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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장미를 우아하게 들고 프랑스식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
그림설명->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년기 모습 혹은 프랑스에 오자마자 그려진 그녀의 초상화
1. 베르샤유 궁의 이방인, 외톨이
“확실히 합스부르크 공국은 우리 프랑스로 인해 얻는 이득이 많지요. 하지만 태양왕 루이 14세께서 일구어놓으신 유럽 최고의 베르샤유 궁에 하찮은 합스부르크 공국의 왕녀라니!”
“새로운 왕세자비의 프랑스어 실력이 형편없다지요? 종종 독일어도 튀어나온다 하더군요. 대체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께선 어떻게 교육을 시키신 건지.......쯧!쯧!쯧!”
“들으셨습니까?! 어젯밤 샤르트르 공작부인이 잠옷을 건넸는데 왕세자비께서 고맙다며 그녀를 와락 껴안았답디다. 침대 주변에 궁정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이지요. 샤르트르 공작부인이 사람들 앞에서는 체통을 지켜야 함을 벌써 여러 번 강조했는데도 말이지요.”
‘베르샤유의 모두가 날 반기지 않는구나.......대사를 통해 건네받은 어머니의 편지에도 나의 처신에 대한 염려가 많았지.......이 결혼이 정략결혼이며 그렇기 때문에 합스부르크와 프랑스와의 화평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왕비의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어찌나 걱정하시던지.......하지만 소심한 나의 남편은 항상 나 보다는 사냥과 자물쇠 만들기 그리고 돌 다듬기에 열을 올리던 걸!’
말도 잘 안 통하는 베르샤유 궁에서 그녀는 엄청난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그녀가 장녀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를 낳았을 때 그녀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가엽고 어린것, 너는 확실히 그들이 바라는 아들은 아니지만 나는 내 딸을 사랑해. 아들이었다면 아마 넌 내 것이 아닌 국가의 것이었겠지. 내 사랑스러운 딸!! 걱정 말아라. 넌 내가 사랑하고 돌보며 지킬 거야.-
사진설명-> 베르샤유 궁의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의 극치 거울의 방
2. 베르샤유 궁의 화려함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스러움이 전혀 없던 여잔 결코 아닙니다. 다만 당시 유럽 왕실의 왕비가 누렸던 평균 이상의 호사스러움은 결코 누리지 않았어요.
또한 “여자가 권력을 한번 맛보면 나라가 망조가 든다.”고 생각했던 루이 16세는 왕비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여 그녀에게 온갖 패물과 돈을 쥐어주며 귀족부인들과 사교에 전념하라고 부추겼습니다. 헐리웃 여배우 키얼스틴 던스트 주연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보셨던 거처럼 그녀는 매일 밤 샹들리에가 무너질 정도로 수많은 촛불로 화려하게 궁 곳곳을 밝혀두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벌였죠. 그리고 때로는 도박을........이 모든 건 지금 우리의 도덕관이나 신앙관으로는 사치 방종의 죄악이지만 당시 유럽의 모든 왕녀들은 다 이랬데요. 일 년에 두 번씩 36벌의 옷과 장신구를 주문하기도 했다는군요. 팡!팡! 풍성한 거품의 샴페인이 터지고 눈과 입이 즐거운 요리들, 그리고 마카롱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한 로코코 음악에 둘러 싸여 그녀는 결혼생활의 무료함과 권태로움을 달랬습니다.
그러자 그녀를 미워하던 세력들은 그녀의 사치로 국고가 탕진되어간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녀도 전혀 일조하지 않았다곤 할 수 없지만, 이미 프랑스 국고는 루이 14세 루이 15세의 방탕한 생활에 가벼워 질대로 가벼워졌고, 결정적으로는 루이 16세가 미국의 독립전쟁을 전폭 지원함에 따라서 국고안의 돈은 땡전 한 푼도 안 남게 됩니다.
사진설명-> 쁘띠 트리아농, 왕비의 촌락
3. 쁘띠 트리아농 궁
루이 16세가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지은 궁.......일명 왕비의 촌락으로 불리지요. 왕 조차도 이곳에 입장하려면 미리 부인의 허락을 맡아야 할 정도였다는군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대체 여기서 뭘 했을까요? 왕비가 여전히 여기서도 흥청망청 도박하고 술 먹고 파티 연다 더라 등등........ 세간에 널리 퍼진 악 소문과는 다르게 이곳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소, 양, 염소, 말 등등....... 가축을 기르고 친구들과 후레쉬한 우유를 마시곤 했습니다. 이따금 그녀는 아이들과 맘껏 뛰놀곤 했습니다. 루이 16세도 나랏일로 심신이 지치면 미리 허락을 받아두고 여기 와서 피로를 풀었다는군요.
그림설명-> 슈미즈를 멋들어지게 입은 마리 앙투아네트
4.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와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
한마디로 라 모트 백작부인의 다이아몬드 먹튀 사건이라 할 수 있는데요. 사실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루이 15세 말년의 그의 정부 잔느 뒤바리 부인에게 주려는 선물이었습니다. 자그마치 세계 최고급 다이아몬드 647개가 완벽한 조화와 배열을 이루어 완성된 목걸인데요. 루이 15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천연두에 걸려 끔찍하게 죽었습니다.)목걸이를 팔 수 없게 된 왕실 보석 세공자 샤롤 오귀스티 베머와 폴 바상지는 한순간에 쪽박차게 되요. 루이 15세외에는 그 누구도 이 엄청난 목걸이를 살 능력자가 없었으니까요.......그러다가 이 목걸이가 루이 16세와 앙투아네트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이 보석 세공자들은 드디어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팔려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니 하고 기대를 겁니다. 그러나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최소한의 분별력은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차라리 그 돈으로 새로운 군함을 축조하도록 합시다. 참으로 훌륭한 목걸이지만, 우리에겐 프랑스 그리고 부르봉 왕가가 더 소중하니까.”
헌데 말이죠. 본인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베프라고 소문내고 다니는 부인이 있었으니 젊고 아름다운 라 모트 백작부인이었습니다. 그 백작부인이 이 목걸이를 슬쩍할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목걸이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보석 세공사들에게 접근한 그녀는 어떤 영주가 그 목걸이에 관심이 많아 사고 싶어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 영주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로안 추기경이었습니다. 로안 추기경은 오래전부터 젊은 왕비의 총애를 입고 싶어 한지라 라 모트 백작부인의 사기극에 넘어가게 됩니다. 백작부인은 우선 마리 앙투아네트의 대역을 할 만한 매춘부를 찾아서 가짜 왕비 역을 맡도록 하고 로안 추기경과 만나게 합니다. 아주 아주 잠깐동안!!너무 오래 붙여놓으면 추기경이 왕비가 진짜가 아닌 가짜임을 알게 될까봐!!
사진설명->647개의 다이아가 달린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 목걸이(현대의 심미안으론 살짝 촌스러보이는)
아무튼 가짜 왕비는 추기경을 만날 때 “당신은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아시겠지요?”라고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던지고는 추기경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고 홀연히 총총히 사라집니다. 이러한 사기극 이후에 라 모트 백작부인은 추기경에게 다시 접근하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왕비께서 사고 싶어 하시는데 시국이 어려운데 왕비께서 몸소 목걸이를 사신다면 세간에 좋지 못한 인상을 남길 거 같으니 예하께서 왕비님의 대리인 역할을 해 주실 수 없으신지요? 그러면 그 목걸이를 제가 대신하여 전해드리겠습니다.” 여자의 간사한 꾀에 속아 넘어간 추기경은 그대로 합니다. 그리고 그 목걸이는 라 모트 백작부인의 손에!!!
이 대서사시와 필적할 만한 사기극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인, 프랑스의 베르샤유 궁의 영원한 이방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권위는 완전히 실추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간 부르봉 왕가에 의해 뜯기고 뜯긴, 그리고 헐벗긴 프랑스 군중들은 목걸이 사건 이후 라 모트가 재판에 회부되어 한 증언 “(울먹이는 목소리로)전 왕비님께서 시킨 대로 했을 뿐입니다. (돌연 분한 듯이 식식 거리며)왕비님은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여인이세요!”을 곧이곧대로 믿게 됩니다.
그리고 로안 추기경이 연루된 이 재판에서 재판관들의 판결문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역사의 희생자로 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로안 추기경이 계획에 동의한 사실로 범죄가 예측된다하여 유죄로 판결 할 수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경박하고 무분별하다는 평판이 있는 남녀를 곁에 항상 두고 있는바 우리로서는 추기경이 왕비에겐 죄가 없다고 생각하여도 이에 동의할 수 없다.-
그림설명-> 프랑스 전제왕권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이 프랑스 대혁명군에 의해 함락
5.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혁명군에게 함락되다.
로슈포크 르앙쿠르 공작이 루이 16세를 급히 깨웠습니다. 바스티유 감옥이 군중 손에 넘어갔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폭동인가?"(C'est donc une révolte?) 그러자 공작이 "아닙니다, 폐하, 혁명입니다"(Non, sire, c'est une Révolution)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뿐만 아니라, 식료품 가격 폭등, 국가 재정 파탄, 쥐를 잡아먹을 정도로 나라 안에 찌든 기근.......그리고 왕비에 대한 온갖 비방 사치, 방탕(아마도 프랑스 전체가 그녀를 미워했던 거 같습니다.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인인데다가 그녀가 프랑스로 시집가고 나서 합스부르크공국과 프랑스 간 두 차례 전쟁에서 합스부르크 공국의 승리, 그리고 그녀의 오라비 요제프 1세의 탄탄한 국가 운영능력 반면에 빚에 시달려 과거의 영광이 희미해진 프랑스 재정) 그간 사치 방탕했음을 이 젊은 왕비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견디기 어려운건 자신의 아들 장남 루이 조셉의 아버지가 루이 16세가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모함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지고 부풀어져서 그녀에 대한 음란물이 팸플랫화 되어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고 그녀의 사형은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게 됩니다.
1789년 10월 그녀와 루이 16세는 베르샤유에서 쫓겨나 튈르리 궁에 감금됩니다. 1791년 (모짜르트가 죽던 해)에 왕당파 측근의 도움으로 그들은 탈출에 성공하지만 독일과 접경 도시인 바렌에서 이제 프랑스를 떠나 안전해지겠지 하는 안도감에 그녀는 잠시 쉬었다가자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쏘아보던 마을 주민들의 밀고로 혁명군의 손에 넘겨지게 됩니다. 미를 추구하는 걸 좋아하는 게 그녀의 천성이라면 천성이겠지만 되도록 이때 그녀가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엔 샤워나 목욕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 년에 거의 목욕을 안 하던 왕족들과 귀족들은 그들의 꾸릿 내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뿌리곤 했었고, 향수는 오직 상류층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래서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1일에 처형됩니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가 죽고 나서 9개월 후 1793년 10월 16일 단두대의 이슬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끝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의 초상화 모음
오늘은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를 기리며
모짜르트 환타지 kv397
쳄발로의 연주로 감상하겠습니다.
첫댓글 아 감사합니다
말도 많았던 사치의 대명사로 여겼는데 이 글 읽어보며 많이 수정해 봅니다
넹~~사치의 대명사는 맞아요~~근데 딱한 사정도 있더라구요~~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르사이유궁을 갔으면서도 쁘띠 트리아농 궁의 뜰을 걸어보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이해가 여행엔 필수인걸 다시금 느낍니다
^^역사적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유적지를 돌아보면 더 감회는 새롭겠지요^^
요새 읽던 책이 에밀졸라 루공-마카르 총서 20권 중 11권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인데 실제 19세기 중반에 설립된 세계 최초 백화점 봉 마르셰를 모델로 한 소설이지요. 한번 읽고는 내팽겨치기에 아까운 소설이고 심지어는 자나깨나 생각나고 ...그 정도에요~
그 책에 "저게 옛프랑스의 모습이라네~"하는문구 나오는데...백작이 연인과 은근히 글로 주고받는 걸 목격하며 또다른 등장인물이 그리 빈정거리는데...그 "옛프랑스의 모습"이라는 구절에 꽂혔지요...과거라!! 낭만주의자에겐 절대적 단어지요^^그래서 역사는 흥미롭구요~
지난 여름 다녀온곳이라
더욱 정감나게 읽게되네요~^^ㅋ
베르사이유궁으로 통하는
긴 수로 옆 잔디밭에서
피크닉처럼 자리깔고
휴식했던 기억이 나네요~^^
망자르 르보 르브웽 르노트르의 건축예술이♥♥♥♥♥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인용되는 생시몽 공작의 회고록을 요사이 읽으며 그 절대주의시대를 그리고 종말을 다시금 음미하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