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앞 아파트
나와의 싸움 시작
1일 1식 아닌 1일 1약, 아니 몰약 먹고 잔다. 조용히 살고 싶은 내 열망이 달아났다. 내가 잠들려고 하면 그들이 일어나서 새벽밥 꼭 먹고 공사를 시작한다. 물론 그들이 뚫는 건 땅만이 아니라 내 뇌이다. 그들이 미운 건 아니다. 절대로 난 그들과 싸울 생각이 없다. 오히려 난 그들을 존경한다. 열심히 사는 그들을 응원한다.
4전부터 인간 딱따구리들이 우리 동네로 몰려왔다. 댕기 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까막딱따구리, 솜털 딱따구리.. 그들과 나의 일과는 정확히 반대이다. 새벽 5시에 자는 나와 5시에 일을 시작하는 그들의 미라클 모닝은 우리를 견우와 직녀처럼 만날 수 없게 했다. 그들은 국적도 다양했다. 세계가 하나가 된 기분이다.
그들을 만날 일은 거의 없다. 언제까지 재개발로 고생해야 하나? 4년간의 고통이 거대한 아파트의 완공으로 탈바꿈했다. 내년에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내 삶인데 내 맘대로 안되는 인생, 재개발 바로 앞 아파트에 사느라 나의 사랑스러운 성격이 이사 갔다. 눈 밑에 다크서클 생겼다.
삭발 밀듯 깨끗이 밀어버린 땅에 45층 아파트가 거의 다 지어졌다. 4년을 저들과 함께 버텼다. 한동안 마이크 잡고 시위해서 달달한 잠을 망쳤다. 평생 들을 일 없는 트롯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도 모르게 외워 버렸다. 그럼에도 난 그들을 좋아한다. 절대로 그들을 비난이나 힐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 마음은 4년간 정든 그들과 함께이다. 그 많던 상가들이 다 사라졌다. 김가네 김밥, 만년 닭강정, 봉구스 밥버거, 동대문 떡볶이.. 나의 소소한 일상을 저들이 다 시원하게 삭발했다. 저들도 시위 시간 동안, 삭발을 하기도 했다.
미국이나 일본은 얼마나 집이 오래되었는지를 자랑하는데 한국은 이상하다. 누가누가 새집에 사는지! 자랑한다. 난 텃새처럼 오래된 둥지를 사랑한다. 각양 각색의 집들이 다양하다. 한국은 이제 어쩌면 같은 성형외과를 이용한 비슷한 얼굴들로 넘쳐날지도 모른다.
사라진 청기와 집도 순두부집도 다 그리움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