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않는가 |
김영삼정권의 '세계화정책' 실패에서 교훈 찾아야 2004/06/1 이대로 기자 |
오늘날 우리 경제가 매우 좋지 않다. 일반 시장의 상인들은 아이엠에프 때보다도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하고 살기가 힘든 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자살하고 있다. 무역 흑자도 적자로 돌아섰다. 기업들도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골프여행과 외국 유학은 늘어 경상외 수지적자가 자꾸 늘어나고 있으며 외제 명품과 자동차 등 소비재 수입이 늘고 있다. 꼭 1997년 아이엠에프 식민지가 되기 전 분위기다. 그러나 정부도 국민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아 불안하다. 거기다가 살기가 힘들어 스스로 세상을 뜨는 사람이 많은데 며칠 전에 현대 정몽헌 회장까지 자살을 했다니 더욱 인심이 뒤숭숭하다.
나라가 몹시 흔들리고 국민들까지 들떠 있어 또다시 경제식민지가 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여 년 전 아이엠에프 경제 식민지가 되기 전 나라 안의 분위기를 되돌아보고 이 위기를 넘길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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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까지만 해도 김영삼 정권은 국제화를 외쳤다. 그런데 그해 11월 17일 시드니 아태협력기구(에이피이시-아펙) 정상회담에 참석한 자리에서 느닷없이 세계화로 구호를 바꿨다. 11월 22일 <한국일보>는 "정부는 청와대에서 세계화 추진대책을 논의했다. 세계화는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 아닌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이 되자는 것이고 이를 위해 국민 각자와 국가의 전 분야가 세계 일류가 되자는 것이라고 고위 간부가 설명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도 집권당 대표도 세계화와 국제화가 무엇이 다른 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11월 24일치 '시드니 선언 누구 작품인가 설왕설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국제화가 줄곧 강조돼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를 즈음에 이 개념이 나와서 종전 정책의 연장이냐 단절이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신경제 5개년 계획에도 국제화라는 개념만 들어 있지 세계화는 찾아볼 수 없다. 궁금증을 갖게 하는 첫 대목은 김대통령의 세계화를 시드니 선언으로 발표한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도 하루 전날 대통령으로부터 말로 듣고 받아 적었을 뿐이며 홍재형 부총리나 박재윤 재무장관도 이런 선언이 나오리라는 미리 알지 못했다고 하니 경제팀의 계획된 작품이 아님이 확실하다. 국제화추진위원회를 총리실에 설치한 이영덕 국무총리가 건의해서 선언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95년 세계무역기구(더불유티오), 96년 경제협력기구(오이시디) 가입을 앞두고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시행한 정책이란 관측이다."라고 쓰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 1년 전 아펙회의에 가서는 국제화를 외쳤다. 그리고 국제화가 무엇인지 알듯하니까 다시 세계화를 하겠다고 하니 장관도 언론인도 학자도 그 참뜻을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11월 20일 <한겨레신문>에 집권당의 김종필 대표가 국제화와 세계화가 어떻게 다르냐고 묻자 문정수 사무총장과 이한동 총무도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기사도 있다. 11월 22일 한겨레 정운영 논설위원도 세계화를 잘 모르겠다고 쓰고 있고 한국일보 장명수 위원도 세계화와 국제화가 무엇이 다른지 모른다며 국제화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갑자기 그 상위 개념이라는 세계화를 하자니 이거야말로 한국적 세계화로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린애 소꿉장난도 아닌 한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큰 정책이 이런 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한심스러웠다.
그 당시 거기다가 성수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충주호에서 유람선이 불타고, 가스폭발 사고가 나는 등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는 큰 사고가 계속 터지니 국민은 혼이 빠지고 흔들리고 있다. 그 때 유럽은 유럽연합기구를 만들고 미국 맥시코도 지역연합을 하는 등 지역화로 가는데 김영삼 대통령만 뜬구름 같은 세계화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국제화 나팔수들은 모두 세계화 나팔수가 되어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 위원회, 과학기술위원회 등 여러 위원회를 세계화위원회로 통합한다고 말했다.
그 뒤 세계화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김진현씨가 위원장이 되었는데 그는 1995년 1월 14일 각료회의에서 영어는 이제 제2 모국어와 같다고 말했다. 1995년 교육부는 영어조기교육을 철저히 시행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세계화는 영어 섬기기, 미국화로 보일 정도로 세계화 구호와 함께 영어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새해 들어 모든 신문과 방송, 그리고 교수들이 세계화 선전에 열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주식회사 진도 김영철 부회장은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작년 이맘때 일간지들은 '94년은 국제화의 원년'이라고 대서 특필했다. 그래서 모두 국제화를 이해하느라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국제화의 뜻을 겨우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세계화의 원년'이라고 떠든다. 많은 사람이 매일 언론에 세계화 뜻풀이를 하고 있지만 장님 코끼리 설명하기 꼴이다."라고 세계화를 설명했다.
1995년 5월 2일치 한겨레신문에서 성균관대 경제학과 김태동교수는 '반성 없는 정부에게'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통해 " 현 정부의 중요한 잘못을 10개로 나누어 보면 첫째-사고 정부, 둘째- 국민 무시정부, 셋째- 개혁 얼치기 정부, 넷째- 일인자로서 대통령만 있는 정부, 다섯째- 공직사회 부정부패 심한 정부, 여섯째- 환경오염 점점 더한 정부, 일곱째- 기업에 규제 심한 정부, 여덟째- 법치주의 실종정부, 아홉째- 언론관리통제가 전 정권 뺨치게 잘하는 정부, 열째- 현 정부는 이렇게 잘못하는 것이 많은데도 자화자찬이 심하고 국제화 추진 일년도 안 돼 세계화를 추진하는 등 구호정치로 문제를 얼버무리는 정부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도 제대로 반성하지 않으니 대구 가스참사가 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공감이다.
그 때 나는 김진현 세계화추진위원장의 말은 얼빠진 소리며 겨레말과 겨레정신을 죽일 못난 소리니 세계화를 미국말이나 섬기는 쪽으로 끌고 가지 말고 국민이 세계를 아우르는 안목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 모자라는 것은 더욱 발전시키고, 좋은 것은 세계에 널리 알리는 세계화여야 한다고 여기저기에 쓴 일이 있다. 또 무조건 하루아침에 모두 일등이어야만 산다고 하지 말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국민과 한 마음이 되어 발전시키자고 외친 일이 있다.
그런 가운데 경제는 자꾸 더 나빠졌다. 1994년 9월 8일치 서울신문에 최택만 논설위원은 " 지난해 해외여행수지 적자가 5억6천만 달러인데 올 들어 8월 말까지 해외여행수지는 10억 달러 적자가 났고 외제차 판매대수는 19백대인데 벌써 2천대를 넘어섰다. 과소비 풍조 재 확산, 방학을 이용한 단기 영어연수 명목의 학생 해외여행 등으로 인한 적자폭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선 절약이 최고인데 고소득층과 그 자녀들, 볼로 소득층인 젊은 층이 명품과 외제를 좋아하는 것이 큰 문제다."라고 쓰고 있다. 여러 신문에 뜻 있는 분들이 투기자본, 핫머니 대책을 세우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김영삼 정부는 그 대비책을 철저히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제화와 세계화 헛구호를 외치며 해외 여행 자유화와 여행 시 개인 외화보유와 해외예금을 늘린다고 큰소리 치고 있다. 그러더니 마침내 1997년 초엔 외채가 급속도로 늘어나 망국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고 정부는 오이시디 가입으로 선진국이 되었다며 큰소리치고 그 나팔수 어용 교수들은 한국을 넘어 세계시민이 되자고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1995년 11월 18일 한겨레신문 장정수 기자는 "세계화가 국민의 눈길을 끌기 위해 겉만 화려하게 포장된 또 하나의 구호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고 쓰고 있다. 깜짝 쇼를 좋아하다 나라 망쳐서 진짜로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95년부터 외환 빗장 풀어 세계화 뒷받침한다고 한 것도 망국화 뒷받침한 꼴이다. 정신 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위 글을 읽어보면 오늘 우리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경제 사정은 계속 곤두박질인데 그 걱정과 대비책은 세우지 않고 꿈같은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떠들기도 하니 말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앞을 내다보고 시원하게 열어주는 사람이다. 임기 내에 큰 업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김 대통령의 조급증이 망국화인 세계화가 큰 업적이 될 줄 알고 덥석 먹었는데 그게 세계 투기자본의 낚시 밥이었든 것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차리면 산다고 했는데 정신 차리지 못하고 거들먹거리다가 보기 좋게 당한 것이다.
지금도 잠시라도 방심하고 경계심을 늦추면 그 때 같은 경제 위기 다시 온다. 세계화에는 반드시 가장 한국다운 고유의 참모습을 지키고 길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국민이 정신차리게 할 정책을 펴자. 정치인과 공무원이 나라살림을 제대로 하기보다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지키기에 정신이 빠졌는지 국민들이 눈 부릅뜨고 살피자. 10여 년 전 경제 위기는 국민 정신문화가 썩었고 얼빠진 정치인이 설쳤기 때문에 왔다. 이제 국민 정신문화, 민족 자주문화 바로 세우기에 힘써야 한다. 문화가 뒷받침해주지 않는 경제와 정치는 불안하다.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의 잘못된 세계화 정책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부정부패와 사대주의 등 망국요인을 고치기보다 김영삼 정권처럼 업적 남기기에 급급하다가 요즘 곤경에 처해 있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다. 정신문화연구원이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고전문학 읽기와 한자공부에만 열심이더니 아예 정신문화연구원 간판을 내리고 한문서당과 같은 국학연구원으로 바꿔 단다고 한다. 쓸만한 회사와 땅을 외국인에게 넘기더니 이제 인천 지역에 외국인 천국인 경제자유구역을 만든다고 한다.
초국적 자본의 침략 전진기지가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쩐지 불안하다. 거기서 우리의 무역외 수지적자를 얼마를 메우고 국민들의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는 풍조를 얼마나 해결해줄 지 의문이다. 우리 국민을 외국 자본가의 머슴으로나 만드는 것이 선진국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경제특구 지정은 공산국가에서 자신의 체제를 보호하면서 자본주의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취하는 어쩔 수 없는 정책수단이다. 우리 같은 자유국가는 각종 불필요한 규제나 풀고 공무원과 노동자의 수준과 근로의욕을 높이는 등 기업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외국인 특혜지역을 만드는 것은 아예 허물어진 외양간을 고치는 게 아니라 한쪽 울타리를 없애는 꼴로 보인다. 지난날의 서민만 힘들게 한 의료보험 강행, 오이시디 가입 강행이 떠오른다. 관료와 정치인이 기업인과 결탁된 부정부패, 제나라 말과 문화는 우습게 여기며 외국말과 외국문화만 더 좋게 보는 패배주의와 사대주의, 학벌 우선과 지역감정싸움, 패거리 정치와 패거리 이기주의, 분수에 넘치는 외제 좋아하기, 가정과 나라살림까지 흔드는 조기유학 열병 등 한국병부터 고쳐라.
모든 일엔 차례가 있고 그 차례를 잘 지켜야 한다. 이제라도 잘못된 세계화 신자유주의 정책을 바로잡고 다시 자라기 시작한 송아지를 잃지 않기 위해 허물어진 외양간을 고쳐라.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않는가:사람일보 - 사람 사는 세상 (saram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