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부터 다르다…대전발 '힐링부르스'
뻔한 도시라고, 다시 보니 편한 도시, 대전 원도심 여행
장태산 자연휴양림에
들면 공기부터 다르다. 거대한 메타세쿼이아들이 마중을 나온다. 힘껏 숨을 들이쉬면 상쾌한 공기가 몸 구석구석을 바쁘게 돈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의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걷는 스카이웨이.
"뭐 유명하거나, 볼게 없을텐데…."
첫마디가 이거였습니다. 대전에 가려고 하는데 '볼것이 있는냐'의 물음에 대전이 고향인 동료의 답입니다. 그만큼 바로 생각나는 여행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겠죠. 50~60대라면 '잘있거라 나는 간다~….'로 시작되는 대전부르스의 노랫말이나, 5분여의 정차시간에 후다닥 맛보는
대전역의 우동이 떠오를 법도 합니다. 성심당의 튀김소보로도 생각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것은 잘 몰랐던 대전의 한 모습일뿐입니다.
지난 주
돌아본 대전은 놀랍게도 풍부한 여행지와 먹거리를 가진 곳이였습니다. 원도심권의 근대문화와 아기자기한 문화공간들, 그리고 화려한 첨단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메타세쿼이아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장태산자연휴양림의 '스카이웨이'는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대청호 오백리를 따라 걷는 길은 또
어떻습니까. 그뿐이가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계족산 황토길과 칼국수거리의 매콤걸쭉한 국물맛은 대단했습니다. "뭐 볼게 있다고…."라는
동료의 말은 겸손에서 나오는 인사였을뿐입니다. 대전은 말로만 듣고 판단할 곳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야 하는 그런 여행지입니다.
◇수직의 세상…장태산 메타세쿼이아숲 '스카이웨이'
입구에 들어서면 공기부터 다르다. 거대한 메타세쿼이아들이 마중을 나온다.
힘껏 숨을 들이쉬면 상쾌한 공기가 몸 구석구석을 바쁘게 돈다.
숲은 온통 '수직의 세상'이다. 대전 서구 장안길의 장태산
자연휴양림. 그 숲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휴양림 곳곳에 키가 족히 30m는 됨직한 우람한
메타세쿼이아들이 수직으로 뻗은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에 들면 공기부터 다르다.
지금은
보기 좋은 숲이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좋은 숲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 1973년 임창봉씨가 사재 200억원을 들여 조성하기
시작했다. 1991년 국내 최초 민간휴양림으로 지정받았고, 나중에 경영이 어려워지자 2002년 대전시가 매입해 운영 중이다. 숲은 사람을
치유하지만 좋은 숲을 조성하려면 사람의 노력도 필요하다.
휴양림의 압권은 단연 키 큰 나무들이 이룬 수직의 세상으로 이어진
'스카이웨이'다. 철골 구조물로 다리를 놓듯 15m 높이의 허공에 길을 내놓았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까마득한 높이다. 그 길에 오르면 늘씬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의 어깨쯤을 지나가게 된다. 우람한 나무의 둥치가 손을 내밀면 닿을 듯하고, 나뭇잎들이 눈높이쯤에서 화려한 색감을 뽐내고 있다.
"나무가 너무 평화로워요. 그래서 나도 행복해요" 부산에서 엄마랑 장태산을 찾은 최은성(6)군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각이 다르면 나무도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보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이를테면 사람의 시각이 아닌 동물의
시각으로 숲을 볼 수 있다는 것. 나무에 둥지를 튼 새들의 시각이나 다람쥐, 청설모와 같은 눈높이에서 숲을 보게 되는 것이다.
대전 원도심 여행의 시작인 여행자카페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둘러볼것을 체크하는 여행자.
숲 사이로 난
스카이웨이의 길이는 120m 남짓. 그다지 길지 않지만 길 끝에는 안이 텅 빈 육각형의 대형 철골 구조물을 빙글빙글 따라 오르는 거대한 전망대
'스카이타워'가 있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흔들리는 게 꼭 나무 위에 올라온 것 같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걸어온 스카이웨이가
내려다보이고 길 옆의 장대한 나무들이 모두 발 아래 펼쳐진다. 휴양림을 돌고 내려서는길은 일상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 발걸음도 가뿐하다.
◇오래된 미래 낭만거리, 원도심권 문화여정
원도심은 대전역과 구 충남도청 사이, 대흥동
은행동 선화동 일대를 말한다. 80여 년 동안 대전의 경제ㆍ사회ㆍ문화의 중심지였다. 1980년대 이후 시작된 둔산 신도시 등 도심팽창에 따라
중앙로 일대는 그 명성을 잃었다. 하지만 쇠락한 이곳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들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구 충남도청
건물, 변호인 등 영화촬영지로 유명하다.
빈티지한 감각이 살아있는 원도심의 매력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는 점. 옛 관청과 관사가 새 건물로 재건축되지 않고 각각 미술관과 역사전시관, 카페 등으로 변신해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원도심 여행의 시작은 구 충남도청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임시정부 청사로도 사용된 이곳은 2013년 충남도청 이전 후
'대전근현대사 전시관'으로 변신했다. 1930년대 지어졌다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바닥 타일,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매우 모던하다. 영화 '변호인'을 촬영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도청을 나서면 본격적인 원도심 여행이다. 젊은 예술가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 겸 전시공간인 '산호여인숙', 낡은 외벽 위로 옷걸이에 걸린 셔츠 하나가 그려진 '산호다방', 세계 각국의 여행정보와 대전
원도심의 이야기를 청해 들을 수 있는 여행자 카페 '도시여행자' 등이 문화예술의 거리를 대표하는 곳들이다.
대전 으능정이
문화거리에 있는 초대형 스카이로드(길이 214m, 폭13.3m) LED조명으로 유명하다.
윤재진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협력지사장은 "근대문화가 숨 쉬는 명소를 둘러보고 오래된 맛 집을 찾는다면 원도심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귀뜸한다.
중앙로의 명소는 성심당이다.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찐빵집으로 출발한 성심당은 이젠 대전을 상징하는 빵집으로 성장했다. 대규모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판치는 상황에서도 성심당은 대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1980년생 판타롱부추빵과, 86년생 튀김소보로빵을 사려면 여전히
길게 줄을 서야 한다.
원도심 밤거리의 백미는 으능정이거리다. '은행나무가 있는 정자자리'에서 유래했다. '은행정자'가 충청도
발음으로는 으능정이 비슷하게 되는 모양이다. 지금은 은행나무 대신 거리 한복판 천정을 수놓은 초대형 스카이로드(길이 214m, 폭13.3m)
LED조명으로 더 유명하다.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20분간 현란한 영상 쇼가 펼쳐진다.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자연이 어우러진 대청호반 오백리길을 걷다
전국 3대 호수 중에 하나로 꼽히는
'대청호'는 그 둘레가 무려 500리나 된다. 굽이굽이 500리 가운데 대전을 지나는 구간에 조성된 것이 '대청호반길(11개 구간)'이다.
대청호반길 중 노고산성에서 바라본 대청호의 장쾌한 풍경.
대청호반길을 걸었다. 3구간 노고산성과
4구간 슬픈연가촬영지를 품고 있는 길이다.
3구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노고산(老姑山)이다. 높이 250m에 불과한 야산이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장관이다.
산행의 시작은 찬샘마을의 정자 찬샘정이다. 산은 그리 가파르지 않다. 산길을 30여분 오르면
곧바로 탁 트인 전망과 마주하게 된다. 남북으로 뻗어 굽이치는 대청호 물줄기와 산줄기들이 좌우로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북으로 청원군 문의면,
동으론 보은군 회남면, 남으론 옥천군 군북면 일대가 다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낮은 산인데도 전망이 빼어난 건 주변에 고봉들이
드문데다 낮게 뻗어나간 산줄기들이 구석구석 파고든 물길을 품고 있어서다. 마치 섬들과 반도들이 빼곡히 깔린 남해바다의 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정상 부근에 백제시대 산성으로 추정되는 노고산성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백제 성왕의 아들 창(후에 위덕왕)이 신라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라고 한다.
대청호반길 4구간에 있는 슬픈연가 촬영장 가는길에서 여행객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산을 내려와 차를 타고 4구간 '호반낭만길'로 갔다. 이름도 마음에 딱 든다.
4구간(말뫼~가래울(추동)~대청호자연생태관ㆍ습지공원ㆍ오리골)은 대청호반 전망대가 즐비하고 선인들 발자취도 많은 구간이다. 길이
도로를 따라 호숫가를 들락날락하며 이어진다. 왜 '호반낭만길'인지는 한 20분쯤 걸으면 나온다.
호젓한 길위에서 수면에 일렁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눈앞에 나타나는 호수의 풍경을 본다. 나무덱길을 따라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호
수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이룬다.
대청호반길을 걷는 여행객.
대청호반길을 걷고 있는 가족.
S자길을 따라 초록의 숲을 이뤘다. 이곳은 드라마 촬영지(슬픈연가)로도 유명하다. 고불고불한 호숫길을 따라 걷는길은 흙이다. 발을
디디는데 느낌이 폭신하고 부드럽다. 가만보니 멀리 삐죽 솟은 산의 '반영'이 무척이나 정적(靜的)이다. 문질러 닦아낸 듯 반질반질한 호수가 나를
부른다. 대전=글 사진 조용준 2015.08.12
◇여행메모
△가는길=장태산휴양림은 호남고속도로 서대전 나들목으로
나가 대전 방면으로 가다가 흑석네거리 쪽으로 8㎞쯤 가다 좌회전해 4㎞쯤 가면 휴양림이다. 대청호 노고산성은 경부고속도로 신탄진나들목을 나간다.
17번 국도로 좌회전해 가다 신탄진네거리에서 대청호 쪽으로 가다 효평삼거리에서 찬샘마을 쪽으로 좌회전해 들어간다.
대전의
명물 칼국수
△먹거리=선화동 광천식당(042-226-4751)은 대전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40년 전통의 두부두루치기
전문식당이다. 보기만해도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두루치기(2인분 1만원) 하나에 면 사리를 추가하면 2명 식사로는 넘칠 만큼 푸짐하다.
38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전갈비집(042-254-0758)은 푸짐하게 돼지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다. 1인분에 돼지갈비는
7,000원, 불고기는 5,000원이다. 함경도집(042-257-3371)은 70년 전통의 자부심만큼 커다란 가마솥을 식당입구에 내걸고 구수한
곰국 냄새를 풍긴다. 소머리국밥이 전문이다.
한밭칼국수(042-254-8350)의 대표요리는 '두부탕'. 냄비에 기본양념장만 넣은
벌건 국물과 크게 썬 대파, 두부가 함께 담겨 나온다. 두부를 건져 먹고 남은 국물에 칼국수 사리를 넣고 다시 한 번 끓이면 또 다른 별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