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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 선생님!
끝내 선생님께서 먼저 가셨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도 아니면서, 그 방역수칙 때문에 선생님 입원하시고 병문안 한번 못한 채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평생염원이셨던 ‘시장원리’가 아닌 사람중심 세상, 침략외세 없는 자주통일 세상을 끝내 못 보시고 병마를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때로는 허약해 보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모습의 몸도 마음도 그 철저한 의식세계도 의연하셨는데 선생님 찾아뵙고 겨우 두 달 사이에,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만 열 번 넘게 전화를 걸어 주시며 “권 선생, 집주소 좀 찍어줘요. 지금 바로 택시타고 갈 터이니까”라며 그렇게 당장 만나고 싶고 말씀 나누고 싶어 하시던 선생님의 정이 철철 넘치던 모습, 이제는 옛이야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분지』의 작가 남정현 선생이 21일 오전 10시 향년 87세로 타계했다. 사진은 2013년 ‘민족시인 이기형 선생 통일애국장’ 추도식에서 호상 인사를 하고 있는 남정현 작가.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10월 13일,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드는 날이었습니다. 둘은 반갑게 만났고 늘 다니던 산채정식집에서 밀린 이야기 나누며 점심을 같이했고, 선생님 집구경 특히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 구경하며 기념촬영까지 하면서 동병상련 마음으로 병마를 이기고 좋은 세상 꼭 함께 보자고 다짐했었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가셨습니다.
돌이켜보니 우리들 만난 지가, 60년대 말쯤이니 50년이 지났습니다. 외세와 분단시대 누가 그 해악의 주범이고 침략자이고 가해자인지, 군사 쿠데타에다 유신독재까지 그 패악시대를 풍자하던 선생님 작품세계에 흠뻑 빠졌던 때였습니다. 구중서, 임헌영, 신상웅 당대를 풍미하던 문인들과 어울리며 헤어지기 아쉬워하던 시대였습니다.
불의와 모순에 맞섰던, 그리하여 그 부당한 권력의 긴급조치와 국가보안법 등으로 여러 해 핍박받고, 그리고 또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어느 때부터인가 선생님의 주옥같은 글을 읽던 제가, 수십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조국통일을 위한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온 비전향 장기수들 문제를 비롯한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 공안기구 해체, 침략외세 철거, 자주통일문제 등을 <한겨레신문>이나 <통일뉴스> 등에 쓰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마치 그 어떤 작품을 읽고 평을 하는 것처럼 전화를 걸어 격려해 주셨습니다.
6~70년대가, 제가 선생님의 독자였다면 90년 이후에는 선생님께서 저의 거친 글을 읽어주셨습니다. 뒤에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왜 그러했는지 그 사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6.15남북공동선언이야말로 ‘최고의 문학작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천만 민족을 감동시킨 이 선언을 지키느냐 아니냐는 ‘통일과 분단, 애국과 매국을 가르는 시금석’이라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추구하는 문학은 무엇일까? ‘인간을 사랑하는 작업’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람사는 세상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셨고 그 현실이란 정치, 경제, 문화 등 인간활동의 모든 것을 말한다 하셨습니다. 결국 문학예술은 사람 세상의 모든 활동의 반영이고 불의와 모순을 고발하고 광정(匡正)하는 임무까지 있다할 터였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새로운 질서에 대한 낙관론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눈앞의 질서가 ‘시장원리’라면 머지않아 ‘인간원리’로 전화될 것이라는 낙관론이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오늘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를 이룬다는 시장논리는 오늘 전 세계적으로 그 무슨 부양책이라하는 긴급재정정책 등으로 그들이 비웃고 있던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하는 일들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며 그 무슨 민주주의 표본이라고 하던 나라가 오늘 민주주의 파산상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빈부격차, 인종차별 등 지옥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인간 원리, 사람 중심주의는 바로 우리 민족의 홍익사상,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상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질서에로의 전화는 우리 민족 고유사상에서 뿐만아니라 현대의 사람중심사상에서 찾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낡은 질서에서 새 질서로의 전화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불의와 모순에 대한 투쟁은 필수요건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정의와 평화를 위한, 침략외세 배격과 자주통일을 위한 빈틈없는 투쟁이 요구되고 있다 할 터였습니다.
끝으로 선생님께서는 식도락을 즐기셨습니다. 혜화동로터리 인근에 있는 ‘손칼국수집’은 옛날부터 유명하여 자주 들렸는데 지난 여름 어느 날 마침 황건, 노중선 선생님과 그 집에 계시면서 전화를 주시어 저는 서울대병원의 진료시간을 늦추면서 칼국수집으로 달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고양시 장흥면 울대리에 유명한 도토리묵집(맛도 잊지 못하여)의 교외 나들이를 하며(넷이서) 쫄깃, 쫄깃한 독특한 맛의 도토리묵 식도락을 즐겼고 도봉산 오봉의 위용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우이동 4.19국립묘지 입구 단골 찻집을 찾아 식도락과 동지애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다짐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만남과 대화에서 또하나 주변사람들 주의를 끈 것은 선생님 글들 속의 문장력 못지않게 논리성과 문법적 완결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소중했던 시간은 이제 더는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선 국가보안법, 침략외세도 없는 세상에서 오랜 염원 기다리시며 편히 쉬시기 빌겠습니다.
2020년 10월 22일
권오헌 드림
북 김여정 1부부장 담화, “강경화의 망언 두고두고 기억할것”[추가] 간결한 담화...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 언급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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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북한 코로나19 방역 관련 발언을 비판했다. 사진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만찬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북한 방역조치에 대한 언급에 대해 ‘망언’이라며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으로 대미, 대남 발언을 이어온 김여정 제1부부장의 8일자 ‘담화’를 보도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며칠전 남조선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행각중에 우리의 비상방역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앞뒤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랭기를 불어오고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 제1세션 '코로나 팬데믹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제공 - 외교부]
강경화 장관은 지난 5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바레인에서 온오프로 진행한 마나마 대화에 참여해 “북한은 여전히 어떠한 (확진) 사례들도 없다고 말하지만 믿기 어렵다”며 “북한 정권이 스스로 없다고 얘기하는 그 질병을 통제하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19 확산으로 북한에 대응 지원을 제안했으나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며 “조금 이상하다. 북한이 더욱 북한다워졌다”고 말했다. 북한의 폐쇄적 태도가 “조금 이상한(odd) 상황”이라는 것.
북한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공식 확인하는 한편, 국가비상방역조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남측의 코로나19 방역 협력 제안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그 속심 빤히 들여다보인다”며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되여야 할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남북관계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강경화 장관의 발언에 대해 김여정 제1부부장이 콕집어 문제삼으며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랭기를 불어오고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비판한 대목은 더 이상 남북관계 악화를 바라지 않는 입장으로 풀이될 수도 있어 주목된다. 담화도 짧고 간결하다.
한편, 김여정 제1부부장은 대미, 대남 현안들에 대해 북측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으며, 지난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예고 담화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비판 담화를 내놓은 바 있다. 지난 7월 10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인사를 포함한 장문의 대미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남조선외교부 장관 강경화의 망언 두고두고 기억할것이다--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담화--
며칠전 남조선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행각중에 우리의 비상방역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
앞뒤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랭기를 불어오고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다.
그 속심 빤히 들여다보인다.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되여야 할것이다.
주체109(2020)년 12월 8일
평 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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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12월 초까지 북 코로나19 확진자 0명”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0/12/22 [12:06]
북에서 12월 3일까지 코로나19 확진자는 0명으로 보고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1일(현지 시각) 발표한 아시아 지역 코로나19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북에서 11월 27일부터 12월 3일까지 791명이 코로나19 감염 여부 검사를 받았으나 모두 음성으로 나타났다. 이달 3일까지 북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사람은 모두 1만164명, 시료의 수는 2만54개로 10일 간격으로 테스트 결과 확진 사례는 없었다. 12월 3일까지 격리 해제된 사람은 3만3천223명이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남과 북, 두 분 정상께 드리는 서신[기고] 강종헌 NPO법인 '삼천리철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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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헌 / 재일동포, NPO법인 『삼천리철도』 고문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존경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님!
2020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두 정상께서는 지금 이 시각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방역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니 남북 간의 교류와 왕래는 여전히 차단되어 있으며 그리운 고국을 찾아가지 못하는 해외동포들은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번 감염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정체와 후퇴는 일시적인 것이며 멀지 않아 우리는 다시 두 손을 마주 잡고 민족공조의 시간을 복원시킬 날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역사적 상봉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통일뉴스 자료사진]
재작년, 판문점과 평양에서 이루어진 두 분의 감격적인 상봉을 그저 지나간 과거사로 역사 책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회담에 임하면서 김 위원장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낙심을 주게 됩니다. 다시는 이행하지 못하고 원점에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합치고 의지를 모아서 손잡고 나아갑시다.”
문 대통령님도 같은 심정이셨기에 “남북의 국민들, 그리고 해외 동포들의 기대가 아주 큽니다. 그만큼 우리 두 사람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라고 화답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의 합의내용 중 제대로 이행된 항목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6.25전쟁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단계적인 상호군축의 실현, 철도와 도로의 재연결과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사업의 정상화는 온 겨레가 큰 박수로 환영한 합의사항들입니다. 어째서 이행되지 않은 것인지, 그 누가 방해하고 있는 지, 분명히 밝혀 내야 합니다.
두 분께서 거듭 확인하신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에 입각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의 간섭에 흔들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동맹국도 같은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종속적인 한미동맹의 질곡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남북 두 정상의 합의보다 한미 간의 군사동맹을 상위에 두는 순간, 아까 언급한 합의사항들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맙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보유하는 기득권은 바로 정전체제와 분단 상황에 기인하며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역대 미국 정부가 지향하는 국익입니다. 트럼프 정권이든 차기 바이든 정권이든 이 점에 있어서는 어떠한 차이도 없습니다.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실무협의를 잘 마무리해도 한미 워킹그룹에서 거부하면 아무 것도 진행되지 않는 한심한 상황은 굴욕을 넘어 분노 그 자체였습니다.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도 오죽하면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종속변수가 아니다”고 연설하셨을까요. 그러나 대통령님의 말씀은 남북관계의 독자적이며 우선적인 개선 노력과 과감한 실천을 통해서만 설득력을 갖습니다. 미국 정부의 허가와 승인을 전제하고 유엔 제재의 틀 안에서 추진하는 남북관계에 머무르게 된다면 김정은 위원장님을 납득시키지도 못하고 현재 상황을 타개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중지를 선언하고 향후 5년간에 총예산 300조원을 투입할 엄청난 군비 확장계획을 시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발하는 군사행동을 보란 듯이 강행하는 것은 모처럼 조성된 신뢰관계를 훼손하고 상호 군축을 약속한 판문점선언에도 역행하는 처사입니다.
또한 대통령께서 금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호소하신 6.25전쟁의 종전선언이 공식화되어도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합동군사연습을 계속한다면 실질적으로는 정전상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종전선언」과 「법적인 정전상태의 계속」이라는 모순은 피해야 합니다. 본래 모든 군사동맹은 공통의 “적”을 전제로 하여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동족인 북을 적대시하는 한미동맹은 냉전 시대의 유물이며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채택한 우리 민족의 현재와 미래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2018년 9월 20일 백두산 정상 장군봉에서 손을 맞잡은 두 정상. [통일뉴스 자료사진]
한편, 김정은 위원장님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갖고 계시는 인간적인 신뢰는 다른 국가원수들과의 관계보다 훨씬 소중한 것으로 사려됩니다. 판문점과 평양, 그리고 백두산에서 함께 보내신 시간은 미국이나 중국 수뇌들과의 친교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오랜 냉전과 분단 세월에 걸쳐 구조화된 종속적인 한미관계의 제약을 문재인 정권하에서 단숨에 극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현실적이지도 않습니다. 단계적으로 실행할 수밖에 없고 그것도 북측의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하겠지요. 또한 남쪽에는 분단체제에 기생하여 남북관계의 파탄을 노리는 세력이 엄존합니다. 그들은 문 대통령을 공격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김 위원장님께 필요한 것은 남측 정부와 사회에 대한 햇볕정책 (포용정책이자 화해협력정책)의 전개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 위원장님이 작년 신년사에서 표명하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의 무조건적인 재개”는 매우 중요한 제안이었습니다. 제반 사정으로 실현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제 때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원래 이들 두 사업은 민족 내부의 공동사업으로 유엔 제재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우선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의 남측 관련 기업을 초청하셔서 재개를 위한 남북실무협의를 시작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평양선언에는 「남과 북은 전염성 질병의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비롯한 방역 및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합의 조항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합의를 이행할 시기가 아닌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 민족에 있어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분단 바이러스」입니다. 상대에 대한 불신과 적대의식을 증폭시켜 화해와 협력의 의지를 말살시키는 것이 「분단 바이러스」의 고약한 증상입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통일 백신」으로 예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백신은 아무도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공조하여 생산해 내야만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님이 10월 10일에 하신 연설 내용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
마지막으로 두 분 정상께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일시적인 불신과 대결을 이겨내고 화해와 협력을 향해 다시 두 손을 굳게 잡아주시기를! 다음 번 정상회담을 꼭 개성공단 지역에서 개최하시기를! 그 자리에서 온 겨레에게 「남북연락사무소」의 재건을 약속하시고 온 세계를 향해 「개성공단과 금강산사업의 즉시 재개」를 소리 높이 선언하신다면 더 이상의 민족적 경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 우리 재일동포들도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두 분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 드리며.
2020년 12월 12일
NPO법인 『삼천리철도』 고문 강종헌 올림
박정희 쿠데타의 희생양이 되어
당시 박정희 쿠데타 세력은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대학생과 진보 세력의 민주화 요구를 제압하는 것이 시급했다. 박정희 자신과 친인척의 과거 남로당 관련 경력으로 인한 미국의 의구심도 해소해야 했다. 박정희 쿠데타 세력에게 〈민족일보〉와 조용수는 이런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조용수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송지영은 1969년 출소했다. 출소 후 송지영은 문예진흥원장과 KBS 이사장, 광복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중앙정보부가 ‘북한 간첩’으로 지목해 조용수를 처벌할 매개자로 활용했던 이영근은 이후 자유로이 서울을 방문하고, 자신이 일본에서 운영하던 〈통일조선신문〉 서울지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1990년 사망하자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조용수가 사형당한 뒤 일가족이 겪은 신산한 세월을 동생 용준씨는 이렇게 말했다. “〈민족일보〉 창간에 재산을 쏟아부은 우리 가족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 뒤 풍비박산 났다. 어딜 가나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에 숨쉬기조차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다.” 용준씨가 연좌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형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신원에 나선 때는 2006년이었다. 그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민족일보〉와 조용수 사건’을 진정했다. 진화위는 박정희 쿠데타 군부의 간첩 조작 및 사법 살인으로 규정했다. 진화위는 결정문에서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은 당시 5·16 쿠데타 주도 세력이 철저한 반공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주고 대내적으로는 쿠데타 장애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불법으로 저지른 사건”이라고 밝혔다.
용준씨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008년 법원은 재심에서 조용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언론인 조용수는 명예를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용수 사형 58주기를 지낸 용준씨에게 〈민족일보〉와 조용수 사건은 아직 끝난 과거사가 아니다.
“위기에 빛나는
<평화통일동학부엉이>(약 평동부)식구로 귀하를 초대합니다!" 최신!
1998년 한 기업인의 1001마리의 소 떼 방북과 2000년 김대중 - 김정일 두 지도자께서 이룩한 6.15공동선언으로 민족통일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통일에 대한 기대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였습니다.
2018년 역사적 4.27 판문점선언으로 우리민족 최대의 숙원인 민족의 자주적 통일이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온 듯 했습니다.
지금 파주 통일대교에서는 이재강 경기 부지사가 집무실 설치를 요구하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습니다. 천막 사무실을 차리고 농성한지 36일차입니다. 민통선 안 도라산공원에 집무실을 마련하는데 유엔사가 제동을 걸어 무산된 것에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녹두 전봉준 장군의 생가근처의 <이교부 통일운동가>는 ‘미군이 철수할 때 그들과 같이 태평양을 건너가려면 태극기 부대에 나가라’는 동학-천도교 수운회관의 <2022년의 통일론> 특집을 우리 평화통일신문에 편집 인쇄하여 우편으로, 지인들의 모임과 통일 세미나에 특히 광화문광장에 선물하고 있습니다.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05
금년 4월 15일의 총선에서 서울은 더불어민주당이 41석, 미래통합당은 8석으로 그리고 전국은 압도적인 180석의 민의를 많이 받은 문재인정부는 그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많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속에 있습니다.
(서울 사진) 주간동아
발행인 고순계는 많은 통일운동가들을 취재하며 만났습니다. 특히 월남전 연구의 대가인 ㅅ의사를 만났습니다. 평화통일신문은 이 분을 ‘체게바라’라고 부릅니다. 그는 <2022년 통일완료>의 엄청난 통찰력의 예언가입니다. 그는 깊은 명상을 하는 전문의로서 월남 참전 전우들의 지적을 주목합니다. 월남과 한국은 쌍둥이라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전우들의 이야기에서 ㅅ 의사는 한국은 "곧 통일이 된다!"고 선언합니다.
광화문을 지키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제안합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화문 갈등을 광장의 중심에 조선의 명장 이순신 장군은 무엇이라고 할까?
당시 왜군을 향한 지원군을 <항왜원조>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6.25에서 미국의 참전을 하여 조선을 도왔던 중국군을 <항미원조>라고 합니다. 촛불과 태극기의 서로 다른 주장을 지켜보는 이순신 장군은 어떤 갈등 치유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우리 평화통일신문 임원들은 2021년 새해부터 국민들이 <평화통일동학부엉이>(약 평동부) 식구가 되어 동학가치의 평화통일 3가지 실천의 리더십을 제안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가슴속에서의 통일시대를 대비한 리더십 개발자, 통합자 그리고 모범자로서의 역할입니다.
첫째 서학개미는 친미반북의 동아 조선일보와 함께 동학개미가 보는 경향 한겨레신문도 볼 것을 제안합니다. 아니 나아가 북의 언론도 인터넷을 통해 봄으로서 광화문광장은 정반합의 공감으로 변해가는 토론장이기를 학수고대합니다. 해서 지금 광화문광장은 서정협 서울시장이 펼치는 진짜광장으로 태어나리라는 신념입니다.
진보와 보수, 촛불과 태극기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가 아니라 서로 다르다(different)의 합으로 나아가면서 진짜광장으로 탄생하는 개발자로서의 리더십을 주목합니다. 인간의 불변성은 가변성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45
둘째 민족(民族) 없는 서학 개신교도는는 <동학-천도교, 월불교, 단군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등>도 함께 나감으로서 우리는 서로의 소통속에 역지사지하면서 통합자가 됨을 주목합니다. 경기대학교 사회학 노태구 명예교수(민족사상연구소 소장)는 민족종교와 개신교를 지그재그로 즉 짝수주와 홀수주를 나누어 예배 - 시일식에 나가는 상생의 통합자가 되면서 통일의 문턱에 임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에서 '휘파람' 자동차로 민족혼을 물들이는 문선명-한학자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통큰 종교지도자는 동학과 서학의 통합자 종교지도자라고 <종교통합국민운동본부> 장영희 회장은 말합니다.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56
셋째 고향이 이북 통천에 대한 애착이 정주영의 소떼방북을 만든 것일 수 있겠지만 외세에의한 분단은 남과 북의 지도자들은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어느 누구도 반대편의 다른 한쪽을 이해하기보다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괴물에 의해 예단하는 것을 주목합니다. 그 점에서 정주영의 기업의 이윤을 통일에 기여하는 이문의 상술이 아닌 상생의 상도의 모범자를 주목해야 합니다. 제2. 제3의 정주영을 발굴하여 평화통일의 활화산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평화통일신문은
모범자, 통합자 개발자로서의 평화통일동학부엉이 리더십으로 장재설 민족 서예가가 만든 부엉이를 만들어 보급하고자 합니다.
부엉이의 부릅뜬 큰 눈은 통찰력을 엄청난 발톱과 부리는 결단력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이를 전국의 가가호호에 전해지다보면 가화만사성을 그리고 대한민국은 더이상 바다한가운데에서 맴돌기를 멈추고 기울어진 분단은 통일의 향해 힘찬 전진하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80
'달마도'로 유명한 한 스님은 "가정이나 사업장에 부엉이를 걸어 두면 액운을 막아주고 복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갖고 있으면 <까 말까형>의 의사결정을 못하고 갈등을 겪을 때 포구방향 이 방향"하는 통찰력과 결단력이 부엉이로부터의 생기감응으로 조직의 안정과 목표를 향한 힘力과 편안함이 솟아나오는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면서 부엉이를 소개합니다.
민족서예가 장재설 선생님과 원광대학교 이재봉 교수님과 월광스님의 3인 합작으로 신비의 영험함이 담긴 부엉이 작품입니다. '목표가 없으면 배는 항구를 떠나지 못한다'면서 조직의 장들이 부엉이를 비치할 것을 제안합니다. 무엇보다 남과 북의 리더가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민족애재무장(民族愛再武裝)의 항심 미덕이 내면화되기를 기원하는 민족서예가가 각자 개인에게는 복은 부르고 재앙은 물리치고, 나아가 나라에는 분단을 접고 통일을 부르는 독특한 서체의 붓글과 함께 부엉이를 가가호호에 비치하기를 기다립니다.
지인들에게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월 3만원>의 동학부엉이식구가 되면서 가능합니다.
주소를 010-6615-4271로 입력하면 "복은 부르고 재앙은 물리치는(개인) 그리고 통일은 부르고 분단은 물리치는(나라) 신비의 영물 부엉이와 평화통일신문과 항심 민족서예가 장재설 선생님의 글(민족서체)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민족서예가 장재설 선생님의 작업실은 서울 중구 을지로218, 425호로 을지로 5가쯤?의 지하상가로의 <크로바 S.K>를. 전화 010-5287-3389로 전화하시여 만남을 약속하시면서 우리 <평화통일동학부엉이>라고 하시면! 다양한 부엉이를 직접 확인하시면서 통일담론을 펼치면서 우리 평화통일신문도 확인하면서... 이벤트 행사에서 많이 뵈었을 대형붓글씨로의 분위기를 만드는 장선생님과 부친의 이야기까지 들어보실 것을 제언합니다.
평화통일신문은 전면(全面)광고로 동학부엉이동지의 이름을 편집합니다!
강종일 중립화방안연구소 / 장명하 평화통일촉진본부/ 크로바SK/ 동학민족통일회 / 범민족연합/ 평화재향군인회/ 서서울생활고등학교 조동래 서울통일관 관장/ 장호권 사상계 / 남이랑북이랑/ 단군조선연구회/ 민족사상연구소/ 대전 뿌리공원 전국 문중 6대회장 이석구 박사/ 백윤선 4.19 국가유공자/ 월참참전개혁연대/ 격암유록의 미래 통일론을 연구하시는 종교통합운동본부/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평화통일시민연대(이장희)가 평화통일동학부엉이는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안겨줄 것이라면서 동참의사를 알려왔습니다.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님이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겨레통일문화상>의 상금을 우리 평화통일신문에 성금으로 내놓으셨습니다.
전 현대그룹의 임원으로 조선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낸 장해성 자문위원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이재봉의 법정증언>(들녘 발행 15,000원)을 전 <평화통일동학부엉이>(약 평동부)식구들에게 선물하면서 성공을 기원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평화통일동학부엉이는 통일과 안보, 촛불과 태극기의 보-혁 동지들에게 이 기획문을 카톡으로 퍼날라주시기를 소원합니다.
** <평화통일동학부엉이혁명> 설명회
일시 : 매주 화요일 11시,
장소 : 3호선 안국역 3번출구 현대그룹 끼고 100미터 재동초등학교 정문 앞 <베트남식당> (전화 02-744-1868),
설명 : 고순계(평화통일신문 발행인) 점심 식대 1만원을 국민은행 90815061561(마을공동체넷, 고순계)로 입금하시고 전화 010-6615-4271호 전화를 주시면 선착순 4명에게 설명회를 갖습니다!
<통일숨운동본부>(김태갑 박남근)가 꿀잠 단전호흡을 선물합니다.
<평화통일신문> 상임대표 설용수 /공동대표 백윤선 이석구/ 편집인 김순덕 김영승 /기자 김선태 이병제 채은샘/ 기획 윤순이/ 자문 선상선 이재봉 홍수표/ 감사 한정애/ 발행인 고순계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12(우편번호 03062)/ http://cafe.daum.net/tongilnews
문의/ 010-6615-4271/ 전자우편주소/joil615@hanmail.net
국민은행 601101-04-010157(예금주 평화통일신문/고순계)
하나은행 162-910173-59507(예금주 평화통일신문/고순계)
국민은행 90815061561(마을공동체넷/ 설명회) * 코로라19로 당분간 4명 한정
** 광화문 상단/ 통일 안보의 동지들이 추천한 모범 사업소로 사업주의 공감이 이루어지면 평화통일신문을 비치할 것입니다.
고려삼계탕(737-1888) 광화문설롱탕(720-2701) 단군문화원(723-0083) 부산꼼장어(070-8621-8856)조선김밥(723-7496) 큰기와집(722-9024)
미국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우리 민족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것은 민족통일의 길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싫건 좋건 미국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비극과 고통을 주며 우리 민족의 발전에 큰 저해요소로서 현재까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분열은 우리 민족 성원들이 원해서 그리된 것이 아니다. 분열의 원인은 외세에 있으며 그 외세는 일본 군국주의의 조선 강점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있다. 즉, 일제와 미제가 우리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가로막는 민족분단의 원흉이다.
미제는 일본의 조선 침탈과 그 일본의 조선침탈을 지지하고 지원했으며 우리 민족분단의 직접적 기획자다.
미제가 일본의 조선 침략에 어떤 일을 했는가를 알고 기억하는 것은 미국에 대해 환상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매우 필요한 일이다. 수십 년을 미국에 대해 대한민국을 지켜준 고마운 존재로 학습되어 그 인식의 외피가 돌처럼 굳어져 매우 견고하지만, 그 미국에 대한 환상을 벗어 던지지 않는 한 우리 민족의 진정한 발전은 없다.
미제가 일본의 조선 침략과 강점에 대해 미국의 태도와 물질적 지원을 보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미제는 일제의 무단통치가 조선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3.1운동에 대해 미국무성은 “조선 문제는 순전한 일본의 내부 문제인 것만큼 우리 필리핀에서 폭동이 일어난 경우와 동일하다. 폭동진압을 위하여 일본 정부가 취한 태도에 관하여 여러 가지 아름답지 못한 보도가 있으나 이는 극히 의심스럽다. ···일본이 특히 가혹하고 잔인한 조처를 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라는 본말전도의 공개적인 성명을 발표하였다.
미제는 3.1인민봉기이후 일제침략자들이 실시한 보다 교활해진 문화통치에 대해서도 문화통치가 “조선을 위하여 새롭고 훌륭한 날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그에 의하여 조선 인민들의 정치적 상태가 “현저히 개선” 되였다.는 망발을 하였다.
일제에 대한 미제의 지원은 이런 말로만 그친 게 아니다. 물질적 지원도 방대하게 진행되었다.
1938년에는 3,500만bbl의 석유를 일본에 공급하였으며 이 밖에도 알루미늄과 아연, 동, 파철을 비롯한 전략물자들과 엔진, 자동차, 비행기 등 수많은 군수물자들을 일본에 대주었다. 미제는 일제에게 전략물자뿐 아니라 현대적인 군수 공장들도 넘겨주었는데 1939년에 새로운 설비와 기계로 가와사끼비행기공장을 지어준 것은 그 대표적인 실례로 된다.
미제의 이러한 지원은 태평양전쟁 도발 직전까지 계속되였으며 그것은 군사전략 물자의 부족을 크게 느끼고 있었던 일제로 하여금 침략전쟁을 장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한 중요한 물질적 조건으로 되었다.
미제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수탈에 의하여 살길을 잃고 앞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많은 불쌍한 조선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리스도교의 교리로 그들의 마음에 파고들어 많은 조선 사람들에게 미국에 대한 환상을 심는 일도 잊지 않았다.
미제는 조선에 대한 경제·자원에 대한 약탈도 자행했다.
1889년 당시 미국공사 알렌의 주선으로 20만 원의 헐값으로 운산금광리권을 강탈하였으며 일제의 조선강점이후 일본의 '재팬 마이닝' 회사와 결탁하여 조선의 4대 금광인 운산, 수안, 창성, 직산 광산의 금채취권을 독점하였다. 1939년까지 미제는 조선에서 80여t에 달하는 막대한 금을 약탈하였다. 당시 미국이 경영하는 광산들에서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노예와 같이 혹사하였는데 '노다지'라는 말도 이때 나온 것이였다.
아시아에서 식민지재분할을 목적으로 발생한 태평양전쟁은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이 유지해온 식민지 이권에 대한 소유 관계를 파탄시켰으며 국제관계 전반에 새로운 국면을 조성하였다.
일제와 적대관계로 변함에 따라 미제는 조선에 대한 침략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1942년부터 조선의 '점진적 독립'과 '신탁통치'에 대하여 떠들기 시작하였다.
1942년 8월 미독점자본을 대변하는 잡지 '포춘'은 “조선인들이 자기 나라를 통치할 능력이 없다.”, “이 나라를 위해서는 미국의 참가하에 국제적인 '도움'를 줄 수 있는 과도기를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신탁통치안을 실현하기 위한 군불을 때기 시작한다.
카이로선언(1943. 11.22.~27)에서 조선을 적절한 절차를 밟아 독립시킨다는 문구를 작성하여 조선의 독립에 관심을 두는 것처럼 하면서 테헤란회담(1943. 11.28.~12.1.)에서는 루즈벨트가 조선사람이 독립을 얻으려면 약 40년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얄타회담(1945. 2.4.~11.)에서는 그 기간은 “20~30년으로 끝날것으로 생각한다.”라고 그 기간을 다소 줄인다.
그러나 미국은 이전부터 조선에 38분할선을 궁리해 왔고, 포츠담회담 당시인 1945년 7월 25일경 헐 중장 등이 착안하고 있다가 일본이 1945년 8월 10일 항복하자 1945년 8월 11일 경에 미국대통령 트루먼의 지시에 따라 미육군성 전략정책과의 작전참모들인 챨스 본스틸과 딘 러스크 등이 직접 38°선을 조선의 분할선으로 확정하였다.
38선 분할선을 조작한 미제는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며 조선을 '독립'시킨다는 허울밑에 1945년 9월 8일부터 10월 말까지 남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을 완료하였다.
국제법적 견지에서 볼 때 다른 나라에 대한 강점은 패전국에 한하여서만 적용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일제를 반대하여 오랜 기간 싸운 나라로서 패전국이 아니였으며 적국의 영토가 아니었다.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시기 여러 국제협정들에서 조선의 독립에 대하여 인정하였다. 따라서 미제의 남조선강점은 철두철미 비법적인 침략이였다.
미군사령관 하지는 1945년 12월 12일 “남조선에서 유일한 주권은 미군정청뿐이다.”라면서 남조선각지에 인민들에 의하여 세워진 인민위원회들을 강제해산시켰다. 1946년 2월 미제는 군정법령 제55호로 정당등록법을 조작공포하여 해방후 합법적으로 활동하고있던 공산당을 비롯한 모든 민주주의적정당, 사회단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해산시켰다. 미제는 1946년 5월 15일에 정판사위조지페사건을 날조하고 공산당을 비법화하였으며 수많은 당원들을 체포구금하였다.
1945년 9월 16일 지주, 예속자본가, 친일파들로 구성된 '한국민주당(한민당)'이 만들어 진다. 한민당은 미군정의 여당으로 활동하였다. 미군정의 제반 정책에 매우 충실하게 협조했고, 1947년 이후에는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미국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한민당은 1949년 민주국민당, 1955년 민주당으로 확대 개편 하는 등 1950년대 이후 이합집산을 거듭했지만, 현재의 민주당에 이르렀다.)
그후 1945년 10월 저들이 관리해 온 주구인 이승만을 미국으로부터 남조선에 끌어들인 미제는 1946년 2월 '군정고문'제 대신 이른바 '대한민국대표 민주의원'이라는것을 조작하고 이승만을 그 의장자리에 내세웠다. '민주의원'의 기만성(미군정사령관의 자문기관)이 폭로되자 1946년 12월에는 이른바 '입법의원'을 조작하였고 1947년 2월에는 군정청행정부의 민정장관으로 조선인으로 임명했으며 5월부터 미군정의 한국인 기관을 '남조선과도정부'라고 고쳐부르게 하였다.
일련의 이 과정을 미군정청이 민정이양을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실권은 미군 고문에게 있었다. 이런 것이 소위 주구를 내세워 통치하는 신식민지인 것이다.
해방 직후 노동자·농민들은 일본인 재산을 접수하고 자주적 관리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미군정은 남조선경제를 '적산'이라는 미명밑에 송두리채 강탈하였다.
'적산'이라는 말은 원래 승전국이 패전국의 재산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미제는 일제가 가지고있던 남조선의 모든 재산을 '미군정청'이 접수한다고 포고하고 '적산'의 명목으로 남조선주식회사총자본의 91%, 남조선재산총액의 80%를 강탈하였다. 이렇게 강탈한 '귀속재산'을 친일친미파, 모리간상배, 투기업자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주어 예속자본가들을 육성함으로써 경제적침략의 기반을 닦았다.
해방 직후 우리 민족의 자치를 무시하는 미군정의 정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민중들의 불만을 높여갔다. 마침내 9월총파업과 10월항쟁이 발생하였다.
미제는 남반부에 자신들의 이익 관철에 복무할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조선문제를 유엔에 끌고갔다.
미제는 미소공동위원회를 파탄시키고 남조선에서 친미 정부를 조작하기 위하여 저들의 입김이 지배적인 유엔을 이용하였다. 이로부터 1947년 9월에 조선문제를 유엔에 상정시키고 11월 14일에는 '유엔임시조선위원단'을 조작하고 그의 감시밑에 선거를 실시할 것을 결정을 한다.
유엔임시조선위원단은 1948년 1월 8일에 조선에 들어왔다. 우익진영은 '유엔조선임시위원단 전국환영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이승만·한국민주당·독립촉성국민회 등은 환영성명을 발표해 남반부만의 즉각 선거 실시를 주장했다. 좌익진영은 2․7구국투쟁을 벌여 단선·단정을 분쇄하기 위해 떨쳐 나섰다.
3월 25일 당시 북조선은 평양방송을 통해 4월 14일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 개최를 제의했다.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는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남반부만의 단독선거의 반대투쟁을 전개할 기구로 '남조선 단선반대투쟁 전국위원회'를 조직했다.
남북연석회의가 끝난 4월 26일과 30일 '4김(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회담'이 열렸고, 동시에 남북 지도자 15인으로 구성된 '남북지도자협의회'가 결성․운영됐다. 4월 30일 남북조선 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 명의로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공동성명서가 발표됐다. 이 성명서의 골자는 '미․소 양군 철수, 내전방지, 미․소 양군 철수 후 전조선정치회의를 소집 및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과 입법기관 선거 실시 및 통일적 민주정부 수립, 남반부만의 단독선거 반대' 등이었다.
가장 큰 규모의 단선반대투쟁은 4월 3일 제주도에서 일어난 항쟁이었다. 이에 미군정은 군경·서북청년단을 내몰아 야수적탄압과 학살만행을 대대적으로 감행하였다.
제주 4·3항쟁은 이후 강경진압을 위해 제주도 파병이 예정됐던 전남 여수 주둔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도 파병반대!'를 외치며 10월 19일 봉기했다. (여순 사건)
대한민국 정부와 주한 미 군사고문단은 강력한 진압작전을 전개해 반군에 점령된 지역을 탈환할 수 있었으나 이들이 주축이 되어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빨치산 투쟁이 시작됐다.
이런 총력투쟁에도 불구하고 미제는 유엔 소총회에서 1948년 2월 26일에는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 실시에 관한 결의를 강압통과시켰고, 미군정은 1948년 5월 10일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감행하고 8월 15일에는 이승만정권을 세웠다. 이후 9월 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로서 우리 민족은 끝내 분단되었다.
우리는 미국이 남녘땅의 공산화를 막아 주어서 고맙게 여겨야 할까.
민족이 두 동강이 나면서까지 지켜야 할 이념이란 없다. 체제는 어떤 정치세력을 위해서 펼요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구성원(인민·국민)이 자신들의 이익에 더 나은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정치세력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과 정치가 인민·국민들에게 이익이 되고 인민·국민을 위한 정책과 정치를 펼쳐 인민·국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강제로 추구하여 전인민의 이익에 배반할 때 그것이 바로 독재다. 더구나 외세가 개입해서 그 외세의 체제가 우월하니 그걸 남의 땅에 심기위해 갖은 폭력과 모략을 동원하는 것에 복무하는 세력은 민족에 반역하는 것이다.
1946년 8월 미군정청 여론조사에서 자본주의 14%(1,189명), 사회주의 70%(6,037명), 공산주의 7%(574명), 모른다8%(653명)로 좌익이념의 선호도가 무려 77%나 된다.
당시 어느 세력이 분열세력이었으며 어느 세력이 목숨걸고 민족분열을 막아 나섰는지 역사는 선명히 보여준다. 어느 세력이 외세에 결탁하여 민족분단의 반역적 행위에 적극 가담했는지도 뚜렷이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친일·친미·자신의 권력추구에 환장한 세력이 미국의 이익과 자신들의 이익은 합치되지만 민족과 민의를 배반하고 생긴 것이다. 한국의 지배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그 세력의 후계들이다.
미국은 제국주의의 본성대로 자국 이익에 의한 아시아지배전략에 따라 당시 코리아반도는 반드시 차지해야 할 전략적 거점이었다. 남의 나라를 집어 삼켜서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것이며 그것이 제국주의 본성이다.
그러면 미제의 민족분열 책동에 부하뇌동해서 민족의 분단에는 아랑곳 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에 따라 외세에 아부굴종한 정치세력들은 반민족 행위로 외세의 주구인 것이다.
일제처럼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영토를 점령하고 지배하는 것이 구식민지라면 직접 통치하지는 않지만 종주국이 통제 가능한 인물을 내세워 간접 통치하며 많은 부분에서 자치를 허용하지만 종주국의 결정적인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 결코 허용되지 않는 관계를 신식민지라 부를 수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0월 10일(현지시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제재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승인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그런 관계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발언에 대해 항의하는 정치인이 없는 것은 한국이 미국과 어떤 관계인가를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존심 강한 국민이라면 의분에 휩싸여 시위라도 할판이지만 한국의 평민들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미국의 비위라도 거슬려 경제제재라도 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자립경제 토대가 전혀 없는 한국은 미국이 조선에 하는 것처럼 제재를 받으면 물먹은 솜처럼 한 달도 못버티고 무너질 것이다. 세계분업체제에 들어와 있는 한국은 경제봉쇄를 당하는 순간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과도한 걱정이다. 미제는 지는 해처럼 이미 서산에 걸린 모습이며 제국의 최말기의 상태이다. 함부로 제재를 못하며 남과 북이 민족우선, 민족끼리, 민족공동운명체의 길로 나아간다면 말기 미제는 거저 멍하니 애타는 가슴 부여잡고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세력은 과감히 민족우선, 민족끼리, 민족공동운명체의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길을 견인할 수 있는 것은 평면들의 합체인 민중들이 할 수 있다. 민족애가 강한 평민들을 깨우라! 자신의 이익보다 민족의 이익을 앞세울 수 있는 민중이 많아지고 강력해질 때 그제사 정치세력도 움직일 것이다.
※ 1948년 8월 15일 이전 상황을 서술하면서 '남한' '북한'이라는 말은 대한민국이 생기기 전 상황이며 당시 조선이 해방된 것이므로 '남조선' '북조선'이라고 쓰는 것이 맞다. 또한 당시 영어 표현 Korea를 그때 상황에서는 '조선'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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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치열했던 전쟁터 한 가운데에 남북 연결 통로 열렸다.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일대 전술도로 연결…국방부 “전쟁의 상흔 치유”
국방부 2018.11.22
남북은 22일 오후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인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술 도로를 연결한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http://cafe.daum.net/jesbghd/Dyfi/3459