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우
김 영 호.
직장인들에게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 토요일이다. 일주일 동안 직장 생활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취미생활이나 여가를 즐길 수 있어 좋다.
나 역시 또 다른 낙이 있어 토요일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농협대학은 늦깎이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학문에 대한 열정이 끝없이 살아나서 너무나 좋다.
토요일 오전 8시30분부터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는 상아탑에서의 공부였지만 열의만은 대단해서 빠지는 학우가 별로 없다. 강의 시작되는 수업 시간에는 모두가 초등학생처럼 또릿또릿한 눈동자로 교수님들 강의에 열중한다.
다른 곳에서 근무하면서 1주일마다 만나는 학우들이 반갑고 동인인 교수님들과 외래교수님들의 수준 높은 강의를 우리가 지식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후가 되어 힘이 부칠 때면 우리는 교수님들과 농담도 나누면서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알차고 화기애애하며 재미있는 대학생활 사랑과 정이 가득한 동인들 간의 온정은 아기자기하게 꽃 피어 갔다.
어느 날 오후 시간에 강의를 듣고 있는데 얼마나 피곤하였는지 강의 시간에 살짝 졸고 있는데 누가 등을 살짝 건드리며 말한다 “학생이 수업시간에 졸면 되겠어요” 하며 말한다.
뒤돌아보니 김숙자 학우가 귤 두 개를 건네며 씽긋 웃는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손으로 V 자를 그려 보였다.
오늘도 일찍 학교에 도착하여 맑은 공기와 벌레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학교 뒷산 길을 걷고 있는데 눈앞에 보이는 서삼릉 아래 농장에서 조랑말과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정겨워 보였다. 산속 여기저기 울긋불긋 피어 있는 진달래꽃과 만발한 개나리꽃 사이로 과꽃 나팔꽃 봉선화가 수줍은 모습으로 숨어 있다.
산마루에 이르니 아카시아의 은은한 향기 속에 향긋한 솔향과 송이가루 냄새가 은은하게 나의 꽃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날아갈 듯한 마음으로 강의실에 도착 하니
많은 학우가 수업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 중간에 않아서 언제나 상큼한 미소와 정겨운 인사를 하며 다소곳한 모습으로 학우들의 사랑을 받던 김숙자 학우의 모습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 행사나 교육을 간 것으로 생각하고 인근 사무실에 직원한테 물어보니 강남에 있는 자생한방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며칠 후 압구정동에 사시는 고객의 생일날 직원과 함께 케이크와 정성이 담긴 선물을 전하고 사무실로 향하는데 영동교 쪽에 오니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으며, 허공 속에 내마움 이 푹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차! 한 가지 잊은 게 있구나?
직원을 보내고 인근에 있는 자생 한방 병원으로 향했다. 605호 입원실에 도착하니 학우는 물리치료 중이었다. 따스한 햇볕이 수줍게 비쳐오는 커튼 사이에 놓인 화병에장미와 안개꽃의 향기 속에서 상냥한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뒤에서 지점장님! 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김숙자 학우가 화사한 얼굴로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힘든데 어서 이리 않으세요? 걱정 많이 했어요? 예뿐이 얼굴이 안 보여서 궁금해서 심 차장님한태 물어보니 여기 입원해 있다고 해서 깜짝 놀라서 찾아왔어요?
좀 어떼요? 괜찮아요?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왔어요? 안 오셔도 되는데? 이젠 많이 낳았어요?
문득 지난봄의 어느 날 오후의 일이 생각났다. 학교에서 금융 보험학과 학우들의 호칭 문제가 나왔을 때 나는 모두 직위를 떠나서 “학우”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우리는 상아탑의 적을 둔 학생이 아닌가? 그러니 호칭이 학우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때 김숙자 학우가 발언권을 얻어서 영호 오빠 순석오빠 종수 오빠 영조 누나 숙자 누나는 어때요? 하면서 다소곳한 모습으로 제안한다.
모두가 좋다고 손바닥을 치면서 환호하니 호! 호! 호! 하면서 천진난만하게 웃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무얼 그리 생각하세요? 하고 묻는 학우를 향해 지긋이 웃으면서 지난봄의 학교에서 호칭문제가 생각나서 하고 말하니 호! 호! 호! 하고 웃으면서 내가 제안한 호칭 좋잖아요? 하면서 나를 살짝 꼬집는다.
빨리 나아서 학교에서 교수님들 모시고 학우들과 학창 생활 재미있게 보내야 하는데 학교 가면 한쪽이 비어 있어 허전하고? 학우들도 모두 그래? 나도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요? 학우들과 교수님도 보고 싶고요? 하며 해맑은 미소를 띠며 살짝
웃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은 아프지 않을 것 같이 생각하지만, 병마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기쁠 때 찾아오는 사람보다 어렵고 힘들 때 찾아와서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반가운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우리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동인이라는 인연으로 만났지만, 농협대학에서 학우라는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서 상아탑의 학창 생활을 뜻있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꿈과 우정 사이에서 내일의 더 나은 파랑새를 잡기 위해 상아탑의 언덕을 넘어서고 있지만, 세월의 아쉬 음 속에서 헤어짐의 시간이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다.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높고 새파랗게 느껴진다.
파란 하늘 사이사이로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서 완쾌된 김숙자 학우의 모습을 살짝
그려본다.
빨리 건강이 회복되어서 상아탑에서 화사한 모습으로 상큼한 미소 지으며 공부하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