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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정[서울 남산 전통 활쏘기 국궁장]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여수여행/해랑열차]진남관-국내최대 단층 목조건물 여수엑스포
석호정.호미 추천 0 조회 51 10.07.30 09: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여수여행]진남관-국내 최대 단층 목조건물[충무공을 느낀다] 여수엑스포

조인스 파워블로거 호미숙-자전거랑 사진여행

 

네이버 카페 파워블로거얼라이언스(http://cafe.naver.com/powerbloggeraliance)

각 포털 파워블로거 회원들 15명과 여수박람회 측의 이벤트 당첨자 및

모 방송국 직원 초청 가족들 70여명이 함께 한 럭셔리 기차여행

 

-파워블로그 얼라이언스 회원들과 여수엑스포(여수세계박람회 진행과정과 여수여행]-

2010년 7월 2일 밤~~7월 4일 새벽

 

서울역-여수역-유람선타고(향일암)-충민사-중식(구백식당 서대회비빔밥)-여수엑스포 홍보관

-오동도-진남관-여수수산물시장-만찬(한일관 해산물한정식)-돌산공원(돌산대교야경)-여수역-서울역

 

2012 여수세계박람회http://www.expo2012.or.kr/

 

사랑의 섬 오동도에서 시누대의 이야기와 빨간 동백꽃의 전설을 듣고 다음으로 들른 곳

진남관,

일행들 따라 함께 진남관에 들어서자마자 그 건축물이 주는 웅장함에 압도되어

마음마저 숙연하고 경건하게 만든다

 

진남관에 대한 어떤 역사의 지식이 없었더라도 보는 순간 이미 가슴 밑에서 부터

뭉클 올라오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기둥 하나하나 몇아름이 넘는지 수백년 수령의 나무를 사용했으며 마루 또한

곳곳에서 전해지는 우리 선조들의 숨결과 장인 정신 또한 그 곳에서 수련했을

수병들과 그들을 호령하던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듣는 장대한 건물의 지붕 측면을 박공모양으로 처리 한 후

그 밑을 잇고 지붕 면을 처마까지 경사지게 이음으로써 '八'자와 비슷하게 만든

 팔작 지붕은 이 건물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진남관 아래 쪽에 위치한 진남관 임진왜란 유물 전시관에도 들러본다

 

코레일의 해랑열차의 럭셔리 여행으로 충민사와 진남관까지 들러보니

이번 여수 여행에서 그냥 하나의 여행이 아닌 국궁을 하는 나에게는

특히 서울시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나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지 기념행사로

매년 서울 초등학생들에게 궁도 활쏘기체험교실을 운영하는 사범으로

여수는 또다른 의미의 여행이다

 

 

 

 진남관 앞에 이층 누각 망해루

 계단을 올라서면 통제문을 지나 진남관에 들어선다

 통제문

 진남관 터는 조선시대 사백여 년 간 조선 수군의 본거지로 이용 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진남관은 여수를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로, 여수시 군자동 472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이곳은 원래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로,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진해루 터에 75칸의 대규모 객사를 세우고,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鎭南館' 이라고 이름 지었다.

 석주화대: 충무공 휘하 수군들이 야간조련시 화대를 설치했던 유물

 진남관은 1959년 5월 30일 보물 제 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어 국보 제 304호로 지정되었다.

 

큰 나무기둥 사이로 갈라진 틈새가 지금까지 이어내려온 충무공과 수군들의 땀과 혼이 배어 들었

을 것으로 생각하니 두 팔로 안아보고 귀를 바짝 대어 소리를 들어보았다

 돌판에 세워지고 나무에 을 파내어 못을 사용하지 않은 건축법에 또 감탄하고

 객사는 성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관아와 나란히 세워지는 중심 건물로, 중앙 정청 내부 북쪽 벽

앞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함을 두고, 관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날마다,

또 나라에 국상과 같은 큰 일이 있을 때 이 전패에 절하는 '향궐 망배'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지방 관리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시 듯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던 곳이다

 진남관은 1664년 절도사 이도빈이 재건하였고, 171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8년 이제면 수사가

다시 지었고, 이후 크고 작은 수리를 거쳤으나, 1718년 중창이 오늘날 건물의 뼈대가 되었다.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전라좌수영성의 유일한 건축물이다.

조선 후기 전라좌수영 내에는 600여 칸으로 구성된 78동(棟)의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진남관은 정면 15칸(54.5m), 측면 5칸(14.0m), 면적240평의 대형 건물로

합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과 몇 안 되는 우리 나라 대표적 목조 건축물이다.
직사각형 땅에 사괴석(四塊石)과 장대석(長臺石)을 섞어 2줄로 반듯하게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막돌로 주춧돌을 놓았다. 가장자리는 직사각형 다듬돌로 돌렸으며, 막돌 주춧돌 위에

 민흘림의 원형 기둥 68개를 세웠는데, 막돌 주춧돌에 맞게 기둥뿌리의 밑둥 다듬어 기둥을

단단하게 유지시키려는 고급 기술인 그랭이 수법을 사용하였다.

 진남관의 규모가 장대하여 지붕쪽에서 내려오는 힘이 너무 크므로 이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하여

기둥과 기둥을 가로지는 창방(昌枋)으로 연결하였고, 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한 주심포 양식으로

처리하였다. 또한 기둥 위 주심 도리를 중심에서 공포 바깥쪽으로 2개의 가락(외 2출목)을 낸 점,

내부에 다시 2줄로 큰 기둥을 세워 대들보를 받치도록 한 점, 건물 앞뒤 양쪽 끝칸(퇴칸)에 퇴보를

둔 점은 모두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고자 한 것이다.

 마루에 앉아 그때 진남관에서 훈련을 받던 우리네 조상들에 대한 감사함을 갖는다

 장대한 건물의 지붕 측면을 박공모양으로 처리 한 후 그 밑을 잇고 지붕 면을 처마까지 경사지게

이음으로써 '八'자와 비슷하게 만든 팔작 지붕은 이 건물의 격을 한층 높이고 있다.
또한, 대들보는 용의 형상을 나타내고자 했으며, 정성스럽게 단청한 흔적이 남아있다

 여행자들은 이곳 마루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한쌍의 연인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

 웅장한 진남관.. 지금 우리는 그 곳에서 노곤한 하루의 휴식을 취한다  

 진남관 통제문의 처마 끝과 어느교회탑

 임진왜란 당시 '의인전술'을 위해 만들었다는 2m크기의 '여수 석인상'

 (총 7구를 만들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1구만 남아 있음)

 통제문 담에서 바라본 진남관

 우리는 발길을 돌려 진남유물전시관으로 향한다

 진남관 임란유물 전시관

 그 때 그시절 모습을 미니어쳐로 꾸며졌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도

 

 

거북선 내부 모형

 

 

 

 

 활을 쏘던 화살과 전통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도 활쏘는 장면을 수시로 넣었다고 한다

 여수 앞바다를 바라보며 지금의 평화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 아름다운 나라를 사랑해야 한 다는 것.. 

 좁은 땅이라고 하지만 이 나라의 역사는 끊임없이 치뤄진 전쟁에서도 굳건히 버텨온

우리네 조상들의 넋이고 혼이라고 녹이 슨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지고

빛 바래지는 우리의 역사, 지금이라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가슴에 새기고 깨우쳐야함을

다짐한다  

 우리 일행은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주변의 수산시장을 둘러보고 만찬(한일관 해산물한정식)을 하러

자리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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