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허위 달려 온 인생길, 이제는 쉬엄쉬엄 내려가야 한다. 버릴 것 버리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소유가 미덕이 아니고 향유가 미덕이다. 우선 공간마다 점령한 잡동사니들, 해묵은 옷과 읽지 않는 책, 쓰지 않는 물건. 심지어 이사 온 이래 풀어보지 않은 박스 등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그러면 집안 공기가 순환되고 내 머리도 맑아질 것 같았다. 내친김에 머릿속의 찌꺼기, 가슴 속에 쌓인 원한이나 묵은 상처들도 짐짝에 묶어 버릴 일이다. 아니, 몰아서 버릴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때그때 낡은 것은 미련없이 비워내야 한다. 물건도 마음도 비워내야 자유로운 것을."
버림의 미학 - 최선욱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꿈꾸어 본 적도 없는 미국생활을 온 가족이 같이해 볼 기회가 생겼다. 남편이 교환교수로 나가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와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 이렇게 넷이서 어깨에 맨 가방과 기내용 가방, 일인당 두 개씩 대형 트렁크를 끌며 공항으로 향하였다. 대형가방 여덟 개 속에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당장 필요할 이불부터 밥솥, 김치, 장류, 옷, 책 등이 숨막히도록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가방 무게가 기준치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려고 요리조리 재고 넣다 뺐다를 수십 번 해서 꾸린 짐이다. 마침 1월이라서 두꺼운 옷은 짐꾸러미를 조금이라도 줄일 양으로 껴입을 수 있는 만큼 입어서 우리는 모두 팽귄같이 뒤뚱거렸다. 이 꾸러미 여덟 개와 이웃에 사는 교포들이 준 것, 귀국하는 유학생들이 놓고 간 것, 게러지 세일(garage sale), 무빙 세일(moving sale) 하는 곳에 다니며 주워 온 것들을 보태니 생활에 그리 큰 불편이 없었다. 게다가 세들어 사는 집이 비록 낡은 목조 연립주택이었지만 냉장고와 세탁기, 냉난방 시설과 붙박이장이 갖춰져 있어 의식주가 수월하게 해결되었다. 1년 살고 귀국할 무렵, 남에게 보탬이 될 만한 가재 도구들을 다 넘겨 주고 다시 여덟 개의 트렁크에 짐을 꾸렸다. 미국 들어갈 때 가지고 갔던 식재료들이 빠진 자리에 몇 가지 선물이 들어갔을 뿐 짐은 거의 늘지 않았다. 희뿌연 나의 기억 속 미국 중부 드넓은 땅, 아이오와 주 코라빌 호수 주변엔 그림 같은 집들이 앉아있고,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지던 옥수수밭 초록 물결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빨간색 지붕이 달린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걸으며 로버트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의 아름답고 짧은 사랑과 이별의 여운에 가슴 절절했던 기억도 어슴푸레하다. 뒤돌아보면, 기본적인 살림도구만 갖고 살았던 미국 생활 1년이 내 생애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밀도 있는 삶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온 식구가 합심하여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하루씩 줄어가는 날이 아까워 최대한 즐겁게 살기로 작정했던 시간들이었다.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시간이 흘러 지금 우리 집엔 물건이 자꾸 쌓인다. 우리는 소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건이 쌓이는 원인 중 하나는 사들이기 좋아하는 버릇이고, 다른 하나는 못 버리는 습관 때문이다. 물론 열심히 사 모으고 절대로 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고 소유욕이 도를 넘어 물건들에 치여 발디딜 틈도 없이 갑갑하고 답답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물건을 사 나르지는 않지만 한번 산 물건을 못 버리는 탓에 깔끔한 살림꾼이 못 된다. 정리정돈의 달인이 되려면 잘 버리는 일부터 시작하라는데, 나의 못 버리는 습관은 부모의 생활태도를 물려받은 듯하다. 해묵은 집간장처럼 어머니의 짐은 오래 묵혀졌다. 없는 살림살이로 많은 자녀 먹이고 입히기에 그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으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향집의 빈 마루에는 이불과 옷가지 등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어머니의 손때와 체취가 밴 것들이라서 쉬 버릴 수가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몇 개월 후에야 어머니의 짐들을 버렸다. 헌옷 수거 차량을 불러 싣고 보니 한 트럭 가득 차고도 넘쳤다. 어머니 삶의 부스러기들이 꽁꽁 묶여 남김없이 실려 나갔다. 어머니의 딸로 살아온 나에게도 ‘못 버리는 병’이 잠복해 있다. 쇼핑중독이나 낭비벽보다야 차라리 낫지 않냐고 은근히 자위해 봤자 물건 쌓이기는 오십보백보다. 심리학에서는 못 버리는 것도 일종의 병, 저장강박증이라 하는데 이것은 결핍증이나 불안증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언제 쓸지 모르는 물건이니 일단 버리지 말아야지. 일기장이나 편지 뭉치, 빛바랜 종이에 끄적인 조각글들, 이것도 다 추억이 깃든 글인데 버리면 그만큼 정신적 재산이 줄어드는 거야.’ 심지어 컴퓨터나 휴대폰에서 ‘삭제’를 눌렀다가 주요 정보가 날아가면 어쩌나 조바심으로 정크(junk) 메일도 그냥 놔둔다. 이런저런 생각에 한없이 늘어나는 군살을 떼어내지 못하고 그 속에 묻혀 살고 있다. 허위허위 달려 온 인생길, 이제는 쉬엄쉬엄 내려가야 한다. 버릴 것 버리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소유가 미덕이 아니고 향유가 미덕이다. 우선 공간마다 점령한 잡동사니들, 해묵은 옷과 읽지 않는 책, 쓰지 않는 물건. 심지어 이사 온 이래 풀어보지 않은 박스 등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그러면 집안 공기가 순환되고 내 머리도 맑아질 것 같았다. 내친김에 머릿속의 찌꺼기, 가슴 속에 쌓인 원한이나 묵은 상처들도 짐짝에 묶어 버릴 일이다. 아니, 몰아서 버릴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때그때 낡은 것은 미련없이 비워내야 한다. 물건도 마음도 비워내야 자유로운 것을.
최선욱 ------------------------------------------ 원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 문학박사.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강사 역임. 현재 이리남성여자중학교 교사.
당선소감
언제부터인가 나는 보물을 갖고 싶었다. 그것을 찾으려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나무둥치 밑이나 새 둥지를 뒤져 보기도 하고 개미굴도 파 보았다. 역광에 비치는 꽃잎 속 암술과 수술이 바람에 파르르 떠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내가 찾는 보물은 어디에도 없었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문득 햇빛에 반짝이는 사금파리 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보석인 양 가슴에 품었던 사금파리, 그 위에 빛나는 강렬하지만 기품이 없는 반짝거림은 보석이 될 수 없었다. 지난한 삶의 역정에서 글쓰기가 위로와 치유의 수단임을 어렴풋이 알아갈 무렵 당선 소식을 들었다. 사금파리라도 열심히 갈아야겠다. 보석은 아닐지라도 내가 가지고 싶은 액세서리라도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내 삶의 편린에 날개를 달아 세상 밖으로 나갈 통로를 열어 주신 수필과비평사, 그리고 졸고를 뽑아 주시고 격려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 말씀을 올린다.
"허위허위 달려 온 인생길, 이제는 쉬엄쉬엄 내려가야 한다. 버릴 것 버리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소유가 미덕이 아니고 향유가 미덕이다. 우선 공간마다 점령한 잡동사니들, 해묵은 옷과 읽지 않는 책, 쓰지 않는 물건. 심지어 이사 온 이래 풀어보지 않은 박스 등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그러면 집안 공기가 순환되고 내 머리도 맑아질 것 같았다. 내친김에 머릿속의 찌꺼기, 가슴 속에 쌓인 원한이나 묵은 상처들도 짐짝에 묶어 버릴 일이다. 아니, 몰아서 버릴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때그때 낡은 것은 미련없이 비워내야 한다. 물건도 마음도 비워내야 자유로운 것을."
버림의 미학 - 최선욱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꿈꾸어 본 적도 없는 미국생활을 온 가족이 같이해 볼 기회가 생겼다. 남편이 교환교수로 나가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와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 이렇게 넷이서 어깨에 맨 가방과 기내용 가방, 일인당 두 개씩 대형 트렁크를 끌며 공항으로 향하였다. 대형가방 여덟 개 속에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당장 필요할 이불부터 밥솥, 김치, 장류, 옷, 책 등이 숨막히도록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가방 무게가 기준치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려고 요리조리 재고 넣다 뺐다를 수십 번 해서 꾸린 짐이다. 마침 1월이라서 두꺼운 옷은 짐꾸러미를 조금이라도 줄일 양으로 껴입을 수 있는 만큼 입어서 우리는 모두 팽귄같이 뒤뚱거렸다. 이 꾸러미 여덟 개와 이웃에 사는 교포들이 준 것, 귀국하는 유학생들이 놓고 간 것, 게러지 세일(garage sale), 무빙 세일(moving sale) 하는 곳에 다니며 주워 온 것들을 보태니 생활에 그리 큰 불편이 없었다. 게다가 세들어 사는 집이 비록 낡은 목조 연립주택이었지만 냉장고와 세탁기, 냉난방 시설과 붙박이장이 갖춰져 있어 의식주가 수월하게 해결되었다. 1년 살고 귀국할 무렵, 남에게 보탬이 될 만한 가재 도구들을 다 넘겨 주고 다시 여덟 개의 트렁크에 짐을 꾸렸다. 미국 들어갈 때 가지고 갔던 식재료들이 빠진 자리에 몇 가지 선물이 들어갔을 뿐 짐은 거의 늘지 않았다. 희뿌연 나의 기억 속 미국 중부 드넓은 땅, 아이오와 주 코라빌 호수 주변엔 그림 같은 집들이 앉아있고,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지던 옥수수밭 초록 물결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빨간색 지붕이 달린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걸으며 로버트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의 아름답고 짧은 사랑과 이별의 여운에 가슴 절절했던 기억도 어슴푸레하다. 뒤돌아보면, 기본적인 살림도구만 갖고 살았던 미국 생활 1년이 내 생애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밀도 있는 삶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온 식구가 합심하여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하루씩 줄어가는 날이 아까워 최대한 즐겁게 살기로 작정했던 시간들이었다.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시간이 흘러 지금 우리 집엔 물건이 자꾸 쌓인다. 우리는 소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건이 쌓이는 원인 중 하나는 사들이기 좋아하는 버릇이고, 다른 하나는 못 버리는 습관 때문이다. 물론 열심히 사 모으고 절대로 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고 소유욕이 도를 넘어 물건들에 치여 발디딜 틈도 없이 갑갑하고 답답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물건을 사 나르지는 않지만 한번 산 물건을 못 버리는 탓에 깔끔한 살림꾼이 못 된다. 정리정돈의 달인이 되려면 잘 버리는 일부터 시작하라는데, 나의 못 버리는 습관은 부모의 생활태도를 물려받은 듯하다. 해묵은 집간장처럼 어머니의 짐은 오래 묵혀졌다. 없는 살림살이로 많은 자녀 먹이고 입히기에 그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으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향집의 빈 마루에는 이불과 옷가지 등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어머니의 손때와 체취가 밴 것들이라서 쉬 버릴 수가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몇 개월 후에야 어머니의 짐들을 버렸다. 헌옷 수거 차량을 불러 싣고 보니 한 트럭 가득 차고도 넘쳤다. 어머니 삶의 부스러기들이 꽁꽁 묶여 남김없이 실려 나갔다. 어머니의 딸로 살아온 나에게도 ‘못 버리는 병’이 잠복해 있다. 쇼핑중독이나 낭비벽보다야 차라리 낫지 않냐고 은근히 자위해 봤자 물건 쌓이기는 오십보백보다. 심리학에서는 못 버리는 것도 일종의 병, 저장강박증이라 하는데 이것은 결핍증이나 불안증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언제 쓸지 모르는 물건이니 일단 버리지 말아야지. 일기장이나 편지 뭉치, 빛바랜 종이에 끄적인 조각글들, 이것도 다 추억이 깃든 글인데 버리면 그만큼 정신적 재산이 줄어드는 거야.’ 심지어 컴퓨터나 휴대폰에서 ‘삭제’를 눌렀다가 주요 정보가 날아가면 어쩌나 조바심으로 정크(junk) 메일도 그냥 놔둔다. 이런저런 생각에 한없이 늘어나는 군살을 떼어내지 못하고 그 속에 묻혀 살고 있다. 허위허위 달려 온 인생길, 이제는 쉬엄쉬엄 내려가야 한다. 버릴 것 버리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소유가 미덕이 아니고 향유가 미덕이다. 우선 공간마다 점령한 잡동사니들, 해묵은 옷과 읽지 않는 책, 쓰지 않는 물건. 심지어 이사 온 이래 풀어보지 않은 박스 등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그러면 집안 공기가 순환되고 내 머리도 맑아질 것 같았다. 내친김에 머릿속의 찌꺼기, 가슴 속에 쌓인 원한이나 묵은 상처들도 짐짝에 묶어 버릴 일이다. 아니, 몰아서 버릴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때그때 낡은 것은 미련없이 비워내야 한다. 물건도 마음도 비워내야 자유로운 것을.
최선욱 ------------------------------------------ 원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 문학박사.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강사 역임. 현재 이리남성여자중학교 교사.
당선소감
언제부터인가 나는 보물을 갖고 싶었다. 그것을 찾으려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나무둥치 밑이나 새 둥지를 뒤져 보기도 하고 개미굴도 파 보았다. 역광에 비치는 꽃잎 속 암술과 수술이 바람에 파르르 떠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내가 찾는 보물은 어디에도 없었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문득 햇빛에 반짝이는 사금파리 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보석인 양 가슴에 품었던 사금파리, 그 위에 빛나는 강렬하지만 기품이 없는 반짝거림은 보석이 될 수 없었다. 지난한 삶의 역정에서 글쓰기가 위로와 치유의 수단임을 어렴풋이 알아갈 무렵 당선 소식을 들었다. 사금파리라도 열심히 갈아야겠다. 보석은 아닐지라도 내가 가지고 싶은 액세서리라도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내 삶의 편린에 날개를 달아 세상 밖으로 나갈 통로를 열어 주신 수필과비평사, 그리고 졸고를 뽑아 주시고 격려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 말씀을 올린다.
첫댓글 최선욱 선생님, 버림의 미학을 통한 인생의 자유를 성찰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리고, 더 좋은 글 쓰시길 기원합니다.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작품 버림의 미학을 통해 삶이 가벼워지는 법을 알게됩니다.
좋은 작품 많이 쓰시고 천안서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