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귀청에서 반복되는 CDplayer의 교향악은 꺼지지 않은 채
아침까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늘 트레킹 코스는 랑탕호텔에서 랑탕계곡 까지다.
어제 오르막길이 약간 심했는지 허리에 파스를 잔뜩 붙이고 출발하였다.
산에 오를 땐 처음 1시간 정도가 나는 제일 힘들다.
이럴 때는 언제나 걷기명상(walking meditation)을 한다.
발의 느낌과 발걸음에 mindfulness하여 걸으면 훨씬 가벼운 발걸음을 유지할 수 있다.
사각사각 마른 나뭇잎을 밟을 때의 기분도 괜찮고,
무엇보다 촉촉한 흙을 밟는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줄곧 시멘트, 아스팔트만 내 딛고 사는 한국생활에서 흙을 밟고 사는 것은
이제 매우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돌멩이도 밟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건너고
그러다 무아지경(?)에 빠져 한참을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걸어갈 때도 있었다.
이제 트레킹 일행은 당연히 3명이 되었다.
사실 나는 재패니스 Ashida(아시다)의 일정에 끼이게 되었다.
부화능력이 없는 뻐꾸기가 곤줄박이 둥지에 슬쩍 알을 낳는 격인가?~~^^*
나 홀로 하는 트레킹이기 때문이다.
아시다는 네팔리 Deviram(데비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Guide를 고용하여
트레킹을 하는데 둘의 만남은 2년 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Deviram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때문에 그와 함께 하는 것 같다.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아시다의 영어 실력이 형편 없어서 오직 자국어에만 의존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일본어를 잘 하는 가이드를 찾게 되었으며 바로 Deviram이 일본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퍽이나 유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데비람은 스피킹은 할 줄 알아도
스펠링이나 철자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오직 트레킹 가이드를 하면서 듣기로만 배웠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2년 정도 스터디한 결과치곤 가히 놀랄 만하다.
그의 명석한 두뇌를 칭찬하고 싶다.
그는 매일 아침 자그마한 체구를 흔들며 네팔송을 휘파람으로 불면서 흥겨워 한다.
그러한 모습에서 티 없이 맑은 마음과 뭔가 풍부한 마음을 엿볼 수가 있어서
덩달아 기분좋은 아침이 되고 만다.
랑탕계곡 가는 길은 어제와는 달리 평지에서 약간 오름세이다.
그래도 3000m가 넘는다.
점점 랑탕계곡에 들어갈수록 심오한 절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소나무가 있는 군락을 지나니 나무라곤 거의 없는 황량한 고원으로 시야가 바뀐다.
그리곤 바위로 된 山들이 터억~ 버티고 서 있다.
거대한 암갈색 바위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머리위에서 긴 혀를 날름대듯
길다란 물줄기를 떨어트리는 폭포를 뿜어내고 있다.
낙수되어 떨어지는 물에 아직도 얼음이 대롱거린다.
비탈진 곳에서는 텁숙룩한 야크 떼가 조용히 풀을 뜯는지
모두 땅에 입을 묻고 묵언중이다.
동쪽으로 난 길을 걷고 또 걸으며 흠칫 V계곡의 풍경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벌써 그 위치가 변경되어 또 하나의 雪山이 오버랩핑으로 펼쳐진다.
그 설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둘러쳐진 바위산은 12폭 병풍으로 나를 에워싸고 만다.
남쪽에 있는 산은 내가 보는 시야가 북향이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눈이 쌓여 있고
북쪽산은 그 반대쪽 남향이기 때문에 이내 눈은 녹고 없다.
내가 소지한 카메라(필카)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파인더의 파노라마틱한 풍경을 다 찍어내질 못한다.
와이드한 절경을 볼 때마다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그것은 기대에도 못 미치는 왜소한 풍경만을 오려 넣고 있다.
이제 랑탕계곡에 다다르고 있는지 야크 떼가 점점 많아지고
타르쵸의 펄럭임이 더욱 거세어진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한기까지 느끼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마을의 집들이 모두 돌멩이로 담을 치고
방풍벽을 만들어 놓았다.
지붕위에도 돌로 꽁꽁 눌러 놓았음이 마치 한국의 제주도를 연상케 한다.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마을의 풍경모습이다.
왠지 쓸쓸하기도 하고, 보고 싶고 그리운 곳이기도 한 것 같은...
과거 생에서나 본 듯한... 외로움이 왈칵 몰려 올 것 같다.
순전히 티벳 사람들만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닐 듯싶다.
여태 계곡을 지나칠 때마다 마을은 어김없이 나타나고
그곳엔 티벳인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더욱이 계곡이 깊음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을은 집성되어 있으며
거기에 또한 티베탄이 살고 있었다.
3000m가 넘는 이 마을에도 티베탄 뿐이다.
그들은 운명적으로 하늘에서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일 아침에 향하는 목적지인 강진곰파에도 티베탄은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늘나라에 사는 사람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