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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회는 사회경제적 성장과 교세 성장을 바탕으로 사회사업을 비롯한 전반적인 선교사업에 구체적으로 사역하기 시작했다. 1968년 한국과 미국 감리교회의 온양선교정책협의회를 통해 동역자 관계를 설정하고, 미선교부의 재산을 한국감리교회에 이양하면서 사회복지법인을 설립을 논의할 목적으로 사회사업연합회를 결성하여 1974년에 사회복지재단 규약이 만들어졌다.
당시 노동운동을 전개하던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지도하며 노동운동을 전개하던 오글 목사가 반정부 활동으로 추방당하고 감리교회의 분열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추후 사회복지사업을 위한 운영독립권을 보장하는 정관을 만들어 사회사업유지재단 이사회가 구성되고, 1984년부터 사회복지법인이 출범하였다. |
전쟁이후 윤락여성에 대한 지도계몽 사업을 실시하여 여성인권이 보호와 매매춘을 금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여선교회를 통하여 자립갱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여성선교에 최선을 다하였다. 또한 60년대부터 도시산업화에 따른 산업선교는 인천산업전도회를 필두로 시작되어 그 목적은 1)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정립하며, 2)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화해관계를 추구하며 3)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를 위한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이 노동굇내獰汰?계속되어 영등포, 성수동, 구로동 및 강원도 탄광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사역에 참여하던 목회자들은 노동자의 현실에 구체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인권회복 및 민주화를 요구하는 정치적 사회 개혁운동의 성격으로 확산되었다. 1980년대 들어 세계의 격변기에 돌입하여 동서대립이 무너지고, 선교100주년을 맞이하여 사회신경을 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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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제정된 감리회 사회신경은 생태계 환경, 가정과 성윤리, 자유와 인권, 평등과 정의, 노동과 분배 정의, 사회복지, 도덕성 회복, 생명공학, 타종교 협력, 평화통일, 세계 평화 등 오늘 한국과 인류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신앙과 실천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하였다.
이 시기에 들어서 독자적인 사회복지관을 설립 운영하거나 지역단체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등 사회선교 사업의 영역을 확대하였다. 사회사업의 확대에 따라 평신도국이 사회평신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
사회복지 사업을 사회복지법인 감리회 사회관 재단과는 별도로 현 감리교 주안원로원 부산부녀복지관, 내리양로원을 기본재산으로 사회 복지재단을 추진하여 1995년 12월 창립이사회를 개최하였고, 1996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사회복지재단으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국가정보화 사업에 따라 보건부의 지원으로 인천 사회복지선교회(구 도시산업선교회)에 감리교 사회복지정보센터를 설립하여 인터넷 서버를 통해 감리교 사회복지정보를 위한 데이어 베이스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덕주 목사 - 한국 감리교회의사회복지 봉사사역의 역사-요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