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군 월합면 인촌리에 있는 세종의 왕자 19명의 태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8호. 각 태실은 지하에 석실을 만들어 그 속에 태항(胎缸)과 태주(胎主)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誌石)을 넣고 지상에는 기단·간석(竿石)·옥개(屋蓋)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어느 왕자의 태실이라는 표석을 세웠다.
기단이 일석(一石)이고 간석·옥개도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기단면석부와 옥개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옥개 뒤에는 보주형(寶珠形) 꼭지를 조출(雕出)하였다. 이 곳 태봉(胎峯)은 뛰어난 명당으로 세종대왕의 왕자의 태실을 모아 봉안하였다.
1977년 태실복원 정화사업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세종의 원손인 단종의 태실도 일단 여기에 마련하였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화사업시 석실내에서 토기태항(土器胎缸),분청사기대접(粉靑沙器大接),분청상감연화문개(粉靑象嵌蓮花紋蓋) 등이 지석과 함께 출토되었다. 분청사기는 조선 초기 도자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곳에 봉안된 19기의 태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문종(文宗, 推定)·세조(世祖)·안평대군(安平大君)·임영대군(臨瀛大君)·광평대군(廣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 추정 1977년 보수시 지석 출토)·평원대군(平原大君)·영응대군(永膺大君)·원손(元孫, 1441, 端宗으로 추정, 1977년 보수시 지석 및 분청상감연화문개 출토)·화의군(和義君, 추정)·계양군(桂陽君)·의창군(義昌君 추정, 1977년 보수시 분청상감연화문개, 분청사기대접, 토기태항, 지석 출토)·한남군(漢南君)·밀성군(密城君)·수춘군(壽春君)·익현군(翼峴君)·장(璋)·거(乫)·당(瑭)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