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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무단장을 향한 제1 적기군의 포풍
광속에다가 완벽한 소련군의 쐐기 형성은 일본군이 만주 동부 요새라인이 무적일 것이라는 확신을 싸그리 무너트려 버렸습니다. 이제 동부 만주에서 벌어진 제1 극동 전선군의 진격의 하이라이트인 무단장 전투의 막이 열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무단장은 만주 동부의 교통 중심지로 만주 동부 철도들의 교차점이었고 만주국의 핵심인 중부 만주로 들어가는 철도가 여럿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군 제1 방면군 사령부이자 이웃인 예후호에는 일본군 제5군 사령부가 있었습니다. 무단장은 무단 강 서안에 위치했고 서쪽으로는 수이펜호, 물렝, 남서쪽으로는 팜미엔퉁, 남쪽으로는 링커우와 통했습니다. 일본군이 이 지역으로 후퇴하기 위해서는 무단장을 거쳐야 했습니다. 무단장 동쪽에는 700에서 1000미터의 고지대인 요령 산맥이 있었습니다. 요령 산맥은 무단장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질르고 있어서 천혜의 장애물이 되어 주었습니다.
무단장과 주변의 지형
지형상의 어려움으로 진격로가 한정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군은 무단장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원래 계획은 요령 산맥과 물렝 강을 중심으로 무단장을 방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군은 첫 번째 방어선을 요령 산맥에, 두 번째 방어선을 물렝 강에 세웠는데 세 번째 방어선을 새로 랴오예흐링 산맥에 세웠습니다. 무단장으로 후퇴한 제124, 126, 135 사단 병력들이 방어선에 투입되었습니다.
무단장 주변에 구축한 일본군 방어선.
일본군은 소련군이 무단장만은 함락시키지 못하며 결국 중부 만주로의 진격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고 있었지만, 당연히 틀렸습니다.
국경에서 벌어진 소련군의 기동전으로 대부분의 일본군 병력이 혼란에 빠져버렸고 일본군 제5군이 설정한 방어선은 서류상에서만 막강했지 실제로는 엉망인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소련군은 무단장으로 어떻게든 후퇴하려는 일본군을 끈질기게 추적하며 그 숫자를 착실히 줄여나가는 중이었습니다.
8월 11일 이후, 일본군 제5군의 방어 지역에서 소련군은 모든 일본군을 압도했고 국경에서 80킬로미터 이상 진격해 들어가 팜미엔퉁, 리슈첸, 그리고 물렝을 손에 넣었으며 남쪽과 동쪽에서 밀산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국경 지대에서 일본군은 완전히 쓸려버렸습니다. 일본군 제135 사단장 히토미 소장은 자오호, 후터우, 밀산에서 퇴각한 패잔병들을 끌어모아 치흐싱에서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는 링커우, 쿵안, 후린의 패잔병들에게 빨리 치흐싱으로 오라고 재촉했습니다.
일본군 제370연대와 만주국군 1개 대대가 마산에서 나와 최대한 빨리 가려고 노력하며 링커우에 도착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369 연대가 퉁안에 남아 일본군의 후퇴를 뒤에서 보호했습니다. 8월 10일 저녁에 제5군 사령부는 제135 사단에 명령을 내려 예흐호로 병력을 배치하는 대신 제126 사단과 합류하여 무단장을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다음 날 368연대의 1개 대대와 370연대의 1개 대대가 예호에 도착해서 무단장 북쪽에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병력이 너무 적어 제5군 사령부는 그냥 치흐싱을 수비할 것을 포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5군은 제126 사단에 팜미엔팅에서 퇴각해 예호로 향하라고 명령했지만 츠후싱툰 지역으로 이미 제126사단이 후퇴한 뒤였습니다. 제126 사단장은 야마기시 중위에게 츠후싱툰과 792 고지를 279 연대의 1대대와 277 연대의 제3 대대, 제31 대전차대대의 1개 중대, 그리고 1개 '돌격'중대(대전차자폭조)를 가지고 지키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근데 일개 중위가 지휘하기에는 너무 많은 병력 같군요.) 야마기시는 제1 대대와 대전차중대, 돌격 대대를 츠흐싱툰 서쪽에 배치해 사단의 철수를 뒤에서 보호했고 제3대대는 792 고지에 배치해 제124 사단의 좌익을 보호하게 했습니다.
제126 사단장 노지모 소장은 예흐호에 도착해 11일에 제5군으로부터 명령을 하달받았습니다. 11일 아침, 제124 사단은 물렝 서쪽에 구축된 주방어선에 도착했습니다. 그곳까지 살아남은 패잔병들도 소련군 정찰 부대들의 후방 급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겨우 재배치를 끝낸 제124 사단은 소련군의 공세를 기다렸습니다. 일본군은 예흐호 북쪽 무단 강에도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마산과 츠흐신퉁에도 제124 사단 병력들이 도착했습니다. 일본군은 고생고생 하며 방어선 구축을 마쳤습니다.
8월 11일 아침에 제1 적기군 사령관 벨로보로도프 상장은 물렝 강 라인을 확보하고 링커우 북서쪽과 무단장 남서쪽으로의 진군을 명했습니다. 일본군에게 재배치와 재정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군 선견대 전차여단들은 빠르게 기동했습니다. 쿠로페츠코이 중령의 제75 전차여단은 제59 소총병군단의 선봉에 서서 제257 전차여단이 제26 소총병군단의 선봉에 설 동안 진격했습니다. 8월 11일 오후에 전차여단은 물렝 강을 도하해 일본군 배후로 기동했습니다.
8월 11일의 상황
제75 전차여단은 제254 소총병연대 소속의 1개 기관총 중대를 증강받고 리수첸에서 마산을 거쳐 링커우로 향했습니다. 제39 소총병사단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벨로보로도프는 전차여단에 링커우의 철도망을 점령해 일본 제135 사단 병력들이 밀산 요새지대에 집결하지 못하도록 만들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12일 0600시, 제75 전차여단이 마산에 접근하다가 흐시아 물렝 강 뒤에서 집결중이던 일본군 제370연대 소속 1개 대대와 만주국군 1개 대대와 맞닿트렸습니다.
장맛비로 강이 범람하는데도 불구하고 강의 2개의 다리는 멀쩡했습니다. 75 전차여단 전차들 몇대가 강을 건너려 다리 위에 올랐는데 일본군이 다리에 설치한 함정으로 인해 두 다리 모두 무너지고 전차 몇대도 손실되었습니다. 열받은 전차들이 강 너머로 포격을 할 동안 여단 소속 공병들이 재빨리 도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 시간에 제39 소총병사단 사단장인 V. A. 세모노프 소장이 마산에 도착해 공세를 준비했습니다.
일본군은 강 북안으로 이동해 소련군의 측면 공격을 방지하려 했습니다. 마산 역 북동쪽 구릉지에 참호를 판 일본군은 본대의 좌측을 보호하려 했습니다. 12일 1100시, 포격 지원 아래 소련 제75 전차여단이 마산 동쪽의 언덕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800시에 제50 소총병연대 예하 제1 대대가 75 전차여단과 합류해 고지의 일본군을 일소하고 포위하며 마산 역에서 일본군을 축출했습니다.
전차와 함께 돌격하는 소련군
마산에서의 전투는 저녁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일본군이 소련군에게 역습을 가했지만 조금 떨어진 투타오로 소련군이 잠깐 물러나게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제254 소총병사단은 흐샤 물렝 강에서 일본군이 파괴한 다리를 복구하고 강을 건너며 일본군을 몰아냈습니다. 링커우로 가는 도로를 지키던 일본군이 전멸하자, 제75 전차여단은 링커우에 입성하고 몇시간 후에 뒤에서 따라오던 제39 소총병사단과 합류했습니다. 일본군은 링커우의 주요 시설들을 불태우고 자살 특공대를 남겨 두어 소련군에게 손실을 입히려 했습니다. 대부분의 일본군이 링커우에서 쫓겨나 무단장이나 북쪽 산악 지대로 도망쳤습니다. 그 이후 제59 소총병군단 전원이 링커우에 집결해 무단장으로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제59 소총병군단이 링커우를 확보할 동안 제26 소총병군단의 제257 전차여단은 팜미엔팅에서 서쪽으로 출발해 흐시엔퉁 역으로 향했습니다. 전차여단의 임무는 적의 방어를 돌파하고 무단장 근처까지 12일 저녁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츠흐싱툰에서 257 전차여단은 야마기시 중위의 지대와 마주쳤습니다. 야마기시의 부대는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지만 소련군 전차에 손상을 입힐 방법이 없어서 결국 서쪽으로 패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57 여단의 T-34 전차 65대는 고지를 넘어 흐시엔퉁으로 향했습니다. 그 동안 야마기시 중위는 그의 패잔병들을 그러모으고 다른 고지로 올라가 소련군을 기다렸습니다. 12일 100시, 제300 소총병사단의 선견 부대들이 포격지원 아래 일본군의 방어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정오에, 강력한 포격이 북쪽에서부터 야마기시의 부대를 두들겼습니다. 잠시 후에 소련군은 북쪽에 자리잡고 야마기시를 압박하기 시작했지만 야마기시는 그 자리에 박혀 함부로 대응하려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소련군은 포격 위치를 바꾸어 야마기시의 부대를 서쪽 고지로 후퇴하게 몰아붙였습니다.
한밤중에, 소련군 보병들이 왼쪽 측면으로 돌아서 일본군을 포위하고 북쪽으로 뻗은 길을 확보했습니다. 야마기시는 역습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포위된 야마기시 지대는 남쪽의 숲으로 도주하다가 아침을 맞았습니다. 야마기시 지대는 400명에서 650명을 손실했고 4문의 대전차포와 2문의 야포, 3정의 기관총을 상실했습니다. 다음 날, 참 불쌍한 운명을 타고난 듯한 야마기시 중위는 남서쪽 산을 넘어 무단장으로 가려 했습니다. 이틀 후, 만신창이가 된 야마기시 지대는 예흐호 북서쪽에 도착했지만 보이는 것은 소련군 뿐이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소련군은 둥칭칭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츠흐싱툰의 일본군을 두들긴 제300 소총병사단은 흐시엔퉁으로 향했습니다. 8월 12일 동안 제300 소총병사단은 야마기시 지대를 도울려고 츠흐싱툰에서 달려온 일본군 부대들과 전투를 벌이고 제257 전차여단은 무단장으로 가는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12일 0900시, 여단은 흐시엔퉁에 도달했고 1시간 동안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습니다. 1900시에 흐시엔퉁 역을 점령하고 일본군의 보급창고를 점령했습니다. 추가로 전차여단은 흐시엔퉁의 일본군 유류창고 4개를 접수하고 남쪽 링커우로 후퇴할려는 일본군으로 가득 찬 열차 하나를 날려버렸습니다.
8월 12일의 상황
일본군의 주요 방어선에 구멍이 뚫린 게 보입니다.
츠흐싱툰 전투에서 소련군은 많은 연료를 소비해서 더 이상의 진격이 무리하다는 말이 나왔지만 여단장 아니쉬치크 중령은 남쪽으로 진격을 속개해 무단 강을 건너 후아린으로 향하는 중요한 철도를 점령하게 했습니다. 13일 0500시, 전차여단은 후아린에 도달해 후아린 역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군은 후아린에서 나오는무단 강을 건널 다리를 지키기 위해 후아린 역으로 향했습니다. 타키카와 소좌는 제370 연대의 1개 대대와 연대 소속 야포 몇문을 이끌고 역으로 진격했습니다. 257 전차여단은 자주포 지원 하에 이 대대와 맞섰습니다. 전차들이 먼저 역을 점령해 버리자 타키카와는 대대를 다리 건너로 후퇴시킨 다음 다리를 포격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다리가 무너져버리자 257 여단은 얕은 도하점을 찾아 강 저편의 일본군 야포에 대응사격을 하며 도하를 시작했지만 도하점 너머의 지뢰지대 떄문에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때 일본군 대전차 자폭조가 포격지원 아래 달려들어서 전차들을 당황하게 만들며 진격을 저지시켰습니다. 대전차자폭조는 자폭에 실패하고 모두 기관총에 사살되었지만 전차여단은 2시간 동안 진격이 정체되야 했습니다.
어떤 양덕이 보드게임으로 재현한 무단장 전투.
찌르는 대전차무기를 든 일본군 자폭병이 ISU-122를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ㅠㅠ)
2시간 후 공세를 재개한 257 전차여단은 다시 달려드는 대전차자폭조를 모두 처리하고 공병들이 지뢰를 제거하자 강을 완전히 건넜습니다.
한편 일본군은 T-34를 파괴할 방법이 없어서 절망해야 했는데 제5군 사령부에서 나온 보고서 하나가 이걸 증명해 줍니다.
"우리 포병들이 적 전차 근처에 지근탄을 날렸다. 그러나 적 전차들이 멈추기는 했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않아 보였으며 장갑도 뚫리지 않았다. 적 정비병들은 여유롭게 우리 앞에서 멈춘 전차를 손보고 있었다. 놈들 얼굴은 우리의 무력함을 비웃는 것처럼 오만하고 건방졌다. "
94식 37밀리 대전차포로 ISU-122를 공격하는 일본군
물론 씨알도 안먹힙니다.
1800시에 아니쉬치크 중령은 전차들을 다시 후아린에 돌입시켜 후아린 역에 방어선을 구축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257 여단은 역에서 후퇴해 북쪽으로 후퇴한 다음 무단 강 유역에 정차했습니다. 일본군의 거센 반격으로 여단은 7대의 전차를 손실했습니다.
8월 13일의 상황
이제 볼장 다 봤군요.
257 전차여단이 정지했음에도 일본군은 또다른 소련군의 전술적 접근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13일 아침에 제135 사단장 히토미 소장은 무단장에서 링커우로 제370 연대의 1개 대대와 1개 포병대대를 불러왔습니다. 소련군이 이곳에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자 히토미는 이 소련군을 막아내기로 결정했습니다. 2010시에 후아린에서 온 열차가 제1 방면군에서 온 증원부대를 타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때 제257 전차여단 소속 전차들이 이 열차를 발견하고 냉큼 쏴버렸다는 것입니다. 히토미 소장과 제135 사단 병사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135사단 병사들의 심정.
히토미는 겨우겨우 패잔병들을 추스려 무단장으로 후퇴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후퇴 중에도 제135 사단 병력들을 태우고 철수하는 열차에도 포격과 항공 공격이 날아왔고 그 결과 6개의 기관차가 날아가고 거기에 탑승한 900명의 병력들이 죽었으며 24개의 야포 30개의 트럭, 30량의 탄약수송차량과 차량 안에 실린 800정의 소총, 100정의 기관총을 손실했습니다.
자정 이후, 아니쉬치크 중령과 그의 제257 전차여단은 휴식을 취한 후 공세를 재개했습니다. 여단으로 다음 날 아침에 증원군이 도착했습니다. 제300 소총병사단과 제22 소총병사단이 팜미엔퉁에서 출발해 2개 돌격포대대를 이끌과 와 제257 전차여단과 합류했습니다. 북쪽에서는 제59 소총병군단이 제75 전차여단에게 남쪽으로 진격해 링커우와 후아린을 잇는 철도망을 점령하게 했습니다. 전차여단이 철도망을 지키는 병력들을 일소할 동안
오직 방해물은 비에 젖은 땅 이었습니다.
아침에, 제1 적기군은 후아린으로의 성공적인 진격을 마치고 무단장 북쪽에서 무단장을 향한 공세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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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래도 여기 일본군들은 꿀리면 재깍재깍 후퇴하긴 하네요. 엉덩이 두들겨 맞으면서 후퇴해서 그렇지, 태평양의 애들처럼 시즈모드 박고 날 죽여줍소 하진 않으니 융통성이 있다고 해야하나
오직 방해물은 비에젖은 땅 뿐이었습니다..--
이 번 연재물은 "대일본제국 임무형 지휘체계의 완성판"이군요.ㅋㅋㅋ하하하
얼마나 혼비백산했으면 일개중위가 저 병력을 지휘하나?! 나머지 지휘관들은 어디로???
그리고 대전차자폭조라는 장면에서
비록 2차대전의 일본군이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