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질문은 왜 의심해야 하는가?― 『소학문의』가 AI 시대에 던지는 교육의 질문
AI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우리가 무엇을 묻든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고, 논리를 세우며, 때로는 전문가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AI의 답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말 그럴까?"
이 질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50여 년 전 실학자 홍대용도 같은 태도로 『소학』을 읽었다.『소학』은 조선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서였다. 아이들은 이 책으로 예절을 배우고, 어른은 이 책으로 사람됨을 익혔다. 많은 사람들은 『소학』을 그대로 배우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바른 공부라고 여겼다. 그러나 홍대용은 달랐다. 그는 『소학』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먼저 질문했다.
"왜 그런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지금의 현실에서도 그러한가."
그 질문들을 모아 남긴 글이 바로 『소학문의(小學問疑)』이다. '문의(問疑)'라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배움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배움에 의문을 던지는 일이 공부라는 뜻이다.
홍대용은 『소학』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학』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질문했다.그는 덕과 학문이 현실의 삶과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다. 사람의 품성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몸으로 익히고 사회 속에서 실천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배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예절 교육만을 강조하는 당시의 풍토를 넘어, 육예(六藝)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禮)와 악(樂)뿐 아니라 활쏘기(射), 말 타기(御), 글쓰기(書), 셈하기(數)까지 포함한 전인적 교육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교육 내용을 늘리자는 제안이 아니었다. 배움은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AI 시대에도 이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생성형 AI는 순식간에 요약을 만들고, 답안을 작성하며, 다양한 정보를 종합한다. 그러나 AI가 제시한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배움을 멈추게 된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말했는지, 어떤 근거를 사용했는지, 다른 해석은 가능한지를 다시 묻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홍대용이 『소학문의』에서 보여 준 공부의 태도이다.
오늘날 교육에서 강조하는 비판적 사고도 같은 방향을 향한다. 좋은 학습자는 정답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근거를 살피고,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사람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이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탐구하고 판단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AI 시대일수록 이러한 역량은 더욱 중요해진다.
홍대용은 『소학』을 의심하기 위해 읽은 것이 아니었다.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질문했다."
그래서 그의 '문의'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다. 배움을 살아 있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AI는 앞으로도 더 많은 답을 줄 것이다.
그러나 배움을 성장시키는 것은 답이 아니라, 답을 다시 묻는 용기이다.
홍대용이 남긴 『소학문의』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말을 건넨다.
좋은 교육은 정답을 암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