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갑배 展
생동-1_570x380cm_오일파스텔, 콘테, 흑연, 연필_2011
인사아트센터 4층 제2 특별관
2012. 5. 2(수) ▶ 2012. 5. 7(월)
Opening 2012. 5. 2(수) pm 5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 T.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나무_1_570x380cm_오일파스텔_2011
비범을 넘어
동서양과 과거와 현대를 잇는 2012 전갑배전
전갑배는 그림의 외연을 넓혀나가는 동력장치를 장착한 작가이다.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드로잉으로, 회화로 쟝르와 매체를 뛰어넘어 그는 '그림'의 길없는 길에 서서 그 길을 무한 확장하고 있다.
전갑배는 1988년의 첫 개인전 이후 한국적 정서와 미감을 화폭에 담으며 표현기법이나 방법론 등의 실험을 거듭해 왔는데 1992년과 1994년의 개인전에서는 순수회화의 영역을 일러스트레이션계에 끌어당겼고, 1996년에는 컴퓨터로 표현기법을 실험하여 <당금애기>와 <바리데기>를 기획출간, 컴퓨터 그림이 일반화되는 것을 예고했다.
이후 <한국의 고전 100선>, <시경> 등의 출판일러스트와 청계천 벽화작업까지 그는 늘 새로운 흐름의 단초를 제시하며 음미할만한 반향을 불러 일으켜왔다.
따라서 그의 새로운 작품을 본다는 것은 아직은 낯선 가능성의 미래로 우리 자신을 던지는 돌연한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거의 20년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혼돈의 근원을 거쳐 나온 정직한 결실이기 때문에 작가 스스로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상당한 의미를 시사한다.
꽃_570x380cm_오일파스텔, 콘테, 흑연_2011
전갑배는 그동안 공시적, 통시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맷돌처럼 질박하고 담백한 조형성으로 한국적 미감을 구현해 온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자연과 사람이 중심 소재인 점은 여전하지만 조형언어는 진일보하여 작가가 그동안 꾸준히 천착해온 한국적 미감이라는 화두를 일단락 매듭짓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작품 하나하나마다 어느 것 하나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으면서 어떤 세밀한 그림도 따라올 수 없는 생동감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화된 평면적 형태감과 전혀 상반된 선맛, 마치 행초서의 필획을 구사하는 듯한 선맛에서 나오는 것 같다. 선의 강하고 부드러움, 완급과 유동하는 리듬감이 하나의 대상 안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때로는 뛰놀듯 재빠르며 무심하고 때로는 엉성한 듯 투박하고
천연덕스레 그어댄 선들이 평면적인 사물들에 엇박자의 박진감이 실리게 한다.
선에 대비되는 채색의 처리로 작품 표면에서 ‘고정된 양감 : 회절운동의 흔적’ 이라는 양극성으로 저항과 장력을 일으킨다. 표현들이 불확정적으로 충돌하면서 공간이 어긋나며 미끄러지는 듯 보여지는 순간 묘사된 사물들의 유연한 관계항이 이를 담대하게 화해시키는 시각적 전환이 동시에 반복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이 형태와 선의 상반됨은 마치 음과 양의 태극문양처럼 정지한 2차원 평면에 운동감을 부여해서, 한정된 공간의 밀도와 깊이를 더하며 미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선이 질감과 힘을 가지면서 입체감도 따라온다. 선들은 새로운 공간을 열어젖히며 내재된 화음을 연주한다.
이로써 더욱 발전된 전통화법의 '산점투시'를 성취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서로 다름의 공존이 과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균형을 지키면서 공간을 다원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중동의 조형화이며 다차원 나선형의 무한회귀라는 동양적인 시공간의 순환개념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전갑배는 이번 작품들에서 동양 보편성이라는 구심점에 의해 구축된 길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구례 곡전재_570x380cm_오일파스텔, 콘테, 연필_2011
동양화에서 형사[形似] 와 신사[神寫] 를 이야기하는데 전갑배의 신사[神寫]는 자연이다.
그에게 자연은 충만한 모든 것, 흘러가는 모든 것, 유년의 뜰로 돌아가 안기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워즈워드는 자연의 어떤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되며 그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고 하면서 이러한 경험을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다. 전갑배에게 이 "시간의 점'은 태어나서 11살때까지 살았던 김해의 산야이다. 자운영이 핀 밭고랑, 쇠꼬리를 잡고 뒹굴던 풀밭, 마을 뒷동산을 지키던 나무와 새, 저녁 이내처럼 마을길에 자욱한 밥짓는 연기...모두 제 나름의 색이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자연은 늘 꼭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들과 만나게 하며 우리가 가진 긍정적인 힘에 집중할 수 있는 다함없는 힘을 준다. 기억 속에서 그곳을 불러올 때마다 존재의 본질을 직시하게 하고 그 한정된 생애를 뛰어넘는 힘을 준다. 이때 자연은 생태학적인 자연이라는 의미에 한 존재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는 의미가 저절로 포개진다.
전갑배는 이번 작품에서 아이의 눈과 아이의 손으로 그린 듯한 순긍(純粹한 肯定)의 경지를 연다. 그는 숙련된 선으로 어떤 매너리즘에도 빠지지 않고 그림을 완성하는데, 그 선들은 골력이 강한 느낌이라기보다 어린아이의 호흡을 닮았다. 바르며 씩씩하고 즐겁다.
나무, 아이, 물고기, 새, 꽃, 그리고 마을과 집의 선들은 형태를 윤곽짓는 것만이 아니라 평면 형태 속에 이제 곧 움직여 나갈 채비를 숨긴다. 그런데 마치 숨바꼭질 하듯이
그 평면성의 사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하여 표현의 시간을 막는 것처럼 느껴진다. 찰칵하고 셔터를 눌러찍은 한 장의 사진처럼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서술적이거나 일화 逸話 적인 요소를 제거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작가가 이미 읽혀진 과거의 시간을 살기를 원하지 않으며 어떠한 수식도 없는 삶 그 자체를 살기를 원한다고 발화하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무언의 직관이다. 그 탄성이 놀랍다.
마실가기_ 570x380cm_오일파스텔,콘테_2011
일상의 풍경은 우리의 마음을 궁극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화가의 시선은 사람들이 세상의 어떤 측면들을 좀더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하며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모습들을 재발견시키고 가슴에 새기도록 해준다. 비록 현실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 그림이라 할지라도 그림은 현실의 어떤 특질을 더 드러내게 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긴 여정 끝에 내보이는 전갑배의 작품들, 나무와 사람, 아이와 물고기, 망아지와 풀, 마을과 옛집, 옛 놀이…의 그림들을 보며 되묻게 된다. 우리는 몇번이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만나왔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아름다움의 순간에 나를 바쳐왔을까 하고 말이다. 또한 조금은 고루하게 여겨오던 한국의 미감에 새삼 온고이지신하기를 기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전갑배의 작품들은 풍요롭고 알차며 까마득히 잊은 그리운 시간을 우리 앞에 부려놓는다.
박화영
생동-2_570x380cm_오일파스텔, 콘테, 흑연, 연필_2011
동심-1_570x380cm_오일파스텔, 콘테, 흑연, 연필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