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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춘천댐 약수터로 가다가 사농동 현대아파트 상가에 “복건성”이란 중국집 간판을 보고 왜 “복건성”이란 간판을 달았는지 궁금했다. 이 이름을 단 중국집을 본 적이 없는 것도 이유지만, 그보다는 내가 복건성(福建省)을 연구지역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 심도 있는 중국사 연구를 위해서는 중국 전체가 아니라 세분된 지역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도교수님의 권면을 받고 고민하다가 택한 곳이 복건성이다. 그리고 박사논문도 복건성의 1/4에 해당하는 복건성 남부지역(閩南)을 다뤘다. 마음먹고 지난 일요일 가족과 함께 이 중국집에 가서 식사를 하면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가게 이름을 짓기 위해서 중국의 省 명칭을 살펴보다가 복(福)과 건강(健)의 의미로 이것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 한자로 쓰면 “福健省”이 되니 내가 연구하는 지역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내가 연구하는 “복건성”을 상호로 쓰는 중국집이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운 일이라고 위안하였다.
사설을 길게 늘어놓은 것은 福建省이 중국의 대표적인 화교 고향이며, 오늘 화교에 대한 책을 소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중국 밖의 또 다른 중국인 화교>>(왕겅우 저, 윤필준 역, 서울: 다락원, 2003.10. 155쪽)가 그것으로 부피는 얇지만 내용은 얇지 않다. 저자는 화교이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국과 해외화교 등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현재 싱가포르국립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고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으며, 말라야대학 교수와 홍콩대학 부총장(1986~1995)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에 소개된 화교에 대한 책이나 논문이 적지 않지만 이 책처럼 간략하고 명쾌한, 그리고 중국인의 생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은 많지 않다.
이 책은 첫 부분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관점을 가지고 있다. 즉
“내가 처음 남중국해의 초기 무역에 대한 연구를 했을 때, 매우 인상 깊었던 것은 기원전 3세기부터 이 지역에서 교역이 이뤄졌다는 점과, 작은 지중해처럼 보이는 이 남중국해 지역과 중국 간에 상업적으로 중요한 연관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물론 남중국해와 지중해는 교역 환경에서 큰 차이점들이 있다. 남중국해는 지중해보다 더 개방되어 있었던 만큼 위험수위도 그만큼 더 높았다. 남중국해의 남쪽과 동쪽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은 최소 2천여 년 동안 어떠한 해양 세력의 도전 없이 이 남중국해를 지배했다. ……”
동남아시아의 內海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남중국해로 인식하고 있으며, 또 이것을 유럽의 지중해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을 동아시아지중해로 인식하는 연구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동남아시아의 대륙부쪽 바다를 남중국해로, 그리고 이것을 지중해로 인식하는 것은 한편에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이다. 중국의 남사군도 점령이나, 지중해 세계의 지배가 궁극적으로 지중해 주변 지역에 대한 로마의 지배와 로마제국의 완성으로 귀결되었던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중국은 최소 2천여 년 동안 어떠한 해양 세력의 도전 없이 이 남중국해를 지배했다”는 언설을 당당히 쏟아놓았다. 실제 2천여 년이 맞는가하는 실체적인 진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바로 그 다음 쪽에서 중국인의 진출이 적었고 16세기에 서양 세력의 통제 하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방면의 최고 수준의 학자가 그렇게 믿고 있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학술과 정치는 항상 밀착되어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논리나 자료를 학술에서 구한다는 면에서 학술이 철저하게 정치에 봉사하는 것을 항상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자의 이러한 인식은 중국 정치 지도자들의 인식과 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 물론 일반 중국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저자의 첫 번째 중요한 관심사는 “왜 중국인들은 아시아의 무역항들과 일찍부터 교역했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지 못했을까”였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검토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다. 중국 자체의 성격과, 교역·이주 및 외교 관련 정책들, 그리고 이 지역 국가들이 중국을 보는 시각 문제 등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들, 특정한 문화적 가치 및 각 개인의 가족관계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책에서는 ‘대륙 종속적인 중국’이란 표현에 주목하고 대륙적 사고방식과 문화에 종속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한마디로 중국의 위협은 항상 북쪽에 있었고 수도가 북쪽에 있었으며 해안지역도 북쪽의 문화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해기술이나 조선술이 있더라도 촉진시키지 않았으며 국가차원에서 해양으로의 진출의 필요성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북방에의 종속성은 객가나 광동, 복건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화북, 화중에 두고 이를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복건과 광동은 대표적인 연해지역으로 해양 개척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적 지원이나 문화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해양진출은 그저 생존을 위한 ‘불법’행위에 그칠 뿐, 유럽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었다.
두 번째 관심사는 중국인들이 그들만의 유일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에게만 독특했던 사건들이 끼친 영향력 아래서 어떻게 변화할 수 있었는가 이다. 특히 전통적인 체류자들이 자신들에게 합당한 명칭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가 20세기 초 애국적인 ‘華僑’라는 명칭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된 경로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였다. 즉 해금과 호적제 하에서 해외 체류는 그 자체가 처벌 대상이었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후, 특히 1860년대 베이징조약 이후 쿠리들에게 주목하고 이들에게 어느 정도 지위를 부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1893년 외국 여행 금지령이 해제되고 외국에 있는 중국인 체류자인 상인, 쿠리, 노동자 등에게 같은 정체성을 줄 수 있고 중국인들이 기대하는 정신에 어울리는 명칭을 부여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華僑’이다. ‘僑’라는 개념은 4세기 전란(五胡十六國時期)으로 고향을 버리고 남하한 북부 출신 엘리트 가문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용어로 격조 높은 단어였다. 그러므로 생계유지와 교역, 개인의 행복 추구, 또는 살기 좋은 정착지를 찾아 이주하는 등의 통상적인 이유로 집을 떠나는 경우를 묘사하는 데 쓰이지 않았다. 의무를 수행하고 임무를 완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롭게 한다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행동을 강조하는 용어였다. 그러면 왜 이렇게 고상한 개념을 붙여주었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중국인 체류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해외 체류자를 범법자로 보았다면, 19세기말 이후는 청조의 근대화나 개혁 또는 청조 전복을 위한 혁명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이들에게 분명한 방향과 새로운 목적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해외 체류자에 대한 인식 변화는 체류자들에게 재중국화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고국에 투자하고 혁명에 참여하며 중국어 교육을 강화하게 하였다. 이런 가운데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에 의존하는 사람들과, 현지 또는 식민지국 언어로 교육받는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이 싹트고, 토착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이들을 경계하게 하였다. 저자는 “화교의 정치적 개념은 근대 민족주의의 산물이었으며, 또한 이는 화교들이 고립되어 있는 한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인종들의 민족주의와 마주칠 때, 이 정치적 개념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었으며, 화교 자신들에게도 큰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물론 체류국의 국가 성격에 따라서 중국인 체류의 존재형태가 달라지는 점을 잘 지적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나 국가정책이 화교의 정체성이나 존재형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도 잘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관심사는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20세기 전반기 동안 현지에서 출생한 중국인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① 재중국화의 대상, ② 엘리트 신분의 공유, ③ 새로운 정체성 찾기, ④ 사업과 교육, ⑤ 새로운 이민이란 다섯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다문화주의와 화교의 정착을 강조하였다.
저자의 넷째 관심사는 해양 진출, 해양 국가로의 변화에 대한 정책적 전망이다. 저자는 역사에서 이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였다. 즉 17세기 복건 남부 사람들이 성공을 거둔 데에는 “① 약화된 베이징 정부의 영향으로 연해지역 사람들이 직접 대외교역에 종사할 수 있었다. ② 일본 해상 활동의 후퇴로 중국인에게는 아시아의 다른 경쟁 상대가 없었다. ③ 네덜란드인과 스페인인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무장한 중국 상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조건과 현재의 상황을 대비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첫째, 1980년대부터 북경정부가 개방정책으로 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질곡으로서의 북경정부는 사라졌다. 둘째와 셋째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식과 정책의 변화로 성공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일본은 강한 상대지만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개방성에 근거를 둔 세계 시장경제에서 일본처럼 해양 지향의 산업·무역 세력이 중국 연해 전역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또 1989년 이전 미·소 냉전, 현재 미·일의 경쟁이 셋째 조건과 유사하지만 궁극적으로 평화와 안정의 열쇠는 해양 교류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달려있다. 만약 중국이 대륙 중심적인 역사와 지리적 환경 위에 바다로 향하겠다는 확신을 추가하면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에 맞서는 유일한 평형추가 될 수도 있으며, 또한 일본과 영원한 동맹국이 된다면 이런 확신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해양진출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재외 중국인에 대한 태도나 정책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또 체류 전통이나 외국 국적을 가진 중국계 후손들의 문화적 자율성과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이런 중국의 관심은 결국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과 제언이다. 화교들은 1949년 이후 중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사업을 확장하였으며,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 각국의 경제발전 전략 계기로 능동적인 경제 주역으로 재등장하였다. 그리고 1978년 이후 중국은 투자문호를 개방하고 우수한 인재들의 유학을 허용하면서 중앙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개방정책을 펴나갔다. 저자는 이 개방성을 최적의 정책으로 평가하고, 아울러 해외 거주를 선택한 신세대 해외 중국인과의 관계 유지 방법에 대한 효과적인 대답이라고 평하였다. 그리고 저자는 “만일 다문화적으로 변모하려는 국가의 의지, 중국인들의 체류 전통, 해양 진출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거대 중국 등이 있는 한, 문화적 측면에서 중국인으로 남기 위해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자율성을 주장할 재외 중국인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고 전망하였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華僑나 華商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한 것이다.
“오늘날 재외 중국인은 모두 재계의 거물이거나 대부호들이거나 타고난 사업의 천재로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홍콩·타이완·중국 및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의 경제 변화가 화교의 작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며, 이런 충격적인 보고는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가나하게 사는 수백만의 재외 중국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발표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최근까지도 富 자체는 중국적인 문화 가치가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알려져 있지 않다. 대다수 국가의 개방된 공공사업 분야에서 성공한 중국인 후손들이 많지 않았는데도, 그들에게 사업이 중요하다는 것이 지나치게 강조된 듯하다.”
이 구절은 우리의 화교 인식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출간된 화교에 관한 책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화교의 돈벌이나 화상들의 경영전략을 과대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해양 한국의 비전이나 재외 한민족 정책, 그리고 한국의 역사 등에 대하여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요즈음 들끓는 우리사회의 부동산 값 급등 문제는 ‘토지 지향적’속성이 계속되고 있는 퇴행적인 한국 경제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몹시 답답하다. 이런 퇴행적 한국 경제는 사회면에서 의사, 변호사, 교사, 공무원 등 철밥통에 안주하려는 젊은이의 나약함을 키우고 있고, 현재적이고 외형적인 삶을 중시하는 사회풍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회풍조나 경제 양태가 앞으로 한국 경제와 사회에 부정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세계에 대한 안목 없이 조선이란 울타리 안에서 자기 철밥통만을 지키려다가 망했던 백년전의 과거가 다시 미래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아편전쟁 후 백년간의 내부적 정비를 거치고, 다시 1949년 이후 30년의 실험을 겪은 후 大中華의 부활과 함께 해양중국을 추구하면서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을 보고 있노라면 섬뜩한 두려움이 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때이다.
<기타 화교 관련 서적>
· S.시그레이브 지음, 원경주 옮김, <<중국인 이야기 : 보이지 않는 제국, 화교>>, 서울: 프리미엄북스, 1997(2002년에 <<중국 그리고 화교 - 보이지 않는 제국, 화교 네트워크의 역사>>으로 개명 출판 ).
· 머레이 와이덴바움․사뮤엘 휴즈 공저, 지해범 역, <<華僑네트워크>>, 서울: 세종연구원, 1998.
· 메리 F.소머스 하이두스 著, 朴銀瓊 譯, <<동남아시아의 華僑>>, 서울: 螢雪出版社, 1993.
· 박사명, 박은경, 신윤환, 오명석, 전경수, 조흥국, <<동남아의 화인사회>>, 서울: 전통과현대, 2000.
· 정성호, <<화교>>, 서울: 살림, 2004.
<2005. 7. 13. 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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