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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일본군이 주류성을 중심으로 한 백제부흥군과 합류할 경우, 총 병력은 5~6만에 이를 것이다. 비록 백제 부흥운동은 정당한 것이었지만, 그 전쟁에 일본을 끌어들인 것은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 들인것만큼이나 많은 문제점이 있다. |
그리하여 마침내 663년 문무대왕은 백제합병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직접 군사를 이끌고 현재 금강유역으로 추정되는 백강 어귀로 나아갔다. 그리고 일본군과 백제군이 합류하기 이전에 백강 어구의 주요지점을 장악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군은 오랜 뱃길에 지친 몸을 쉴틈도 없이 상륙하자마자 신라군과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라 왕 김법민(문무대왕의 이름)은 육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왜인을 백강 어귀에서 만나 네 번 싸움에서 모두 이기고 그 배 400척을 불태우니 연기와 불꽃으로 하늘과 바다물이 붉어졌다.'
문무대왕은 백강 전투에서 일본군을 물리침으로써, 백제와 일본의 연합작전을 완벽하게 차단시켰다. 흔히 우리는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신라의 승리조차 깍아내리려는 역사적 관점을 보곤 하는데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승리는 승리자체로 온당하게 평가되어야지, 우리가 우리역사를 깍아내리면 도데체 어느누가 우리역사를 존중해 주겠는가?
백강전투는 우리나라역사서와 일본역사서에 모두 나와있는 분명한 신라의 승리이며, 이 전쟁을 기점으로 하여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이 땅을 지켜내고 그 가치를 이어가야할 중대한 역사의 기로에 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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