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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시대에 있어서, 왕위를 계승할 후사 문제는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왕가의 건강을 책임지는 어의들은 임신과 출산에 있어 전문적이고 해박한 지식을 갖춰야만 했고, 당연히 한의학은 이 부분에 있어서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헌종은 순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사실 순조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다. 할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아버지 효명세자가 순조의 대리청정을 하다가 4년 만인 22세에 갑자기 타계했기 때문에, 헌종은 8세의 어린 나이에 그 뒤를 이어 즉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헌종의 후사 문제가 온 나라에 걸쳐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헌종 13년7월18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대왕대비가 왕비의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언급하면서 왕실 자손을 이을 처자를 구하라는 언교를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한 달 남짓 후인 8월25일에 부사과(副司果) 이승헌이 40일이 지나도록 왕비에게 한약을 쓰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난임에 대한 한의약적인 치료가 매우 우수함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이 보건대, 한낱 서민의 집 부인도 자궁이 허하고 경도(經道)가 어그러져서 생육(生育)에 방해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다 맥(脈)을 보고 빌미를 살펴 종옥탕(種玉湯)·임자환(壬子丸)을 쓰고, 또 보혈(補血)·도기(導氣)에 관계되는 의약을 널리 구하여 때때로 쓰면 조금씩 나아가 마침내 허한 것이 실해지고 어그러진 것이 조화되어 효험이 있어 잉태하는 자가 열 가운데에서 늘 아홉은 됩니다’라고 얘기한 것이다. 물론 과장이겠지만, 난임 치료의 성공률이 90%라니, 정말 대단하다.
한의학에서는 이제 ‘불임(不姙)’이라는 용어 대신에 ‘난임(難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가임 여성에게 있어서, 임신이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결코 포기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요 근래 통계를 보면, 대한민국 부부 다섯 쌍 중에 한 쌍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임신이 되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부부들에게 90%의 치료효과를 제시하면, 아마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를 것이다.
서양의학은 유물론적인 사상에서 비롯되어 보다 구조적인 부분을 해결하는 쪽으로 발달되어 왔다. 그렇기에 실제 구조적인 이상이 발견된 경우에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구조적인 병변이 발견되지 않을 때는 마땅한 치료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아무런 이상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는 뜻인데, 그렇기 때문에 결국 될 때까지 무조건 많이 수정란을 자궁에 넣어주는 인공수정법을 채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동양의학은 보다 기능적인 부분으로 발전되어 왔기에, 구조의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에도 적용시킬 병리기전과 치료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난임의 주요 원인으로, 자궁을 비롯해서 손발이 차고 냉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기혈순환이 좋지 못하거나, 음혈이 부족해서 제대로 월경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몸에 노폐물이 많아서 비만이 되어 있거나, 음식을 제대로 소화흡수하지 못해 영양이 부족한 등의 경우들을 꼽고 있는데, 의외로 치료율이 매우 높다. 어떻게 보면, 임신이 잘 될 수 있는 몸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의미도 되는데, 실제 국내외에서 한의약 난임 치료의 우수성이 논문으로 발표되고 있다. 만약 주위에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한의약 치료를 병행해보라고 권고해주면 좋을 것 같다. 어의가 정성들여 치료했던 조선시대 왕과 왕비처럼 말이다.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 하늘땅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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