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슬픔에게
-꽃무릇
김세환
아직 남은 달빛으로
바람 비켜서서
며칠째 뼈를 깎아
불면의 불 밝히고
골 깊은 슬픔 죄다 태울 순종의 젖은 꽃잎.
고독한 담금질에
이젠 피멍이 들어
모두 떠안고서도
언제나 잔잔한 속
도도한 붉은 속울음 제 꽃대를 뚝 꺾다.
치자꽃 다시 피다
비우고 또 비워내던 어리석은 지난날에
아침 창가 금침 놓듯 두고 간 짙은 향기
해마다
노란 그리움만 송이마다 영글더니.
지친 밤 허적이다 빗소리 가득한 날
숨결 다독이며 깊이 스며드는
이 아침
젖은 가슴 속 치자꽃 다시 피다.
젖은 오월
그냥 지나려다 자꾸만 돌아다 뵈는
거친 잡풀 속에
밝게 핀 여린 민들레
언제나
편한 웃음으로
안겨오던 꽃이었지.
지난날 동산에서 힘든 가락 다듬더니
맑은 목소리로
지친 가슴 젖게 해도
단 한 번
햇살이지 못해
미안한
젖은 오월.
껍질 깨다
아직도 놓지 못한
어리석은 애증을 향해
쏜 화살 되돌아와
깊이 꽂혀 와도
파계사
저녁 종소리
교만의 껍질 깨다.
비온 뒤 맑은 계곡물
속살 드러내며
풍경소리 품어 안고
조용히 흐르나니,
종장을
휘감아 도는
젖은 시인 돌아보다.
동인동에 가면 1
어머니
발돋움으로
죽 한 그릇 넘겨주시던
그날의 동심만 남은
초등학교 작은 동문
이따금
더딘 걸음마다
마른버짐 다시 돋다.
신을 닦으며
아직 서툰 솜씨로 아내의 신을 닦는다.
긴 세월 접어두었던 꽃물 든 가슴 열고
화창한 꽃비 내리는 봄길
마음껏 걸으시라고.
허기 한 번 채우지 못한 순종의 별난 천성
가난을 털어내듯 내 구두를 닦던 사람
스스로 갇혀 살아온
그 삶의
무지외반증拇指外反症
언제나 출근길에 공손했던 배웅처럼
즐거운 나들이에 가지런한 웃음으로
남은 날
나도 그대 위한
편한 신이고 싶다.
들숨 날숨
한 번
들숨이면
풀꽃으로 술렁이다
편한 날숨 따라
그 바다에 젖던 휘파람
거친 숨
서툰 시 몇 구절
그마저도
소중한 날.
바람꽃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기억하고
파란 이끼처럼 반갑게 돋아나와
힘겨운
내 숨길 따라
다시 피는
나의 시.
거친 발길 아래 마구 짓밟혀도
기침 콜록이는 몇 날을 지새우며
마지막
시 한 구절로 핀
나는 작은
바람꽃.
출처: 정희경 시조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정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