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키워드 중에 프로파일러(profiler)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를 한국말로 ‘범죄심리 분석관’이라고 풀어버리면 아무래도 뉘앙스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문이나 책 제목에서도 그냥 프로파일러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전문적인 심리 분석가들입니다. 국내에 처음 프로파일러가 소개된 것은 1991년 조디 포스터와 안소니 홉킨스의 열연이 돋보였던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였습니다.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 분) 박사는 그 자신도 악마가 저리 가라 할 만한 살인마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연쇄살인범의 심리를 하나부터 열까지 꿰뚫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정신적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스털링 요원(조디 포스터 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악마를 잡으려면 악마의 세계를 알아야만 해!”
이 영화가 개봉된 것이 1991년인데,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99년 비로소 한국에도 첫 번째 프로파일러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국내에 프로파일러 열풍을 몰고온 것은 강호순, 김길태와 같은 연쇄살인범이 검거되는 데 이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알려지면서였습니다. 이들 프로파일러들은 반복되는 사건을 철저히 분석하여 용의자의 버릇이나 행동 패턴, 나아가 성격적 특성이나 나이, 용모 등까지 추론해냄으로써 실제로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파일러에 대한 최근의 열광은 약간 과한 경향이 있습니다. 〈크리미널 마인드〉와 같은 미국 드라마나 MBC 드라마 〈혼〉, KBS 드라마 〈아이리스〉 같은 인기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프로파일러들은 명석한 두뇌와 냉철한 판단력을 물론 범죄자를 찾아내는 초감각적인 능력을 지닌 것처럼 묘사됩니다. 프로파일러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러한 환상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소위 범죄심리학이란 그야말로 ‘범죄-심리학’입니다. 그런데 프로파일러의 등장은 이를 ‘범죄자-심리학’으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과거의 사건 수사는 범죄의 동기를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수사 초점은 사건에 맞춰지고, 피해자와 주변 인물과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탐문 조사한 후 가장 유력한 동기를 가진 자가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묻지 마 범죄’, ‘연쇄살인’과 같이 동기가 애매모호한 범죄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수사 기법으로 한계에 부딪힌 경찰은 ‘사건’ 대신 ‘범죄자’를 추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추적의 근간이 되는 철학은 바로 ‘범죄자’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병적 심리가 있으며,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를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언제든 살인마로 변할 수 있는 병적 심리를 지닌 악마들이 우리 속에 숨어 있으며, 프로파일러들의 임무는 마치 양의 무리에서 늑대를 골라내듯 이런 살인마를 골라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 중반에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범죄심리학의 창시자인 체사레 롬브로소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전까지 고전적인 범죄학에서 범죄는 카인의 후예인 인간의 근원적 사악함에 기인하며, 그럴 상황에 처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일급 살인도 저지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과 같은 일급 범죄는 우발적 살인을 제외하고는 금품 갈취나 원한 혹은 치정에 의한 것 등으로 동기에 따라 분류되었습니다.
롬브로소는 이에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로서는 자신과 동등한 계급에 속한 세련된 신사와 귀부인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범죄자들은 애초에 천성을 범죄자로 타고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윈주의의 열풍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롬브로소는 인간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해오면서 숭고한 도덕관과 양심이라는 것을 발전시켰지만, 진화가 덜 된 열등한 개체들이 아직도 남아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런 이론적 주장뿐 아니라, 범죄자의 얼굴이나 신체적 형태를 통해 이런 열등한 개체를 찾아낼 수 있다는 주장에도 열을 올렸습니다.
그가 제시한 범죄자의 신체적 특징은 뒤로 기울어진 이마, 지나치게 큰 귀, 비대칭 얼굴, 돌출된 턱, 불균형하게 긴 팔 등 다양했습니다. 심지어 신체적 특성에 따라 어떤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지조차 예측할 수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는 심리적 특성들도 무시하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범죄를 저지르는 ‘하등 인류들’은 정상인보다 통증을 잘 견디고, 충동적이며 허영에 차 있고, 후회나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유전학이 아직 정립되기 전이라 자신의 유전 이론을 정식화하지는 못했지만, 롬브로소의 이론은 결국 범죄자와 선량한 일반 시민은 인간과 침팬지가 다른 것만큼이나 다르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롬브로소의 이론은 그의 사후 30여 년이 지난 1939년 어니스트 후턴(Earnest Hooton)에 의해 재현되었습니다. 후턴은 1939년 무려 14,000명의 범죄자와 3,000명의 일반인을 비교하여 롬브로소와 거의 같은 의견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롬브로소 추종자들의 이론이 미국 우생학 운동(정신질환자나 상습 범죄자를 거세하는 것)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참으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이론입니다.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본능입니다. 우리는 순결하고 저들은 범죄자이다. 범죄자들은 우리와 다른 숨겨진 특성들이 있고, 프로파일러들은 이를 찾아내야 한다. 이는 또 다른 왜곡된 프로파간다가 아닐까요? 롬브로소의 이론은 인종 차별, 성 차별적 시각이라는 비판에 부딪혀 역사 속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다시금 고전 범죄학이 돌아왔고, 사회적 모순과 예외적 상황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고 가는지에 대한 연구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요.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직접 환자들과 함께하는 저희 의사들은 사회가 정신질환자를 바라보는 편견과 차별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도 역시 마찬가지이겠지요. 우리와 저들,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는 울타리 쌓기는 어느 사회에서나 뿌리 뽑기 힘들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갈등과 비극의 씨앗이 되어왔습니다.
범죄자에 대한 울타리 쌓기 역시 그러한 면에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의 경전 《탈무드》에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범죄가 아닌 범죄자를 추적하는 프로파일러 들,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잘못된 인상이 자칫 잘못하면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색출과 격리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만약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무덤에 묻힌 지 오래된 롬브로소가 “그러게 내가 뭐랬어”라고 말하며 음침하게 웃는 소리를 듣고야 말게 될 것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범죄심리학 프로파일러 [Criminal Psychology & Profiler] - 양의 무리 속에서 늑대를 골라내다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 2011. 10. 20., 케이엔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