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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목요일
전날에 부실에서 짐을 대충 챙기고 아침 8시가 좀 넘어서 부실에 도착했다. 나는 내가 늦게 도착한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병언이형은 부실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나를 포함한 동기 세 명은 형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어색하게 계속 앉아있었다. 9시가 넘어가니까 형들이 오기 시작했다. 다 도착하실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지암이형이랑 동균이형이 우리를 배웅하러 오셨다. 두 분이 오실 줄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속으로 엄청 놀랐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형들이라서 정말 반가웠다. 컵라면을 사오셨는데 나는 속이 좋지 않아서 먹지 않았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열시쯤에 어택을 메고 부실을 나섰다.
춘계때도 어택을 메고 걸어봤지만 무거운 짐은 항상 적응이 안 된다. 학생식당에서 사진을 찍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죽으러가는 사형수의 기분을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 앞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춘계 때 느낀 게 있어서 센터도 다니고 운동을 했는데도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 우울해졌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북부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바로 버스를 탈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11시 30분에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계속 자다가 4시쯤에 우리가 내려야할 물치를 지나서 대포항쪽에 내렸다. 다시 또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가 되어서 베이스인 설악동C지구야영장에 도착했다. 비도 안 오고 분위기도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베이스에 도착했지만 아직 실감은 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우리 구역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계대 형들이 오셔서 우리 짐을 들어주셨다. 아주 잠깐이지만 감사했다. 다섯 시 반이 다되어서 텐트를 다 치고 주변 정리를 하고 7시쯤에 장을 보러 속초 이마트에 갔다. 오늘 버스만 몇 번을 타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마트에 도착해서 필요한 것들을 다 사고 베이스에 도착했다. 형들 텐트에서 저녁을 먹는데 왜인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그렇게 계속 멍하게 앉아 있다가 화장실 가는 길에 잠깐 세옥이형을 만났는데 갑자기 하늘을 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대충 봐서 그냥 대구에 있을 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똑같은 까만 하늘인데 왜 보라고 하신거지 했는데 제대로 보니까 밤하늘에 별이 정말 많이 떠있었다. 저렇게 소름끼치게 많은 별들을 보는 건 오랜만이라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잠깐 기분전환을 하고 형들 텐트로 들어가서 앉아 있다가 새벽 한시쯤이 돼서 형들이 피곤하면 자러가도 된다고 하셔서 우리 텐트로 들어갔다. 자려고 침낭에 눕는 순간 아 정말 하계가 시작됐구나 하면서 복잡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7월 10일 금요일
어제 형들이 웬만하면 6시에 출발한다고 하셔서 새벽4시에 기상을 하고 아침을 했다. 순두부찌개를 했는데 물 조절에 실패해서 그런지 맛이 없었다. 죽어가는 순두부찌개를 살리기 위해서 넣을 수 있는 건 다 넣어봤는데 뭐든지 안 되는 건 무슨 짓을 해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첫날에 구보를 뛰었다. 나는 초반에 지쳐서 동희형과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소공원에 도착해서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 가는 곳은 돌아선GP라는 길이었다. 나는 거기까지 걸어가는데 앞에 형들이랑 애들이랑 차이가 많이 났다. 빨리 따라붙고 싶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돌아선GP길이 분명히 어프로치가 짧은 편이라고 하셨는데 믿을 수 없었다. 지금도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여기서 더 길면 등반하기도 전에 힘을 다 써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출입 금지구역을 지나고 땅만 보고 걷다보니 어느새 시작점에 도착했다. 예쁜 길을 걷는 것도 힘이 드는데 매일매일 이렇게 험한 산길을 걸어야 한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고 9시쯤에 등반이 시작됐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되었다. 분명히 앞에 형들이랑 애들이 하는 걸 봤는데도 머리가 새하얘져서 계속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가만히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움직이지 않는 내가 많이 답답하셨는지 뒤에서 동희형이 어떻게 하라고 계속 말씀해주셨다. 그때 나는 대답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뭐라고 하시는지 하나도 안 들렸었다. 또 그렇게 한 시간을 있다가 위에서 세옥이형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나를 끌어올려 주셨다. 시작부터 이렇게 민폐를 끼쳐서 죄송했다. 그 다음 피치부터는 주마를 써서 1피치 때 보다는 빨리 올라갔다. 나는 그냥 등반하는 것보다는 주마가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했는데 고도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계 전까지만 해도 정말 싫어했던 월드컵 경기장이 그리웠다. 정상까지 올라오는 동안에도 밑에 잠깐씩 봤을 때 아찔해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 도착했을 때는 정말 무서워서 계속 형들이랑 애들한테 찡찡댔던 것 같다. 정상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하강을 했다. 하강을 하고 땅을 밟으니까 그제서야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심이 됐다.
베이스에 와서 저녁을 먹고 또 멍하게 앉아 있다가 텐트로 가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오늘도 별 일 없이 무사히 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음날에는 또 어떻게 될지 걱정을 하면서 잠들었다.
7월 11일 토요일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새벽 4시에 기상을 하고 아침을 했다. 아침으로 미역국을 했는데 나는 미역을 못 먹어서 안 먹을까 하다가 안 먹으면 안 그래도 없는 힘이 다 없어질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먹었다.
오늘 가는 곳은 별을 따는 소년들 줄임말로 별따라는 길을 간다고 하셨다. 소공원까지 구보를 안 뛰고 버스를 타고 갔는데도 걷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나는 언제쯤 앞에 형들과 애들이랑 나란히 걸을 수 있을까하고 또 침울해졌다. 축 처져서 걷다보니 어느새 출입금지 구역에 도착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식은땀이 났다. 돌을 밟고 계곡을 건너고 산길을 걷고 하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어지러워지면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때부터 세 걸음 걷고 호흡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오늘은 진짜 힘들 것 같아서 동희형한테 못갈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잠시 뒤에 앞에 가셨던 세옥이형이 내려오셔서 내가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것 같다고 조금만 쉬다 가자고 하셨다. 생각해보니까 맞는 말 같아서 30분정도 앉아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걸었다. 10분 정도 걷다가 별따에 도착할 때쯤 갑자기 어떤분이 여기 대기인원이 30명이라고 오늘 못갈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오늘 다른 데를 가는 건가 아니면 쉬는 건가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형이 일단 기다려보자고 하셔서 기다렸다. 얼마 안기다린 것 같은데 지금 출발한다고 하셨다. 앞에 팀이 빨리 빠져서 그런 것 같다. 또 우울해진 나는 내 차례가 될 때까지 계속 쪼그려서 앉아있었다. 1피치까지 밑에서 동희형이 말씀해 주신대로 뭘 잡고 밟고 올라갔더니 어제보다 잘 올라가졌다. 또 올라가면서 아침에 아팠던 곳이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1피치에 도착해서 확보줄을 걸려고 하는데 세옥이형이 다 죽어가던 얼굴이 돌아온 것 같다면서 말씀해주셨다. 아무래도 내 생각엔 암벽에 뭔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픈 곳이 한순간에 나아질 리가 없는데 순간 내가 꾀병부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비교적 멀쩡한 상태로 2피치와 3피치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올라갔다. 그러다 4피치인가 이상한 벽이 있었다. 애들이 앙카 몇 번 해서 힘들게 올라가길래 이상해서 형한테 물어보니까 여기는 크랙을 잡고 다리를 벌려서 올라가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멀리서 봐서 그런가 출발하기 전에는 이정도면 쉽게 올라가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벽에 도착하니까 그 벽이 주는 위압감이 엄청났다. 왜 애들이 힘들게 올라갔는지 그제야 이해 할 수 있었다.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것조차 나에게는 너무 힘이 들었다. 어제 1피치 때처럼 나는 겁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배도아파서 밑에 동희형한테 여기는 진짜 못 올라갈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동희형이 밑에서 올라오셔서 세옥이형과 위에서 나를 끌어올려주셨다. 나 하나 때문에 진행속도도 느려지고 끝까지 마무리를 못해서 정말 죄송했다. 중간쯤에서 두 번 하강을 하고 계곡으로 내려왔다. 거기서 행동식을 조금 먹고 계곡물도 받아서 내려가다가 비룡폭포 쪽으로 갔다. 사진을 찍어야 해서 경민이가 외국인한테 영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내려가는 내내 힘들어서 아무표정이 없었는데 그때 잠깐 빵 터졌다. 아무튼 오늘도 무사히 내려와서 좋았다.
베이스에 도착해서 오늘 저녁은 뭘까 하면서 텐트로 가고 있는데 도중에 경일대와 영남이공대 OB형을 만났다. 장비정리도 안했는데 바로 OB형들 텐트로 들어와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셔서 조금 당황했다. 그래도 나는 정리하고 씻고 싶은 마음보다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텐트에 들어갔다. 회, 삼겹살, 김치찌개랑 자두까지 진짜 아침 먹을 때랑 차원이 다른 음식이라 정말 행복하게 먹었다. 처음 뵀는데도 오래 봐왔던 사이처럼 잘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렇게 저녁을 다 먹고 형들께 인사드리고 우리 텐트로 와서 장비를 정리하고 씻고 정신없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7월 12일 일요일
오늘도 네 시에 기상을 해서 아침을 했다. 오늘따라 너무 눈이 안 떠져서 나도 나이가 빨리 들어서 형들처럼 한 시간이라도 더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은 저번에 했던 미역국에서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참치 미역국을 했다. 그냥 미역국에 참치 캔 하나 넣었을 뿐인데 맛이 확 살아났다. 하계 오기 전만해도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여기 와서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아무튼 아침을 맛있게 먹고 오늘은 어디로 가는지 세옥이형한테 물어봤는데 오늘 비가 많이 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상혁이랑 경민이한테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경민이가 이기면 운행을 안가는 걸로 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결과로는 경민이가 이길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오늘만은 제발 경민이가 이겼으면 하고 속으로 기도했다. 결과는 경민이가 이겼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민이가 가위 바위 보를 단판으로 이기는 건 그때가 처음 이였던 것 같다. 아무튼 오늘은 운행을 안 가는 걸로 하고 조금 쉬다가 열시쯤에 입구 쪽에 있는 볼더링장에 가기로 했다. 그때까지 멍하니 있는데 어제 저녁을 같이 먹었던 경일대와 영남이공대 OB형들이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셔서 계대 팀이랑 그쪽으로 가서 닭이랑 파전을 먹었다. 상혁이 말고는 다 다른 학교인데도 똑같이 잘 챙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했다. 점심을 먹고 잠깐 텐트로 가서 앉아있는데 경일대 팀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간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반가웠다. 조금 있다가 나는 형들 텐트에서 애들이랑 산가를 몇 개 배우고 앉아 있다가 비옷 때문에 매점에 잠깐 들렀다. 다시 형들 텐트로 가려는데 영남이공대 OB형께서 영남대 홍일점 어디를 가냐며 나를 불러 세우셨다. 노래를 시키실 거라는 느낌이 확 왔다. 나는 아닌 척 조용히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어제랑 오늘 너무 많은걸 챙겨주셨는데 그냥 가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조용히 한곡 부르고 빠져나왔다. OB형들 텐트에 사람이 많이 없었으면 좋았을걸! 하필 그때 경일대 팀이 거의 다 들어가 있어서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 힘들게 형들 텐트로 돌아와서 젖은 자일을 말리고 카드게임을 했다. 원카드를 해서 꼴찌가 팔굽혀펴기를 하는 거였는데 한판씩 할 때마다 개수를 열 개부터 하나씩 늘려가는 걸로 했다. 나는 초반에는 계속 이겼다. 계속 꼴찌는 안하겠지 했는데 그 뒤로 13개 14개를 내가했다. 형들이 내가 팔굽혀펴기 하는걸 보고 너는 자세가 왜 이렇게 이상하냐고 하셔서 하나씩 할 때마다 한 개로 안쳐주시고 0.2개 0.5개씩 쳐주셔서 억울했다. 아무튼 재밌게 카드게임을 하고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다음날이 걱정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하계에 점점 적응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7월 13일 월요일
역시 네 시에 기상을 하고 아침을 했다. 아침으로 참치미역국을 했는데 형들이 미역국을 너무 자주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별로 안했던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침을 먹고 오늘은 어디로 가는 건지 물어봤는데 간단하게 교육을 하러 장군봉 기존길에 간다고 하셨다. 동희형은 오늘 우리랑 다른 데를 가시는 것 같았다. 오늘은 어프로치가 짧다고 하셔서 그런지 버스를 타지 않고 소공원까지 가기로 했다. 가는 동안 또 뒤처져서 그냥 세옥이형한테 산가를 배우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말씀하신대로 어프로치는 생각보다 짧았는데 올라가는 게 진짜 힘들었다. 나는 항상 어프로치가 제일 힘이 드는 것 같다. 한걸음씩 올라 갈 때마다 너무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멀미를 하는 게 분명하다. 오늘도 힘들게 시작점까지 겨우겨우 올라왔다. 다 도착해서 쉬려는데 세옥이형이 내가 걸어오는 걸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열 걸음 걸으면 도착하는 거리를 3분이나 걸려서 도착하는데 걷는 속도가 거북이보다 느린 것 같아서 보는 내내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서브색을 내려놓고 장비를 착용하고 잠깐 숨 좀 돌린 뒤에 주마교육을 시작했다. 전날에 비가 와서 그런지 바위가 많이 미끄럽고 슬랩이라 볼트도 저위에 있어서 선등을 서시는 병언이형의 모습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1피치 끝까지 가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형이 완등을 하시고 우리는 주마를 써서 1피치까지 두 번씩 올라갔다. 그러고 나서 다들 내려와 간단하게 비빔면을 먹기로 했다. 물이 끓는 동안 다 같이 쉬면서 왔다갔다 거리는 다람쥐들을 구경했다. 어찌나 빠르고 잘 올라가던지 다람쥐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나한테 반만 그 실력을 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잠시 후에 차갑지는 않지만 미지근한 비빔면을 맛있게 먹고 올라가려는데 동희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세옥이형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어봤는데 우리 텐트가 바람에 날아갔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 하산해야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날아간 텐트가 걱정이 되면서도 일찍 하산하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올라가는 입 꼬리를 내리느라 힘들었다. 베이스로 가서 텐트를 다시 쳐야 되니까 병언이형이 하강을 해야 했다. 나는 밑에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세옥이형이 담배 한 개비를 주셨다. 병언이형이 내려오면 오다가 주웠다고 얘기하라고 하셨다. 다른 애들한테 떠넘기고 싶었지만 아무도 받지를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병언이형한테 드렸다. 담배 한 개비 드렸을 뿐인데 병언이형의 표정이 아침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밝아지셨다. 형이 어디서 난거냐고 물어보셔서 그냥 오다가 주웠다고 했는데 갑자기 애들이 하나 되어 나를 어릴 때부터 담배를 피는 애로 몰아갔다. 진짜 억울했지만 지금껏 애들한테 미안한 것도 많았고 나 하나 놀리는 걸로 너무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그냥 적당히 받아줬다. 그렇게 조금 얘기하다가 장비를 챙기고 하산하는 속도가 빠른 애들이랑 병언이형이 먼저 텐트를 수습하러 내려가고 나랑 세옥이형은 뒤따라 내려갔다. 세옥이형이랑 내려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형이 카메라를 안 챙겨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때 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상했다. 세옥이형이 병언이형한테도 전화를 해서 물어봤는데 짐을 다 풀어봤지만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하셨다. 일단 지금은 하산을 하고 내일 형만 따로 다시 장군봉에 카메라를 찾으러 가보신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설악동에 세시쯤에 도착을 해서 텐트를 재정비하고 장비텐트정리를 했다.
우리는 잠깐 쉬다가 형들이 밖에 물이 덜 차가운 데가 있다고 하셔서 밖으로 씻으러 갔다. 십분쯤 걸으니까 여기가 샤워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허름한 곳이 있었다. 형들께서 나보고 먼저 씻으라고 하셔서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갔다. 유황물이라서 냄새가 좀 나긴 했지만 이정도면 진짜 괜찮은 것 같았다. 거기서 진짜 제대로 씻고 싶었지만 나는 한번 제대로 씻으면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려서 대충 머리만 감고 나왔다. 먼저 야영장에 도착을 해서 취사장에서 머리를 다시 한 번 헹구고 간만에 여유를 즐겼다. 형들한테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봤는데 오늘은 경화형이 잠깐 오신다고 해서 밥만 하라고 하셨다. 경화형은 학기 초에 딱 한번 보고 그 뒤로는 못 뵀는데 빨리 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있어서 형이 오셨는데 족발이랑 보쌈이랑 맛있는 걸 가득 들고 오셨다. 거기에 케이크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게 왜 있지 했는데 알고보니 7월 15일이 세옥이형 생일이라서 미리 생일축하를 드린다고 사오신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맛있게 저녁을 먹고 경화형은 다시 가봐야 해서 사진을 찍고 인사드린 뒤에 배웅하러가신 형들을 뒤로하고 남은 우리는 텐트를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7월 14일 화요일
오늘도 칼같이 4시에 기상을 하고 아침으로는 된장찌개를 했다. 오늘은 1박2일로 천화대에 갈 거라고 하셨다. 나는 발바닥 상태가 좋지 않아서 세옥이형한테 못 갈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베이스에 남아있기로 했다. 형들이랑 애들을 배웅하고 나는 일단 전날에 못한 설거지부터 했다. 설거지를 하고 장비텐트도 새로 정리하고 빨래도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은 형들 텐트도 폭파시켰다. 그렇게 대충 정리를 하고 시간을 봤는데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베이스에 혼자 남아있으니까 한 시간이 일 년 같았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또 멍하니 앉아있었다. 네시쯤 됐을 때 지루함이 폭발해서 그냥 잠이나 자자 하고 누웠다. 나는 자다가 경일대 팀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들어서 6시반쯤에 정신을 차려서 겨우 일어났다. 텐트에 또 멍하니 앉아있는데 뭔가 느낌이 싸 해서 핸드폰을 봤더니 세옥이형이 하산한다고 저녁을 해놓으라고 문자를 남겨놓으셨다. 암벽등반 다음으로 어려운 게 밥하는 건데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지금까지 나는 잡일만하고 밥을 경민이나 상혁이가 다 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걱정이 됐다. 암벽하고 와서 다들 많이 피곤할 텐데 이때까지 나 혼자 편하게 쉬었으니까 밥이라도 맛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기억을 떠올려서 압력밥솥에 밥부터 하고 메뉴는 김치찌개로 하기로 했다. 일단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재료들만 골라서 냄비에 다 집어넣고 끓였다. 대충 모양을 잡아놓고 옆에 경일대 애들한테 맛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애들이 김치 맛 밖에 안 난다고 해서 끝까지 안 넣으려고 했던 육개장분말을 넣었다. 조미료를 넣고 끓이니까 처음보다 맛이 훨씬 괜찮아진 것 같았다. 역시 조미료의 힘은 엄청난 것 같다. 그렇게 저녁준비를 다 하고 삼십분쯤 기다리니까 형들이랑 애들이 도착했다. 오늘 천화대에 가는 게 아니었냐고 물어보니까 슬링을 안 챙겨서 유선대에 갔다고 했다. 아무튼 혼자 있어서 진짜 심심했는데 다들 1박을 안하고와서 좋았다. 형들이랑 애들이 장비정리를하고 텐트를 다시 치는 동안 나는 반찬으로 먹을 소세지를 볶고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저녁을 먹고 앉아서 내일 어디로 갈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장비를 대강 챙긴 뒤에 잠을 잤다.
7월15일 수요일
항상 네 시에 기상하다가 오늘은 여유 있게 6시에 일어났다. 김치볶음밥으로 아침을 먹고 8시쯤에 버스를 타고 소공원으로 갔다. 오늘 갈 곳은 울산바위에 문리대길이라고 하셨는데 거기는 또 어떤 곳일까 하면서 많이 걱정이 됐다. 오늘도 역시나 평소처럼 많이 뒤처지긴 했지만 어프로치가 그렇게 길지도 않았고 출입금지구역도 여태껏 갔던 곳들 중에 길이 가장 예뻐서 산멀미도 심하게 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것 같았다. 장비를 차고 병언이형이 선등을 서시는 걸 지켜봤다. 형도 힘들게 가시는데 내가 올라가면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병언이형이 완료를 하고 그 뒤로 상혁이가 올라갔다. 상혁이는 나랑 같은 15학번 동기인데도 실력은 15학번이 아닌 것 같아서 부러웠다. 그 뒤로 경민이가 올라갔다. 그런데 다친 발 때문에 올라가는게 힘들었는지 계속 미끄러졌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해보기로하고 동희형이 올라가셨다. 동희형은 벽에 붙으면 스파이더맨처럼 날아다니시는 것 같다. 10분도 안 걸려서 1피치에 도착하셨다. 그렇게 다들 올라갈 때 까지 기다리는데 따뜻할 줄 알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더울 줄 알고 바람막이를 안 챙겨 와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맨몸으로 떨고 있었다. 그러자 세옥이형이 나에게 보온잠바를 주시면서 바람막이나 보온잠바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챙겨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계속 챙기다가 하필 오늘 안 챙겼긴 거였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 죄송했다. 그렇게 조금 있다가 경민이랑 내가 한 번씩 벽에 붙었다. 다 같이 1피치까지 등반을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하고 오늘은 장을 보러 이마트에 가야해서 일찍 하산하기로 했다.
장비를 정리하고 우리는 소공원까지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이마트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서 조금은 이르지만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간단하게 막국수로 결정했다. 다 같이 막국수를 먹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대구로 내려가는 경민이를 보낸 뒤에 속초이마트에 가서 남은 5일 동안의 식량을 샀다. 장을 다 보고 베이스로 왔는데 아직 경일대 팀이 오지 않았다. 해가 다 졌는데도 오지 않아서 누가 심하게 다치기라도 한 건지 길이 많이 어려운건지 초조해졌다. 1박을 계획하고 간 게 아니라서 매트리스랑 침낭도 안 챙겨간 걸로 아는데 그 추운 산 정상에서 침낭도 없이 밤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생각만 하는데도 내가 다 추웠다. 한명도 다치지 않고 모두 무사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잤다.
7월 16일 목요일
오늘은 경원대에 간다. 경민이가 없기 때문에 간만에 내 핸드폰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아침을 하고 운행 갈 준비를 했다. 경원대 가는 길은 별따 가는 길이랑 거의 똑같아서 저번보다는 빠르게 도착했다. 시작점 까지 올라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에도 비가 오긴 했지만 이정도로 심하게 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일단 금방 그칠 수도 있으니까 세옥이형이 계속 올라가보라고 하셨다. 나랑 상혁이는 앞서간 형들의 뒤를 따라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점점 더 심하게 와서 결국엔 하산하기로 했다. 형들보다 뒤에 출발한 우리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곳까지 내려와서 형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10분 뒤에 형들이 다 내려오시고 우리는 다시 소공원 쪽을 향해갔다. 나는 너무 추워서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미친 속도로 걸어갔다. 소공원에 도착했는데 거짓말처럼 비가 잠잠해졌다. 형들이 아쉬워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우리는 베이스로 가서 씻고 대충 정리를 한 다음에 형들 텐트에서 김치전을 해서 먹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베이스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경일대 팀이 오지 않았다. 진짜 누가 다쳐서 병원이라도 실려 간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 멀리서 말소리가 들렸다. 별 탈 없이 돌아 왔구나 라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매트리스에 앉아있는 애들을 보는데 나는 얘네가 1박을 하고 온 애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밝아서 깜짝 놀랐다. 나 같았으면 완전 다 죽어갔을 텐데 나는 경일대 애들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강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 정신력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정말 부러웠다. 형들 텐트로 가서 나는 형들이 김치전 굽는 걸 구경했다. 솔직히 맛이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설탕도 넣고 식용유도 잘 조절해서 구우니까 맛있어졌다. 그렇게 배터지게 김치전을 먹고 조금 쉰 다음에 산악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나는 피곤해서 박물관까지 천천히 걸어가는데도 아침에 걸어갔을 때만큼 뒤처졌다. 어떻게 박물관에 도착해서 우리는 네 시 반에 고산체험을 신청한 뒤에 1층부터 3층까지 천천히 구경하기로 했다. 1층에는 산의 사진을 찍어놓은 게 있었는데 나는 금강산의 사진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만약에 그 풍경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무섭도록 소름 돋아서 며칠간 잠을 못잘 게 분명할 것이다. 실제로 보는 게 아닌데도 산의 위엄이 엄청났다. 2층에는 고산체험과 암벽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3층으로 가서 산악관련 인물들과 역사를 보는데 나는 돌아가신 고상돈 씨께서 말씀하신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라는 문장을 보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순간 울컥했다. 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완등 했을 때의 기분은 어떠셨을까 궁금했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시간이 다 되어서 고산체험을 하기 위해 다시 2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우리는 백두산정상(3000m)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000m)를 체험할 수 있었다. 오래 있지는 못하고 각각 2분 3분씩 들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앉아서 간단하게 설명을 듣고 손목에 팔찌를 차고 들어가서 계속 걸었다. 백두산정상에 들어갈 때는 괜찮았는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들어갈 때는 조금 어지러웠다. 나와서 보니까 산소포화도가 처음에는 95정도였는데 69까지 떨어져 있었다. 나갈 때 안내해주시는 분이 자기가 고산체질인지 아닌지 얘기해 주셨는데 나는 고산체질이 아니라고 했다. 체질이라도 고산체질 이였으면 좋았을 걸 나는 왠지 씁쓸해졌다. 그렇게 색다른 경험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타서 시내 쪽에 속초관광수산시장에 갔다. 시장에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맛있어 보이는 게 많아서 정신없이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형들이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다 먹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강원도에 왔는데 오징어순대를 안 먹으면 아쉬울 것 같아서 오징어순대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징어순대와 새우튀김과 닭강정을 사들고 텐트로 갔다. 텐트에서 거의 다 먹어갈 때 쯤에 경민이가 왔다. 하루 만에 보는데도 진짜 반가웠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일 어디 갈지 얘기를 듣고난뒤 기분 좋게 침낭에 들어가서 잠에 들었다.
7월 17일 금요일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등반을 하는 날이다. 형들이 노적봉은 피치등반이 아닌 릿지등반 이라고 하셨다. 형들은 간만에 등반을 제대로 할 수 있어서 좋으시겠지만 나는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고 생각하니까 시작하기도 전에 무서워서 울고 싶었다. 게다가 노적봉은 경일대 팀이 조난당했던 곳이라서 혹시나 나 때문에 1박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어프로치는 생각보다 많이 짧아서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 쯤 도착했다. 비가 살짝 내려서 오늘도 중간에 내려오는 건가 했는데 금방 그쳐서 허무했다.
출발하려고 하는데 밑에 다른 팀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 분이 올라오셨는데 갑자기 동희형이 어떤 한분에게 인사를 하셨다. 얘기를 들어보니 동희형이 전에 오지탐사대에 갔을 때의 대장님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 세상이 좁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조금 있다가 하산할 때 그분이 우리에게 저녁을 사주신다고 했다. 나는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 무섭지만 힘을 내서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출발을 하려는데 형이 이번에는 형들이 위에서 따로 확보를 봐주시는 게 아니라 주마를 확보대신으로 하고 올라가야 된다고 하셨다. 오늘 나는 중간에 옆으로 가는 구간과 마지막 피치에 다와 갈 때 형들한테 많이 찡찡대면서 올라갔다. 그때 다들 짜증나셨을 텐데 죄송했다. 아무튼 그 구간들 빼고는 덜 찡찡대고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그리고 노적봉은 쉴 수 있는 곳이 많고 넓어서 괜찮았다. 바로 정상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하강을 하려는데 여기서 바로 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가서 하강을 한다고 하셨다. 나는 하강을 하기 위해 내려가는 길을 맨몸으로 간다는 것에 엄청 놀랐다. 양 옆이 낭떠러지에 길도 험한데 어떻게 그냥 간다는 건지 충격적이었다. 노적봉까지 등반했던 것보다 하강하기 위해 걷는데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나는 동희형의 도움을 받아서 하강지점인 소나무에 힘들게 도착했다. 하강을 하고 이제 하산을 해야 했다. 하강도 힘들었는데 내려가는 길은 더 문제였다. 너덜길이라고 잔돌이 엄청 많았는데 가는 내내 낙석을 외쳐야 했다. 다행히 30분 정도 걸으니까 길이 예뻐져서 그때부터 조금씩 속도를 내서 하산을 했다. 베이스에 도착해서 씻고 좀 있으니까 형들이 아침에 뵀던 분이랑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말씀하셨다. 감사하게도 차를 태워주셔서 식당까지 편하게 갔다. 식당에 도착해서 우리는 막걸리와 보크라이스 그리고 해물파전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그분의 성함을 알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전가수대장님에게 오지탐사대에 대한 얘기와 이런저런 많은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차를 타고 베이스로 도착해서 전가수 대장님에게 감사인사를 드린 뒤에 우리텐트로 돌아갔다. 오늘도 크게 다치지 않고 땅을 밟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7월 18일 토요일
안 올 줄 알았던 자체 마지막 날이 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가서 신기했다. 여기 들어온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일을 보냈다니 기분이 좋았다. 형들이 오늘은 마지막 날이고 해서 금방 끝나는 곳에 간다고 하셨다. 길 이름은 염라길이라고 했는데 등반보다 내 목숨 줄이 금방 끝날 것 같았다. 오늘도 쉽진 않겠구나 하면서 체념하고 걸었다. 근데 웬일인지 오늘은 걷는데 별로 힘들이지 않고 형들과 나란히 걸었다. 심지어 경민이랑 상혁이보다 내가 앞에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내 몸인데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형들이랑 애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다들 나를 무슨 신기한 동물 쳐다보듯이 쳐다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출입금지구역을 지나가는데 그때부터 또 산멀미가 왔다. 점점 어지러워져서 줄을 잡고 올라가는 곳에서 형한테 말씀드리고 잠깐 쉬었다 가기로 했다.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데 형들이 여기가 아닌 것 같다면서 다시 내려가자고 하셨다. 나는 조금만 더 쉬었다가 올라갈 껄 하고 조금 후회했다. 한참을 내려와서 형들이 우리보고 잠시 쉬고 있으라고 하고 길을 찾으러 가셨다. 우리는 그사이에 잠깐 쪽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한시간정도 있었는데 형들이 오셨다. 지금 길을 확실하게 찾고 등반을 한다고 해도 여기서 소공원까지 거리도 길고 시간도 애매해서 하산하기로 했다. 길 찾다가 하산한 적은 처음이라 암벽을 무서워하는 나도 조금은 아쉬웠다. 하산할 때는 산멀미를 하지 않아 생각보다 빨리 베이스에 도착했다.
베이스에 도착해서 우리는 오늘 들어오신 OB형들과 앉아서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면서 얘기를 하면서 푹 쉬었다. 저녁에는 우리학교 OB형이신 택건이형을 뵀다. 저녁 메뉴는 닭을 가지고 한쪽은 찜닭 한쪽은 닭볶음탕을 했다. 나는 애들이랑 닭볶음탕을 하기로 했는데 애들이 요리를 잘해서 성공적이었다. 형들이 하신 찜닭도 정말 맛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와서 우리텐트 옆쪽에 타프로 장소를 옮겼다. 거기서 다 같이 모여서 얘기를 하는데 저 멀리 계대 팀이 있는 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나는 형들이 15애들한테 노래를 시킬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택건이형이 노래하는 것 보다는 얘기하는 게 더 좋다고 하셔서 그냥 넘어갔다. 택건이형은 날개 없는 천사인 게 분명하다. 나는 영남이공대OB형이 주신 닭강정과 택건이형이 사주신 과일들을 맛있게 먹고 형들의 얘기를 듣다가 그만 눈이 반쯤 감겼다. 내가 많이 피곤해 보였는지 형들이 피곤하면 먼저 가서 자라고 하셔서 인사를 드리고 먼저 텐트로 갔다. 다음날에는 연맹첫날이니까 운행도 없고 세옥이형이 깨울 때까지 푹 자도 된다고 하셔서 평소보다 편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7월 19일 일요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자체기간이 끝나고 연맹기간의 첫날이 됐다. 나는 간만에 잠을 오래 잘 수 있어서 좋았다. 뒷정리를 하면서 아침은 어떻게 해야 되나 걱정하고 있는데 택건이형이 짬뽕을 시켜주셨다. 비오는 날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음식은 없을 것이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잠시 후에 세옥이형이 텐트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하셨다. 본격적으로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홍석이형과 주연이형 그리고 지원이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반가워서 진짜 눈물 쏟을 뻔 했다. 어디 앉아서 10일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다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단 텐트부터 옮겨야 했기 때문에 개인 짐을 어택에 넣고 장비텐트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카고에 집어넣었다. 텐트를 B-4 구역으로 옮겨야 했는데 거기까지는 좀 멀어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그래도 다 같이 하니까 생각보다는 금방 끝났다. 대충 주변정리를 하고 있는데 재민이형이 오셨다. 피자를 들고 오셨는데 살짝 식었는데도 꿀맛이었다. 다 먹고 매트리스에 앉아있는데 세옥이형이 연맹기간에 필요한 것 들을 사러 장보러 갈사람 없냐고 물어보셨다. 어찌어찌해서 재민이형과 형우형 세옥이형 홍석이형 주연이형이 장을 보러 가기로 하고 병언이형이랑 애들은 베이스에 있기로 했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지원이랑 수다를 떨다가 운동하고 온 애들이 씻으러 간다고 해서 따뜻한 물이 나오는 데 구경시켜주러 잠깐 산책 갔다 오기로 했다. 다시 텐트로 돌아왔는데 병언이형이 지원이랑 나를 찾으셨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애들이랑 같이 간걸로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미리 말씀을 안 드리고 가서 괜한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장보러간 형들이 돌아오셨다. 다시 장비텐트 정리를 하고 연맹기간에 챙겨갈 행동식을 하나씩 포장했다. 내가 좋아하는 제리뽀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이정도면 다른 학교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짱짱한 행동식이여서 좋았다.
어느덧 해가 지고 다른 조들도 정리를 다 했는지 형들이 각자 연맹기간 때 있을 조로 가라고 하셨다. 나는 경일대조라서 경일대 텐트 앞쪽으로 가서 어택을 내려놓고 서있었다. 우리조는 기환이형 백중이형 경주형 현규 철우 동형이 그리고 나 이렇게 7명이었다. 나는 이렇게 모이기 전까지 우리조에 동기가 누구누구 있는지 전혀 알지를 못해서 동기들이 어떨지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다 모이니까 애들이 다 괜찮은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규가 있어서 밥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게 가장 좋았다. 다 같이 모여서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하고 어느 텐트에 누가 있을지 정한 뒤에 입산주를 하기 위해서 타프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다섯 개의 조가 한자리에 모이니까 정말 북적북적했다. 4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한 타프 아래에 있으려니까 자리도 좁았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조금의 불편함도 즐겼던 것 같다. 홍석이형의 주도하에 15학번부터 시작해서 11학번까지 자기소개와 앞으로의 다짐들을 말하면서 동기주를 마셨다. 나는 15학번들이 많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시간 정도 앉아있다가 입산주는 아영장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서 조용히 마쳤다. 또 내일 운행을 가기 때문에 형들이 15학번들은 일찍 자라고 하셨다. 나는 우리 텐트에 들어가서 술이 많이 들어간 현규를 재우고 네 시에 알람을 맞춘 뒤에 잠에 들었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7월 20일 월요일
연맹기간에도 자체 때와 마찬가지로 네 시에 기상을 했다. 어제 둘씩 나눠서 아침을 하자고 얘기했는데 일단 오늘은 운행 가는 첫날이니까 네명이 다 같이 일어나서 아침을 했다. 경일대 장비텐트에는 식량이 많아서 좋았다. 아침을 먹고 5개조가 6시 반에 운동장에 집합을 해서 다 같이 구보를 뛰기로 했다.
나는 소공원까지 뛰는데 중간에 넘어지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많은 형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도착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 같이 사진을 찍고나서 조별로 운행을 가는 걸로 했다. 우리조는 경대조와 같이 노적암에 가기로 했다. 어프로치는 최고로 짧았다. 저질체력인 내가 힘을 다 안들이고 도착했으니 말 다했다. 산길을 10분도 안 걸었던 것 같다. 도착했을 때 노적암을 보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높지 않아서 안심이 됐다. 다 모여서 넓은 곳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형들이 선등을 서시는 동안에 우리는 형우형에게 잠깐 교육을 받고 산가를 하나 배웠다. 그리고 나는 내 차례가 될 때까지 계속 애들이랑 얘기하면서 기다리다가 동형이가 올라갈 차례가 되어서 밑에서 대기를 했다. 다른 애들은 올라갈 때 금방 올라간 것 같았는데 동형이는 시간이 좀 걸려서 올라갔다. 동형이가 올라가기 전까지는 오늘 하는 데가 쉬운 곳이구나 하면서 별생각 안했는데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 암벽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내 주제에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한심스러웠다. 처음에 벽에 붙는데 시작부터 힘들었다. 계속 올라가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이동을 해야 했는데 형들이 말씀하시는 게 머리로는 다 이해가 되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초반에만 30분을 붙어있으니까 위에 애들이 기다리느라 지쳤는지 위에서 나를 끌어올려 주었다. 위로 가니까 형들 말씀대로 홀드도 정말 좋고 잘 올라가졌다. 그렇게 애들의 도움을 받아서 초스피드로 도착한 뒤에 하강을 했다. 경대조는 점심으로 비빔면을 먹었는데 우리는 행동식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한 번씩 등반을 한 뒤에 정리를 하고 일찍 하산했다. 경대조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우리조는 구보를 뛰어서 가기로 했다. 아침에도 죽는 줄 알았는데 베이스에 갈 때도 구보를 뛴다니까 막막했다. 버스를 안타도 좋으니까 걸어서 가고 싶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뛰어갔는데 그것도 힘들어서 거의 걷다시피 뛰었다. 계속 헉헉거리면서 뛰다가 버스정류장에서 잠깐 숨을 돌렸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하계 때 몇 번을 우는 건지 모르겠다. 기환이형이 우는 나를 보고 당황하신 것 같았다. 형들과 애들을 먼저 보내고 나한테 왜 우느냐고 물어보셨다. 별거 아니라서 말하기 싫었는데 한번 말을 꺼내니까 말이 술술 나왔다. 형한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과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다. 그렇게 형이랑 걸으면서 진정을 시킨 뒤에 야영장 입구 버스정류장까지 도착했다. 울어서 창피하긴 했지만 속은 시원해서 좋았다. 베이스에 도착해서 씻은 뒤에 저녁을 했다. 다 같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오늘 어땠는지 내일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한 뒤에 텐트로 가서 잠들었다.
7월 21일 화요일
나는 어제 일찍 잤는데도 늦잠을 자고 말았다. 먼저 일어난 애들한테 미안했다. 일어나는 거라도 잘해야 되는데 게을러터진 내가 너무 한심했다. 아침을 먹고 기환이형이 오늘은 장군봉 기존길에 간다고 하셨다. 장군봉은 자체 때 한번 가본 곳이라서 어프로치도 대충 알고해서 크게 쫄지는 않았다. 잠깐 쉬다가 슬슬 장비를 챙기고 운행에 나갈 준비를 했다. 다 같이 가는 건줄 알았는데 동형이는 수강신청 때문에 오늘하루 텐돌이를 한다고 했고 현규도 속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간다고 했다. 두 명 다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우리는 동형이랑 현규를 남겨두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정류장을 보면서 자체 때 첫날을 제외하고 매일 버스를 타고 간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깨달았다. 세옥이형이 그리웠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버스정류장에서 두 줄로 서서 구보를 뛰어서 소공원에 도착했다. 두 번 정도 뛰었으면 이제 적응할 만도 한데 내 몸은 뛰어야 한다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걷고 있었다. 장군봉 시작점 까지 앞에 형들이랑 많이 차이나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에 갈 때보다 산멀미도 덜 했고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우리는 앉아서 잠깐 숨 좀 돌린 뒤에 장비를 착용했다. 등반을 시작하기 위해서 백중이형이 선등을 서려고 하시는데 형이 자기는 슬랩 공포증이 있다고 하셨다. 설악산보다 높고 험한 산도 많이 갔다 오신 백중이형도 무서워하는 게 있다니 뭔가 인간적이었다. 형이 선등을 서시는데 저번에 왔을 때 보다 바위가 더 미끄러워서 혹시나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됐다. 백중이형이 볼트 중간쯤에 도착하셨을 때 우리에게 볼트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셨다. 우리는 슬랩 공포증이 있는 형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백중이형이 위를 보시고는 이게 뭐가 다 온 거냐고 하셨다. 이런 상황에서 웃으면 안 되지만 조금 웃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미끄러지지않고 볼트에 퀵을 거시고 1피치까지 무사히 도착하셨다. 역시 백중이형! 이라고 생각했다. 뒤이어 경주형과 애들이 한번은 주마를 써서 한번은 주마를 달고 그냥 등반하는 걸로 했다. 1피치에서 다 같이 사진을 찍고 하강해서 주마가 없을 때 대신 하는 법을 배우고 일찍 하산했다. 바로 베이스로 갈줄 알았는데 형들이 비선대에 들렀다가 간다고 말씀하셨다. 왜 가는지 몰랐는데 기환이형이 비선대에서 맛있는 거 먹고 힐링해서 가자고 하셨다. 우리는 거기서 막걸리와 오징어순대 그리고 파전을 먹기로 했다. 다 같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아저씨가 오셔서 우리에게 서비스로 김치전을 주셨다. 아마 학생이여서 주셨던 것 같다. 그렇게 배터지게 먹고 소공원까지 가려는데 갑자기 속이 미친 듯이 울렁거렸다. 갑자기 많은걸 먹어서 속이 놀란 것 같았다. 나는 화장실까지 천천히 걸어가다가 결국 속을 비워냈다. 욕심내지 말고 조금만 먹을 걸 후회했다. 그러고 소공원까지 와서 또 구보를 뛰겠구나 하고 우울해져있는데 형이 힐링한 김에 끝까지 힐링하자고 뛰지 말고 걸어서 베이스까지 가자고 하셨다. 진짜 감동받아서 눈물 날 뻔 했다.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내려가다가 저녁때 마실 술을 사러 슈퍼로 갔다. 더덕막걸리랑 옥수수막걸리를 샀는데 더덕막걸리는 처음 봐서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아무튼 기분 좋게 베이스에 도착해서 씻은 뒤에 모기장 안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까 사온 막걸리도 마시면서 오늘은 또 어땠는지 얘기하고 한명씩 건배제의를 했다.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피곤해서 일찍 자러갔다.
7월 22일 수요일
나는 오늘 예비수강신청 때문에 운행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평소와 같이 아침준비를 하려고 취사장에 갔다. 경대조 옆에서 밥을 하는데 경민이가 버너를 키다가 가스를 제대로 안 잠갔는지 불이 크게 났다. 다들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못하고 보고만 있는데 저쪽에서 동욱이가 혼자 침착하게 소화기를 들고 불을 껐다. 그렇게 마무리 되는 줄 알았는데 불이 또 다시 났다. 이번에도 동욱이가 아무렇지 않게 불을 껐다. 어떻게 저렇게 침착하고 빠를 수 있는지 신기했고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소화기에서 나온 가루 때문에 물을 다시 끓여야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침을 하고 다 먹고 나서 나는 형들과 애들 배웅을 해주었다. 그리고 조금 쉬었다가 장비텐트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다. 잠깐 서있는데 오늘 운행 나갔던 동형이가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구보를 뛰다가 허리가 아파서 돌아왔다고 했다. 허리가 아픈 게 노적암에 갔을 때 저 위에서 밑에있는 나를 끌어올려주다가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많이 미안했다. 그러고 나는 혼자 피시방에 갔다 올 생각으로 텐트에서 여유 있게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홍석이형이 전화로 남희가 베이스에 오면 같이 점심을 먹으러 밖에 나가자고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점심이 걱정이었는데 같이 가자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런데 남희는 오늘 운행 나간걸로 아는데 왜 다시 베이스로 오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많이 힘들어서 다시 내려온다고 하셨다. 하계가 처음 가는 산행이라 몸이 많이 놀라서 그런 것 같아 안쓰러웠다. 입구 쪽에서 기다리는데 열두시쯤에 남희가 베이스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힘들어 하는 모습이 나랑 겹쳐 보여서 자기보다 체력이 안 좋은 나도 이렇게 있는데 조금만 더 힘내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열두시 반이 되어서 형우형 홍석이형 남희 나 이렇게 넷이서 버스를 타고 이마트근처 정류장에 내렸다. 점심은 칼국수라고 하셨다. 전날부터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형이랑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형우형이랑 홍석이형은 먼저 가보겠다고 하셨다. 남은 우리는 피시방에 가서 수강꾸러미를 했다. 둘이 합쳐서 빠르게 30분 만에 끝내고 다시 베이스로 도착하니 네 시쯤 되었다. 우리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돌아선GP에 갔다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오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 바로 도착해서 조금 놀랐다. 호랑이 제 말하면 온다더니 옛말에는 틀린 게 하나 없는 것 같다. 바로 저녁 준비를 하고 앉아 한명씩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나는 하루 종일 푹 쉬어서 좋았다고 얘기를 했다. 그런데 오늘 등반 갔던 형들과 아이들의 표정은 약간 어두워 보였다. 아무래도 누군가 조금 실수를 해서 혼났던 것 같다. 조금 주눅이든 애들 모습에 나도 다음에 암벽등반을 가게 된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서 형들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행동해서 폐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7월 23일 목요일
오늘은 안동대조와 함께 대청봉에 가는 날이다. 어제 최성주가 베이스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오늘 같이 산행에 가게 되어서 싫으면서 좋았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여유 있게 출발했다. 그리고 안동대랑 같이 가게 되어서 연맹 때 처음으로 소공원까지 갈 때 버스를 타고 갔다. 지수형에게 정말 감사했다. 편하게 와서 비선대까지는 무난하게 걸어갔는데 한참을 쉬다가 오랜만에 산에 가서 그런지 또 어느 순간 갑자기 산멀미가 심하게 왔다. 길은 예쁜데 또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리려던 찰나에 어떤 등산객 한분이 우리에게 지금 입산통제가 되어서 내려가야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잠깐 쉬었다가 하산하기로 했다. 형들은 되게 아쉬운 눈치였다.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서 산행이 아니라 암벽을 했더라면 지금 내려가진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소공원까지 내려와서 안동대조는 버스를 타고 우리조는 구보를 뛰기로 했다. 그런데 최성주가 갑자기 자기도 구보가 뛰고 싶다면서 우리조에 붙었다. 처음 뛰는데 나는 힘들어서 저 뒤에서 걷다시피 했다. 그래서 백중이형이랑 야영장 버스정류장까지 숨을 고르면서 걸어갔는데 기환이형이 조금 화가 나신 것 같았다. 힘들어도 형들이 기다리고 계셨기 때문에 뛰었어야했는데 정말 죄송했다. 나는 텐트에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고 씻으러갔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할 게 없어져서 나는 형들과 애들이랑 기환이형의 허락을 맡고 볼더링장에 갔다. 거기서 백중이형이 우리에게 간접 확보 보는 법을 알려주셨다. 한명씩 해보고 나머지는 볼더링 연습을 하는 걸로 했다. 나는 자체 때 몇 번 해봐서 잘 할 줄 알았는데 등반을 안 한지 좀 돼서 그런지 심하게 버벅 댔다. 옆에서 애들이 도와줘서 겨우 끝냈다. 애들한테 고맙고 미안했다. 한 시간 반 정도 볼더링장에 있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 밥을 하러 갔다. 나는 애들이랑 저녁을 하고 다 같이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한 뒤에 꾸벅꾸벅 졸다가 자러 들어갔다.
7월 24일 금요일
비가 계속 와서 오늘은 모든 조가 운행을 안 나가기로 했다. 일단 일찍 일어나서 아침으로 콩나물국을 하고 대충 먹은 뒤에 자유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잠깐 물파스를 빌리러 경대 텐트로 갔다. 물파스만 가지고 빨리 가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술을 마셔서 그런지 업 된 교정이형에게 잡혀서 노래를 해야 했다. 힘들게 물파스를 빌리고 고기랑 소주를 마신 뒤에 다시 우리텐트로 왔다. 잠깐 잘까 하다가 잠이 안와서 계속 돌아다녔다. 나는 한참을 돌아다니다 지루해져서 다시 경대텐트로 가서 형들과 애들이랑 놀았다. 그렇게 한 두시간정도 놀다보니 저 멀리서 계대조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2박3일 동안 고생을 많이 했는지 지원이를 비롯한 애들이 녹초가 다 되어서 왔다. 계대조에서는 철융이형만 당일로 갔다 온 것 같이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계대조가 쉬고있는 동안 우리는 밑에 OB형들의 타프를 옮기는 걸 도왔다. 다 끝내고 나는 경민이가 좀 있다가 수강꾸러미를 하러 간다고 해서 경대텐트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나갈 때 교정이형도 같이 가야하는데 형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였다. 노철이형은 경민이한테 너는 오늘 절대 피시방 못 간다면서 그냥 포기하고 잠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셨다. 세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었는데 경민이는 울며 겨자먹기로 수강꾸러미를 포기하고 수강신청 때 제대로 하기로 하고 텐트로 자러 들어갔다. 나는 5시까지 계속 텐트에서 놀다가 저녁때가 다 되서 취사장에서 애들이랑 잠깐 얘기를 하고 저녁으로 볶음밥과 계란후라이를 먹고 조금 쉬다가 경일대OB형 두 분이 오셨다고 하셔서 모기장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본격적으로 술자리를 시작하기 전에 형들의 심부름으로 백중이형이랑 매점에서 술을 사러 갔다. 소주5병이랑 막걸리5병과 나쵸 하나를 사갔다. 나는 이걸 다 마실 수 있을까하고 걱정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정도면 백중이형, 기환이형, 경일대OB형 이렇게 네 분만 계셔도 충분할 것 같았다. 우리는 수박이랑 회를 술안주로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특히 현규가 수박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아무튼 나는 OB형들의 여러 말씀을 들으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OB형 중에 한분이 많이 피곤하셨는지 텐트로 가겠다고 하셨다. 기환이형이 나보고 텐트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말씀하셔서 나도 같이 모기장 밖으로 나갔다. OB형 텐트 쪽으로 가고 있는데 형께서 갑자기 이 근처에 다른 학교가 있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조금만 더 가면 안동대 텐트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바로 텐트로 가기는 힘들 것 같아서 안동대 텐트에 들어가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나는 형을 텐트까지 모셔다 드리고 다시 모기장에 들어갔다. 그러고 남은 OB형의 말씀을 듣는데 들으면서 계속 졸았다. 형이 내가 많이 피곤해 보였는지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서 자도 된다고 하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먼저 텐트에 들어가서 잤다.
7월 25일 토요일
비가 안오면 별따에 갈 예정 이였는데 오늘도 역시 비가 많이 와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예비일이 됐다. 애들은 다시 텐트에 자러가고 나는 밖에서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언이형이 학교마다 한명씩 애들을 부르시고는 큰 코펠을 들고 오라고 하셨다. 무슨 일이지 했는데 영남대 OB형이신 운용이형께서 우리에게 매운탕을 나눠주신다고 하셔서 우리를 불렀다고 말씀하셨다. 운용이형이 계신 텐트쪽으로 갔는데 다섯 명 중에 내가 제일 큰 코펠을 챙겨왔다. 나는 제일 큰 코펠을 가져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똑같이 나눠주신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왠지 내가 제일 많이 받은 것 같아서 조금 뿌듯했다. 그렇게 매운탕을 가지고 텐트로 돌아왔다. 다시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취사장에서 잠깐 형들이랑 얘기 좀 하다가 할 것도 없는데 우리 애들이랑 경주형이랑 계대조 애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볼더링장에 구경을 가기로 했다. 볼더링장에 가니까 철융이형이 애들한테 암벽장비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계셨다. 신기한 모양의 암벽화가 있었는데 이름은 모르겠고 어려운 곳을 등반할 때 신는거라고 하셨다. 이어서 탑노핑과 선등자 확보에 대해서 알려 주셨다. 애들 중에서 한 번도 못해본 지원이가 철융이형 앞에서 선등자 확보를 보는데 조금 우물쭈물해서 많이 혼났다. 내가 지원이였다면 주눅이 들어서 아무것도 못했을 텐데 그래도 끝까지 다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대조가 교육 받는걸 뒤에서 구경하다가 우리는 산악박물관에 가야할 시간이 돼서 우리 텐트로 돌아갔다. 나는 박물관까지 당연히 버스를 타고 갈 줄 알았는데 경일대OB형께서 차를 태워주신다고 하셨다. 편하게 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승용차에 7명이 다 타니까 조금 힘들긴 했는데 버스보다 시간도 덜 걸리고 바로 앞에 세워주시니까 좋았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박물관 앞에서 사진을 찍고 들어갔다. 나는 자체 때 한번 와봤기 때문에 별로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두 번 보니까 또 느낌이 새로웠다. 자체때 안 가본 4층까지 구경을 하고 고산체험을 하러 갔다. 자체 때는 평일이라서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다. 모두가 한꺼번에 들어가기 힘드니까 우리조랑 일반인분들이랑 두 팀으로 나눠서 체험을 했다. 어느덧 우리차례가 되어서 백두산 정상부터 체험을 했다. 여기는 자체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았는데 역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는 조금 어지러웠다. 5분간의 체험을 끝내고 안내해 주시는 분이 자기가 고산체질인지 아닌지 알려주었다. 나는 저번에 고산체질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당연히 고산체질이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나보고 고산체질이라고 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손목에 차고 있던 기계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체질이 며칠사이에 바뀔 수도 있는 건가 의아해 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고산체험을 마치고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했다. 택시가 많이 올법한 데까지 쭉 걸어서 4명 3명으로 나누어서 택시를 타고 속초이마트까지 갔다. 내려서 조금 걸으니까 해수욕장이 금방 나왔다. 도착 하니까 경대조랑 안동대조 계대조가 먼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물에 들어가기 싫어서 계속 서있었다. 중간에 애들 몇 명이 나를 물에 빠뜨리려고 손도 잡아끌고 둘러업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제 아무도 신경 안 쓰겠지 했는데 갑자기 동형이가 나를 들고 해변으로 갔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모래사장에 엎어졌다. 쟤가 며칠 전에 허리 아프다고 한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날아다녀서 할 말을 잃었다. 물에 빠지니까 너무 추워서 빨리 모래사장 쪽으로 가서 바닷바람에 옷이랑 머리를 말리려고 했다. 물에 빠뜨렸지만 한번으로는 아쉬웠는지 애들 여러명이 나를 또 바다로 끌고 가서 빠뜨렸다. 진짜 물에 빠지기 싫었지만 그래도 애들이랑 다 같이 바다에서 노니까 재밌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구경하고 웃고 하다보니까 영대조가 도착했다. 역시 애들은 영대조 애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형들부터 시작해서 한명한명 물에 빠뜨리는데 진짜 웃겼다. 다 같이 한바탕 신나게 놀고 베이스로 갈 때 단체사진도 찍었다. 우리조는 바로 베이스로 가지 않고 경대 영대조를 따라서 이마트에 장을 보러갔다. 처음에는 옷이 다 젖어서 직원분이 안 들여보내주셨는데 결국 몰래 들어가서 장을 보는데 성공했다. 무사히 장을 보고 다시 베이스로 돌아와서 다 같이 씻고 저녁을 했다. 저녁으로는 아침에 운용이형이 주신 매운탕을 해먹었다. 가시가 많았지만 정말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 우리는 텐트에서 술자리를 준비했다. 기환이형은 OB형들이랑 마셔서 늦을 것 같다고 우리끼리 마시고 있으라고 하셨다. OB형들이 있을 때와는 다르게 우리끼리 술자리를 가지니까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재밌게 얘기를 하다가 잘 때가 되어서 텐트로 자러갔다.
7월 26일 일요일
오늘은 무박2일로 영대조와 함께 산행을 가기로 했다. 무박이라 그런지 열시 출발로 시간을 많이 주셨다. 6시반에 기상을 해서 밥을 하고 아침을 먹은 뒤에 며칠 전에 오셨던 정민이형과 인철이형에게 인사를 드리고 10시 반쯤에 소공원에 도착했다. 어디로 가는지 자세한 일정을 듣질 못해서 인지형한테 물어보니까 일단 마등령삼거리를 거쳐서 대청봉에 가야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무서운 암벽이 아니라 산행인데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그런지 조금 겁이 났다. 일단 비선대에 도착해서 조금 휴식을 취한 다음에 마등령 삼거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비선대까지 서둘러 걷는다고 초반에 힘을 많이 빼서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산멀미까지 해서 예쁜 길인데도 서둘러 걷지를 못했다. 나는 마등령 삼거리까지 가는 동안 많은 등산객들을 만났는데 모든 분들이 하나같이 나 같은 속도로 가면 원래 일정대로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불안해진 나는 이대로 가다가 나 하나 때문에 진행이 안 될 것 같아서 기환이형한테 먼저 내려가야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기환이형이 물 좀 마시고 조금만 더 힘내자고 하셔서 겨우겨우 삼거리까지 갔다. 도착하니까 영대팀은 이미 공룡능선 쪽으로 출발했고 백중이형 경주형과 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늦게 도착한 줄은 알았지만 한 시간이나 차이 났을 줄은 몰랐다. 오래 기다린 형들과 애들한테 미안했다. 내가 너무 느려서 우리는 공룡능선으로 가지 않고 변경해서 오세암 쪽으로 내려가서 봉정암에서 1박을 하는 걸로 했다. 나는 삼거리에서 행동식을 먹고 힘을 내서 산행을 계속했다. 오세암까지는 쭉 내리막길이라서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또 가는 길에 계곡도 많아서 물 걱정할 일도 없었다. 내리막길이 끝나고 잠깐 쉰 다음에 봉정암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도 길은 예뻤는데 오르막길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뒤처지면 안 되니까 오르막까지는 천천히 걷다가 내리막길이 나오면 무조건 빨리 걸었다. 내가 그럴 때마다 다들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던 것 같다. 중간에 쉴 때도 기환이형이 아까 나랑 같이 걸었던 애가 맞느냐고 하시면서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산멀미만 아니면 처음부터 빨리 가는 건데 아쉬웠다. 힘들게 봉정암까지 가는 동안 백중이형이 10분씩 쉴 때마다 우리에게 부채질을 해주셨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걸어서 그런지 봉정암까지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부채가 이렇게 좋은 건줄 알았다면 출발할 때 챙겨가는 건데 정말 많이 후회했다. 서브색을 내려놓고 의자에 다 같이 앉아서 지친 다리를 풀어줬다. 그 사이에 기환이형과 백중이형은 절에서 1박이 되는지 관계자분들한테 물어보러 가셨다. 우리는 좀 있으면 추워지니까 보온잠바를 입고서 형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10분쯤 지나서 형들이 오셨는데 절에서 1박은 되는데 인당 만원씩 내야 된다고 하셨다. 설상가상으로 남은 자리도 얼마 없다고 하셨다. 우리조 뿐만 아니라 영대조가 잘 곳도 구해야 됐기 때문에 막막해졌다. 이도저도 못하게 된 우리는 가만히 앉아있는데 갑자기 어떤 아주머니께서 남자 세 명이 잘 수 있는 표를 그냥 주셨시고 여자들이 잘 수 있는 곳도 알려주셨다. 감사하지만 우리만 편하게 잘 수는 없으니까 일단 영대조 까지 14명이 잘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기환이형이 세옥이형이랑 통화를 하시는데 영대조가 하산했다는 것 같았다. 같이 산행가기로 했는데 먼저 하산을 했다고 하니까 섭섭하기도 하고 먼저 베이스에 도착해서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대청봉까지 거의 다 와서 내려가는 영대조가 안타깝기도 했다. 우리조는 기환이형과 백중이형 두 분이 밖에서 주무시는 걸로 하고 경주형과 나를 포함한 애들은 안에서 자기로 했다. 형들은 불편하게 주무시는데 우리만 편하게 자서 죄송했다. 내일은 일찍 도착해야 하니까 3시에 기상하는 걸로 하고 저녁으로 절밥을 간단하게 먹은 뒤에 9시 반 쯤에 잠이 들었다.
7월 27일 월요일
어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아주머니께서 세시에 경주형과 나를 깨워주셨다. 덕분에 세시 반에 봉정암을 나설 수 있었다. 아직 새벽이라 헤드랜턴을 켜고 가야했는데 춘계 때 이후로 처음이라서 조금 걱정됐다. 다행히 계속 오르막길이라서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질 위험은 없었다. 야간산행은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벌레들이 자꾸 헤드랜턴으로 날아와서 짜증이 났다. 나는 벌레를 피하고 싶어서 최대한 걸음을 재촉해서 빨리 소청대피소에 도착했다. 10분정도 쉬고 계속 걷는데 소청대피소에서 중청대피소까지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달리다시피 해서 걸었다. 그리고 중청 대피소에서 대청봉까지 가는 동안 점점 밝아져서 해가 뜬 줄 알았는데 아직 안 떴다고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대청봉에 딱 도착했을 때 나는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는 기쁨보다는 대청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뒤에 하나둘씩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아 하늘만 보는데 주변은 점점 밝아지고 아무리 기다려도 해가 뜨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간단하게 사진을 찍고 중청대피소에서 아침을 먹고 하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중청대피소까지 걸어가는데 갑자기 형들이 멈추셨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까 하늘에 해가 떠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릴걸! 아쉬운 마음으로 중청대피소로 가서 라면과 덮밥을 해먹었다. 뒷정리를 하고 잠깐 쉬고 있는데 기환이형이 7시 반이 되면 하산하자고 말씀하셨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왔던 길 그대로 하산을 해서 설악동으로 가는 건데 기환이형이 새로운 길로 가보자며 서북능선을 타고 한계령 쪽으로 내려가 보자고 하셨다. 나도 그냥 하산길 보다는 능선을 타고가는게 좋을 것 같아서 찬성했다. 7시반이 되어서 바로 서북능선 쪽으로 걸어가는데 나는 이게 능선인지 의심이 됐다. 춘계때 태백산과는 전혀 다른 예쁜길이 펼쳐져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형한테 이게 서북능선이 확실하냐고 물어보았다. 맞다는 대답을 듣고 너무 기뻐서 발에 모터를 달고 내려갔다. 쉬지 않고 서둘러서 걸었더니 한계령까지 1km 지점인 갈림길에 9시 30분쯤에 도착했다. 20분정도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빠른 속도로 한계령 까지 갔다. 처음 500m는 가파른 오르막길 끝에 500m는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나는 이곳 이름이 왜 한계령인지 알 수 있었다. 가는동안 정말 발바닥에 불이 나는 줄 알았다. 마지막에 백중이형이 앞에 애들이랑 떨어지지 말고 계속 붙으라고 하셔서 대답은 네 라고하고 형한테는 죄송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똑같은 속도로 걸었다. 그렇게 한시간을 걸어서 한계령 휴게소까지 도착했다. 아무튼 7시 반에 중청에서 출발해서 10시 반에 한계령에 도착했으니까 엄청나게 빨리 내려온 거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속으로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조금 쉬다가 사진을 찍고 버스를 타러 아스팔트길을 쭉 걸었다. 대청봉에서는 분명히 추웠는데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더워졌다. 안 그래도 더워서 힘든데 암만 걸어도 마을이나 버스정류장이 보이지 않아서 짜증이 났다. 결국 한계령 쪽으로 걸어가면서 오색까지 히치하이킹을 해서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차들이 쌩쌩 지나갔는데 20분쯤 지났을까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7명 다 타지는 못해서 경주형과 현규와 동형이를 태워갔다. 조금 걷다가 또 한번 히치하이킹을 하니까 다른 차 한 대가 섰다. 이번에는 한명만 태울 수 있다고 하셔서 형들이 나보고 타라고 하셨다. 형들한테도 감사했고 운전자 분께도 감사했다. 한계령에서 오색까지 차를 타고 가는데도 꽤 오래 걸렸다. 만약에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갔다면 분명히 2박3일이 됐을 것이다. 오색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감사인사를 드리고 경주형과 애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오 분 정도 쉬다가 버스정류장에 들어가서 몇 시에 차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12시 15분차가 있다고 하셨다. 기환이형한테 전화를 드리니 알겠다고 하셨다. 탈수 있을지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딱 맞춰서 형들과 철우가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서 다시 갈아탄 뒤에 속초이마트에 내렸다. 바로 베이스로 가는 줄 알았는데 어디를 가는지 몰라서 형들을 따라 계속 걸으니까 롯데리아가 보였다. 설마 했는데 형이 매장 앞에 가방정리를 대충 해놓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마지막에 이렇게 감동을 주시다니 기환이형께 정말 감사했다. 맛있게 햄버거를 먹고 우리는 하산주때 마실 술과 안주를 사기위해 이마트로 들어갔다. 조금 기다리니까 오늘 운행을 가지 않았던 주연이형 시은이형 지원이 병은이 경민이가 왔다. 다 같이 모여서 수다도 떨면서 즐겁게 장보기를 마치고 다시 베이스로 돌아왔다. 우리조는 씻고와서 자기 개인장비를 다 꺼내고 혹시 다른 학교 장비랑 섞였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술자리를 가진다고 해서 술안주를 대충 만들고 앉아서 그동안의 소감을 얘기하고 건배제의를 했다. 술자리를 가지면서 첫날만 해도 20일이 너무 막막했는데 벌써 마지막 날이라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고 느껴졌고 나는 이번 하계 때 많이 쉬어서 그런지 조금 아쉽기도 했다. 운행 가는 건 정말 힘들지만 내려와서 애들끼리 노는 게 너무 좋아서 하루정도 더 있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대충 우리끼리의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하산주 할 시간이 되어서 그 장소로 갔다. 다 같이 모여 앉아서 한명씩 그동안 어땠는지 말하고 난 뒤에 끼리끼리 모여서 얘기를 나눴다. 나는 이쪽저쪽 돌아다니면서 형들이나 애들의 얘기를 들었다. 가끔씩 나를 보고 형들이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시니까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했다. 술자리가 마무리 될 때쯤에 나는 백중이형이랑 세옥이형이 계신 자리로 가서 두 분의 얘기를 들었다. 두 분 다 나를 보시고는 좀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왜 좀비인지 전혀 공감이 안됐지만 두 분은 격하게 공감하셨다. 아무튼 내일 8시 반까지 영대텐트로 모이라는 말씀을 듣고 애들한테 얘기를 전하고 경민이를 재운 뒤에 나도 잠이 들었다. 내일 집에 간다는 생각에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7월 28일 화요일
연맹 마지막 날이다. 나는 7시 반에 일어나서 경주형과 작별인사를 간단하게 하고 어제 하산주를 했던 자리로 가서 뒷정리를 한 뒤에 내 짐을 챙기고 영대텐트로 갔다. 세옥이형이랑 병언이형 홍석이형 세분은 따로 자체를 일주일 더하기 때문에 짐을 다 챙기진 않았다. 각자 짐을 넣고 9시쯤에 다 같이 설악동을 나섰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버스에서 내려서 아침으로 감자탕을 먹었다. 먹고 있는데 시간이 애매해져서 물치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스크림도 먹고 콜라도 마셨다. 덕분에 더위가 조금 가신 것 같았다. 버스가 도착하고 어택을 짐칸에 싣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앉자마자 잠들었다. 중간에 어느 휴게소에 내렸는데 주연이형이 우리에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냥 다 괜찮은 것 같아서 아무거나 얘기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 내 눈에 옥수수가 딱 들어왔다. 20일 동안 강원도에 와서 옥수수 하나 못 먹고 간 게 마음에 걸렸는데 여기서 먹고 가게 되어서 한을 푼 것 같아 좋았다. 주연이형한테 정말 감사했다. 기분 좋게 버스에서 옥수수를 먹고 또 잠을 자다보니 어느덧 북부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서 경일대 팀과 작별인사를 하고 부실로 가기위해 어택을 메고 있었다. 그런데 지원이가 지금 아버지께서 차를 몰고 북부정류장까지 오고 계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진짜 날아갈 듯이 좋았다. 하계 와서 천사를 너무 많이 만나는 것 같다. 5분쯤 기다렸을까 멀리서 차 한 대가 보였다. 서브색은 안고 타도 괜찮으니 제발 어택만 다 들어갔으면 했다. 그런데 차가 생각보다 짐을 실을 공간이 많아서 어택은 물론 서브색까지 전부 다 들어갔다. 차 내부도 아까 타고 왔던 시외버스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시원했다. 나는 영남대 부실까지 편하게 가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원이 아버지께서 학생회관 앞에서 차를 세워주신 덕분에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3층까지 올라갔다. 부실에 들어가서 각자 짐을 정리하고 형들께서 부탁하신 텐트정리도 다 하니까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학기 중에 갔던 주말산행 뒷정리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빨리 정리를 끝냈던 것 같아서 좋았다. 천사 지원이와 인사를 하고 우리도 바로 부실에서 나왔다. 계속 걸어가다가 영대앞 버스정류장에서 주연이형과도 인사를 드린 뒤에 남은 우리는 음식으로 힐링을 하고 집에 가기로 했다. 1차로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고 2차로는 설빙에서 입가심을 하고 3차로는 봄봄에서 음료수를 마시기로 했다. 1차는 내가 2차는 상혁이가 3차는 경민이가 쏘는 걸로 했다. 그렇게 세 군데에서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고 행복한 기분으로 지하철에 타고 집에 도착했다. 내 20일 간의 하계가 이렇게 끝이 났다.
처음에 하계를 가기 전에는 세옥이형한테 일단 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1박2일 2박3일도 아닌 무려 19박 20일을 춘계 때와 다를 게 하나 없는 이 몹쓸 체력으로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하계 초반에는 많이 힘들기만 해서 하계가 제일 재미있다는 형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점점 지나고 보니 운행자체는 힘들지만 신기하게도 그 속에서 나름대로 재미를 찾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막바지에는 내 체력이 조금은 늘었다는 게 느껴지기도 해서 뿌듯했고 형들이 하계를 왜 제일 좋아하시는지 끝날 때가 되어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또 설악산에서 20일 동안 많은 OB형들과 다른 학교 형들 그리고 동기들과 함께 지내면서 형 동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산행을 가면서 소름 돋는 풍경과 좋으신 분들을 많이 보게 되어서 좋았다. 여름방학 내내 집에만 있었더라면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 없었을 텐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안 가려고 했던 나를 끝까지 설득해주신 세옥이형에게 감사했다. 다음에도 하계를 가게 된다면 내년에 들어올 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진 체력과 지식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많이 노력해야겠다. 자체, 연맹기간동안 많이 부족했던 나를 챙겨준 동기들과 끝까지 친절하게 잘 이끌어주신 형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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