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탔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한결같이 무덤덤한 표정입니다. 중년의 사내가 고개를 떨굽니다. 그의 등을 누르는 삶의 무게가 보입니다. 고개를 떨굴 때마다 삼수갑산을 헤매는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입술에 루즈를 바른 여학생 둘이 들어옵니다. 빈자리를 찾은 여학생 하나가 얼른 자리에 앉습니다. 입꼬리가 해맑게 올라갑니다. 이내 지하철은 진공의 상태로 돌입합니다.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습니다. 무심한 눈빛이 작은 창으로 들어갑니다. 외로운 섬에서 세상을 부르는 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거리를 걸었습니다. 기타를 치는 젊은 두 친구의 노랫가락에 걸음을 멈추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멜로디와 비슷했습니다. 'Once'였습니다. 착각인지 모릅니다. 걸음을 옮깁니다. 간판의 글자들이 시선을 잡아채더니 후드득 거리로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글자를 얼른 주워담았습니다. '캐리커처 1,000원' 작은 손글씨가 보입니다. 그 옆에 앉았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괜찮다는 말에 페이스북에 올라갈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페이스북 주소를 알려주었습니다. 홍대 거리의 색깔을 물었습니다. 아주 짧은 신음 후 들은 답은 보라색이었습니다.
길을 가며 떨어지는 글자를 다시 주워담았습니다. 밤이 깊어가면 글자에서 무슨 색이 피어날지 궁금해졌습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갑니다. 오토바이 한 대가 소리를 내며 사라집니다. 땅에 떨어진 글자가 제자리로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