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의문형으로 제목을 뽑았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 의문에 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원제는 이러합니다. "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자본주의 직장생활을 20년 넘게 영위하면서 이제 변화를 꾀할 때가 다가옴을 느낍니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지요.
다음의 선택은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생각만 합니다.
생각은 삶의 방식을 바꿈으로써 완성됩니다.
나의 쓸모가 생산성 향상의 회사 안에서만 발휘되는 것은 않을 것입니다.
존재 그 자체가 쓸모일 수도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이미 수십 년 전에 꽤나 급진적인 생각을 전개했습니다.
어찌 보면 시대를 앞서온 급진성입니다.
21세기 한국에서는 마을과 작은 공동체가 다시 강조되고, 노동의 다양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이 책은 세 가지의 작업을 하고자 한다.
1. 날마다 무더기로 상품을 쏟아내는 사용 가치의 자율적 창조를 마비시키는 상품·시장 의존 사회의 특징을 묘사하려 한다.
2. 이 시장 의존 사회에서 필요를 만들어내며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숨겨진 역할을 파헤치려 한다.
3. 진실을 감추는 환상을 벗겨낸 다음, 시장 의존을 영구화하는 전문가 권력을 허물어낼 전략을 제안하고자 한다.
17 쪽
우리에게 위기는 선택의 순간일 수 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스스로 만든 새장에 갇혀 살았다고는 걸 깨닫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적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미국과 전 세계가 맞닥뜨린 선택으로서의 위기이다. - 22쪽 -
위기는 이렇게 상품에 더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덜 의존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온다. 상품에 더 의존한다는 것은 자급 활동을 이끄는 규범을 결정해온 문화가 급속히 파괴되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에 덜 의존한다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장려하여 다양한 사용가치를 꽃피우는 현대의 문화가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26쪽 -
우리는 새로운 상품이 생겨나 전통적인 자급 기술이 쓸모 없어질 때 가장 먼저 고통받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직업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 고용되지 않은 상태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노동시장이 확장되면서 없어져 버렸다. 직장 밖에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자유가 사라진 것처럼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로서 '집을 짓는 일'은 이제 사회 이탈자 아니면 한가한 부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 34쪽 -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절제는 대중이 자신과 이웃의 만족을 위해서, 권력이 생산하는 상품의 최대 생산량을 파악하고 제한하는 사회적 차원의 미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생의 절제는 한 사회로 하여금 인간을 무력화하는 풍요로부터 개인의 사용가치를 보호하도록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러한 사회적 보호하에서라면 비로소 현대적 도구 사용의 확산을 강조하는, 특색 있는 문화들이 다양하게 싹틀 수 있을 것이다. 함게 하는 절제는 어떤 도구든 과다한 사용을 절제하기 때문에 도구의 소유자라 해도 권력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된다. 자전거를 공동으로 소유하든 개인이 소유하든 본질적으로 도구로서 자전거에 깃들어 있는 공생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 42쪽 -
현재의 전문성이 소멸할 때 인간의 필요와 도구, 만족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출현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직업적 전문가에게 보내던 존경을 버리고 의심을 던지는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회의가 싹트기 시작할 때 사회의 재건도 시작된다. -47쪽 -
슬프게도 이 시대는 다음과 같이 기억될 가능성이 더 높다. 모든 세대가 삶을 빈곤하게 만드는 풍요를 광적으로 쫓느라 자유를 모두 양도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정치를 역사상 최초로 복지수령자의 불만을 조직하는 것으로 바꾼 다음에는 전문가 전체주의로 덮어버린 시대였다고. -57 쪽 -
부자들은 상품 속에 든 필요에 중독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가 만든 환상에 마비된다. -80쪽 -
경제에서 사용가치를 무시할 수 있다는 환상은 지금껏 자동사로 지칭되던 행위를 명사로 거론되는 상품으로 제도적으로 정의하여 무한정 대체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생겨난다. '배우다'가 '교육'으로, '낫는다'가 '건강 관리'로, '움직이다'가 '교통'으로 '놀다'가 '텔레비전' 등으로 끝없이 바뀌어 간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이 생산하는 가치와 표준적으로 생산되는 가치가 혼돈되고 있다. 전문가의 지위 아래 사용 가지가 해체되고 쓸모 없어지다가 마침내 그 공유한 본성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 83쪽 -
사회적 관점에서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사람이 능력과 효율성을 발휘하는 도구가 생겨날 때를 '기술 진보'라 불러야 한다. 특히 사용가치를 좀 더 자율적으로 생산하는 데 도구가 사용될 때 '기술 진보'라 불러야 한다. - 91쪽 -
소비자가 보살핌과 상품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면 할수록 그 권리는 기업과 전문가의 권리가 된다. 이 권리를 통해 그들은 소비자를 휘어잡고, 그들이 만든 상품을 공급하고, 그 상품을 통해 고용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하나씩 지워버리다. 그리하여 비고용 상태에서도 시간과 권한을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게 쓰도록 공정하게 분배하라는 투쟁은 어쩔 수 없이 무력화되었다. 급여를 주는 직장에서 벗어나 일을 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된다. 인간의 자율적 행위는 고용수준을 위협하고, 사회적 일탈을 일으키며, 국민총생산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그런 행위는 부적절하게 불리는 '노동'일뿐이다. 노동은 더 이상 인간의 수고나 노력이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적 투자와 어울리지 않게 결합된 기괴한 요소를 의미한다. 노동은 더 이상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관계인 직업을 의미한다. 무직은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라기보다는 슬픈 게으름이 되었다. - 100 ~101쪽 -
전문가들이 공인해주는 필요와 결핍, 가난의 반대는 현대의 자급 자립이다. 지금은 '자급 경제'라는 말을 시장 의존 사회의 언저리에서 공동체가 생존해가는 것을 통칭할 때 쓰게 되었다. 이 공동체의 사람들은 전통적 도구를 이용해 필요한 것을 만들고, 과거로부터 이어져왔지만 종종 입증되지 않은 사회 조직 안에서 살아간다. 나는 현대의 자급에 대하여 말함으로써 이 용어를 다시 살려내고자 제안하는 바이다. 후기 산업사회에 확립될 삶의 양식을 현대의 자급이라 부르기로 하다. 이 사회에서는 정치적 수단을 통해 전문적 필요 생산자들에 의해 측정되지도 않고 그들이 측정할 수도 없는 사용가치를 만드는 데 도구와 기술이 주로 쓰이도록 사회 기반시설을 보호한다. 그리하여 시장 의존을 줄이는 데 성공한 사회이다. -113 ~ 114쪽 -
나는 게으를 권리를 영위하기 위해 "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폴 라파르그]게으를 권리
19세기에 쓰인 글을 21세기에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근면함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