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밴쿠버BC에서 벌어진 전국 아이스하키 리그(NHL) 결승전은 경기장인 로저스 어리나보다 바깥거리가 더 뜨거웠다. 홈팀인 카눅스가 대망의 스탠리컵을 보스턴 브루인스에 빼앗기자 뿔난 팬들이 방화와 약탈을 자행해 도심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밴쿠버BC에선 1994년 역시 NHL 결승전에서 카눅스가 뉴욕 레인저스에 패했을 때도, 작년 동계올림픽 개막일에도 소요가 발생했었다. 이번 난동에선 경찰관 9명 등 150여명이 다치고 점포 50여 곳이 약탈당했으며 경찰차 2대를 포함한 자동차 15대가 불탔다.
이런 스포츠 폭동이 밴쿠버BC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꼭 홈팀이 패할 때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04년 보스턴 레드 삭스가 숙적 뉴욕 양키스를 월드 시리즈 7차게임에서 꺾고 챔피언에 등극하자 홈팬들이 폭도로 돌변했다. 보스턴 도심에서 날뛰는 약탈 방화범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발포한 고무탄 총을 맞고 대학생 한명이 숨졌다.
축구경기에서도 난동은 일어난다. 2000년 남아공과 짐바브웨의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패싸움하다 경찰의 최루탄 세례를 받은 양팀 팬들이 한꺼번에 몰려나가면서 13명이 깔려 죽었다. 1985년 유럽컵 축구 결승전에선 리버플(영국) 응원단이 유벤투스(이탈리아) 응원단 쪽으로 치닫는 바람에 스타디움이 무너져 39명이 죽고 350여명이 다쳤다. 농구경기도 마찬가지다. 지난 1990년 NBA 결승 5차전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꺾고 챔피언에 오르자 디트로이트에서 폭동이 일어나 9명이 사망했다.
최악의 스포츠 폭동은 신라왕조 때인 532년 로마에서 이미 일어났다. 당시 인기 스포츠였던 4두마차 경주(영화 ‘벤허’에서도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에 출전한 4개 당파 중 라이벌 관계였던 두 당파 선수의 응원단이 5일에 걸쳐 난동을 벌였다. 당시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왕궁 공격으로까지 확대된 이들의 패싸움으로 무려 3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약탈과 방화 같은 범죄행위를 빼면 팬들의 난동은 어느 면에선 애교가 있다. 홈팀에 대한 사랑과 성원의 비뚤어진 표현으로 대개는 군중심리에 의해 유발된다. 탈선행위만 없다면 팬들의 성원은 오히려 뜨거울수록 좋다. 팬이 아닌 선수 자신들이 거드름 피우며 게임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팬을 무시하고 퇴장하는 작태를 보인다면 더 큰 문제이다.
그런 꼴불견이 엊그제 스포츠 아닌 본국 정가에서 목격됐다. 미주 한인회총연합회(총연) 회원 70여명이 서울에서 열린 금년 세계 한인회장대회 개회식에서 상석(헤드 테이블)에 “250만 미주동포를 대표하는 남문기 회장 자리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며 집단 퇴장했단다. 원래 그 테이블은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소외지역 출신 한인회장들 몫이었다.
관중격인 한인들에겐 코미디다. 250만 미주동포가 그 모임에 대표를 뽑아 보낸 적이 없다. 한인회도, 그 ‘옥상옥’인 총연도 실상은 몇몇 본국지향 인사들만의 단체이다. 매년 한인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어난다. 작년 LA에선 선거 후 한인회가 두 개 생겼다. 지난달 차기 총연회장 선거에선 당락 후보 사이에 15만 달러가 오갔단다. 역시 코미디다.
내년 본국 총선과 대선에 처음으로 재외국민 투표가 실시되고 본국국회에 미주지역 비례대표 의원이 들어갈 것에 대비해 요즘 본국 정치인들과 미주 한인인사들 사이의 이상교류가 두드러지고 있다. 평소 봉사직을 내세운 한인회장들이 본국모임에서 대접이 시원찮다며 집단퇴장한 것을 보면 이들이 어느 새 본국 정치인들의 패거리 작태를 배운 모양이다.
본국정부가 해외동포 지원정책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인회, 평통지부 등 존재이유가 아리송한 단체들을 끼고돌수록 유사단체가 늘어나고 한인사회가 분열된다. 그럴 돈이 있으면 한인 2~3세를 위한 장학금이나 ‘한류’의 주류사회 진출을 돕는데 쓰는 게 더 명분이 있다. 요즘 미국 대학들이 등록금을 턱없이 올려 한숨 쉬는 한인 학부모들이 너무나 많다.
6-18-11
첫댓글 봉사와 섬김의 의미가 변질되는 시대로군요. 누굴위해 한인회장을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회장직을 수행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러울때가 있습니다.
맑은 물소리님, 일찍 읽어주시고 일찍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도 부인 못할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한인회가 한인사회에 공로보다 폐해를 더 많이 끼쳤다는 점입니다.
눈산님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어느 단체든지 분열되지 않고 뜻을 같이하여 잘 운영하면 얼마나 좋을꼬, 매주 칼럼 쓰시는 것이 얼마나 힘드실텐데 부지런하신 눈산님,
아잘리아님,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