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터키 댁의 터키 즐기기 6
이스탄불의 크리스마스 풍경
“터키의 성탄절은 휴일이다? 아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도 교회가 있고 성탄절은 있다. 하지만 전국민이 떠들석하게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나 성당에서 조촐하게 캐롤을 부르며 예수의 탄생을 기리며 예배를 본다.
이슬람 기도 시간을 알리는 코란 암송, 에잔
우리 집의 아침은 에잔과 함께 시작된다. 새벽 5시 반, 해가 뜨기 전 동네 모스크에서 하루의 첫 기도시간을 알리는 ‘코란 낭송 소리’인 에잔이 울려 퍼진다. 해뜨기 전, 오전, 정오 무렵, 저녁 무렵, 취침 전 이렇게 다섯 번의 에잔이 울리는데 금요일 정오가 아니면 시간 맞춰 모스크를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모스크가 있는 곳은 어디나 에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처음 사마티아 홈을 방문한 한국 손님들은 ‘누군가 공식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이게 뭔 소리냐?’ ‘어떤 남자가 중얼중얼 노래 같은 것을 부르는데 무서워서 잠이 깼다’ ‘불경 소리 같은데 이스탄불에도 절 같은 게 있냐’고 한다.
에잔은 아랍어로 낭송하는 코란의 경구이다. 옛날에는 이맘(모스크에서 기도를 인도하는 성직자)이 직접 코란을 낭송했다고 한다. 들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음색과 성량은 유명 오페라 가수 뺨친다. 그 후 도시화 되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모스크 첨탑에 확성기를 달아, 이맘이 마이크 앞에서 육성으로 하기도 하고, 녹음된 에잔을 틀어주기도 한다.
집 안에서 들으면 그저 아득한 노래 소리 같지만 거리로 나서면 그 소리는 한결 크고 우렁차다. 모스크가 나란히 있는 술탄 아흐멧 거리를 걷다 보면 에잔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발음을 멈추게 되기도 한다. 마치 대형 마이크 앞에서 돌림 노래를 부르는 남성 아카펠라 같다고 할까? 아랍어에 까막눈이니 당연 그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뭔가 경건하고 두 손을 모아 잡게 만드는 은근한 매력이 있어 관광객들은 에잔 소리가 담긴 테이프나 시디를 찾는 이들도 있다.
‘땡! 땡! 땡!’ 이 소리는 혹시 교회 종소리?!
인구의95%가 이슬람 신자라는 터키이니 에잔 소리가 들리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오전 8시와 오후 4시 쯤 들리는 땡!땡! 땡! 종소리는 또 뭘까? 믿기 힘들겠지만 교회 종소리다. 남편 이스마일이 태어나고 자랐다는 우리 동네 사마티아는 술탄 아흐멧에서 4km 떨어진 곳인데 비잔틴 항구였던 예니카프의 이웃 동네다. 1500년 이상 로마-비잔틴-오스만의 수도였으니 말 그대로 ‘세계의 수도’였다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전 세계의 상선이 드나들던 큰 항구였던 예니카프는 지금도 땅을 파면 유물이 나오는 유서 깊은 동네다.
그리스말로 ‘모래’라는 뜻이라는 사마티아는 오래 전에는 해변이 있는 어촌 마을이었다. 지금이야 해안도로를 내느라고 모래를 덮고 방파제를 만들어 잔디를 곱게 깐 해변 공원이 들어섰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우리 남편의 생생한 증언!) 해수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운 모래가 있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슬람 인들과 사이좋게 지내던 마을이라 사마티아엔 교회가 많다. 토요시장이 열리는 마마라 잣데시에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 우리 집 앞 여대생 기숙사 옆의 아르메니아 카톨릭 교회, 멜하바 잣데시에 있는 그리스 정교 교회를 비롯 주변에 10여 개의 교회가 있다.
다시 한번 고개를 드는 의문! “터키는 95%가 이슬람 신자라며 왠 교회가 다 있지?”
그래 맞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이교도에게 관용적이었다. 영토를 정복하고도 세금만 꼬박꼬박 내면 종교와 신앙을 지킬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기독교도 인들은 하나 둘 사마티아와 발랏, 베이욜루에 모여들어 교회를 짓고 신앙생활을 하며 각자의 삶에 충실했다. 특히 발랏 지역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의 총 본산 교회인 룸 파트릭 하네(Rum Patrikhane)에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신자들이 성지 순례를 오기도 한다.
오스만 제국이 퇴하고 현대적인 터키 공화국이 시작된 20세기 초에도 아타투르크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지금이야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스인, 유태인,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를 떠났지만, 아직도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은 사마티아에 살고 있다.
이스탄불에는 지역마다 조금씩 특색이 있다. 독실한 이슬람 신자들이 사는 발랏 지역은 히잡 쓴 여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맥주 파는 가게가 없다. 온건한 이슬람이자 사회주의적 색채가 있는 중산층이 주로 모여 사는 가지 마할레시에는 주민 공동체가 남자들만이 가는 카페에서 카드나 벡게이몬을 하며 도박을 못하게 하지만 라마잔 기간에도 맥주를 눈치 안 보고 마실 수 있는 분위기다.
사마티아는 이웃 동네인 코자 무스타파와 달리 슬리브리스 티셔츠를 입은 여자도 보이고 한 집 걸러 맥주 파는 가게가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다. 사마티아 광장의 피시 레스토랑은 이스탄불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드는 라크 전문점 메이하네로도 유명하다. 그 배경은 뿌리깊은 크리스찬 주민들일 것이다. 어쨌든 이스탄불에도 교회가 있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 하지만, 공식적인 휴일은 아니다.
이스탄불의 명동, 탁심의 성탄절
크리스마스, 터키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한마디로 무심하다. 우리나라처럼 한 달 전부터 거리에 캐롤 송이 울리고 대형 건물 앞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반짝하고,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다. 정말 조용하다. 하지만 교회에서만은 활기를 띈다. 터키말로는 ‘노엘 바이라므’라고 하면서 미사도 드리고 예배도 본다.
이스탄불의 명동이라고 하는 이스틱랄 거리에 있는 성 안톤 교회는 카톨릭교회로 성탄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루 다섯 번 에잔 소리가 울리는 이스탄불의 심장에 의젓이 자리 잡은 이 성당은 성탄절 이브에 관광객과 카톨릭 신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성당 마당 한 켠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와 예수의 탄생 장면을 연출해 놓았다. 말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 3인의 동방 박사를 재현한 이곳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성탄절 분위기를 만끽한다. 성당 한 켠에선 경건하게 초를 꽂으며 기도하는 이의 모습도 보이고 제단 앞에서는 이스탄불에 사는 신자들이 성가대를 이뤄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른다. 터키어, 영어,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미사가 있어 원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대다수의 국민인 이슬람 신자인 터키의 크리스마스는 생활 속 깊이 파고 들어 있는 이슬람의 라마잔이나 쿠르반 바이라므 처럼 전 국민이 즐기는 전통 명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경건하고 소박한 기념일이다.
글. 사진 김현숙
‘유행통신’ ‘레이디경향’ 등 10여 년의 잡지 기자 생활을 뒤로 하고 터키 남자와 결혼해 지금은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다. 한인 민박집 사마티아홈(http://cafe.daum.net/samatya) 을 운영하며 한국 여행자들의 여행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이제 정착민의 냄새가 솔솔~ 나신다는 *^^*
언니에게서 소식 들었어요 . 친구 승수라고 해요. 이번에 딸과 터키에 가려고.. 다른 일행과 배낭 여행할텐데 8월 중순쯤 그곳에 도착할 예정예요. 머물 수 있을까요?
큰언니 친구 승수언니에요? 8월 중순 언제쯤인지, 구체적인 일정 잡히시면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