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와 pc방을 갈등하다가 아지트로 왔습니다. 카운터의 감긴 눈이 광란의
밤을 예상하게 합니다. 제가 게임장을 할 때가 생각이 나네요. 청춘은 열정을 빼면
시체가 아닙니까? 개량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 독립에 젊음을 바친 '조지 포크'란
인물을 제가 픽업했습니다. 조지가 당시 28살이었고 미해군 공사관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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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얼마 전에 선세이션을 일으켰던 '미스터 선사인'의 '유진 초이'가 떠오릅니다.
조지가 미국인 최초로 한국어를 구사했는데 그는 처음에는 공사관에서 지내다가
나중에는 청계천 수표교 근처 민가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조지가 1884년 초겨울에
담양의 '석간당'을 자신의 비망록에 스케치를 한 것이 세상에 나와서 화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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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간당'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높이15m,보물 제505호입니다. 135년이라는
시공간 차이를 둔 스케치가 구조, 크기, 좌우상하 비율까지 거의 일치한답니다.
제 기억에 우리 초등학교 때는 유난히 사생대회를 많이 했는데 아마 우리 학교
전 학년이 '문화재 그리기'사생 대회를 나갔을 것입니다. 남초등학교에서 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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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으로 당시에는 비포장과 포장도로 두 개가 있었어요. 우리는 걸어서 비포장
길을 1k쯤 갔는데 군청 쪽에서 아스팔트인 메타쉐콰이어 길로 이어지는 지점에
'석간당'이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근처에 석탑 하나가 더 있고 메타쉐콰이어
길이 남산리와 동정리를 거쳐, 관방천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담양 대나무의 명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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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조선중기 이후부터 자리 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인근
강경의 죽물시장이 유명했으나, 타고난 남도인의 손재주에다 적당한 바람과 비,
그리고 토질에 힘입어 담양의 대나무와 죽물이 전국을 제패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담양의 상징으로 유명한 대나무를 보존하고 살리기 위해 신 복진 씨가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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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꾸어 2000년도에 오픈한 곳이 바로'대나무골 테마공원(죽녹원)'입니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신 씨는 광주 관련 기자출신 셀럽입니다. 저도 이곳에
서너 번 쯤 가보았는데 좋더라고요. 저 고삐리 때 인애누나가 이곳에서 점방을
했을 것이고, 영복이 형(3년 선배)이 막걸리를 서너 번 사줘서 얻어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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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나가 예뻤는데 이제 60이 다 되어 갈 것입니다. 물 건너에 3개의 다리(만성리,
향교리, 양각리)가 있습니다. 양각리는 우리 엄마가 신접 살림을 차린 곳이고, 내
친구 국승한이네 선친께서 정미소로 유지 노릇을 했습니다. 다리 건너 왼쪽으로
조금 가면 생전 처음 친 할머니를 공동묘지에 장사지내고 왔던 곳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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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버지 생전에 선산(무안)으로 이장을 추진 하려 했었는데 잘 안 돼서 많이
아쉽습니다. 공동 묘지에서 1km 쯤 가면 청포도 밭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어려서
소유주가 누군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해본 최초의 일당 노가다 입니다.
일당으로 받아온 청포도를 내 동생들과 하루종일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이육사의 '청포도'라는 시를 대할 때마다 저는 이때가 이미지모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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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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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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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다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젹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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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각리 다리를 직진하면 수북면이 나옵니다. 친구 원규녀석이 살던 곳이고 덩쿨파
의규말고도 전설의 인물 김 태촌 형님이 수북 출신입니다. 향교리는 용화사가 있는
곳으로 꼬마 때는 상수리를 따서 도장을 팠어요. 그깟 게 뭐라고 장비를 갖추고 내
동생 진호를 데리고 갔을까요? 해숙 샘이랑 용화사 벗꽃 놀이 추억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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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입구 개천 쪽에 수질관리 사무실 같은 게 하나 있는데 저 중딩 때 집을 나와
박진태 놈이랑 몇 날 며칠을 지냈는지 모릅니다. 저도 참 불양수업을 일찍부터 받은 것
같네요. 그 시절 들었던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가슴 깊이 파고 듭니다. 향교리는
제수씨 본가로 제가 사돈 어른 초상 치를 때 두 번 다 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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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실, 연미, 향실, 호주 중에서 향실이랑 제가 제일 친했던 것 같습니다. 죽녹원 길에
있는 만성리 다리는 진호 친구 헌이네 동네 입니다. 헌이는 강북에서 룸사롱을 해서
강북의 유흥업계 인싸가 되었습니다. 제가 본 가장 야문 후배가 헌이와 경선입니다.
경선은 전국구 넘버 순위 안에 드는 인물입니다. 그 놈 결혼식 때 강남에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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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이 사회를 보고 김 민종이 축가를 불렀어요. 혼주가 김태촌이었습니다.
물론 전국구 깍두기들이 총동원 되었고요. 심지어 일본에서 원정을 올 정도였어요.
제가 가슴 한켠에 묻고 사는 여친이 아마도 향교리에 살았을 것입니다. 이름이 가물
가물 합니다만 그녀의 자살 소식을 친구 용한이에게 군 복무 중에 들었고 상당히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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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담양 미인들은 하나같이 물 건너 마을에 산 것 같습니다.
복순이도 아마 만성리 출신일 것입니다. 군청에서 24번 국도를 들어서자 바로 눈
앞에 환상의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길이 나옵니다. 군청은 제2년 선배이자 헌병대
동기인 조 상철이 임시직으로 근무한 곳인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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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옆에 강식이네 슈터가 있었고 군청 앞에 동창 정미숙이네 집, 그 뒤로 5분 정도
가면 담양 남초등학교가 있고 우리 집이 있었습니다. 가로수 길은 제가 꼬맹이 때
심었으니까 얼추 50년이 되어갑니다. 물론 그때는 메타쉐콰이어가 뭔지도 몰랐고,
그냥 낙우송 정도로 알고 있었지요. '가울 동화' 찍고 관방 천과 연결시키면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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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를 탄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학교 다닐 적엔 이곳으로 사생 대회를 나오거나
소풍 갈 때 가끔 지나다녔는데 백동리만 넘으면 금성면이 되기 때문에 나와바리를
넘어가는 일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남산으로 토끼
사냥을 나가거나 활을 만들어 시험을 하려고 조무래기들이 산을 오르내린 추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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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이때 학교에서 배운 노래가 '대대로 오손도손 모여사는 새마을'이었지요.
10분도 안되어 석현 교 라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고 표지판을 따라 우측으로 들어서니
그냥 흔한 시골길 입니다. 길따라 5분 정도를 지나도 관광지다운 모습은 없고,
산을 깎아내는 토사채취장에서 들락거리는 화물차로 흙먼지만 눈을 따갑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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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테마 공원입니다. 전에는 대나무 테마 공원 정문 앞에 담양 여고가 있었는데
누가 내 허락도 없이 없애버렸고 담양 대학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담양대학
바로 직전에 성경세미나리를 했나본데 대영이가 학장으로 몇 년 재직했을 것입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관방천 쪽으로 추성 경기장이 있고 오작교를 건너 만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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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용면 쪽으로 갔어요. 양각리 다리부터 훓터 불나치를 잡으려고 관방천 상류까지
올라오곤 하였습니다. 관방천 뚝방길에 국수집이 즐비하게 들어섰는데 제1년 후배
'진우네 국수'집은 국수 팔아서 벤츠 타고 다닌다는 소리를 오래전에 들었습니다.
제 생각엔 테마 공원이 생긴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담양 천 하류는 수발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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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인데 저는 그곳에서 주로 고기(메기, 가물치, 붕어, 피리, 다슬기)를 잡았고 걸어서
양각산 수로까지 와, 조무래기들과 다이빙을 하며 초, 중 5년을 다 보낸 것 같네요.
억울하다는 얘기가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수발의 딸기 밭에서 양각리 초입
사이에 소전이 있었고 양각리에서 만성리 중간 쯤에 재래시장이 있었는데 그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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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담양 천 고수부지 대나무 장터로 연결 되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곳
입니다. 저는 2k쯤 떨어진 지침리69번지에 살았는데 일곱 살 정도부터 나와바리
시찰을 다녔고, 중학교 때는 울 어머니 삯바느질 심부름을 하느라고 '금란 상회'로
거의 매일 다녔습니다. (중략) 담양호 건너 편 산이 731미터의 전남 5대 명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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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인 추월 산이 있습니다. 추월 산에서 밤을 따고 오리 로스와 탕을 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돈인 일남과 매형 준기 형님이 대장이었고, 용준이랑 제가 시다발이를
했습니다. 일남이 형님은 저랑 건10년 차이가 나는데도 부려먹기만 하고 오리로스나
탕은 상철이 형이 충오 랑 제게 한 턱 쏜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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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자동차 트럭 라인에서 Q.C한다고 생고생 한 걸 생각하면 치가 떨려옵니다.
산성에서 내려와 죽순회로 허기를 채우고 소쇄원과 가사문학관 등을 돌아보면
나중에 추억의 편린들이 새록새록할 것입니다.
2019.6.13.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