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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리라(3월 22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에스겔 37:1–14(구약 1210)
오늘 우리가 같이 봉독한 말씀의 배경은 기원전 597년과 586년,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 백성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다윗 왕국은 사라졌으며, 언약 백성은 이방 땅에서 노예처럼 살아가야 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초기에는 거짓 예언자들이 등장을 해서 우리는 곧 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거짓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거짓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고백만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고,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11절).
그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데려가셨습니다. 그 골짜기는 마른 뼈로 가득 찬 사망의 골짜기였습니다. 이 장면은 포로 된 유대인들의 영적·육체적 현실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눈에 보인 장면은 사방에는 말라버린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생명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어 마른 뼈들만 가득한 죽음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세워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절망의 상황에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질문을 하시는데 이 마른 뼈들이 능히 살아날 수 있겠느냐?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서 절망의 무덤에 갇힌 이스라엘을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마른 뼈와 같고,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무덤을 여시고 우리를 다시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리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어느 골짜기로 인도하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골짜기로 가게 되는데
하나님의 권능으로 골짜기로 인도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권능으로 임하셨습니다. 여기서 ‘권능’의 히브리어는 יַד יְהוָה (야드 여호와)인데 야드는 손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권능이라고 한 말은 히브리어 그래도 번역하면 ‘여호와의 손’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권능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강압적이고 압도적인 능력을 의미하고. 에스겔서에서 이 표현은 선지자가 환상을 받을 때마다 사용됩니다(1:3; 3:14; 8:1; 33:22). 이는 단순한 영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스스로 그 골짜기로 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즉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 우리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은 포기나 방치가 아니라, 더 큰 계시를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내가 있는 고통스러운 자리가 어쩌면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신 골짜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마른 뼈가 가득한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보여주시려 하는가’를 질문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골짜기 지면에 마른 뼈가 가득했습니다. 2절을 보면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하나님은 에스겔을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본 그곳의 상황에 대해서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심히 많고’ 즉 수많은 뼈들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뼈들이 ‘아주 말랐더라’ 즉 완전하고 철저히 말라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랐더라’ 히브리어로 יְבֵשׁוֹת מְאֹד (예베쇼트 메오드)인데 이 말의 의미는 ‘매우 건조한, 완전히 말라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부패도 다 끝나고 생명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소생의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힘겨운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생명력 자체가 고갈되었고, 예배는 중단되었으며, 약속의 땅을 잃었습니다. 영적으로, 공동체적으로, 국가적으로 완전한 사망 상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마른 뼈’의 현실은 존재합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관계가 파탄 나고, 꿈이 사라지고, 신앙이 식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이 예배 자리에도 그러한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질문합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3절을 보면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신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에스겔로 하여금,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게 하시는 물음입니다.
에스겔의 대답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인데 이것은 신앙의 모범적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니오’이지만,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주님이 아신다.’는 신뢰의 고백이 더 정직한 대답입니다.
에스겔의 고백은 ‘주께서 아시나이다.’의 히브리어는 אַתָּה יָדָֽעְתָּ (아타 야다타)인데 말은 ‘오직 당신만이 아십니다.’라는 뜻으로, 겸손한 의존과 절대적 신뢰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상황이 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실 때 우리도 같은 고백을 해야 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고백은 ‘나의 인간적인 한계로는 불가능하지만,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는 가능함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기적은 나의 불가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이런 고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 대언 하니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 뼈들이 살아나겠느냐고 물으시자 에스겔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했고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에 따라 에스겔이 대언하게 되는데
생기가 들어가게 하리니 살아나리라고 말슴하셨습니다. 4-6절을 보면
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37: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대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살아있지도 않은 뼈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대상을 향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5절). 그리고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6절). 하나님의 회복은 단계적이고 총체적입니다. 힘줄, 살, 가죽,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기까지 임해서 완전한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히브리어로 רוּחַ (루아흐)인데 이 단어는 ‘바람, 숨, 영’을 동시에 의미하는 단어로 창세기 2:7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에 사용된 생기와 오늘 본문의 생기와 같은 단어입니다.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 창조 행위를 다시 재현하는 새로운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것을 살립니다. 우리는 포기한 사람에게도, 절망한 상황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 선포는 허공을 향한 공허한 외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에스겔이 대언 했으나 아직 생기가 없더라 7-8절을 보면
37: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37: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에스겔이 명을 받아 대언 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7절). 그러나 8절에서 잠깐 멈춥니다.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외형적 회복이 먼저 일어났지만, 진정한 생명 즉 내면의 루아흐(생기)는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외형적 회복(제도, 건물, 조직)만으로는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생기, 즉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이 잘 갖추어져 있고, 예배의 순서가 완벽하며, 성도들의 훌륭한 교제가 있을지라도, 그 안에 성령의 불, ‘루아흐’가 없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건물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갖추고, 조직을 정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그 모든 것은 ‘생기 없는 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다시 대언 하매 그들이 일어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9–10절을 보면
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37: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두 번째 대언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번에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 하라는 것입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9절). 여기서 ‘사방’은 히브리어 ‘아르바 루호트(ארבע רוחות)’, 즉 동서남북 모든 방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어느 한 방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전 우주적이고 총체적인 성령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결과는 극적입니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10절). ‘극히 큰 군대’는 바벨론에 의해 정복당하고 멸절 당한 군대 아니라 전쟁을 할 수 있는 강한 군대를 의미합니다. 마른 뼈에서 시작하여 강한 군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된 부흥 운동은 한국 교회사에 있어 ‘마른 뼈의 살아남’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제의 강점이 시작되던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국권을 잃어가고, 민족의 소망이 꺼져가던 그 어둠 속에서, 선교사 하디(R.A. Hardie)와 길선주 목사를 통해 성령의 불길이 임했습니다.
기도 집회에 모인 수백 명의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 운동은 평양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번졌고, 마침내 수만 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대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국권을 잃어가는 그 절망의 땅에서 하나님이 가장 큰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골짜기에서 가장 큰 군대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3.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리라
10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마른 뼈가 큰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게 하신 것이고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1절을 보면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1절부터 환상에 대한 해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설명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마른 뼈의 골짜기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 영적 상태를 가리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을 소개했습니다.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이것은 세번의 중첩된 절망의 고백입니다. 뼈가 말랐다 는 말은 내면의 생기가 사라졌다는 것이고, 소망이 없어졌다는 것은 미래가 닫혔다는 것이고 다 멸절되었다는 것은 존재 자체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지만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나는 다 끝났다, 소망이 없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그런 절망의 고백을 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소망이 끝난 그 지점에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13절을 보면
37: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37: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나님은 절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선포를 하셨습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여기에서 이 일을 하시는 분은 ‘내가’ 즉 하나님이 친히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무덤을 열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덤을 여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죽음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 무덤을 여실 때에만 나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무덤을 열고’의 히브리어는 פָּתַח קִבְרוֹתֵיכֶם (파타흐 키브로테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너희의 무덤들을 열다.’는 뜻으로, 무덤은 복수형입니다. 개인적인 무덤, 가정의 무덤, 공동체의 무덤 즉 모든 종류의 죽음의 자리를 하나님이 여신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이 말씀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행2:24절을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예수님은 죽음의 무덤에서 스스로 나오신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 그 무덤을 열어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능력이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 롬 8:11을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3절은 이 약속 즉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시는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할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의 회복은 단순히 현실의 개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회복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회복과 기적은 우리의 편안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 이심을 드러내는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살아나게 하리라 14절을 보면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을 통해서 하신 약속은 두 가지로 주어졌습니다.
첫째,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둘째, “내가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라” 이 두 약속은 서로 연결됩니다. 내적인 회복(성령)과 외적인 회복(귀환)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중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이것은 에스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새 언약 약속과 연결됩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시면 우리의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이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성령 강림(행 2장)으로 성취됩니다.
에스겔의 환상의 결론은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루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두 개의 완료형 동사가 사용됩니다. ‘말하고 이루었음이라’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고 이루십니다. 나의 무덤도 주님이 여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에스겔 37장 1–14절을 통해 세 가지 장면을 보았습니다.
첫째,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 — 인간적으로 보면 절망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골짜기로 직접 우리를 이끄십니다. 우리의 절망적인 자리가 하나님의 역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대언하니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죽은 것이 살아납니다. 뼈에서 큰 군대로의 변화는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루아흐)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리라 — 하나님이 친히 무덤을 여십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리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우리에게도 실현됩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마른 뼈 같은 상황들을 향해 대언 합시다. “여호와의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 이 죽은 상황에 들어가라! 살아나라! 무덤아 열릴지어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성령(루아흐)을 불어넣으셔서,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호와의 지극히 큰 군대로 우리 모두를 세워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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