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는 치열해진 경쟁 논리로 몸살을 앓는다. 대중 인문학 열풍도 경쟁사회가 낳은 스펙 쌓기 일환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
‘아이돌’에 버금가는 인기 누려
그렇다면 ‘강신주 현상’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나? 강신주는 처음에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같은 철학서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란 대중 인문서가 10만 부를 넘기자 대중 철학자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그는 이즈음 강연의 수를 늘린다. 체제비판적인 그이지만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연프로그램에서도 강연한다.
2011년 MBC 라디오의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색담)>에 패널로 초대된다. 6개월 만에 MBC에서 추방됐지만 <색담>은 2012년에 김어준의 ‘벙커1’에서 <강신주의 다상담>으로 거듭난다. 이렇게 강신주는 패널에서 진행자로 격상했다. 강신주라는 브랜드가 확실하게 형성된 다음 <아침마당> 등에 출연하다가 <힐링캠프>에까지 등장한다.
강신주가 <힐링캠프>에 등장하자 그의 책은 곧바로 인기가 폭발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잠시 오른 이후 줄곧 5위 이내에서 맴돌았다. 이 책은 출간 두 달 만에 15만 부를 넘겼다. 다른 책들의 인기도 뜨겁다. 소셜미디어에서의 반응도 후끈 달아올랐다.
트위터에는 “답답함에 내쉬는 숨 훅… 힐링캠프 강신주의 직설, 돌직구로 그동안 얼어있던 내가 깨진 느낌이다. 숨을 쉬고 웃고 목표를 세우자!” “어쩌면 내가 강신주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게 돌을 던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는 등의 열렬한 호응이 일었다. 어쨌든 이제 대중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강신주 현상’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도 쏟아졌다. 이 글에서는 그에 대한 비판보다 그가 뜰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에 주목하자. 국가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나이 19세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평생의 운명이 결정됐다. 그 나이에 서울대에 입학하면 평생 상승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그 기준은 하버드나 스탠포드 등의 외국 유명대로 격상됐다. 그러나 지금은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취업 자체가 어렵다.
가장 큰 이유가 “국경을 뛰어넘는 노동자 고용 시스템”인 ‘글로벌 옥션’ 때문이다. 가장 값싼 임금을 제시하는 사람이 고용되는 역경매 시스템이 작동하다 보니 개인의 몸값은 엄청나게 떨어졌다. 미국 기업의 제조업은 중국의 노동자가, 서비스업이나 회계업무는 인도의 노동자가 담당한다. 신흥국의 대졸자들이 고급 노동력을 염가 할인하는 역경매 방식으로 일자리를 빼앗아가니 미국의 대졸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한다.
그 불똥이 우리에게도 튀었다. 고비용의 유학을 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귀국해도 국내의 여건 또한 다르지 않다. 설사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기 십상이다. 운 좋게 상장기업에 취업해도 회사를 떠날까 번민하는 ‘신입사원 사춘기’에 시달린다. 그리고 1년 안에 그만두는 ‘신입사원 손절매’를 하는 이가 둘 중의 하나다.
<더 많이 공부하면 더 많이 벌게 될까>를 함께 쓴 필립 브라운, 휴 로더, 데이비드 애쉬턴 등은 이렇게 된 이유로 ‘디지털 테일러리즘’을 제시한다. “자동차·컴퓨터·텔레비전과 같은 제품의 부품을 전 세계에서 나눠서 생산하고 고객의 수요에 맞게 조립·판매하는 방식”이 서비스 업무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회계사·교수·엔지니어·변호사·컴퓨터 전문가와 같은 직업도 이제는 더 이상 수입·직업 안정성·커리어 전망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오로지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구조로 빠져들고 있다.
방송강의와 SNS 통해 팬층 늘려
최고의 스펙을 쌓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가? 달라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론이 필요했다. 그것을 글로벌 시민의 기본 소양이라고 치자. 1994년생 이후는 그런 소양을 대학에서 배워본 적이 없다. 새로운 시대의 윤리적 토대나 가치체계를 속 시원하게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이들이 대학 밖의 공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출범한지 10년이 훨씬 넘은 수유너머는 수유너머N, 수유너머문, 수유너머R, 인문팩토리 길, 남산강학원 등으로 세분화됐다. 인문학 동영상 강의로 정평이 난 아트앤스터디를 비롯해 철학아카데미, 대안연구공동체(CAS), 다중지성의 정원, 문지문화원 사이 등이 명성을 쌓아가는 한편 집단지성의 실험실 카이로스, 생활기획공간 통, 자유인문캠프, 돌곶이포럼, 인문연대 금시정, 연구모임 비상, 기술미학연구회, 세미나 네크워크 새움, 상상마당 아카데미같은 인문연구공동체도 개설돼 가히 백가쟁명 시대를 방불케 한다.
이런 곳을 가장 많이 찾는 이들이 공부하는 주부를 뜻하는 ‘공주’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강좌를 듣는 사람의 90%가 ‘공주’다. 지금의 대중 인문학 붐은 여성·지방대 출신·백수·저소득자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계층이 주도하는데, 이 열풍을 가장 열성적으로 주도하는 것이 바로 ‘공주’다. 골드미스와 ‘공주’가 강신주 현상을 낳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스마트 기기의 유행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스마트TV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호모 스마트쿠스’라고 한다. 이들은 스마트기기의 재생장치를 이용해 자신들이 필요한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다.
한번 시간을 놓치면 볼 수 없었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프로그램마저도. 이들은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만을 골라내 열렬히 소비한다.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다. 이렇게 스마트 기기가 갖는 다양한 기능이 독자와 콘텐트 제공자의 새로운 관계성을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고 있다.
이들에게 엄기호가 <단속사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속(거부)되지 않으려면 그들의 이성(머리)뿐만 아니라 감성(몸과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최근의 대중 인문학자들은 영상이미지가 지닌 정서와 환상에 부합하는 사람들이다. <인생수업>의 법륜 스님이나 전문 강사 김미경, 심리학자 황상민,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사마천의 <사기>만 27년을 연구한 재야 역사학자 김영수 등은 방송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이들은 저마다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를 냈지만 책은 단지 포트폴리오에 불과하다. 이들의 밥줄은 ‘강연’이다. 방송을 통해 확보한 신뢰감으로 마니아 독자를 몰고 다닌다. 결국 방송의 힘이 스타 인문학자를 키워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들은 한 번 찍히면 소셜미디어에서 ‘거절’당할 운명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할 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