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비야, 너의 그 많은 먹잇감이라니
한상윤
마당 한 귀퉁이의 작약 몇 포기는 다섯 장의 꽃잎으로 해 뜰 무렵 열고 해 질 무렵 닫는 접기놀음을 했다. 그들의 요사스러운 빛깔이며 장난질이 아니라면 작열하는 햇살 속에서 저 푸나무들의 녹음이 얼마나 단조로우랴. 주목, 가죽나무, 늙은 밤나무 그리고 어린 감나무 몇 그루가 푸르름에 지쳐 후줄그레하다. 퀴퀴한가 하면 향긋하고 향긋한가 하면 뒷맛이 모호한 밤꽃 냄새가 농밀하다. 6월 하순, 서른네 송이의 백합이 일제히 향기를 뿜어 댈 때는 꽃잎을 뜯어 넣고 비빔밥을 먹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봄 여름 내내 민들레, 달개비, 애기똥풀, 원추리 등 서얼 출신들이 햇살을 퉁겨내는 장난질로 분주하다. 이들을 즐기는 취향도 버려야할 욕심부스러기인가. 그들의 무성함이 스러져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뒤늦게 확인할 뿐이니.
우리 집 뜰을 벗어나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느티나무 밑에서 작은 삼거리를 만날 즈음 이곳 집성촌 재실이 대각선으로 마주 쳐다보인다. 기와지붕의 암막새와 수막새, 빗물에 말끔하게 씻긴 돌계단, 돌담장이 그런대로 종친들의 자존감을 지켰다. 제사 음식을 맞춤형으로 끝내자는 맞벌이 신세대 며느리들의 반란으로 내면의 깊은 의미는 잃은지 오래다. 가을 추수가 대충 끝나고 산야에 단풍이 들 무렵 유행가 가락이 확성기를 통해 마을을 덮고 나이든 남정네 몇몇이 새벽이슬을 털며 재실 마당을 오가면 제사가 있는 날이다.
골짜기 물은 지난 해 가을 떨어진 밤나무 잎이며 쭈구렁 불밤송이가 질퍽하니 썩어갔다. 돌무더기를 만들어 물을 가두고 수시로 찌꺼기를 쳐내며 애중히 여기던 그 여자의 손길이 뜨악해진 때문일까. 물은 이 마을에 고샅길을 만들어 주느라고 수통을 드문드문 거치고 재실과 작은 텃밭을 비돌다가 마을회관 앞에서 급히 꺾여 2차선 국도 저편의 경안천과 합류, 서울 시민의 식수가 된다.
그 여자는 이곳에서 화마에 휩쓸린 그릇과 옷가지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씻고 빨았다. 오지에서 홀로 당한 난민이었다. 시멘트 블럭의 쥐 끓는 무허가 판잣집이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전기며 물이 끊겨 마을회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불은 지가 냈으면서 누구더러 뭘 어쩌라고. 그 주제에 큰체라니 가당키나 해? 마을사람들의 박대는 노골적이었다. 마을 이장이나 함양박씨 일족 부녀자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 여자의 근성을 큰체라고 표현했다. 그 주제란 외지(서울)에서 들어온 뜨내기이며 자식을 버리고 이혼과 개가를 반복한 경력을 말한다. 그 버릇 개 주지 못하고 노인회장과의 내밀한 호감도가 드러나면서 부녀자들에게는 눈에 가시다. 마을의 공금으로 사들인 휴지를 넉넉히 풀어 쓴다거나 잦은 목욕으로 보일러 기름값과 전기 요금을 올리고, 미장원 출입이 잦은만큼 머리 모양을 수시로 바꾸는 행위, 화장품이나 옷가지를 넉넉하게 사들이는 성정은 부녀자들의 증오심을 극도로 자극했다. 누가 저더러 뒤웅박 신세 되라고 했어. 부녀자들은 화투장을 뒤집고 잦히며 그 여자를 몰아세웠다. 팔베개를 풀고 돌아누우려다가 그 여자는 그만둔다. 이런 때는 기척도 없이 죽은 듯 나 몰라라 하는 수가 장땡이다. 제기랄, 그 『기척도 없이 죽은 듯 나 몰라라』하는 수작도 유효기간이 끝났는가, 속앓이만 더해졌다.
119소방관이 무작위로 뿌려댄 물기가 마를 즈음 짐을 싸들고 마을회관에서 나왔다. 그 여자는 불길에 그을은 보퉁이 살림들 틈에 배불뚝이 오뚜기처럼 단단하고 작게 파묻혀 지냈다. 그 여자 특유의 작은 눈이며 멍청한 눈빛은 부스스한 머리칼 속에서 별스레 반짝였다. 생명체임을 알리는 유일한 물증이지만 섬뜩하다.
이 동네것들과 한 패거리 돼서 나 쫓아내려고 면사무소에 들락거린 거 알아요. 열 두 사람 도장 받아 가지고 면사무소에 갔었지요?
나는 그 여자의 공격에 몰렸다.
평소 김 반장은 그 여자의 소행이 더럽다고 생각했고 하찮은 일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건축업에 단련된 장대한 주먹이 그 여자의 등자락을 툭 쳤다. 에구머니나, 내 허리 부러졌네. 짚단처럼 모로 쓰러진 그 여자와 제대로 시비가 붙었다. 벌집을 건드린 격이었다. 그 여자는 서울 잠실역 근방 노점에서 꽃장사를 하던 시절이 있다. 전후좌우로 서툴게 주차를 시도하던 트럭 백밀러가 왼쪽 귓불을 스쳤다. 애숭이 경찰관 녀석(어느 날 늦은 밤, 느닷없이 들이닥쳐 주정하듯 팬티 고무줄을 늘이어 들여다보는 짓거리를 묵인해 주었더니, 그걸 기억하는 의리있는)의 그럴싸한 증언으로 6개월 간 호의호식하면서 입원 생활을 끝냈다. 더욱이 감동스러운 것은 수중에 들어 온 거액의 위자료다. 이곳 산간벽지의 시멘트 블럭의 오두막집을 장만하게 됐다. 오른쪽 귀의 청력으로 일상생활 유지는 대충 가능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 여자는 김 반장의 폭력으로 허리를 못쓰게 됐다고 경위서와 호소문을 써달라고 졸랐다. 파출소에서 거절하면 청와대까지 올리겠다는 것. 그 요청은 명주실처럼 가늘지만 질겼다. 근방의 안면이 있는 병원에 입원 수속을 밟아 주었다. 김 반장 아내가 달려왔다. 기초생활수급이며 노령연금 받도록 해 준 것도 우리 친정오리버니 덕이며 반장인 우리 남편 덕인 걸 모르다니요. 저 여자 우리 마을 미풍양속을 망그러뜨린 몹쓸 여자예요. 재실 옆에서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 살도록 도와준 사람을 소송에 걸다니요. 면장님한테 진정서 올릴 서류 작성해 주세요. 싸인은 제가 집집마다 찾아가 받을 게요.
옳은 말만 하는 그들 앞에 속수무책, 나는 두 사람의 요청을 모두 도와 준 셈이었다.
동네것들이 별 짓 다 했어도 소용없어. 면장님을 찾아가 통사정 했더니 이렇게 집 지어 줬어요.
방 한 칸, 주방, 거실, 욕실 등 필요 항목이 빠진 것 없는 임시 판넬 오두막집이었다. 볕 고운 남향에 신형 세탁기며 냉장고, 주방기구가 격식있게 배치, 화마가 휩쓸었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이재민에게 보내온 구호의 손길은 대단했다. 꽃무늬의 이부자리, 침대, 의자식 변기, 휴지, 쌀, 하다못해 쓰레기봉투……. 그 여자가 지칭하는 『동네것들』은 동네것들 대로 시나브로 분노를 갈앉히고 마을은 무사한 나날을 보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샅에 묵지근하게 채워졌다가, 휴지통에서 시득시득 말라가는 종이 기저귀의 오줌지린내는 지독했다. 그 여자는 기어다니고 기저귀를 찼다. 나와는 십여 년을 하루같이 오가던 사이였으면서 또 그렇게 뜨악해진 것이 8년 여. 시간이 잡스러운 기억을 퇴색시켰을 터이지만 나는 초연한 체 한다. 그 여자의 아들은 2십여 년 전 추석 연휴에 딱 한 번 찾아오고 소식이 끊겼다. 함께 살아요, 엄마. 세차장이라도 해서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요. 이 말 한 마디를 거절당한 뒤 끝이다. 이제 그의 나이 5십을 넘겼으리라. 아들에게는 다리를 절고 전 남편의 딸아이가 달린 연상의 여자가 있었다. 짝으로 맺어졌을까.
시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어르신 아들, 직장이 강남에 있다네요. 세금 낸 고지서가 확인됐고 추적하면 즉각 찾아낼 수 있답니다.
잘 됐군요.
그렇지 않아요.
돌보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들과 전화 통화가 이루어진 일이 있는가, 생활비가 조달된 일은 없는가, 를 확인해야 한답니다. 전화국에 가서 지난 한 달 동안의 통화 기록을 발급받고, 거래 은행으로부터 지난 한 달 동안의 입출금 내역서를 발급받아 오랍니다. 아들과 연락이 닿았다 싶으면 어르신에게 지급되던 복지 혜택이 줄거나 끊기고 어르신 생계의 책임이 아들한테로 넘어가요. 현재 이 어르신이 누리는 복지 혜택이 월 얼마인지 아세요? 1백만 원이 넘어요. 작가님이 의사 아드님한테서 받는 생활비 보다 많을 수도 있어요. 주 1회 출장 목욕 도우미가 있고 저의 서빙이 하루 4시간 월 평균 80시간, 시간 당 7천 원입니다. 적십자사나 면사무소 복지계, 시청 여성복지과 그리고 이런저런 단체에서 조달되는 생필품 쌀, 김치, 고기, 구운 김, 동원 참치캔은 기본예요. 어느 아들이, 어느 며느리가, 어느 딸이 그렇게 부양하겠어요. 저도 딸이고 며느리지만 그만큼 못합니다. 아들과 연락이 닿아 짐을 지울 필요가 없어요. 피차간에 말이지요.
작약도 백합도 꽃잎이 졌다. 7월 기나긴 장마철로 접어들었다.
우리 어르신, 참으로 똑똑한 분예요. 말귀를 금세금세 알아들으시더군요. 근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지셨어요. 당뇨, 고혈압으로 하루에 드시는 약이 두 옴큼이나 됐잖아요.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만으로 조르는 일이 없어지셨어요.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자, 점쟁이 집에 좀 가자, 티브이 프로그램 ‘그 사람이 보고싶다’ 에 출연 좀 하고 싶다, 하더니 말예요. 전화국이며 거래 은행에서 서류를 떼어 제출했어요. 문제는 당신의 그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는다는데 있어요. 어르신은 죽기 전에 아들이 찾아오면 이 오두막집의 소유권을 넘겨주고 당신은 양로원으로 들어가겠다, 아들의 밥 절대로 얻어먹지 않을 수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자식이 부모 마음을 알아야 말이지요. 살기는 어렵고 덤터기 쓸까봐 나타나고 싶지 않겠지요. 초등학교 때 떼어 놓고 나왔다는데 무슨 정이 있겠어요. 본인이 원치 않으면 연락을 취할 수가 없다네요. 사생활 보호법이래요. 나라의 눈 먼 돈 챙기게 하고 돌아가신 뒤 오두막집 소유권 주장해도 늦을 거 없어요.
돌보미는 녹차 한 잔을 끓여 주더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먹다 남긴 생선회 몇 점이 상추 잎을 깔고 시득시득 말라비틀어졌다. 곰팡이 핀 육회와 신김치는 쓰레기봉투에 털어내고 방금 적십자사에서 전달된 멸치조림, 열무김치, 고등어구이 토막을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는다. 과일 상회에서 수박, 수입산 체리, 바나나, 참외가 배달되고……, 냉장고는 더 이상 공간이 없다. 뇌졸중 환자의 것처럼 깡으로 짧던 반백의 두발이 언제인가부터 우아한 밤색으로 물결쳤다.
젊어지셨네요.
귀고리는 가짜지만 눈부시게 빛났다.
잘 주무시고 잘 잡수시니까요.
돌보미는 시내 양품점 주인이 주문을 받고 배달한 그 여자의 옷가지들을 펼쳐 보였다.
장마가 오기 전에 상표도 떼지 않은 옷들을 곰팡내 때문에 빨아서 궤짝에 챙겨 둔 걸 기억 못하시나 봅니다. 또 이렇게 사들여요. 8십 넘은 나이에 입고 먹고 외양 꾸미는 일만 중요하시다니.
나는 한 마리의 암컷 담비를 떠올렸다.
『…담비는 모피의 질이 좋고 항문선에서 나오는 분비물로 자기의 텃세권을 표시한다. 그 러나 냄새가 스컹크처럼 고약하지 않고 향긋하다.』
가을이 오기 전, 그 여자가 죽었다. 서울 어디 살고 직장이 강남 어디에 있다는 아들과 연락이 닿았다. 화장터로 운구되는 날 아들로부터 간단한 메모장이 날아왔다.
『 …… 면장님, 어머니께서 남기신 오두막집의 소유권은 당 면사무소에 돌려드리며 제가 사회에 보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삼겠습니다. 소유권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동안의 배려와 사랑 감사드리며 불초소생 올림』
약력
• 경기이천 출생
•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65)
• 월간문학에 단편『어머니의 불빛』당선 (‘85)
• 창작집 『고리』『메마른 숲』, 장편 『소설 김대건』(상하),『거친밥 먹고 베옷입기』 『묻습니다』, 연작소설 『침묵지키기, 그 아름다운 슬픔』등
•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 한국소설문학상 / 손소희문학상 / 숙명문학상 수상
• 소설가협회 / 한국문인협회 / 순암 안정복 기념사업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