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내려온지도 벌써 1년이 넘은 14개월 째를 맞고 있네요.
대부분의 남자들은 혼자지내면 특히 나이먹고 혼자지내면 힘들고 제 때 밥못먹고, 지저분해진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거 전혀 못느끼겠다군요.
혼자 사는 삶이 제게는 더 잘 어울리는 듯 싶네요.
이 글은 작년 늦가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생각나서 옮겨봅니다.
<내 마음의 보석송>
'꽃과 어린왕자'
며칠 전 회사업무차 서산으로 출장을 갔었다.
태안에 있는 거래처에 들렀다가 오후에 다시 서산시 대산읍으로 향했다.
대산으로 향하는 도로는 왼편으로 서해바다가 보이는, 농촌의 향기를 듬뿍 품은 작은 국도였다.
길가에 키작은 코스모스들이 즐비하고 해바라기들도 해를 바라보며 그리움에 서있고
노오랗게 익어가는 벼이삭들이 저녁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그 때 즐겨듣는 라디오 93.9 박승화의 '가요속으로'에서 나오는 노래.
사랑의 듀엣이 부른 "꽃과 어린왕자'였다.
노래 가사만 보면 어찌보면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는 곡이다.
1980년 발매된 옴니버스 앨범 "사랑의 듀엣"에 수록된 곡으로 사랑의 듀엣에는 조진원. 홍종임의 "사랑하는 사람아"를 필두로 "젊은 나무들" 그리고 이 곡까지 다수의 아름다운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곡 '꽃과 어린왕자'는 심명기, 조채환이 부른 곡으로 나름 유명한데 '자전거 탄 풍경'이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론 원곡의 느낌이 더 좋다.
20대 초반,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해서 재수를 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 논현동에 있던 모 입시학원과 근처 역삼동에 있는 국립도서관을 오가며
좌절된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 두 개를 가방에 넣고 새벽 버스를 타고
역삼동 국립도서관으로 가면 나보다 먼저 도착한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메고 온 가방을 긴 줄에 세워놓고 한참을 기다려서 표를 받아 자리를 배정받고 공부를 하다가 학원 시간이 되면 걸어서 학원까지 가서 수업을 듣고 오후 5시쯤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와서 밤 10시 까지 지내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겠지만 돌이켜보면 기억도 나지 않는, 그냥 당연하다고 느끼고 감내했을 무덤덤의 시간.
학원과 도서관을 오갈 때 봄이되고 5월이면, 눈부신 빠알간 장미들이 논현동 부유한 집 정원 가득 그리고 낮은 담장 너머까지 흐드러지게 피었고 젊은 내 가슴 속에도 한 가득 자리잡았다.
그 때 보았던 빨간 장미들은 화려했지만 우울한 색깔이었다.
모의고사 시험성적은 시원찮았고 날씨마저 우중충한 비내리기 직전의 흐린 어느 날
학원수업이 끝나고 걸어서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들어온 이유는 거기서 흘러나오는 노래때문이었는데, 문이 열린 자그마한 카페 안에는 두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남자는 기타를 치며 여자와 나란히 앉아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그 때 그 들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꽃과 어린왕자"였다.
두 사람은 카페의 주인이자 연인인 듯 보였다.
어떻게 그 노래를 모르겠는가.
난 그 카페에 들어가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마셨다.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은 무척 아름다웠고, 내 시선에 수줍어 했다.
그 카페에서 나온 나는 도서관으로 가지 못한 채 거리를 걸었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어디선가 소주를 마셨고,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간 집에는 어머니가 뜬눈으로 기다리고 계셨다.
그 해 말 대학입시를 치렀고, 원치않는 대학에 입학을 했고, 이듬 해 봄 입학식을 마치고 바로 군대에 입대를 했다.
입대 전 버스를 타고 파주 봉일천의 그 작은 가게를 찾았고 거기에서 음악다방 DJ를 그만 둔 Rainbow Eyes 의 주인공 '海美'를 만났고,
그 녀는 내게 헤어진 남자에게 회수한 선물 중 지포 라이터를 내게 건넸다.
그 라이터 뒷면 아래엔 조그맣게 '당신의 해미'라고 씌여 있었다.
그 라이터를 받지 못하고 난 훈련소로 입대를 했다
...
노래를 듣자니 아련한 옛 추억들이 되살아 났다.
볼륨을 크게 해놓고 들으며 따라불렀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바닷바람이 불어 닥쳤다.
창문을 더 열고 음악소리를 더욱 크게 올렸다.
아무것도 아닌 옛추억을 떠올리는 노래 한 곳에 눈물이 흐르다니...
갱년기인가. 아아 시바
...
'꽃과 어린 왕자'
밤 하늘에 빛나는
수 많은 저 별들 중에서
유난히도 작은 별이 하나 있었다네
그 작은 별엔 꽃이 하나 살았다네
그 꽃을 사랑한 어린왕자 있었다네
꽃이여 내 말을 들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어린왕자 그 한 마디 남기고
별을 떠나야 하였다네
꽃은 너무나 슬퍼서 울었다네
꽃은 눈물을 흘렸다네
어린왕자는 눈물을 감추며
멀리 저 멀리 떠났다네
한 해 두 해가 지난 뒤
어린왕자 돌아왔다네
하지만 그 꽃은 이미 늙어버렸다네
왕자여 슬퍼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렸어요
꽃은 그 말 한 마디만 남기고
그만 시들어 버렸다네
어린왕자는 꽃씨를 묻었다네
눈물을 흘렸다네
어린왕자의 눈물을 받은 꽃씨는
다시 살아났다네
라 라라 라라라 라라라
꽃은 다시 살아났다네
라 라 라라라 하늘가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첫댓글 내용중 '당시의 해미'에서 왠지 모를 애절함을...허허
어느 하늘 아래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 쯤 보고 싶다네.
물론 만나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지.
예전 기억과 환상이 깨지니까 말야.
예전 추억과 음악이야기 하면서 술 한 잔 했으면 좋으련만 ...
ㅋㅋ 갱년기~~~~한표^^
김관장님은 그런거 없지유? ^^
@한상섭 ㅎ참나~~.사람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요~.공감하니까 갱년기라고 한거지~ㅋ ㅋ
@한상섭 하나엄마는 갱년기같은거 없을거라는 생각.
왜 그럴까 ...
선입관인가 -.-;
좌절중인 청춘의 시간을 견디며 감내해야하는지 피해야하는지 왔다갔다 하는중입니다.ㅠㅠ 이 시간이 훗날 제게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합니당~ 잘읽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있는 법이다.
젊을 때는 앞이 안보이니까 더 크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일 뿐.
회피하는 것보다는 담담하게 흐르는대로 내버려두고 지켜보는것도 좋지.
영화 '라라랜드' 에서 그런 대사가 나오잖니.
we're just gonna wait and see
we're just gonna wait and see 라는 말에는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담담히 수용하자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결코 회피하거나 방임하는 건 아님을 잊지말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