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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0.10.6.PM2시)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2
화엄회상 대중들의 득법(得法)과 게송
제가 공개 방송을 시작한 것이 9월 6일이었다. 오늘로 딱 한달이 되었다. 해보니까 사찰에는 꼭 필요하고 작은 신행단체라 하더라도 신행단체가 있으면 반드시 이 유튜브 방송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방금도 포교원에서 사람이 바쁘게 왔다갔다. 새로운 불교성전을 만든다고 3년 전부터 들락날락 하면서 이것저것 묻고 상의도 하고, 몇 번 왔다갔다 했는데, 오늘도 왔길래 제가 전국 사찰 포교국장들을 다 모아놓고 이 유튜브 방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라고 포교원에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루면 하루, 일주일이면 일주일, 한달이면 한달의 프로그램을 포교원에서 짜서 포교국장 회의를 개최해서 다른 사찰에서 하고 있는 것들도 참고하고 콘텐츠 공유도 하고 각자 사찰의 특색을 살려서도 프로그램을 짜고 할 것이 아주 많다고 지난 번에도 포교국장에게 전화를 했고, 오늘도 그 밑의 직원들이 왔기에 또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덜 끝났지만 지금 코로나가 이렇게 휩쓸고 가고 시대가 이런 형식으로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온라인상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그랬다. 작은 가게에서도 온라인으로 판매와 구매를 하고 농산물이나 어업생산물도 온라인으로 판매를 하는 시대가 일찍이 도래를 했다.
제일 늦은 것이 사찰 같다.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저도 여기에 한 번 재차 인식을 하고 필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부산불교연합회 스님들에게도 강력히 권유를 해서 얼마나 진행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좀 늦어서 그렇지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것이다.
각 사찰마다 유튜브 방송을 개설해서 하루 프로그램, 일주일간의 프로그램, 또는 한 달간 프로그램을 짜서, 예를 들어서 방송국 같은 데서 편성표가 정해져 있듯이 비록 하루에 한 시간을 하는 방송국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그런 것을 짜서 연구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당연히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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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또 화엄경 공부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7. 선화 천왕과 그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
1) 득법
법을 얻었다.
부차선화천왕(復次善化天王)은 득개시일체업변화력해탈문(得開示一切業變化力解脫門)하니라
다시 또 선화(善化) 천왕은 모든 업이 변화하는 힘을 열어 보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업이 변화한다고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업력난사의(業力難思議)라고 하였다.
업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다.
중생은 중생대로의 업이 있고, 동물이면 동물 대로의 업이 있다. 살아온 모든 행위,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이 신구의 (身口意) 삼업(三業)을 통해서 우리에게 프로그램화 된다. 그래서 나 자신의 삶을 형성한다. 그런 것이 업이다. ‘길이 난다’는 표현도 하고, 프로그램화 된 것에 의해서 또 내 삶을 재생산해 내고 하는 것들이 업이다.
그런데 이 업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변화해야 된다.
우리가 그동안 불교공부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불교에 인연 맺다 보니까, 기도만 불교인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니고 이렇게 공부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팔만대장경이라는 방대한 가르침을 인류에게 남겼다. 그뜻을 하나하나 공부하고 알아가고 깨달아 가는 것이 불교를 이해하는 아주 정상적인 코스구나 하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들이 불교를 믿는 업이 달라지는 것이다.
줄기차게 기도만 하러 다니는 업에서, 그것이 지식으로 또는 지혜로, 보다 더 다른차원으로 변화하는 것, 이것이 불교를 공부하는 업이 변화하는 일이다.
당연히 그렇게 변화해야 한다.
매일 매순간 업이 변화해야 된다.
그 변화라고 하는 것은 좋은 방향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가야 된다는 뜻이다.
모든 업이 변화하는 힘을 열어 보인다. 선화천왕은 그런 점을 발견했다. 그런 점을 봤고, 그런 점을 깨달았고 그래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적정음광명천왕(寂靜音光明天王)은 득사리일체반연해탈문(得捨離一切攀緣解脫門)하니라
적정음광명(寂靜音光明) 천왕은 모든 반연을 떠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앞에서는 업이 변화하는 힘을 열어보이는 해탈문을 얻었다고 하였는데 이분은 그러한 것을 떠나는 경지, 모든 반연을 떠나는 해탈문을 얻었다.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것은 본성의 자리가 있는가 하면 그 본성이 작용하는 현상의 입장이 있다. 반연을 떠난 그 자리는, 현상의 입장에서 본성의 자리로 가는 것이다.
그 본성의 자리가 또한 중요하다.
그 자리는 우리 일심(一心)의 자리고, 일심중에서도 체성(體性)의 자리고 차별없는 참사람의 자리다.
현상은 차별이 있는 경지인데 본성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 불교 공부를 하다보면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가? 어떻게 우리가 인생을 영유해 가는가? 세상은 어떻게 굴러가는가? 이러한 것들을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해서 소상하게 알 수가 있다.
요즘 과학적인 증명 같은 것을 가끔 내가 이야기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현대과학이 물론 꼭 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거기에서 서로서로 현대과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참고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처럼 신봉하고 사는 사람은 현대과학적인 지식을 참고하면서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룬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삶을 열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 내가 식교절유(息交絶遊)라는 말을 소개하였다. 쉴 식(息)자 사귈 교(交)자 끊을 절(絶)자 놀 유(遊)자, 식교절유 참 좋은 말이고 제가 좋아하는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이것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 뭔가 공부를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식교절유 해야 한다.
사귐을 쉬고 교류하는 것을 좀 끊고 자기가 목적한 바 일에 매진해야 된다. 그래서 이런 말을 내가 해 놓았다.
‘식교절유((息交絶遊)’라는 말이 있다.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일체의 반연을 다 끊고 사람 노릇을 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저기, 이 일 저 일 이 사람 저 사람 일일이 다 만나고 다 참여하면서 사람노릇을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물론 사람이 사람노릇을 하면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뭔가 자기 목적한 바를 이루고 한 가지라도 조그만 일이라도 하려면 여기저기 기웃거려서는 안된다. 그러면 시간을 다 빼앗겨 버린다.
일부러 사람을 불러들여서 번다하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물론 많이 있다.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만나서 뭐하는가? 그저 잡담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 비판하고 비난하고 욕하고 괜히 나하고는 관계없는 데도 업을 지어서 비판하고 욕해가면서 업을 짓고 그런 경우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것도 좀 살펴보고 되돌아 봐야 한다.
‘내가 하는 이것이 나에게 무슨 소득이 있는가? 내 삶에 무슨 이익이 있는가?’ 그런 것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식교절유(息交絶遊) 사귐을 쉬고 교류하는 것을 끊는다. 아예 다 끊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괜히 바람만 많이 타는 생활의 가지들을 잘라야 된다.
생활의 자질구레한 가지들을 잘라버리고 바람을 덜 타야 내 삶의 줄기가 완전해진다.
변화력광명천왕(變化力光明天王)은 득보멸일체중생치암심(得普滅一切衆生癡闇心)하야 영지혜원만해탈심(令智慧圓滿解脫門)하니라
변화력광명(變化力光明) 천왕은 널리 모든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을 소멸하고 지혜가 원만토록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 반대로 지혜가 원만함.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을 소멸하면 저절로 지혜가 원만해진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밝게 빛난다.
태양은 항상 밝게 빛나고 있는데 구름이 한 번씩 몰려와서 한낮에도 비가 오고 캄캄하게 하는 일들이 있다.
우리 삶도 본래 우리들 마음에는 원만한 지혜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믿고 어리석은 생각, 어리석은 행위 이런 것을 삼가해야 한다. 그런 것이 또 길이 난다. 그것이 업이 된다. 업이 되는 줄도 모르고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는 경우가 된다.
장엄주천왕(莊嚴主天王)은 득시현무변열의성해탈문(得示現無邊悅意聲解脫門)하니라
장엄주(莊嚴主) 천왕은 끝없이 기쁜 마음의 소리를 보여주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끝없이 기쁜 마음의 소리를 보여주는 무변열의성(無邊悅意聲) 마음의 소리를 보여주는 해탈문을 얻었다.
부처님의 설법의 소리야말로 끝없이 기쁨을 노래하는 소리다. 기쁜 마음의 소리다.
그런 상황이 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면서 불교에 몸담고 살아가고 온통 ‘부처님, 부처님’ 하면서 살아가는 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또 없지가 않다.
염광천왕(念光天王)은 득요지일체불무진복덕상해탈문(得了知一切佛無盡福德相解脫門)하니라
염광(念光) 천왕은 모든 부처님의 다함없는 복덕상을 아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다함없는 복덕상, 부처님의 복덕은 다함이 없다.
우리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복덕도 다함이 없다.
광대무변하다. 무량대복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 그것이 제대로 발현을 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지 그냥 내버려 두니까 잠자고 있는 것이다.
잠자고 있는 무량대복을 두드려 깨워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닭이 알을 품어서 부화할 때가 되었다. 완전히 부화하는 그 순간에 안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아니하고 어미 닭이 쪼아 주면 바로 병아리가 밖으로 나온다. 안에서 꼬르륵 소리를 하는 데도 어미 닭이 그 순간을 놓치면 병아리가 생명을 잃게 되고 그러면 실컷 품고 있던 알을 제대로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일이 된다.
우리 사람 사람이 다 본성속에는 무한한 복덕을 지니고 있다. 지혜도 지니고 있다. 자비도 지니고 있다.
그런 것들을 이런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서 말하자면 안에 잠자고 있는 복덕과 지혜를 밖으로 발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점을 염광천왕은 이야기 하고 있다.
최상운음천왕(最上雲音天王)은 득보지과거일체겁성괴차제해탈문(得普知過去一切劫成壞次第解脫門)하니라
최상운음(最上雲音) 천왕은 과거 모든 겁이 이뤄지고 무너지는 차제를 두루 다 아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과거 모든 겁이 이뤄지고 무너지는 차제를 두루 다 안다.
사람은 생노병사하고 계절은 춘하추동하고 모든 생명체는 생주이멸한다. 이 지구나 모든 사물들은 성주괴공한다. 이루어지고 머물고 있다가 또 낡아가고 결국은 파괴된다.
이 거대한 지구도 마찬가지고 태양도 마찬가지다.
워낙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다 보니 우리가 그런 것을 미처 느끼지를 못해서 그렇지 다 그런 과정을 밟게 되어 있다.
가끔 제가 말씀드린다. 저 은하계 많고 많은 별들이 우리 눈에 지금 보이지만 그것은 이미 사라진 별일 수도 있다. 우리가 못보는 데도 불구하고 이미 새로운 별들이 생겨난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모든 것은 그 사이클을 맞춰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것이 모든 존재하는 것의 원리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있다.
승광천왕(勝光天王)은 득개오일체중생지해탈문(得開悟一切衆生智解脫門)하니라
승광(勝光) 천왕은 모든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 지혜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는 지혜의 해탈문을 얻었다.
우리 중생은 언젠가 다 깨달아야 된다. 결국 깨달음을 성취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능력을 한껏 발휘해야 한다는 표현인 것 같다.
묘계천왕(妙髻天王)은 득서광질만시방허공계해탈문(得舒光疾滿十方虛空界解脫門)하니라
묘계(妙髻) 천왕은 광명을 펴서 시방 허공에 빨리 가득 차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광명은 우리들 한 마음의 광명이다. 불성(佛性)광명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이런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것을 활짝 펴서 허공에 가득차게 해야 한다.
광명이 온 세상에 가득차서 그 위대한 광명의 힘을 마음껏 발휘하고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도록 해야 한다. 광명이 온세상에 가득 차게 해야 한다.
희혜천왕(喜慧天王)은 득일체소작무능괴정진력해탈문(得一切所作無能壞精進力解脫門)하니라
희혜(喜慧) 천왕은 모든 하는 일을 능히 무너뜨릴 수 없는 정진력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하는 일을 능히 무너뜨릴 수 없는 정진력의 해탈문이다. 좋은 일, 선행을 많이 하면 그 선행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자꾸 불어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크게 끼치게 된다. 그러한 도리도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보고 말씀하는 것 같다.
화광계천왕(華光髻天王)은 득지일체중생업소수보해탈문(得知一切衆生業所受報解脫門)하니라
화광계(華光髻) 천왕은 일체중생이 업으로 받는 과보를 아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경전에는 자주 나오는 내용이다.
일체 중생 모두가 업으로 과보를 받고 있다. 지금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는 것 역시 화엄경을 공부할 수 있는 업을 지었기 때문에 그 과보를 지금 받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과보를 받으면서 또 일면 새로운 좋은 업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내일도 화엄경을 공부할 수도 있고, 또 오늘 저녁 7시에도 유마경을 공부할 수가 있다.
‘내가 이 법문을 조금 들었는데, 화엄경을 구해서 아주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되겠다. 스님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 감질나고 내가 제대로 알아봐야지’
듣다보면 그런 용기도 안 나겠는가?
누구든지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런 큰 업으로 화엄경을 아주 공부 잘 할 수 있는 업으로 발전할 수가 있다.
그것이 업으로 받는 과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업을 잘 지어야 된다.
사람의 삶이란 전부 업놀음이다.
개를 애완견으로 키우고 아무리 예뻐한들 개의 삶에서 벗어나는가?
소는 소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은 사람의 삶을 한껏 잘 가꿔가야 된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전혀 다른 동물들하고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의 업을 변화시키고 바꿔 갈 수가 있다. 그것이 업의 원리이기도 하다. 참 중요한 내용이다.
업으로 받는 과보를 안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
내 삶에 부정적인 면이 있다면 ‘내가 어떤 업때문인지 분명하게 알지는 못해도 당연히 이 업을 받을 만한 원인, 씨앗을 심었구나’ 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 된다.
그것이 또 사실이다.
또 오늘은 오늘의 삶에 새로운 씨앗을 잘 심어야 한다.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한다. 이보다 더 좋은 씨앗을 심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보견시방천왕(普見十方天王)은 득시현부사의중생형류차별해탈문(得示現不思議衆生形類差別解脫門)하니라
보견시방(普見十方) 천왕은 부사의한 중생들의 형류(形類)가 차별함을 나타내 보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보견시방천왕이 불가사의한 중생들의 형류의 차별함을 나타내 보이는 해탈문을 얻었다.
지금 지구상에 한 80억인구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외 많고 많은 중생들의 형류가 사람의 숫자보다 몇 백배, 몇 천배, 몇 만배가 된다.
몇 만배 몇 십만배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생명체가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전부 차별이 있다. 생명체의 차별한 것은 일일이 따질 것이 아니고, 사람만 볼 때 크게 잡아서 80억인구라고 해도 80억 인구 중에서 얼마나 차별하는가?
우리 화엄경을 공부하는 화엄행자들은 거의 유사한 업을 가지고 있다. 상당히 근접한 수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제가 알기로는 세상에서 평가하는 부유함이라고 할까, 또는 지위라고나 할까, 명예라고나 할까, 그것은 크게 따질 것이 못된다. 그런 것에 크게 관심 갖지 말아야 한다.
이런 청복(淸福)을 누리는 입장, 부처님 공부를 하는 맑은 복을 누리는 이런 입장에서 우리는 서로 아주 가까운, 업이 가까운 형류라고 볼 수가 있다.
지구상에 많은 생명체 중에서 아주 희유하다.
희유한 길을 우리는 가고 있다. 최정상에 있는 길을 가고 있다.
2) 게송
이시(爾時)에 선화천왕(善化天王)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보관일체선화천중(普觀一切善化天衆)하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니라
그 때에 선화 천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선화천 대중들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세간업성부사의(世間業性不思議)를 불위군미실개시(佛爲群迷悉開示)하사대
교설인연진실이(巧說因緣眞實理)와 일체중생차별업(一切衆生差別業)이로다
세간의 업의 성품이 부사의함을
부처님이 중생들을 위해 다 열어 보이시니
인연의 진실한 이치와
일체중생의 차별한 업을 잘 설하시니라.
오늘 업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자주 나온다.
세간의 업의 성품이 부사의함을
부처님이 중생들을 위해 다 열어 보이시니
앞에서 제가 설명한 내용 그대로다.
부처님도 늘 업의 이치, 인과의 이치, 인(因) 연(緣) 과보(果報) 원인과 그 조건과 거기에 대한 과보 그러한 이치를 무수히 말씀하셨다.
우리가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불교를 믿고 부처님께 이렇게 가까이 하는 것은 내 삶을 뭔가 좀 변화시켜 보자고 하는 것이다.
내 삶을 변화시키자는 것이지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을 변화시켜서 내가 수용하는 모든 세상사가 마음에 들게 순조롭게 조화롭게 가꾸어 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다 업의 원리다.
부처님도 세간의 업의 성품이 부사의함을 부처님이 중생을 위해서 다 열어 보였다. 그래서 아주 구석구석에서 이런 말씀을 부처님이 자주 하셨다.
인연의 진실한 이치와
인과 같이 진실한 것이 없다. 어떨 때 우리가 살다보면 인과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부당한 경우들을 겪기도 하고, 옆의 사람이 겪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가 속속들이 알지 못해서 그렇지 인과의 이치는 진실하다. 인연의 이치는 진실한 이치다. 정말 진실한 이치다. 그것을 우리가 믿어야 된다.
일체중생의 차별한 업을 잘 설하시니라.
진실한 이치, 사람마다 다 다르게 차별하고, 차별하게 원인을 심었으니까 차별하게 받는다.
그러한 업을 잘 설하시니라.
여기에 제가 별표를 쳐놓았다.
이 이치를 우리가 제대로 깨닫고, 거기에 마음이 실린다면,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지만, 지금부터는 그렇게 잘못되게 크게 실수를 저지르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우정 내가 마음을 써가면서 크게 잘못된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불교는 결국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종종관불무소유(種種觀佛無所有)여 시방구멱불가득(十方求覓不可得)이라
법신시현무진실(法身示現無眞實)하시니 차법적음지소견(此法寂音之所見)이로다
가지가지로 부처님을 관찰해도 있는 데 없고
시방에서 다 찾아도 찾을 수 없네.
법신으로 보이심은 실재하는 것이 없나니
이 법은 적정음광명 천왕이 보았도다.
가지가지로 부처님을 관찰해도 있는 데 없고
어긋지게 말씀드리자면 법당마다 부처님이 다 있다.
여기도 부처님을 제가 이렇게 모시고 법문을 하고 있다.
곳곳에 불상이 있고, 사람사람마다 부처님이라고 줄기차게 이야기 해왔고, 생명생명 마다 전부 부처님이라고 줄기차게 이야기 해왔다. 그런데 뭐라고 했는가?
시방에서 다 찾아도 찾을 수 없네.
법신으로 보이심은 실재하는 것이 없나니
눈으로 우리가 파악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밖으로 드러난 형상 부처님이다. 쉽게 표현하면 가짜 부처님이다.
진짜 부처님은 법신(法身)이다. 형상이 없고 모양이 없다.
있는 특정한 장소가 없다.
그러니까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법신이고 진리의 몸이다. 진리를 몸으로써 보이심은 실재하는 것이 없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는 실재하는 것이 없다.
이것이 얼른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와서 공부하시는 여러분들은 이런 가르침에 익숙하시기 때문에 충분히 짐작하실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은 금방 없어진다. 금방 변해 버린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가지가지로 부처님을 관찰해도 있는 데 없고
시방에서 다 찾아도 찾을 수 없네.
법당의 부처님이라고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거기다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천배만배 절을 올린다.
그러면서 또 왜 해가 기울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법당 문을 꼭꼭 잠그고 가는가?
그것은 무슨 심사인가?
부처님이 법당 안에 계신다고 정말 믿는다면, 혼자 계셔도 나와서 포행도 하시고 바깥 공기도 쏘이고 들어가서 앉아 계시던지 누워계시던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려야 부처님 제자되는 도리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다.
문을 꼭꼭 잠그고 주먹 두 개쯤 되는 큰 자물통을 걸어 서 어떤 도둑놈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 놓는다.
부처님이 안에 계시는데 왜 그렇게 하는가?
그것이 중도적인 관점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우리가 왜 그런 이치를 모르겠는가? 다 잘 안다.
이론적으로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분별을 굳이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 잘 알고 실천하는 이치다.
이 법신이 진짜 부처님이다.
전부 법신자리에서 별개 현상의 부처님으로 현현한다.
그렇게 달리 나타나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이치다.
불어겁해수제행(佛於劫海修諸行)은 위멸세간치암혹(爲滅世間癡闇惑)이라
시고적정시조명(是故淸淨最照明)하시니 차시력광심소오(此是力光心所悟)로다
부처님이 오랜 세월 수행한 것은
세간의 어리석은 미혹을 소멸하기 위함이라
그러므로 청정하게 밝게 비추니
이것은 변화력광명 천왕이 마음에 깨달았네.
변화력광명천왕이라는 분이 마음으로 깨달은 내용이다.
부처님이 오랜 세월 수행한 것은
세간의 어리석은 미혹을 소멸하기 위함이라
부처님이 오랜 세월 수행을 했다고 되어 있다. 부처님은 삼아승지겁이라고 하는 길고 긴 세월동안을 수행했다. 그것은 무엇인가? 세간에 어리석은 미혹을 소멸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전부 미혹을 잔뜩 가지고 있다. 어리석음을 잔뜩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실수투성이다. 그것은 다 어리석어서 그렇다.
그러한 어리석음, 미혹 이런 것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부처님이 수행을 했다.
‘내가 좋은 지혜, 아주 많고 많은 복을 쌓아서 이것을 중생들에게 회향해야겠다’는 원력을 가지고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청정하게 밝게 비추니
2600년 전에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가르침을 남겨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렇게 전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크게 노력을 들이지 않고 불교와 접하게 되었다 고 생각하고, 옆에 불교가 많이 있다고 해서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 공을 들여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고 무엇보다 급한 일이다.
이 좋은 가르침이 있는데 왜 열심히 안하는가?
열심히 해서 한시라도 빨리 불교를 좀 깊이 알고 널리 알아서 환하게 마음이 열려지고, 부처님과 인연된 것, 불교와 인연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 이치를 세상에 널리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많은 사람이 가졌으면 좋겠다.
저는 평생 소원이 그러한 것이다.
세간소유묘음성(世間所有妙音聲)이 무유능비여래음(無有能比如來音)이라
불이일음변시방(佛以一音徧十方)하시니 입차해탈장엄주(入此解脫莊嚴主)로다
세간에 있는 바 아름다운 음성도
여래의 음성에는 비할 수 없어
부처님은 한 음성으로 시방에 두루 하시니
이 해탈에 든 이는 장엄주 천왕이로다.
부처님의 음성이 물론 아름답기도 하고 듣기 좋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음성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리의 말씀을 하나하나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서 감동을 주고, 진리의 가르침을 펴서 듣는 사람들이 뭔가 하나씩 깨달아 가는 것이 부처님의 음성이어서 아름다운 음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소리가 아름답다고 그것이 얼마나 가겠는가?
아무 뜻없이 소리만 아름다워서야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과는 비교가 안된다.
부처님은 진리의 말씀을 하신 분이라 아름다운 음성이라고 하신 것이다.
세간소유중복력(世間所有衆福力)이 불여여래일상등(不與如來一相等)이라
여래복덕동허공(如來福德同虛空)하시니 차염광천소관견(此念光天所觀見)이로다
세간에 있는바 모든 복력이
여래의 한 가지 복에 미치지 못한다.
여래의 복덕은 허공 같으시니
이것은 염광 천왕이 관찰했도다.
세간에 있는바 모든 복력이
세상에도 복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여래의 한 가지 복에 미치지 못한다.
세상복을 다 합한다 하더라도 여래의 한 가지 복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여래의 복덕은 허공 같으시니
얼른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여래의 복덕을 우리 마음의 복, 우리 불성(佛性)의 복(福), 진여(眞如)의 복(福)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런 불성, 진여의 상태 그것의 능력을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짐작이 갈 것이다.
세간에 있는 바 모든 복덕이 여래의 한 가지 복에 미치지 못한다. 여래의 복덕은 허공 같으시다. 이것이 부처님만의 이야기겠는가?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다.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흐뭇하다.
‘내가 그동안 몰랐는데, 내 손에는 잡히지가 않지만 그런 큰 복이 내자신 어딘가에도 있구나 이것을 얼른 갈고 닦아 개발해서 마음껏 펼쳐서 만중생에게 나눠야지’
이러한 생각을 한 번쯤 가질 필요가 있다.
삼세소유무량겁(三世所有無量劫)에 여기성패종종상(如其成敗種種相)을
불일모공개능현(佛一毛孔皆能現)하시니 최상운음소요지(最上雲音所了知)로다
과거 현재 미래의 한량없는 겁 동안
그와 같이 이뤄지고 무너지는 갖가지 모양을
부처님의 한 모공(毛孔)에 다 나타내니
최상운음 천왕이 아는 바로다.
게송마다 담긴 내용을 가지고 우리가 깊이 있게 파헤쳐서 이해하도록 설명하려면 게송 하나만을 가지고도 한 시간씩 해야할 입장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과거 현재 미래의 한량없는 겁 동안
그와 같이 이뤄지고 무너지는 갖가지 모양을
부처님의 한 모공(毛孔)에 다 나타내니
이것은 제가 자주 설명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바위를 깨서 손가락만한 바위 한조각을 딱 얻어서 거기서 45억년 지구의 역사를 다 읽고, 그 속에 든 미생물을 어떤 실험을 통해서 살려내는 정도에까지 현대 과학이 이르렀다.
그정도니까 이런 이야기야 우리 화엄행자들은 식은 죽먹듯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방허공가지량(十方虛空可知量)이어니와 불모공량불가득(佛毛孔量不可得)이니
여시무애부사의(如是無礙不思議)를 묘계천왕이능오(妙髻天王已能悟)로다
시방의 허공은 그 양을 알 수 있으나
부처님의 모공(毛孔)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어
이와 같이 걸림 없고 부사의함을
묘계 천왕이 이미 다 깨달았도다.
시방의 허공은 그 양을 알 수 있으나
부처님의 모공(毛孔)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어
부처님의 모공, 그랬다.
우리 한마음의 작은 점이 허공보다 크다는 이치다. 대단하다. 능엄경에도 이런 표현이 있고, 곳곳에 이런 표현이 있다. 그러한 이치로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된다.
여기서 부처님의 모공은 그 양을 알 수가 없다.
허공은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모공자리는 알 수가 없다. 우리 한마음의 한 점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허공보다 더 크다.
‘공생대각중(空生大覺中) 여해일구발(如海一漚發)
저 넓은 허공이 큰 깨달음에서 생긴 것이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 생긴 것과 같다.’
바다는 우리 마음이고 그 위에 떠 있는 물거품은 허공이다. 허공은 물거품이고 우리 마음은 큰 바다다.
그러니까 바다에 생긴 한 점 물방울이 허공보다 더 크다는 표현이 가능하다.
이런 이치가 저는 너무 재밌다.
시방의 허공은 그 양을 알 수 있으나
부처님의 모공(毛孔)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어
허공의 그 양을 알 수 있겠는가? 알 수 없는 정도로 넓다. 그런데 그것을 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모공은 그 양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공생대각중(空生大覺中)이 허공이 우리 마음의 깨달음에서 생긴 것이
여해일구발(如海一漚發)이라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 생긴 것과 같다.
그 말 가지고 대비해서 이해하면 딱 맞는 이치다.
이것이 그냥 말하기 좋아서 한 말이 아니다.
너무나도 깨달은 사람의 안목에는 이러한 이치가 환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말씀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말씀하지 않고 이러한 진실을 어떻게 참고 있는가?
그래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저는 그렇게 설명하겠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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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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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홍서원(四弘誓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戒香ㆍ定香ㆍ慧香ㆍ解脫香ㆍ解脫知見香!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息交絶遊~
因果의 理致는 眞實하다. 因緣의 이치는 정말 眞實한 이치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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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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息交絶遊 -- 생활의 자질구레한 가지들을 잘라버리라.
啐啄同時 -- 복덕과 자비를 발현 시키는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앙굴리라마도 지헤를 얻어 바로 살인의 나쁜 인연을 벗어나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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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나무 대방광불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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