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그해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나라 경제도 얼고 우리 마음도 얼었던 어느 날, 집 수도관이 결국 동파됐다. 이때를 틈타 어머니는 저녁 보이콧을 선언했다. 아버지는 결단했다. 따뜻한 외식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녹이기로.
그 시절 우리네 동네 어귀엔 돼지갈비집이 많았다. 저녁 무렵 식당엔 언제나 손님으로 만석이었다. 우리 가족도 있었고, 아랫집 형석이네도 있었다. 그곳은 지글지글 숯불에 구워지는 고기의 훈기로 겨울을 녹이던, 그런 곳이었다.
돼지갈비는 추억을 타고 2016년, 금호동까지 왔다. ‘복가네갈비’는 돼지갈비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서구문화센터에서 길만 건너면 금방이다.
바로 옆 5층짜리 주차장도 무료 이용할 수 있으니, 사라진 주차 걱정 덕에 벌써 소화가 잘 되는 기분이다. 고기를 먹으면 함흥냉면이 공짜란다.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부엔 1998년 겨울의 식당을 채웠던 손님들이 그대로 있다. 우리 가족 같은 부부와 아이들, 개인택시 아저씨 같은 기사들, 알록달록 단풍을 입은 등산객들도 보인다.
저마다 숯불이 내뿜는 온기를 반찬 삼아 화기애애한 대화에 한창이다.
복가네갈비의 돼지갈비 메뉴는 크게 두 가지다.매운 것과 맵지 않은 것. 극악무도하게 맵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주방 실장님이 딱 기분 좋을 만큼만 맵게 양념해주신단다.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오늘의 선택은 돼지갈비(13,000원)와, 매운돼지갈비(13,000원)다.
기본찬은 흑임자 샐러드와 연근, 마요네즈 얹은 옥수수, 두부 등 다양하다. 흑임자 샐러드는 새콤하여 잠자던 미각을 예열시키기에 제격이다. 가볍게 한 접시 비우고 시작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계란찜이다. 겉보기엔 보통의 계란찜 같은데, 속에 약간의 농을 쳤다. 치즈를 삽입한 것이다. 계란찜 한 움큼 뜬 숟가락을 질긴 치즈가 놓아주지 않는다. 덕분에 맛은 더 깊어졌다.
맵지 않은 돼지갈비보다 매운 맛이 먼저 나왔다. 자극적인 걸 먼저 먹으면 뒤에 먹을 것이 맛없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 이모님께 여쭤보니 걱정 말란다. 오히려 식감을 자극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단다.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다. 고기도 이모가 다 구워주니까.
사실 양념한 돼지갈비는 초보가 굽긴 쉽지 않다. 숯불에 굽는 것은 더 그렇다. 한 눈을 팔았다간 맛있는 갈비가 이미 다 타있기 일쑤다. 하지만 복가네갈비 이모님들은 매일매일 고기를 다루는 선수들이다. 긴 말이 무슨 필요인가. 눈으로 확인하시라.
허리를 한껏 숙인 채 작품에 열중한 이모님의 실력발휘가 끝났다. 두툼한 고기가 알맞게 익었으니 이젠 우리 차례다. 노릇노릇 구워진 표면에서, 육즙을 절대로 놓지 않을 고기의 의지가 보인다. 한 입 넣어본다.
이건 부드러워도 너무 부드럽다. 처음엔 덜 구워진 줄 알았다. 허나 선수가 구워준 건데 그럴 리 없다. 이건 고기가 부드러운 거다.
매운 양념맛은 처음엔 약하다가, 곧 존재감을 살짝 보이더니 이내 사라진다. 통증은 없고 쾌만 던져준다. 듣던 대로 기분 좋은 매운 맛이다.
다음 식순은 맵지 않은 돼지갈비의 매력어필 시간이다. 역시 이모님은 잘 양념된 양념갈비 한 접시를 가져와 동일하게 직접 구워주신다.(확실히 매운맛보다는 색이 덜 진하다) 어머니 또래의 분들이 허리 굽혀 구워주시니 좀 송구스럽기도 하다.
단맛은 유혹적이지만 금방 질린다. 그래서 적절한 단맛을 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맵지 않은 돼지갈비맛의 핵심은 적절한 단맛이다.
‘복가네갈비’의 갈비는 어떨까? 결론은,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딱 알맞다. 질릴 틈이 없으니 구워 놓은 고기가 금방 사라진다. 실망은 마시라. 아직 먹어야 할 게 더 있으니.
우리에겐 고기를 주문하면 무료로 주는 함흥냉면이 남았다. 비냉, 물냉을 골고루 주문한다. 이모는 비냉에 육수도 함께 먹어보길 추천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얇은 면발 위로 놓인 빨간 양념에 다시 침이 고인다. 육수를 붓기 전 골고루 비벼 후루루룩 넣었다. 새콤달콤한데다 스치듯 지나가는 매콤함. 이건 흡사 냉면을 샀는데 고기가 딸려 온 격이다.
잘 익은 갈비 한점과 냉면. 캬~ 이 조합 좋다 좋아. 이 집, 메인요리를 냉면으로 해도 될 듯 하다.
비냉에 한우 사골 육수를 넣으면 맛은 다시금 변한다. 양념맛 진득한 물냉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목구멍을 통과하는 양념 품은 육수의 맛이 참 좋다. 공짜로 비냉과 물냉을 다 먹은 셈이다.
정신없이 먹고 보니 제법 살이 많은 갈빗대 두 대가 남았다. 고기 덕력이 높으신 분들은 알 테지만, 사실 이 부위가 제일 맛있는 법. 동행인들은 서로에게 양보하느라 바쁘다.
숯불도 훈훈하고 내 배도 훈훈하고 분위기는 더 훈훈하다. 이제 TV 뉴스만 훈훈해지면 되겠다. 이러려고 돼지갈비를 먹었나 자괴감 들지 않게 말이다.
첫댓글 정향형님 ~ 이슬이 보고프면 여기서 모타붑시다..ㅎㅎ
미오리집앞인디..
돼지갈비 맛도 괜찮았구요 후식이 기계냉면여서 더 좋았지요~~~ 맛도 섭섭하지 않구요~~
다행입니다..
담이슬이모임장소는 봉선동민속촌으로 ..ㅎㅎ
@섬지니 뒤지갈비와 이슬이 맛나게 잘먹었네
담에는 봉선동에서~~
흐미~ 마지막사진하고 똑같은 갈비대를 바닥에 떨어트려서 눈물나던데..ㅠㅠ
복가네 홍보이사님 취직했남요?ㅋ
돼지갈비 맛난집 못찾아 항상 해맸드만 딱걸렸네요
이슬모임 저도 함 낑가주셈요
옴마~!!
내가 홍춘희였네....???
그대가 그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