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마태5,17-19)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얼마 전에 TV에서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 데 현대판 ‘맹부삼천지교’라고 하는 어느 아버지의 교육법이 화재가 되었습니다. 그 가정은 형편이 좋지 않아서 자주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가기 전에 그 아버지가 집을 고르는 기준이 무조건 도서관이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매일 같이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도서관에 가자마자 아이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마당에서 한 시간 가까이 아이랑 같이 배드민턴을 치며 놀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도서관에 들어가서는 다른 사람들이 공부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 스스로 재미있는 책을 골라서 읽게 하고 같이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면 아이랑 같이 본인도 공부를 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곧 그 아버지의 교육법은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 강요가 아니라 흥미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었고, 아이와 끊임없는 소통과 교감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신앙적으로 교육하는 데에 있어서도 ‘하느님을 믿어라’, ‘의무를 지켜라’하며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성당, 곧 아버지의 집에서 놀게 해 주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저도 어릴 적 아버지께서 제 손을 잡고 성당에 같이 가던 기억, 어린이 미사책을 사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소통하고 교감하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 아이들의 사교육이 정말 너무나도 많은 시대입니다. 아이가 학교를 다녀와서도 학원을 몇 개를 가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친구들이 다 학원 간다니까 거기에 가야 친구들을 만나고 놀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능을 발달시켜 로봇과도 같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르쳐 참된 사람이 되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사진: 20년전 서울대교구 창동 보좌신부 시절 복사들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