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주 |
7월 5일 |
마태 10,17-22 |
성가 283, 287 |
둘째주 |
7월 12일 |
마르 6,7-13 |
성가 31, 63 |
셋째주 |
7월 19일 |
마르 6,30-34 |
성가 50, 68 |
넷째주 |
7월 26일 |
요한 6,1-15 |
성가 29, 459 |
첫째주 |
8월 2일 |
요한 6,24-35 |
성가 2, 166 |
둘째주 |
8월 9일 |
요한 6,41-51 |
성가 15, 48 |
셋째주 |
8월 16일 |
요한 6,51-58 |
성가 24, 61 |
넷째주 |
8월 23일 |
요한 6,60-69 |
성가 32, 76 |
다섯째주 |
8월 30일 |
마르 7,1-8.14-15.21-23 |
성가 22, 439 |
●● 말씀나눔 l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연중 제22주일 함께하는 복음묵상
사진 : 서울대교구 사목국 이준성 신부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
순교의 삶 7월 5일 마태 28,16-20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리는 대축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실제로 신앙 때문에 수많은 우리 선조 순교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이 세상을 포기할 수 있었다.
왜 신앙인은 박해를 당할까? 세속적인 인간들에게 그리스도의 진리는 커다란 걸림돌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므로, 죄와 어둠의 세력은 어둠의 행위가 빛으로 인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빛을 거부하고 미워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세상 안에서 신앙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 자체가 미움과 박해를 받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에는 물론 하느님을 믿는다고 옛날처럼 순교를 당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세속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은 어쩌면 매일 같이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욕심과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정신적 순교를 뜻한다. 이 순교를 통해 우리는 현세에서도 마음의 평화, 진정한 기쁨, 빼앗기지 않는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묵상: 오늘날 나에게 순교는 무엇인가?
복음을 선포하는 삶 7월 12일 마르 6,7-13 연중 제15주일 |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복음 선포의 내용과 자세를 구체적으로 가르치신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명령이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식량도 여벌옷이나 돈까지도 들고 다니지 말라는 말씀은 복음 선포의 긴박성과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로지 하느님 말씀만 믿고 의지하는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강한 의지가 돋보이는 말씀인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는 것은 우리가 수행해야 할 복음 선포의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복음 선포의 첫 마디는 “회개하라.”였다. ‘회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기본자세이다. 그리고 회개는 참으로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다. 회개는 하루아침에 어떤 결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는 행위이다.
또 복음 선포에서 중요한 것은 병자를 찾아 위로하고, 기름을 부어 그 병을 고쳐주는 것이다. 우리는 미사가 끝날 때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으며,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복음 선포의 의지가 없다면 분명 우리는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으로서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뜻이다. 파견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적 의무요 삶의 의미 그 자체인 것이다.
묵상: 나는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나?
기도의 필요성 7월 19일 마르 6,30-34 연중 제16주일 |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하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느님께서도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다고 한다. 구약의 율법에서도 안식일 법이 아주 중요하게 지켜졌다. 이는 단순히 율법을 위한 율법을 지킨다는 뜻이 아니었다. 인간 생활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기본적인 생활 원칙이었다.
열심히 노동을 하는 것도 좋고 신성한 일이지만, 그보다도 하느님과 만나서 하느님의 뜻을 구하고 하느님의 지침을 받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가 하는 일의 목적과 방향을 재설정하는 기회가 된다. 예수님께서도 그 누구보다 바쁘고 피곤하게 활동한 분이셨지만, 그럼에도 지치고 힘든 가운데 한밤중에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재충전의 시간 즉, 특별히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신앙의 재충전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기본이다. 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느님의 말씀을 새겨듣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또 하나의 위대한 모습은 참 목자의 모습이다. 목자는 언제나 양들을 생각한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좀 쉬시려다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어 그들을 가르치고 돌보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지하고 바라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 곧,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모습이다. 우리의 믿음과 기도생활의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다.
묵상: 나는 언제 가장 절실하게 기도를 했나?
나눔은 기적이다 7월 26일 요한 6,1-15 연중 제17주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아이가 내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해도 오천 명이 넘는 군중에게 나누어 먹게 하셨다. 처음에 필립보는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다며 난색을 표했다. 돈부터 걱정했다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지극히 당연한 인간적인 걱정이었다. “저 사람들을 차라리 돌려보내서 각자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이 약삭빠른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의 굶주림을 보시고 깊은 연민에 빠지셨고 그 해결책만을 강구하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굶주린 백성들에 대해 진정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지니시는 것에 비해, 너무나 무관심하고 비정한 인간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대조적이라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의 적극적인 자세는 오늘의 기적을 탄생시킨다. 안드레아는 군중 속에서 먹을 것을 구하다가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말씀드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었지만 이 빵을 들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 그리고는 무조건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누가 보아도 정말 무모한 일이었지만, 여기서 기적이 일어났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긴 조각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이것이 바로 긍정적인 사고와 감사 기도의 위력이다. 나눔이란 넉넉한 것에서 일부를 쪼개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지만 쪼개고 나누는 것이다. 자기 것을 내어줄 줄 아는 삶은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묵상: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는가?
예수님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 8월 2일 요한 6,24-35 연중 제18주일 |
오늘 복음에서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 배를 타고 카파르나움까지 왔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탄을 하신다. 그들이 멀리까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예수님께서 이루신 빵의 기적을 올바로 이해해서가 아니라, 썩어 없어질 양식을 쉽게 얻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고서, 이러한 분은 충분히 자기네들의 왕이 되고도 남을만한 위대한 인물이라고 세속적인 기대와 판단을 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군중의 어리석은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으신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오늘 예수님을 따라온 군중은 세속적인 빵의 문제와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려 왔다. 우리도 똑같은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하느님의 천상양식인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의 삶이 영원한 삶으로 뿌리 내린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신앙을 삶의 수단이나 방편으로 생각한다면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바로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다.
묵상: 나는 예수님께 무엇을 원하는가?
예수님은 살아있는 빵 8월 9일 요한 6,41-51 연중 제19주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밝히신다. 그러자 군중은 심하게 거부반응을 보인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하시며 더구나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니까, 예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고 있는 군중은 더더욱 믿을 수가 없다고 수군거린다. 사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모든 음식은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시는 매우 소중한 생명의 양식’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 이 말씀은 결코 낯설지 않다. 어떤 음식이든지 하느님께서 은혜로이 마련해주신 것이고, 따라서 감사히 먹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신앙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먹는 빵의 본질에 관한 의미도 알려준다. 빵이란 원래 먹히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적극적인 사랑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먹히는 존재가 되셨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이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빵이 되시어 먹히는 존재가 되신 것이다.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생명의 빵,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받드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인들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 신앙은 나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으로써만 가능하다. 실제로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신적인 생명의 원천이 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신적인 생명을 다시 우리들에게 베푸신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영원한 생명을 끊임없이 이웃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묵상: 나는 성체를 영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 8월 16일 요한 6,51-58 연중 제20주일 |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믿기 어려운 말씀을 듣게 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이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도 모두 수군거리면서 서로 따졌다.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마치 육신이 음식의 영양분으로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듯, 인간의 영혼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섭취해야만 생명을 얻는다. 여기서 특별히 예수님의 살과 피를 강조함은 예수님의 전인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이 모든 가르침을 현실화시키셨다. 즉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떼어주시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하시고 이어서 포도주 잔을 드시고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너희와 모든 이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흘릴 내 피의 잔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구체적으로 먹고 마실 수 있는 성체성사를 이루셨다. 우리도 예수님의 몸과 피를 모시면서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살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면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다.
묵상: 우리는 성체성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유 8월 23일 요한 6,60-69 연중 제21주일 |
한동안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여러 기적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군중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실망하고,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평소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자들 중 많은 사람도 떠나갔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예수님께서 질문하신 의도는 우리가 주님을 올바로 알아보고 고백하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뜻이었다. 이 질문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우리도 혹시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썩어 없어질 빵’ 때문에 예수님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도 기적을 행하거나 신기한 능력이 있다는 이들 주위에는 예외 없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복음을 익히는 일에는 소홀할 때가 많다. 우리는 기적을 보고, 빵을 보고,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강한 유혹이 많더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복음의 사도 베드로처럼 우리도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한 삶 즉, 영원한 생명으로 이르는 삶을 미리 살게 될 것이다.
묵상: 나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가?
올바른 신앙생활의 자세 8월 30일 마르 7,1-8.14-15.21-23 연중 제22주일 |
오늘 복음은 식사 전에 손 씻는 관습과 관련된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 이야기이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와 따졌다. 예수님의 제자 몇 사람이 손을 씻는 의식을 치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래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다. 사실 율법에 대한 논쟁은 유다인 출신 신자들이 많은 초대 공동체에서는 큰 문제였다. 특히 이방인에 대한 선교 과정에서 상당히 큰 파장을 가져오는 문제였다.
오늘 예수님의 답은 그 당시 교회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조상들의 전통을 저버린다는 공격에,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사29,13)을 인용하셨다. 사람들이 입술로만 공경하지 실제로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고 비판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악한 것이 나와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적이고도 형식적인 믿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통렬히 비난하셨다.
우리의 모습도 반성해 보자.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겉과 속이 모두 깨끗하고 신성하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한 생활을 지향하는 것만이 진정한 하느님 공경이며,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삶이라 할 수 있겠다.
묵상: 나는 하느님과 관계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
●● 소공동체 l 병자성사 준비(2)
병자성사를 위한 지침과 규칙
병자들에게 실시하는 거룩한 도유와 아울러 사제들의 기도로써 온 교회는 고난받으시고 영화로이 되신 주님에게 병자들을 가볍게 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더욱이 병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시킴으로써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하도록 그들에게 권고하는 것이다(교회헌장 11항). |
‘병자성사 예식서’의 요약
야고보 서간 5장에서는 앓는 사람을 구원하고 일으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도유예식을 실시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노환으로 인해서 위중하게 앓고 있는 신자들에게 온갖 노력과 세심한 주의로 병자성사를 주어야 합니다.
병자가 이 성사를 받은 후 건강을 회복하였다가 다시 병들었을 경우에도, 또는 동일한 병세가 계속되다가 중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에도 병자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환으로 기력이 많이 쇠진해지는 노인들에게는 병세의 위험성이 목전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이 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이 성사로써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철들었다고 판단될 때에는 병자성사를 주어야 합니다(철들었는지 의심스러울 경우에도 병자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병자들이 비록 의식이나 이성의 활동을 상실했더라도, 의식이 있었으면 믿는 마음으로 청했을 것이라고 판단될 때에는 병자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병자가 이미 죽었을 경우에는 사제는 그를 위하여 하느님께 그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자비로이 천국으로 받아들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구해야 하지만, 병자성사는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병자가 확실히 죽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라면 조건부로 병자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러나게 대죄 중에 고집스럽게 살아오던 사람에게는 주지 말아야 합니다.
병자성사를 받아야 할 적절한 시기를 접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지체 없이 청해서, 넘치는 신앙과 경건한 믿음으로 성사를 받도록 해야 하며 결코 이 성사를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병자성사를 통한 은총
병자성사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굳건하게 함으로써 병이나 노쇠의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평화와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자신의 고통을 일치시킬 수 있도록 돕습니다.
병자의 영적인 구원에 적합한 경우에는 건강이 회복되는 은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는데, 그 목적은 그들의 믿음을 견고히 하여 구원을 얻게 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데 있었습니다.
병자성사는 아직 남아 있는 죄를 용서해 줍니다. 야고보 사도는 병자를 위한 기도와 도유가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병자에게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야고5,15)’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지만 혹시라도 남아 있는 죄가 있다면 병자성사를 통해서 용서를 받게 됩니다.
●● 소공동체 전례 시안 l 빛의 예식
준 비 물 | 성경, 가톨릭 성가책, 낮은 상, 상보, 큰 초(또는 부활 초),
인원 수 만큼의 컵 초, 성냥
준비
조명을 어둡게 합니다. 한 사람이 큰 초를 방 한가운데로 들고 들어오면,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일어서서 그리스도의 빛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이 큰 초에 불을 붙입니다.
준비 기도
마음을 고요히 한 후
그리스도 안에 마음을 모아봅시다.
성경 읽기 : 요한 8,12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잠시 묵상합니다)
성가
가톨릭 성가책 421번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1절을 부릅니다.
빛의 나눔 예식
모두 컵 초를 들고 큰 초 주변에 둥글게 둘러섭니다. 이제 한 사람씩 나와 큰 초에서 자신의 컵 초에 불을 댕길 것입니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을 나누는 표징입니다.
참가자가 나와서 초에 불을 붙이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그의 ‘장점’에 관한 별칭을 지어서 불러줍니다. ‘장점’을 찾을 때에는 그에게서 받은 도움이나 격려, 위로에 관한 체험에서 비롯된 것도 좋고, 그의 특별한 성격에 관한 것도 좋습니다. 이 예식은 모든 이가 초에 불을 붙일 때까지 천천히 계속합니다.
마침 성가
이 시간을 함께 나누고 마음에 따스한 빛을 받은 은총에 감사드리며, 가톨릭 성가책 421번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1절을 고요하게 두 번 부릅니다.
●● 가정기도 l ‘주님의 기도’ 하지 마라
가정에서 온 가족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진행합니다.
1. 시작 기도
│진행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 중의 한분이 주님을 초대하는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생활 말씀
│진행자│ 한 구절씩 돌아가면서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 마태오 복음서 6장 9-15절
주님의 기도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진행자│ 이번에는 다함께 소리 내어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다 읽은 후) 약 2분 정도 성경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묵상을 끝내고 다음의 나눔을 진행합니다)
♠ 나눔
① 성경 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해 봅시다.
② 함께 소리내어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바쳐봅시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진행자│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의 기도’ 하지 마라
- 우루과이의 한 작은 성당에 적혀 있는 글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 하지 마라!
넌 세상 일에만 빠져 살고 있다!
“우리”라는 말 하지 마라!
넌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아버지”라는 말 하지 마라!
넌 나의 아들, 딸로 살지 않고 종으로 살고 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는 말 하지 마라!
넌 네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는 말 하지 마라!
넌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살고 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말 하지 마라!
넌 네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며 살고 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말 하지 마라!
넌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며 살고 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말 하지 마라!
넌 아직도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으며 살고 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말 하지 마라!
넌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며 살고 있다!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말 하지 마라!
넌 악을 행하고도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며 살고 있다!
“아멘”이란 말 하지 마라!
넌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며 살고 있다!
♠ 나눔
① 평소에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나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성찰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② ‘주님의 기도’를 진정 ‘주님’의 기도로 바치기 위해서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돌아가면서 발표해 봅시다.
③ 동그랗게 어깨동무를 하고 다시 한번 ‘주님의 기도’를 바쳐봅시다.
4. 함께 실천합시다
│진행자│ 다음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세상 일에만 빠져 살지 맙시다.
나 혼자만 생각하며 살지 맙시다.
하느님의 아들, 딸로 살아갑시다.
하느님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살아갑시다.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살지 맙시다.
내 뜻대로가 아닌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살아갑시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며 살아갑시다.
선한 일을 할 기회를 찾아다니며 살아갑시다.
나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갑시다.
진정한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살아갑시다.
5. 가족 회의 시간
│진행자│ 가족회의시간입니다. 가족이 함께 알아야 할 사항이나 논의가 필요한 일들, 가족 친지들의 생일, 축일 소식이나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가족에 바라는 점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시기 바랍니다.(자녀에 대한 훈계의 시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6. 가족 평화의 인사
│진행자│ 지금부터 평화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포옹을 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의 기도를 해줍니다.)
7. 마침 기도
│진행자│ 다함께 손을 잡고 주모경을 바치겠습니다.
●● 노년의 향기 l 노인에 대한 이해
늘어나는 노년, 줄어드는 유년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196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1980년대)
아이를 적게 낳아 인구폭발을 막는 것만이 국가 경제 부흥을 위한 최대 과제인 것처럼 떠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년인구가 늘어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과연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누구나 오래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구약시대를 살았던 성경의 인물들은 몇 백 년씩 장수를 누렸고, 장수와 다산이 하느님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여겼습니다. 현대 의학에 의하면 인간의 최대수명은 125세라고 합니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평균 수명은 79.1세로 남성 75.7세, 여성 82.3세입니다. 2020년에는 평균수명이 80.7세(남성 77.5세, 여성 84.1세), 2030년에는 81.5세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급속한 고령화 현상은 평균수명의 연장과 더불어 출생률이 낮아짐으로써 상대적으로 노년층의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저출산이 지속될 경우에는 고령화와 맞물려 노동인력 감소, 부양 인구 증가, 노년부양 부담까지 가중됩니다. 정부는 2003년 청와대에 ‘저출산 고령화 대책팀’을 만들어 출산수당 및 아동수당 지급, 출산 육아휴직 시 대체인력 지원 등의 20여 가지 중장기 대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는 것과 돈을 연결시켜 눈앞의 혜택에 급급하는 식의 단편적 정책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힘듭니다. 가난하게 살고 힘들더라도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고귀한 가치 실현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노인이 많은 사회는 성숙하고 풍요로운 사회입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재정적 수준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의료복지 수준이나 국민의 의식수준도 향상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미처 준비를 할 여유가 없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의 노인들은 오직 자식 농사가 노후대책이었으며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 않겠다는 일념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굶어가며 자식 교육에만 전념해온 세대입니다. 그렇지만 사회는 지금 노인을 부담스러운 사회의 짐으로만 치부하고 마치 장수가 인류의 재앙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을 지구 밖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예기치 못했던 사고나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노년기를 지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허다합니다. 노인은 일백년 가까이 질곡의 여정을 지나 무사히 노년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며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젊은이들이 베풀어주는 선심 한 조각에 감사하며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했던 노년이 아니라, 권리로서의 노년을 즐기며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는 활기찬 노년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 봉양과 자녀교육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잃었던 자기 자신을 되찾고 자아실현에 몰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노년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젊은이들은 긴 세월의 경험을 통해 체험한 삶의 지식과 지혜를 갖춘 인생의 원로로서, 풍부한 인생경험의 소유한 선배로서 그분들을 바라보아야할 것입니다.
“백발노인으로서 판단력이 있고 원로들로서 건전한 의견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풍부한 경험은 노인들의 화관이고 그들의 자랑거리는 주님을 경외함이다(집회 25,4-6).”
노인사목연구위원 조해경(스텔라)
● 나눔 : 각자 바라본 노년의 긍정적인 모습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 노년의 향기 l 아름다운 노후
세대차이요?
그런 것 잘 모르겠습니다.
노인대학 어디든 구성원 간의 연령층이 비슷해서 학생 대부분은 70~80대 노인들로, 봉사자들은 40~50대 중년층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역삼동 성당 한림원 노인대학에는 미모의 젊은 여선생님 두 분이 학생들에게 젊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노인대학 봉사 4년차에 접어드는 이임수 유스티나(37, 사진 오른쪽)자매님. 처음 수녀님의 권유로 멋모르고 시작하였다지만, 지금은 학생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한다며 숙련가다운 말을 전합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정적이고, 느리며, 못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해요. 어르신들에게는 기회가 없을 뿐 약간의 용기만 북돋아 드리면 그 열정은 대단하십니다.” 한림원 노인대학에서는 어르신들이 성취감을 느끼실 수 있도록 학기말에 직접 만든 작품으로 전시회를 연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 소재,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절실한데 정보를 구하기가 힘들어요.”라는 아쉬움을 드러내며 자기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또 봉사를 오래 하다 보니 어르신들과 친분이 쌓여 편한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혹여나 버릇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어르신들에게 상처를 드리지 않을까 늘 반성의 시간도 갖는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손녀뻘이고 봉사자들 중에서도 막내여서 실수를 해도 질책보다는 격려를 받는 등 여러 좋은 점이 많았는데, 올해 정혜숙 마리안나(35, 사진 왼쪽) 자매님을 봉사자로 영입하면서 사랑을 독차지 했던 막내자리를 내놓게 되어 질투 아닌 질투가 난다고 살짝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봉사자를 환영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합니다.
노인대학이 생소했던 마리안나 자매님은 신부님의 봉사자 권유에도 망설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이란 호칭 때문인지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인미술심리치료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전문성보다는 봉사에 대한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오히려 어르신들께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아직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사소한 것에 ‘고맙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말씀해주시고,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뻐해 주실 때 보람을 느낀다며 젊은 세대들이 노인대학 봉사자로 적극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전합니다. “저희 본당 노인대학에 출석하는 남학생은 두 분 뿐이세요. 남학생이 더 많이 나오시도록 연구를 해봐야겠어요.”라며 노인대학 활성화에 고민 중인 6개월 차 선생님. 신참 선생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굳은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두 분 젊은 선생님들은 본당 내 많은 봉사가 있지만 노인대학 봉사는 하느님께서 주신 특별한 소명이라 여기기에 더욱 보람되고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언제까지 봉사할 계획이냐는 물음에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놓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두 자매님. 관심을 가지면 못할 것이 없다며 이미 남을 위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일상이 행복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연신 강조합니다. 7월의 햇살처럼 활기찬 두 자매님의 기운이 한림원 노인대학에 가득 퍼지길 기도드립니다.
노인사목부 명예기자 박혜연(아가다)
●● 성전 기물의 표징과 의미 l 성가대석, 성화상
성가대석
성가대는 성가를 부르며 미사 전례에 활력을 불어넣는 신자들의 그룹입니다. 이들은 성가를 통해 더욱 완전하게 참여하는 전례가 거행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합창으로 성가를 표현하면서 신자들이 전례 축제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합니다(교회 음악 5항 참조).
능동적 참여를 증진하도록, 백성의 환호, 응답, 시편 기도, 따름 노래, 성가와 함께 행동이나 동작과 자세를 중시하여야 한다(전례 헌장 30항). |
성가대는 신자들이 하느님께로 마음을 집중하도록 도우며, 신자들에게 함께 부를 성가들을 제안하면서 전례 회중을 위해 귀중한 봉사를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성체 성사에도 동참할 수 있도록, 구별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성가대 자리는 성당 구조를 고려하여, 성가대도 모임을 이룬 신자 공동체의 한 부분이며 특별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는 곳에 마련해야 한다. 또 성가대원들이 맡은 임무를 쉽게 수행하고 편리하게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 미사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312항). 전례 거행을 하는 데 더 나은 역할을 존중하기 위해서 성가대는 주례자석 옆에 위치하지 않으며, 오래된 제대의 층계에 있지 않는 것이 좋다(전례 개혁에 따른 신설 교회의 적용 13항). |
성화상
성당 안에 있는 성화상은 하느님의 신비를 보여주는 신학적 기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벽화, 모자이크, 유화는 옛날 가난한 사람들, 성경을 읽을 수 없던 사람들에게는 ‘성경’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은 성화상을 통해 성경의 장면을 보았고, 이것이 진정한 교리 교육이 되었습니다. 이런 동기로 초대 교회에서는 이콘이 강생 신비에 대한 진정한 신앙 고백으로 여겨졌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1,15)’인 예수님의 삶의 신비를 표현하고 가시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성화상은 성경이 언어로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형상으로 옮긴다. 형상과 언어는 서로를 분명하게 해준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60항). 신앙을 간결하게 고백하기 위해서, 우리는 글이나 글 아닌 것으로 변함없이 전해진 교회의 모든 전통을 보존한다. 그 전통 중의 하나가 복음 선포와 부합되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전통이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외형적으로가 아니라 참으로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그림들은 유용하고 유익한 것이다. 서로를 밝혀 주는 형상과 언어는 의심할 여지없이 서로 그 의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60항). |
교회는 항상 예술과 예술가들의 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허용할 작품을 선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가 양성도 중요하게 여겨, 그들이 신앙심과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게 하고, 작품에 담긴 의미와 목적에 상응하는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고상한 예술의 기여를 모색하고 있으며 모든 민족과 지역의 고유한 예술적 가치들을 인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예술품과 예술적 보화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필요하다면 새로운 요구에 적응하고 각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예술도 촉진한다(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289항).
교회가 성당 내부에 성화상을 모시는 데에는 교육적인 목적도 있습니다. 특정한 신앙의 신비나 성인을 묘사함으로써 신자들의 신심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제시하고자 하는 것들을 가시화함으로써 그것을 가까이 느끼게도 합니다.
인간 재능의 가장 고귀한 표현들 가운데에 미술이 아주 당연히 들어가며, 특히 종교 미술 곧 성미술이 그 정점에 있다. 성미술은 그 본질상 인간 작품으로 어느 정도 표현해 보려는, 하느님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며, 그 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 작품으로 인간 정신을 경건하게 하느님께 돌리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인 만큼 더욱더 하느님께, 하느님 찬미와 현양에 바쳐진다(전례 헌장 122항).
오래된 교회의 전통에 따라 거룩한 건물 안에는 신자들의 공경을 위해 예수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및 성인들의 성화상을 모셔 놓습니다. 성화상은 신앙의 신비로 신자들을 이끌도록 배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화상의 수가 무분별하게 많지 않게 하고, 질서 있게 배치하여 전례 거행 시 신자들의 주의가 흩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같은 성인의 성화상을 하나 이상 모시지 않습니다. 성화상을 배치하여 성당을 장식할 때는 공동체 전체의 신심과 함께 성화상의 아름다움과 기품도 고려해야 합니다(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318항 참조).
●● 문화산책 l 엄마의 기도 수첩
호흡처럼 바치는 화살기도
이 한권의 책에 필요한 기도문이 다 있어요!
이 책은 세 사람의 저자가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기도 150편을 주제별로 쓴 기도 모음집입니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이나 이웃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기도를 바치도록 이끕니다. 새 영세자를 위한 기도 30편, 결혼한 자녀를 위한 기도 30편, 군대 간 아들을 위한 기도 30편, 유학 간 자녀를 위한 기도 30편, 아픈 이들을 위한 기도 30편 등 다섯 가지 주제 아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기르고 가정을 이끌며 체험한 사연과 지혜를 바탕으로 끌어낸 각 기도는 일상을 살아가는 데 힘을 주고 순간순간 기도로 승화하여 더욱 활기차고 생기 있게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여러 상황과 처지에서 자신이나 이웃의 어려움과 아픔, 딱한 사정을 구체적으로 주님께 아뢰며 도우심을 청하도록 이끕니다.
기도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는 사람, 기도가 어려운 사람, 결혼한 자녀나 가족 또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 새 영세자를 이끄는 대부모, 군에 가거나 유학 중인 자녀를 둔 부모, 여러 가지 질병을 앓는 분에게 특별히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구입문의 : 02)944-0944 또는 바오로딸 인터넷 서점(http://www.pauline.or.kr)
이재희, 안영, 이인옥 / 284쪽 / 8,500원
●● 이달의 성가
가톨릭 성가 146번
임하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영 즉 성령께서 오실 것을 여러 번 증언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에 그분을 증언하며 그분에게서 받은 것만 알려주십니다. 나아가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혀 주시는 분이시며 그로써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곧 오실 성령에 대한 약속을 반복하셨습니다(요한15,26;16,7-8;16,13-15 참조). 그리고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후 그 증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가톨릭교회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업적을 계속해 오셨습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 성령께서 계시고, 성령께서 계신 곳이 곧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성령 칠은(슬기, 깨달음, 의견, 굳셈, 지식, 공경, 경외;이사11,1-2)으로써 신자들을 성화하고 하느님의 은총 속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또한 교회는 전례를 통하여 끊임없이 성령께 기도드리고, 나아가 성령께서 항상 머무르시기를 간구합니다. 특히 성령 강림 대축일에 부속가(Sequentia)로 기도하는 ‘임하소서 성령이여(Veni Sancte Spiritus)’와 찬미가(Hymnus)인 ‘임하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가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임하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는 음악적 형식으로 보았을 때 ‘찬미가’이며, 일반적으로 시간전례(Liturgia Horarum) 중에 불립니다. 찬미가는 여러 절의 가사를 동일한 멜로디로 부르는 리듬과 운율이 있는 노래로, ‘임하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는 일곱 개의 절을 같은 멜로디로 부르는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nus)입니다.
무엇보다 부제 서품식, 사제 서품식 그리고 주교 서품식, 성당 봉헌식에 이 찬미가를 함께 노래함으로써 성령께서 서품 받는 그들과 주님께 봉헌하는 성당을 축복하시기를 간절히 청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시지만, 더욱더 적극적으로 그분의 현존과 은총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성령께서 오시기를 청하고 노래해야 할 것입니다.
최호영 신부 (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
●● 성화에 담긴 영성
바르톨로메오 에스테판 뮤리오(Murillo, 1617~1682)의
성모 마리아의 승천
(Assumption of the virgin, 1670년경)
캔버스에 유채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 미술관
17세기의 스페인은 가톨릭 신앙의 바탕 위에 절대왕정을 꿈꾸던 필립2세 왕이 에스코리알 수도원을 건축함으로써, 유럽의 여러 예술가들이 모여 이 수도원에 걸맞은 화풍을 창출할 만큼 대단한 문화와 예술의 발전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뮤리오는 스페인의 역사 깊은 도시 세빌리아에서 태어나 생애의 절반인 30년을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가까이 지내면서 주로 교회 미술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의 과도한 화려함과 마네리즘(어떤 부분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 과장하거나 축소하여 표현하는 기법)을 피하고, 자연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생기를 창출하는 작품으로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 작품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의 승천을 그린 것으로, 뮤리오의 후대 그림입니다. 일생을 하느님께 순명하며 구원사업에 바치신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 1950년 ‘성모 승천 교리’가 선포되었는데, 신학적으로 이 교리는 마리아의 구원이 그의 인격의 완전성을 내포하며 이로써 모든 인류에게도 그런 상태가 약속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성모 승천은 중세 후기 서유럽에서 그리스도교 미술의 주제가 되기 시작하여 13세기부터 교회 장식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성모 승천을 주제로 한 성화는 대체로 성모님께서 기도하는 자세로 천사들에게 받들어져 승천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나, 이 작품에서는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두 팔을 벌린 자세에서 승천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하늘을 우러른 성모님의 눈빛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깊은 희망을 전해 받는 듯합니다.
지영현 신부 (가톨릭회관 평화화랑 관장)
●● 사목국 교육안내
사목국 일반교육부
■ 7월 구역(반)장 월례연수 / 주제 : 환자 돌봄
7월 |
오전 10:30 |
오후 2:00 |
7일(화) |
신도림동 |
연희동 |
8일(수) |
|
흑석동,(봉천동) |
9일(목) |
방배동 |
혜화동 |
10일(금) |
창 동 |
오금동(2:30) |
13일(월) |
(불광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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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화) |
(청량리) |
명일동 |
15일(수) |
중곡동 |
역삼동 |
16일(목) |
대방동 |
등촌1동 |
17일(금) |
목 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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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천동, 불광동, 청량리는 지구자체 교육입니다.
※ 8월은 휴강입니다.
※ 2009년 ‘명동(가톨릭회관)’에서는 월례연수가 없습니다.
문 의 : 727-2062~3
■ 구역반장을 위한 전례특강
대 상 : 구역장·반장학교 1단계를 수료한 구역장·반장
날 짜 : 8월 27일~9월 10일(매주 목, 3주간)
시 간 : 오후 2:00~4:0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
교육비 : 20,000원 (접수마감 8/20)
문 의 : 727-2062~3
■ 남성총구역장 하루피정(하반기)
대 상 : 각 본당 남성 총구역장
날 짜 : 8월 30일(주일)
시 간 : 오전 10:00~오후 4:0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
교육비 : 10,000원 (접수마감 8/24)
문 의 : 727-2062~3
■ 여성총구역장 하루피정(하반기)
대 상 : 각 본당 여성 총구역장
날 짜 : 8월 31일(월)
시 간 : 오전 10:00~오후 4:0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
교육비 : 10,000원 (접수마감 8/24)
문 의 : 727-2062~3
사목국 가정사목부
■ 가정성화 생명수호 월례특강 및 미사
날 짜 : 7월 7일(화) - 도박중독 / 8월 4일(화) - 불안장애 : 공황장애, 공포증, 강박장애
시 간 : 오후 1:30~4:30
장 소 :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
준비물 : 필기도구, 미사준비 (회비 없음)
문 의 : 727-2071 (www.ihome.or.kr)
사목국 노인사목부
■ 노인사목후원회 미사
대 상 : 노인사목후원회 회원
날 짜 : 7월 7일(화), 8월 4일(화)
시 간 : 오전 11:00
장 소 : 종로성당
문 의 : 727-2121 (노인사목부)
■ 노인대학 봉사자 월례교육
대 상 : 노인대학 학장 및 봉사자
날 짜 : 7월 14일(화)
시 간 : 오전 9:30~오후 1:00
장 소 : 우리은행 본점 4층 대강당
교육비 : 6,000원
문 의 : 765-8456 (노인대학연합회)
■ ‘영시니어(Young-Senior) 아카데미 노년준비교육’ 모집(2ㆍ3기 교육)
대 상 : 55세 이상 서울 시민 총 600명(장소당 40명, 3기 진행)
내 용 : 멋진 인생 후반기를 위한 교육 및 클럽활동
일 시 : 매주 월,목요일 오후 3:00~5:00, 2기) 8/17~10/5, 3기) 10/12~11/30
장 소 : 종로, 도봉동, 등촌1동, 구로3동, 월계동 성당
참가비 : 총 80,000원 중 10,000원(본인부담), 70,000원(서울시지원)
접 수 : 2기) 7/6~8/16, 3기) 9/14~10/11
문 의 : 765-8458 또는 www.isenior.or.kr (사단법인 서울시니어아카데미)
‘하루 한 장 성경읽기’ <구약편> 체험수기 공모
2006년 10월 15일부터 시작한 하루 한 장 성경읽기 <구약편>이 올해 9월 16일, 이번 호로 그 여정을 마칩니다. 그동안 <구약편>과 함께 하면서 체험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십시오. 채택된 분들에게는 소정의 기념품을 드립니다. 아울러 9월호부터 시작하는 <신약편>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시고, 더욱 많은 분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권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분 량 : 원고지 8장 내외 (A4 1면 내외) / 마 감 : 2009년 8월 31일
보낼곳 : 우편) 100-031 서울 중구 삼일로 145 평화방송·평화신문 신문국
‘하루 한 장 성경읽기’ 담당자 앞
전자우편) lensman@pbc.co.kr
※ 보내시는 분의 성함과 주소, 전화번호를 반드시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