倬/1263
~1342)도 있는데 내게 무슨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 해도, 간밤에 잠을 잘 잤고 걸은 거리가 짧으니 휴식시간은 당연히 길어 싱싱한 몸.
어두워지기 전에 홀로 거리로 나섰다.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서 최초의 길(프랑스 길)의 첫날 부터 시작해서 길들여진 마을 탐방인데
그날 여정의 10% 안팎에 해당하는 거리(마을)를 누빈다.
녹초 상태에서도 이 가외 여정을 마쳐야 일과가 끝나고 풍요로운 하루가 된다.
부지런한 새가 모이를 많이 먹는다던가.
N-634국도와 A-8고속도로를 만나는 북쪽의 A-6고속도로와 남쪽의 N-VI국도 사이와 국도의
양면에 동서로 길게 위치해 있으며 기초지자체 베곤떼의 교구마을인 바아몬데.
알베르게가 있는 다운타운은 240명 미만(2011년 현재 243명)이고 교구 전체의 주민수가 6개
루가르를 합해도 330명 안팎인(2014년 현재) 자그마한 마을이다.
13c에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결합해 지었다는 산띠아고 교구교회(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 de Baamonde)와 갈리씨아 지방에 특히 많은 깔바리오(Calvario/돌십자가).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이 정도뿐인 평범한 마을에 3자리수에 육박하는 대형 알베르게가 있다.
프랑스 길과의 합류 지점인 아르수아(Arzua/60km 남짓 전방)를 비교한다면 이같은 초대형의
적지는 그곳이 아닐까.
"대붕(大鵬/Xunta)의 심오한 뜻을 연작(連雀/늙은 나그네)이 어찌 알랴"마는 알베르게의 간격
과 노르떼 길 뻬레그리노스의 수에 비추어 이 알베르게는 포만감을 느낄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오늘이 요일로는 주말(토요일)이며 계절로는 피크(peak)에 해당하는데도 한가로우니까.
괄목할만한 관광지도 아니고, 중량감 있는 유적도 없으니 일반 관광객을 기대할 수도 없고.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